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30일 미니 5집 < RBB >를 발표한 레드벨벳.  사진 좌측부터 조이, 아이린, 슬기, 웬디, 예리

지난 11월 30일 미니 5집 < RBB >를 발표한 레드벨벳. 사진 좌측부터 조이, 아이린, 슬기, 웬디, 예리 ⓒ SM엔터테인먼트

 
"레드벨벳 실험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난 11월 30일 공개된  레드벨벳의 미니 5집 < RBB >의 동명 타이틀곡 'RBB(Really Bad Boy)'는 "여름맞이 특별선물"격이었던 'Power Up' 이후 3개월여 만의 신곡이지만 기본적인 틀은 지난해 11월 발표된 '피카부 (Peek-A-Boo)', 올해 1월 공개한 '배드 보이(Bad Boy)'의 흐름을 계승한다. 

음반 홍보 과정에서 특별히 연계성을 공표하진 않았지만 제목, 뮤직비디오의 콘셉트 등을 고려한다면 'RBB'는 충분히 3부작 구성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으로 인식되어도 이상할 것 없는 작품이다.

게다가 앞선 정규 2집 < Perfect Velvet >과 리패키지 음반 < The Perfect Red Velvet >이 각각 두번째 곡으로 경쾌한 1980년대 복고풍의 댄스곡 'Look', 'All Right'을 소개했던 것처럼 < RBB >에서도 'Butterflies'(언더독스 팀 작품)을 등장시키는 건 일관성 있는 곡 배치로 볼 만하다.

'피카부'에선 보름달이 뜨는 밤에 피자배달부를 사냥하던 공포스러운 소녀들을 뮤직비디오의 중심에 내세웠고 뱀파이어 집단부터 성적인 코드까지 언급될 만큼 각종 해석이 난무했던 'Bad Boy'에 이어  'RBB' 역시 온갖 숨겨진 의미 투성이의 영상으로 채워졌다.

공동 묘지를 배경으로 "나쁜 남자"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늑대인간(혹은 괴수)의 등장에서 5명의 멤버들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인다. 길들여 보겠다고 자신만만했지만 날카로운 이빨에 손을 물린 조이, 맹수의 그림자만 봐도 두려워하는 슬기, 괴물을 봐도 여유만만한 예리 등의 모습은 또 한번 보는 사람들의 머릿 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복잡한 소리의 조합...의외로 간단한 구성
 
 지난 11월 30일 미니 5집 < RBB >를 발표한 레드벨벳.

지난 11월 30일 미니 5집 < RBB >를 발표한 레드벨벳. ⓒ SM엔터테인먼트

  
EXO 혹은 NCT의 곡이 되어도 이상할 것 없어보이는 'RBB'는 D-C 등 최대한 단순한 코드의 반복 속에 킥드럼(베이스드럼)을 배제하고 스네어 드럼의 두드림으로 시작해 힙합 혹은 드럼앤베이스 등 다양한 장르의 리듬을 쉼없이 번갈아 들려준다.    때론 재즈 피아노의 선율이 흐름을 변형시키기도 한다. 괴성 혹은 비명에 가까운 여성 보컬의 등장은 뮤직비디오 속 이야기를 소리로 표현해낸다.

그런데 지난해 '루키(Rookie)' 못잖게 베이스의 울림이 강하게 들리는 'RBB'의 기본적인 음악 구조는 사실 의외로 간단하다. 요즘 유행하는 각종 리듬, 멜로디 선율이 울려 퍼지지만 이를 모두 걷어내 보면 1960-70년대 유행하던 미국의 소울 혹은 블루스 음악 틀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3-4개 안팎의 소수의 코드만을 토대로 곡 후반부를 멋지게 장식하는 보컬 혹은 기타 애드리브 연주로 듣는 이들을 매료시켰던 그 시절 팝송을 재료 삼아 복잡한 가공을 거쳐 마치 새로운 음악으로 탄생시킨다.  수록곡 '멋있게(Sassy Me)' 역시 비슷한 발상 속에 만들어진 곡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레드벨벳 'RBB' 공식 뮤직비디오]

다채로운 무규칙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변칙적으로 다양한 리듬이 등장하지만 이는 단순한 악곡 구조를 숨기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SM의 대표적인 프로듀서인 켄지를 비롯한 여러 작곡진들의 만만찮은 공력이 'RBB' 하나를 위해 아낌없이 투입된 셈이다.

'RBB'외에 재미있게 들어볼만한 수록곡은 런던노이즈(LDN Noize)팀이 참여한 'So Good'이다.  몇몇 팬들이 또 다른 타이틀 곡 감으로도 손색없다고 칭찬할 만큼 흡인력있는 소리를 들려준다.  페노메코가 랩 메이킹으로 참여한 'Taste'의 세련된 리듬 쪼개기, 또 한번 켄지의 기묘한 가사와 다채로운 리듬이 채워진 '멋있게 (Sassy Me)' 역시 눈여겨 볼 만하다.

낯설음으로 포장된 깜짝 선물
 
 지난 11월 30일 발매된 레드벨벳의 미니 5집 < RBB > 표지

지난 11월 30일 발매된 레드벨벳의 미니 5집 < RBB > 표지 ⓒ SM엔터테인먼트

 
< RBB >의 동명 타이틀 곡을 처음 들어본 사람들마다 제각각의 의견이 흘러나왔다.  그동안 레드벨벳의 신곡이 나오는 당일엔 극과 극, 엇갈린 반응이 나오는게 흔한 일이었다. 앞선 작품의 흐름을 기대하거나 예상했던 이들에겐 예상이 빗나갈 만큼 예측불허의 음악을 담아내는게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RBB'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레드벨벳의 신곡이 나올때마다 갑론을박의 논쟁이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생소함"에 있다. 기존 가요의 화법에선 보기 힘든 생경한 악곡 구성, 소리의 재배합이 적극적으로 이뤄진 곡들이 많다보니 새로움을 추구하는 이들에겐 큰 환영을 이끌어낸 반면, 생소함을 먼저 느끼는 분에겐 당황스러움을 안겨줄 수 있는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점이 레드벨벳 만의 특징이 되어줬다.  마치 "럭키박스"처럼 어떤 물건이 담겨 있는지 정체를 꼭꼭 숨긴 채 전달되는 깜짝 선물 노릇을 톡톡히 해낸 바 있다.  새 음반 < RBB > 역시 낯설음을 포장지 삼아 다채로운 즐거움을 제공한다. 매번 진행되는 레드벨벳의 음악 실험은 이번에도 유효한 측정값을 얻어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케이팝쪼개듣기 레드벨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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