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의 가사들이 간직한 심리학적 의미를 찾아갑니다. 감정을 공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까지 생각하는 '공감'을 통해 음악을 보다 풍요롭게 느껴보세요. - 기자말

내가 성장하는 동안 어른들은 늘 말했다. "사람이면 ~답게 사는 것이 좋다"고. 그러면서 늘 강조하셨다. "여자는 여자다워야 하고,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고. 나도 한 때는 이 말이 진리인 줄 알았다. 그래서 친구와 메이크업 강의도 듣고, 매너스쿨에도 다니며 여성다운 몸가짐을 익히려고 애썼다.

그런데 이상하게 불편했다. 어른들이 말하는 '여성다움'의 기준에 맞추어 가는 내 자신이 어색했다. 그리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성다움'이 과연 무엇인지, '나 다운'것은 여성다운 것이 될 수 없는지. 20대 시작한 이 고민은 40대가 된 지금도 불쑥불쑥 물음표를 달고 나타나곤 한다. 그래서 일까. 보아가 지난 10월 발표한 'Woman(작사 보아, 작곡 Jon Hume, Hook, Ivy Adara)'은 내겐 이런 고민을 담고 있는 곡으로 들려왔다.

틀에 박힌 기준
 
 지난 10월 발표된 보아의 노래 'Woman' 뮤직비디오 화면

지난 10월 발표된 보아의 노래 'Woman' 뮤직비디오 화면ⓒ SM


보아는 단도직입적으로 노래를 시작한다. '똑같은 생각에 틀에 박혀있네. 왜 더 가지 못해 바로 눈앞인데'라면서. 도대체 '똑같은 생각'이 무엇일까. 무엇이길래 이 생각에서 벗어나 '한발 디디면 확 트이는 시야'를 갖게 되고 '더 멀리 뛰어'갈 수 있다고 노래하는 걸까. 의문을 가지고 다음 소절을 이어 들었다. '안다고 다 알고 있는 게 아냐, 우리만의 표정 그리고 몸짓'. 그러자 답이 보였다. 지금 보아는 '우리만의 표정 그리고 몸짓'을 존중해 주지 않는, 남성중심으로 편성된 사회의 기준 즉 '똑같은 생각'을 비판하고 있는 중이었다. 도대체 왜 남성의 시선만 기준이 되고 여성의 시선은 기준이 될 수 없는 걸까?

보아의 이런 고민은 프로이드 이후 '남성의 시선'이 짙게 깔린 심리학계에서도 많은 여성주의 심리학자들이 공유해왔다. 특히 캐럴 길리건은 여성의 것은 왜 기준이 될 수 없는지에 의문을 품은 심리학자이자 페미니스트였다. 그녀는 도덕성 발달을 비롯한 심리학적 현상들을 왜 남성적인 특징을 기준으로만 평가하는지 고민하면서 매우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 이론에 반기를 들었다.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 이론은 공정성과 논리적 판단력을 기준으로 인간의 도덕성 발달단계를 6단계로 표현한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관계적 맥락에서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여성들은 높은 도덕성 발달단계에 이를 수 없다.

길리건은 이와 같은 콜 버그의 도덕성 발달 이론은 여성들이 도덕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에 사회생활에 적합하지 않다는 가부장적 사고를 뒷받침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물음을 던진다. 도덕성의 기준에 타인을 배려하고 보살피며, 관계적 맥락을 살피는 것은 왜 포함되지 않는가? 왜 세상은 남성의 것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여성적인 것을 열등하게만 보는가?

분열된 여성의 정체감

안타깝게도 이런 의문은 사실이었다. 보아식으로 말하면 '우리만의 표정 그리고 몸짓'은 사회에서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해왔다. 여성들 각자가 가진 다양한 개성은 무시되어 왔고, 남성들이 규정한, 즉 가부장제의 시각에서 대상화된 '여성성'을 따를 것을 강요받아왔다. 게다가 힘껏 '여성다운' 삶을 살기 위해 가부장제의 기준에 따라 살아온 여성들의 삶은 수시로 평가절하 되어왔다.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정체감의 분열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내면의 욕구는 억누른 채 대상화된 삶을 살아낼 수밖에 없는 여성들은 내가 마치 둘인 것처럼, 통합된 나 자신의 정체감을 느끼기가 힘들다.
 
 'Woman'이 수록된 보아의 9집 앨범

'Woman'이 수록된 보아의 9집 앨범ⓒ (주) 아이리버

  
보아는 이런 현상을 직시한다. '그 속에 섞인 난 둘이 아닌 걸'은 가부장적 시선 속에서 분열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정체감을 통합하자는 외침이다. 남성적인 것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여성은 '제2의 성' 즉, 대상화된 성이 된다. 하지만, 길리건이 주장했듯 여성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면, 여성은 제2의 누군가가 아닌 다양한 개성을 가진 나 자신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보아는 '제2의 누군 존재하지 않아'라며 여성적 특징 또한 남성적인 것과 똑같이 존중해줘야 한다고 노래한다.

사실 남성의 시선으로 규정된 사회에 살면서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 모순된 길 뿐이다. 보아는 이를 '여자다운 것 강요했던 그 때'와 '여자다움 몰랐었던 그 때'라고 표현한다. '여자다운 것 강요했던 그 때'는 전통적 성역할만 강조하는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따르는 삶을 의미한다. 즉, 남성의 시선에서 자신을 규정하고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자신의 개성을 억누르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여자다움 몰랐었던 그 때'는 이런 가부장적 사고에 반기를 들고 남성과 똑같이 되기 위해 스스로 여성적 특징들을 억누르는 태도를 말한다. 이런 태도는 여성 스스로가 여성성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진정한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어 보아는 노래한다. '이젠 알아 진짜 필요한 그 것'은 '내면이 강한 멋진 나인 걸'이라고. 앞의 두 가지 태도를 모두 버리고 여성성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그대로 존중해주면서, 여성답기보다 '나답게' 살아가자는 의미다.

나답게 사는 법

그렇다면 '나답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할까. 먼저, 보아는 이렇게 노래한다. '비교는 No, 있는 그대로 빛나 충분히 아름다워' 라고. 즉 남성적인 것을 기준으로 비교하지도, 전통적인 여성성과 나를 비교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나의 개성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한 사람으로서의 정체감을 가부장제에서의 성역할인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으로 구분 짓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이것이야말로 나 자신을 통합시키고 타인도 정직하게 존중하는 방법인 것이다.

다음으로 보아는 '나다운 걸 원해? 그럼 널 보여줘'라고 조언한다. 이는 내가 가진 개성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표현해 보여 달라는 말이다. 즉, 겉과 속이 일치하게 정직한 태도로 자신을 대하자는 것이다. 이는 싫은 것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싫다고 말하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앞서 언급한 길리건은 오랫동안 가부장제에서 '자기희생'이라는 가치를 주입받아온 여성들이 이기적이라는 걱정 때문에 자신의 욕구나 의견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런 태도는 여성이 '나답게' 살아가는 것을 방해한다. 자신의 욕구와 생각을 명확히 밝히는 것. 진정으로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세다.

이어서 보아는 '시선에 속지 마'라고 노래한다. 이는 여성으로서 나답게 사는 것을 방해하는 가부장적 사회의 시선에 속지 말라는 경고다. 사실 아주 오랫동안 인간사회의 질서로 자리잡아온 가부장적 사고는 여성의 내면에도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때문에 '나답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들은 사회적 비난 뿐 아니라 내면의 죄책감과도 싸워야 한다. 이에 보아는 단호하게 말한다. 이런 사회적 비난과 죄책감은 진실된 것이 아니라고. 이는 가부장적 무의식이 우리를 '속고 속여 또 훼방을 놓아'대는 것이라고.

나답게 사는 즐거움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의 아름다움을 인정해주고,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며, 사회와 정신에 깊이 뿌리박힌 가부장적 시선을 거부하는 것. 보아가 제시한 이 세 가지는 강요된 여성다움에서 벗어나는 매우 중요한 방법이다. 동시에 내 안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여성다움을 수용해 보다 나다운 나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태도다. 보아는 이를 실행할 때 '내 안에 간직해온 화려한 spotlight속의 진정한 woman'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노래한다.

이렇게 살 수 있을 때 우리는 어떤 것을 얻을 수 있을까. 보아는 노래를 마무리하면서 이럴 때 얻게 되는 여러 장점들을 노래한다. 먼저 '높아지는 자존감'을 얻게 되고, 그럴 때 '여유는 나의 것'이라는 가사처럼 나 자신과 타인에게 보다 너그럽게 대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여유로움 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는 미소로 이어진다('미소는 널 저격해'). 그리고 나아가 여성으로의 삶에 만족감을 느끼고 'Feels good to be woman'임을 깨닫게 된다. 즉, 자신의 정체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문득, 어린 시절 어른들이 "여자답게 살아라"가 아니라 "너답게 살아라"라고 한 번이라도 말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그랬다면 몸에 맞지도 않는 전통적 여성다움을 따라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도, 여성으로 태어난 것을 억울해하며 혼란스러워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 보아의 노래를 들으면서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남성 중심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 안의 자연스런 여성성을 정직하게 표현하고 드러낼 때 그것이 진정한 내가 될 수 있는 길임을 말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많은 여성들이 '나다운'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노래 속 보아의 바람처럼 여성들이 여성임을 즐거워하며 축복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 덧) 이 노래는 여성을 위주로 노래하고 있지만, 노래 가사의 'woman'을 'man'으로 바꾸어 불러도 의미가 통할 듯하다. 가부장제의 '남성다움'을 따르느라 '나다움'을 잃은 남성들 역시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가부장적 이분법에서 벗어나 내면에 간직한 고유한 개성을 정직하게 표현할 수 있기를, 그리고 서로가 이를 존중해줄 수 있기를, 모두가 '나다운'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난 10월 발표된 보아의 노래 'Woman' 뮤직비디오 화면

지난 10월 발표된 보아의 노래 'Woman' 뮤직비디오 화면ⓒ SM

 
똑같은 생각에 틀에 박혀있네
왜 더 가지 못해 바로 눈앞인데
한발 디디면 확 트이는 시야
더 멀리 뛰어봐

안다고 다 알고 있는 게 아냐 (Y'all no no)
우리만의 표정 그리고 몸짓 (I've got it)
그 속에 섞인 난 둘이 아닌걸 (I know it)
제 2의 누군 존재 하지 않아
Feels good to be a woman

Hey yeah yeah yeah
비교는 No
있는 그대로 빛나 충분히 아름다워
To be a woman
Hey yeah yeah yeah
스타일리쉬해 모던한 그림 속의
탐험을 즐기는 나
진정한 Woman

나 다운걸 원해?
그럼 널 보여줘
진주 가지고선 찾아 다이아몬드
속고 속여 또 훼방을 놓아
시선에 속지마 Oh yeah

여자다운것 강요했던 그때 (Girls on top)
여자다움 몰랐었던 그때 (Did't know that)
이젠 알아 진짜 필요한 그것 (I've got it)
내면이 강한 멋진 나인걸
(후략)

 - 보아의 'Woman' 중에서 -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 에도 실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신문기자로 세상을 관찰하며 살다, 지금은 사람의 마음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체가 존중받는 세상을 꿈꾸며, '생명감수성'과 '마음의 성장'을 일상과 문화콘텐츠를 통해 공유하고 소통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