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지난 2018년 시월의 마지막 날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덜컥 찾아온 초겨울의 쓸쓸함을 잊을 만큼 뜨거운 감동의 파도타기를 일으켰다. 퀸의 노래를 들으며 성장한 중년들에게도, 전설로서 전해 들은 청소년들에게도 그 물결은 거세게 이어졌다.

평소 퀸의 노래를 특별히 찾아 듣는 편은 아니었다. 프레디 머큐리와 퀸의 삶과 음악을 주제로 한 영화가 나왔다는 소식에 궁금증을 품고 괜찮은 음악 수업 재료를 찾을 겸 개봉을 기다렸다. 기대 어린 개봉 관련 보도들을 접하며 미리 친숙해질 겸 라이브 에이드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피아노 앞에 앉아 "마마~"하며 목을 빼고 호소력 짙게 노래하는 프레디 머큐리의 모습을 보자 남다른 친근함과 애틋한 감정에 이끌렸다. 거의 40여 년 전 만들어진 곡이지만 여전히 전위적으로 느껴지는 구성력에 새삼 놀라워 이들의 음악을 더 깊이 알고도 싶어졌다. 그래서 며칠 동안 반복하여 들으며 개봉을 기다렸다. 점점 더 프레디 머큐리라는 한 남자와 퀸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확신이 된 궁금증

영화의 첫 장면은 미리 예습한 라이브 에이드 영상과 영화의 시작을 착실히 이어주는 교량이 되어주었다. 마치 영화의 개봉에 앞서 쉽게 몰입하여 들어오라고 깔아놓은 레드카펫과 같았다. 바로 이어진 젊은 날의 프레디 역으로 분한 라미 말렉은 그의 강렬한 인상을 살리기에는 다소 유약해 보였다. 싱크로율을 떠나 폭발할 듯한 음악적 열정이 내재 된 한 남자로서의 느낌이 제대로 풍겨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프레디가 싱어를 잃은 두 멤버와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예감할 수 있었다. 앞으로 남은 러닝타임 동안 다시 돌아온 프레디 머큐리와 함께 하게 될 것임을. 마치 이전 장면은 이 전환점을 뚜렷이 드러내기 위해 설정된 유인책인 듯 작은 몸짓 하나로도 그가 지녔을 거만한 음악적 자신감이 그대로 표출되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의 메인보컬인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다뤘다. 그는 에이즈로 45살에 요절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의 메인보컬인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다뤘다. 그는 에이즈로 45살에 요절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이 영화는 잘 만들었다면 잘 만들었다고, 못 만들었다면 못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 프레디 머큐리와 퀸의 삶을 꽤 비슷하게 생긴 배우들의 재현으로 조각조각 이어 붙이기 한 듯한 구성 이었지만 잠시도 눈을 돌릴 수 없을 만큼의 재미와 감동이 계속되었다. 그만큼 그들의 삶과 음악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역동적이었다.

영화의 말미가 실황이 아님을 의심케 할 만큼 생생하게 재현된 라이브 에이드 공연 장면으로 이어지면서 폭발할 듯한 현장감으로 마무리한 점 또한 인상 깊었다. 그러나 라이브 에이드에서의 열광적인 무대를 펼쳐 보이는 퀸의 공연 장면에서 잠시 카메라를 돌려 사무실 TV 모니터로 지켜보는 레이 포스터의 식상한 헐리우드식 '쌤통' 씬을 연출한 점에는 살짝 화가 날 정도로 몰입에의 방해를 느끼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작품성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많지만 프레디 머큐리의 삶과 그들이 이룩한 음악적 창조물의 발자취를 얼기설기 되밟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실 애초에 교재를 발굴하기 위한 목적이었기에 음악을 창조해나가는 과정에 대해 짤막한 에피소드들을 엮어 내어준 구성만으로도 몹시 만족스러웠다.

영화를 보고 난 뒤 한 달여간 기회만 있으면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비극적 결말이라고 말하며 슬퍼했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슬픔을 느끼지 못했다. 물론 여러 장면에서 진한 눈물을 흘리며 감상하긴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아름다움과 부러움에 대한 눈물이었다.

어떤 깨달음들
 
 영화 < 보헤미안 랩소디 > 속 한 장면. 퀸의 전신 밴드 스마일(Smile)은 영화와 달리 프레디 머큐리와 잘 아는 사이였다.

영화 < 보헤미안 랩소디 > 속 한 장면. 퀸의 전신 밴드 스마일(Smile)은 영화와 달리 프레디 머큐리와 잘 아는 사이였다.ⓒ 20세기 폭스 코리아

 
문득, '왜 유독 내겐 이 영화가 슬프지 않은 걸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꽤 오랜 시간 이 감정의 실체를 탐구하기 위해 내 삶과 세상의 이모저모에 관련지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곧 알 수 있었다. 프레디 머큐리의 삶은 현재의 내가 가장 극렬한 고통을 겪으며 바라보게 된 가치와 같은 방향을 향해 있었다는 것을.

작년까지 나는 혁신의 새바람에 올라타 아이들과의 창조적인 수업을 즐기는 낭만적인 중학교 음악 교사였다. 올해 고등학교에 전입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불편부당이 응집한 사회의 모판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 사회의 오랜 요구에 밀려 이젠 학교 스스로조차 대입관리 기관임을 자처하는 일반고에서는 그 어떤 불합리와 모순도 대입이라는 장치 앞에서 작고 보잘것없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특히, 아이들 저마다 지닌 아름다운 색채들이 사각의 틀에 갇혀 등급 매겨지고 성패의 낙인이 찍히고 마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도저히 젊은이들의 패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자유학년제니', '혁신학교니' 하는 새바람도 대입체제 앞에서는 한 발짝도 나가 서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초기화되었다. 이러한 고교 3년을 시작으로 구직기관이 되어버린 대학의 관리대상으로, 다시 군대의 관리대상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아이들에게는 각자가 지닌 색채를 지워나가는 과정을 겪어낼 일만 남아있는 듯 보였다.

최소 4년 이상의 대학 및 대학원 교육을 통해 공교육에 필요한 소양 교육을 받아온 교사들의 정체성도 퇴색되긴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학교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주장하는 사람을 이상주의라는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사회로 나가기 직전 3년의 자기 색채 지우기의 시간은 얼마나 많은 프레디 머큐리, 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 존 디콘들을 사장 시키고 마는가? 학교 교육을 통해 서열을 매기고 표준화된 사회의 시스템 속에 끼워 넣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개인의 잠재된 창조성을 사장 시키고 마는가.

영화 속 프레디 머큐리는 엄격한 신앙적 훈육환경 속에서도 자기 나름의 정체성을 지켜냈다. 누구에게나 이민자 출신임이 드러나는 외모와 값싼 수화물 노동자라는 신분만으로도 사회의 차별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운 처지였다. 성 소수자로서의 싸늘한 시선까지 더해 사회적 부적응아 꼬리표를 달아주기 딱 좋은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그 어떤 틀에도 자신을 끼워 넣지 않은 채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신의 색채에 주목했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질책의 욕망이 응집한 에이즈라는 병마에도 함락당하지 않고 죽는 날까지 사랑과 창조에의 열정을 거두지 않는다. 오로지 들끓는 영감의 주체가 되어 자신의 삶과 음악을 주도한다. 그 힘은 사상 초유의 음악적 상상력을 구현한 보헤미안 랩소디로 상징된다.

의미 있었던 실패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대중의 계속된 새로운 음악에의 열망과 삐뚤어진 관심으로 피로감에 젖은 프레디 머큐리가 솔로로 전향했다가 실패 끝에 다시 퀸의 멤버들 앞에 나타났던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내가 고용한 밴드는 언제나 내가 시키는 대로만 했어. 누구처럼 반대하지도 않고 누구처럼 수정하려 하지도 않아. 누구처럼 흥이 나서 멋대로도 하지 않아."

프레디 머큐리는 한동안의 실패를 통해 잃었던 자신의 길을 되찾은 것이다. 퀸의 명성이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천재성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니라 네 사람 모두의 재능이 모인 공동의 합작품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 깨달음 또한 누구의 훈계와 지시가 아닌 자신의 마음이 가는 길을 따랐을 뿐이다. 그는 실로 인생의 주인공이었다.

마찬가지로 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 존 디콘의 다른 멤버들게도 창조의 욕구와 삶의 방향성은 각각 팽팽했다. 퀸의 맴버 각각의 집착적인 열정으로 인한 충돌은 강한 창조의 구심력을 이루며 극대화되었다. 팬들은 마음껏 뿜어낸 각자의 창조적 에너지가 충돌과 보완의 과정을 통해 빚어낸 최대치의 창조물 앞에서 터질 듯한 열광으로 가세하였다.

아, 프레디 머큐리를 향한 끝없는 부러움의 실체를 이제야 알겠다. 비록 45년이라는 짧은 생이었지만 그는 운명이 데려다주지 않은 미래 세상의 사랑과 음악을 스스로 앞당겨 후회 없는 삶을 완성해내었다. 40여 년이 지난 그의 음악이 여전히 전위적이고 파격적이듯, 그의 삶 또한 오늘날의 그 어느 문화권에 비추어 보아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진취적이고 자유로웠다.

이것이 바로 입시관리기관이 되고만 학교 교육의 문 앞에서 선뜻 속하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나의 교육에의 열망이다. 인생 최대의 가변성과 역동성을 지닌 10대 아이들이 그들 스스로가 지닌 각자의 방향성을 최대치로 발현하면서도 평화로운 공존과 상생을 이루는 진정한 민주시민 교육이야말로 이 시대가 더는 미뤄서는 안 될 중대한 교육 지표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좁은 책상이라는 사각의 작은 틀에서 벗어나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좀 더 충돌하고 보완해 나가며 구심력을 길러가야 한다.

우리 사회는 수많은 틀에 의해 규격화되어왔고 서로에게 규격화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창조력이 파괴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 그를 연민하고 눈물지을 때 나는 부러웠다. 자기 생이 뻗어가는 방향에 집중하여 최대의 창조력을 발현한 그의 음악과 삶의 완성도에 기립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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