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 포스터

<최저> 포스터ⓒ Kadokawa

 
'제발 네 몸을 소중히 여기렴.'
 
영화 <최저>에서 아야노의 어머니는 현관에 주저앉은 채 AV배우인 딸에게 애원한다. 이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은 이유는 AV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처절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AV는 불법이다. 일본에서도 AV는 불법이지만 모자이크 처리 등 실제 성관계 여부를 알 수 없게 교묘한 편법으로 유통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불법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말 그대로 '최저'의 삶을 살고 있는 거처럼 인식된다.
 
<최저>의 원작자인 사쿠라 마나는 18살에 데뷔해 현재까지도 활동 중인 AV배우이다. 그녀는 AV배우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의 제목을 왜 '최저'라고 지었느냐는 인터뷰 질문에 대해 '작가의 말'을 통해 "실제로 AV배우로 생활하면서 내 삶이 최저로 취급받고 있구나 라고 느낀 적이 꽤 있었다"고 답하였다.
 
AV배우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자서전으로 출간하는 경우는 있지만 사쿠라 마나처럼 소설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그녀는 꾸준히 잡지에 소설을 연재한 뒤 <최저>라는 작품을 발간했다. 네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작품 속 네 명의 여성들은 모두 AV산업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그녀들을 이 길로 이끈 건 가족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심리적인 열등감과 고통이다.
 
< 64 >< 8년에 걸친 신부 ><고독사> 등으로 유명한 제제 타카히사 감독은 이 중 세 개의 에피소드를 택해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시켰다. 첫 번째 에피소드 <아야노>는 아름다운 어머니와 언니 사이에서 열등감을 느끼는 아야노가 AV배우가 되어 가족과 갈등을 겪으며 자신의 정체를 모르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두 번째 에피소드 <미호>는 평생을 반듯하게 살아온 유부녀 미호가 남편이 잠자리를 거부하면서 여성으로써의 매력을 잃었다고 생각해 AV촬영을 결심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촬영 도중 투병 생활을 하던 아버지가 생을 마감하면서 죄책감에 빠져든다. 세 번째 에피소드 <아야코>는 고등학생 아야코가 어머니 도모코가 AV배우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좌절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최저> 스틸컷

<최저> 스틸컷ⓒ Kadokawa

 
원작에서 달라진 3가지

감독은 이 에피소드들을 하나로 엮어내면서 세 가지 지점에서 원작과 차이를 두었다. 이 선택은 원작을 보다 완성도 있는 영화로 만들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첫 번째는 AV를 향한 사회적인 혐오감을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AV배우인 아야노의 어머니는 딸이 AV배우라는 사실을 알고 오열을 한다. 고등학생인 아야코는 어머니 도모코의 과거가 자신이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이유라 여기며 자신을 짝사랑하는 남자 앞에서 절규한다. 이 두 장면을 통해 감독은 드라마적인 연결고리를 더욱 강화시킨다. 이야기에는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것이 있다. 한쪽의 감정이 강하게 작용할 때 상대가 느끼는 감정은 그 힘 때문에 더욱 강하게 부각된다.
 
AV배우가 된 딸을 보고 어머니가 울음을 터뜨릴수록, 언니가 그녀를 탓할수록 아야노의 좌절과 고립은 더욱 심화된다. 아야코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성적으로 성숙해지는 시기에 어머니의 과거를 알게 되었고 자신의 육체 그리고 남성의 시선에 대한 혐오를 느끼게 된다. 이를 통해 제제 감독은 원작의 희미했던 이야기의 갈등 고리를 강화시킨다.
 
두 번째는 아야코를 지켜준 점이다. 작품 속 주인공인 세 여성, 아야노, 미호, 아야코 중 AV라는 극단으로 향하지 않은 이는 아야코가 유일하다. 원작의 아야코는 어머니의 진실을 알고 카페 손님들에게 몸을 파는 여성으로 전락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아야코는 그런 아픔을 겪지 않는다.
 
아야코가 아픔을 겪는 원인은 2대에 걸쳐 '아버지'의 존재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도, 엄마도 아버지 없이 아이를 낳았고 이 점은 완벽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다는 상실감으로 아야코를 짓눌렀다. 영화는 아야코에게 아버지를 만들어주면서 유일하게 그녀만은 상실의 아픔에서 해방될 수 있게 도와준다. 이를 통해 관객은 우울과 아픔이 가득한 이 이야기 속에서 일말의 위안을 얻는다.
 
마지막은 그녀들이 품을 희망이다. 원작 <최저>는 여성화자들이 자신들의 감정을 이야기하기에 우울과 아픔이 주된 정서를 차지한다. 여기에 그녀들이 처한 결말 역시 꺼림칙한 뒷맛을 남긴다. 아야노를 예로 들자면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이 AV배우임을 알고도 이를 묵인하고 모른 체 한다면 그 위선에 실망할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남자가 그런 모습을 보이면서 에피소드가 마감된다. 사건의 명확한 결말은 없으나 이후 그녀들의 삶이 불행과 우울의 연속일 것이라는 암시가 담겨 있다.
  
 영화 <최저> 스틸컷

영화 <최저> 스틸컷ⓒ Kadokawa

 
반면 영화는 세 여성에게 '희망'을 주며 '최저의 삶을 이겨내는 힘'에 대해 말한다.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을 간직한 미호와 아버지의 존재를 모르는 아야코의 아버지가 같다는 설정을 통해 두 여인의 만남을 이끌어낸다.
 
미호와 아야코는 서로를 통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음을, 그리고 각자의 삶에서의 '최저'의 순간을 이겨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아야노 역시 마찬가지다. 원작과 달리 그녀가 직접 전화로 사랑하는 남자에게 자신의 정체를 공개하는 듯한 암시를 통해 아야노 역시 본인이 품은 아픔과 고통을 벗어낼 거라는 신호를 보낸다.
 
제제 타카히사 감독은 가족 내에서의 문제가 AV라는 극단으로 향하는 사쿠라 마나의 우울한 원작에 감정적인 출구를 마련하며 감정만 있던 이야기에 메시지를 장착시켰다. 핑크무비부터 AV까지 찍은 경험이 있는 제제 타카히사 감독은 감각적인 화면과 파스텔톤의 색체를 통해 여성들의 삶에 닥친 블루(우울)를 색감 있게 담아내며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가슴으론 느낄 수 있는 최저의 삶을 표현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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