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판결 소식을 듣자마자 변호사님 덕에 여기까지 왔다고 감사 전화를 드렸더니 도리어 "사실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겸손 너스레 인사를 전하는 양홍석 변호사님의 논평입니다. 以心傳心(이심전심). 모두를 위한 진짜 싸움은 이제 시작입니다."
 
29일 오후 홍가혜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작년 12월 홍씨가 제주에서 연 개인전 제목대로 '심연(深淵)'(부제:삭제된 시간)과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2014년 4월 18일, 그 짧은 인터뷰 이후 허언증 환자 등으로 몰리는 것도 부족해 구속까지 되는 고초를 겪었으니 말이다. 홍씨의 이 삭제된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은 아마도 한국 언론사의 '흑역사'로 길이 남을지 모를 일이다.
 
[관련기사] '허언증' 욕먹던 홍가혜의 반전, 언론사에 길이 남을 소송
 
 홍가혜 씨는 지난 6월 제주에 정착하여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홍가혜 씨는 지난 6월 제주에 정착하여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홍가혜(페이스북)

 
이날 대법원은 2014년 4월 18일 세월호 참사 당시 홍씨가 한 방송사(MBN)와 한 인터뷰에서 "해경 측이 민간잠수부들의 투입을 막을 뿐 지원을 전혀 해주고 있지 않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과 관련, 해양경찰청장 김석균 등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기소된 사건에 대해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1⋅2심의 무죄판결을 확정했다.
 
지난 2016년 9월 21일 대법원이 검찰 측 상고를 접수한 지 2년 3개월 만이다. 이 사건의 공익 변론을 맡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소장: 양홍석 변호사)는 이날 "대법원의 상고기각 판결을 환영"한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국민의 의혹 제기와 감시, 비판을 '허위'라는 프레임에 가둬 명예훼손죄로 수사하고 기소하는 경찰, 검찰의 반민주적 행태가 중단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주목할 만한 대법원 무죄 확정 판결
 
"내 생에 가장 정의로웠던 날을 꼽으라면, 2014년 4월 18일, 세월호에 갇힌 사람들을 구조하자고 마이크를 잡았던 그날일 것."
 

대법원 판결을 앞둔 지난 26일, 홍씨는 페이스북에 "언젠가는 하게 될 마지막 인터뷰를 한다면 이 말은 꼭 하고 싶었어요"라며 위와 같이 적었다. 복기해 보자면, 당시 홍씨는 방송 마이크를 잡고 "정부와 해경은 구조작업을 하려는 민간잠수부를 지원하는 대신 오히려 이를 막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다수의 매체가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다. 소셜미디어 상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여졌다. 홍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킬 사안임이 분명했다. 홍씨를 공격하듯 그 발언의 진의를 따지며, 사실 무력화시키는 언론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발언의 주체인 홍씨 자체를 공격하는 기사나 댓글, SNS 글이 쏟아졌다. 일방적인 비방과 왜곡된 정보들이 난무했다.
 
급기야 검찰은 이 인터뷰 내용이 해경의 명예를 훼손했고, 허위에 해당하다며 이례적으로 홍씨를 구속기소했다. 그 누구도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 참사의 구조를 게을리 하고, 언론을 통제하려 했으며, 진상 규명을 방해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못하던 시기였다. 이후 박근혜 정권이 청와대 차원에서 세월호 관련 보도에 언론 지침을 내리는 것도 모자라 여론 통제를 위해 국정원까지 동원했단 사실이 밝혀지기 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큐멘터리 <가혜>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가혜>의 한 장면ⓒ 다큐 '가혜' 캡처

 
홍씨는 이로 인해 100일 넘게 수감 생활을 해야 했지만, 허언증과 같은 낙인은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다행히도, 지난 2015년 법원은 1, 2심 모두 무죄 판결을 내렸다. 당시 판결에 대해 법원은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의 구조작업과 지휘, 현장 통제가 미흡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홍씨 인터뷰가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모두 허위로 단정하긴 어렵다"는 취지로 홍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동안의 저의 삶을 무너뜨리고 갉아먹고 옭아매고 있었던 죄명은, '해경 명예훼손'입니다. 더욱 화가 났던 건 이 말도 안 될 재판에 힘 있는 누구하나 옳은 소리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죠.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모욕의 대상이 되고 어떤 단어로 담아낼 수 없는 숱한 폭력에 제가 할 수 있는 건 방어뿐이었고, 그저 버텨내야만 했습니다.
 
그 시간들 속에 (침묵하는 사람들과 시민사회, 정치권을) 원망도 했고, (인터뷰 한 것을) 후회도 하며 살았지만, 좋은 분들 덕에 제 중심만은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 그런 말 있잖아요, 진짜 내편 한 명 있으면 살 수 있다는 말. 절절히 공감하며 살아낸 시간들입니다."(11월 26일, 홍가혜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중)

 
MBN과 인터뷰를 했던 2014년 4월 18일을 "제가 '일반인 중 가장 유명한 일반인'이 된 날"이라고 표현한 홍씨는 그간의 심정을 위와 같이 표현했다. 그날로부터 4년 7개월이 흘렀고, 무죄 확정까지 1687일이 걸렸다고도 했다. 몇 겹의 고통 속에서 지내야했을 홍씨의 그 시간을 누가 보상해 줄 수 있을까.    
 
 MBN 홍가혜 인터뷰

MBN 홍가혜 인터뷰ⓒ MBN 캡쳐

   일반인 홍가혜의 투쟁
 
"그동안 경찰, 검찰이 명확한 법리나 선례가 있음에도 국민의 감시와 비판을 '허위', '명예훼손', '모욕'으로 규정하고 '아니면 말고'식의 수사와 기소로 시민들의 표현 자체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전근대적인 행태를 보여왔다. 홍가혜 사건이 바로 그 전형이었다.
 
법리상 국가기관인 해양경찰청장은 명예훼손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당시 팽목항에서 벌어진 국가의 구조실패, 구조방기, 구조방해에 대해 국민의 입장에서 비판한 것을 '허위'라고 규정한 것은 형사사법을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는 전형을 보여준 것이다. 검찰총장이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눈물도 흘렸다. 잘한 일이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이날 "국민입막음용으로 '명예훼손죄'를 남용하는 반민주적 수사행태 중단돼야"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대법원의 무죄 판결의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이렇게 홍씨 사건은 검찰이나 수사기관이 국가권력 또는 특정 세력의 의도에 부응해 형사사법 절차를 오남용한 대표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더군다나 홍씨의 구속기소는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여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정권 차원에서 권력 기관을 움직이던 와중에 일어났다. 그로 인해 홍씨는 마녀 재판에 가까운 언론의 맹폭과 대중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이에 대해서도 홍씨는 명예 회복을 해나가는 중이다. 지난 6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홍가혜씨의 명예훼손 민사소송과 관련, 원고 승소 판결과 함께 세계일보와 스포츠월드에 각 500만 원, 스포츠월드 기자 김아무개에게 1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홍씨는 언론보도 또는 트위터 글에 실린 허위사실로 인해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므로 피고들은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다큐멘터리 <가혜>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가혜>의 한 장면ⓒ 다큐 '가혜' 캡처

 
또 지난 8월 서울중앙지법은 홍씨가 네티즌 15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들은 원고에게 각각 30만 원씩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앞서 홍씨는 지난해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본인의 인터뷰 기사에 비방 글을 올린 네티즌들을 모욕죄 혐의로 고소했고, 이 중 형사처분을 받은 네티즌 15명에 대해서는 민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1687일 동안 형사절차가 진행되면서 한 인간으로 홍가혜씨가 겪었을 고통에 대해서는 누가 눈물을 흘려주고 사과할 것인가. 국가가 이렇게 마구잡이 수사하고, 기소하고, 장기간 재판으로 한 개인의 삶을 파괴했을 때 그 개인뿐만 아니라 그 개인이 속한 공동체와 우리 사회 모두 상처를 입게 된다. 그 상처는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이제 더 이상 이런 정치적인 수사가 없어져야 할 것이다."
 
홍씨의 법정투쟁을 지지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공권력의 무리하고도 정치적인 구속 수사와 이를 빌미 삼아 쏟아진 언론과 대중의 맹폭은 유례없는 일이었다. 그러한 전방위적인 공격을 홍씨 개인이 감내해야 했다. 그리고 그 1687일 동안, 그 어느 국가기관도 공식사과하지 않았다.
 
지난 3일 열린 특별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다큐멘터리 <가혜> 속 주인공 홍씨는 "내가 바라는 삶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의 무죄 확정과 더불어 홍씨가 이제는 평범한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평범하게 살 권리를 위해 '진짜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그럼에도 더 이상 '일반인 중 가장 유명한 일반인'이 아닌 그냥 '일반인'의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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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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