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옥, 홍은원, 최은희, 황혜미, 이미례, 임순례 등 6인의 여성감독의 영화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생존>(2018)

박남옥, 홍은원, 최은희, 황혜미, 이미례, 임순례 등 6인의 여성감독의 영화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생존>(2018)ⓒ 한국영상자료원

 
프랑스 파리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1994년 단편 <우중산책>으로 주목받은 임순례 감독은 2001년 <아름다운 생존: 여성 영화인이 말하는 영화>(이하 <아름다운 생존>)라는 다큐멘터리를 발표한다.
 
당시 주목받는 신진 여성 감독 중 한 명인 임순례는 선배와 동료 여성 영화인들의 흔적을 좇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서 만든 다큐멘터리에 왜 '아름다운 생존'이라는 제목을 달았을까. 한국에서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건 100년 전의 일이지만, 여성 감독의 출현은 1955년 <미망인>을 발표한 박남옥 감독에서 겨우 출발한다. 박남옥 감독의 등장 이후, 그녀의 바통을 이어받아 60-70년대 영화 현장에서 메가폰을 잡은 여성 감독은 홍은원, 최은희, 황혜미가 전부다. 그리고 1970년 <첫경험>을 연출한 황혜미 감독 이후 14년 만에 이미례라는 새로운 여성 감독이 등장한다. 
 
 박남옥, 홍은원, 최은희, 황혜미, 이미례, 임순례 등 6인의 여성감독의 영화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생존>(2018)

박남옥, 홍은원, 최은희, 황혜미, 이미례, 임순례 등 6인의 여성감독의 영화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생존>(2018)ⓒ 한국영상자료원

 
임순례 감독의 <아름다운 생존>이 발표된 지 17년 후,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공동정범>로 주목받은 김일란 감독이 연출한 <아름다운 생존>(2018)은 제목뿐만 아니라, 여성 후배 감독이 한국 영화사 속 여성 감독들을 새롭게 조명한다는 취지에서 임순례 감독의 <아름다운 생존>과 맥락을 같이한다.
 
김일란 감독의 <아름다운 생존>에 등장하는 여성 감독은 박남옥, 홍은원, 최은희, 황혜미, 이미례, 임순례 총 6명이다. 2001년 <아름다운 생존>을 만들면서 선배 여성영화인들과 인터뷰를 나눴던 임순례 감독, 오랫동안 한국 여성 감독들을 연구해왔던 주진숙 중앙대 명예교수 등의 증언에 따르면 박남옥, 홍은원 감독은 영화 연출가로서 자질도 상당했고,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를 그려내는 능력 또한 탁월했다.

감독보다는 배우로서 한국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최은희는 남편인 신상옥 감독의 권유에 마지못해 메가폰을 잡았다고 하나 뛰어난 현장 장악력과 섬세한 연출력으로 주변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 한국영상자료원

  
하지만 연출력과 현장 지휘력을 인정받고도 이들이 남긴 연출작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다. 한국 최초 여성 감독 박남옥의 연출작은 <미망인>이 전부다. 일찍이 영화 현장에서 능력 있는 각본가, 스크립터, 조감독으로 인정받은 홍은원 감독은 데뷔작 <여판사>(1962) 이후 <홀어머니>(1964), <오해가 남긴 것>(1966)을 연출하고 몇 년간 각본가로만 활동하다가 영화판을 떠났다. <여판사> 연출 또한 그녀 나이 마흔이 다 되어서야 겨우 이룬 성과다. 감독으로서 그녀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홍은원 감독은 현장 경험도 풍부하고 꼼꼼한 촬영 현장 지휘로 동료, 후배들의 귀감이 되던 영화인이었다. 하지만 '여자'인 홍은원 감독에게 연출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고, 어렵게 감독이 된 이후에도 영화시장의 호황에 힘입어 1년에 최대 수십 편의 영화를 만들었던 남성 감독들에 비해 홍은원 감독의 연출작은 겨우 세 편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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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스타 배우라는 타이틀과 남편인 신상옥 감독의 서포트 하에 <민며느리>(1965), <공주님의 짝사랑>(1967)을 연출한 최은희의 사정은 박남옥, 홍은원 감독에 비해 좀 나았다고 할 수 있을까. 허나 은막의 여왕 최은희 또한 영화 연출 작업을 계속 이어나가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그나마 한국형 모더니즘의 시초를 열었던 <안개>(1967)를 기획하며 영화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황혜미 감독은 <첫 경험>을 발표하며 감독으로서 야심찬 포부를 비추기도 했지만, <첫 경험>을 포함한 황혜미 감독의 영화는 필름조차 남아있지 않다.
 
김일란 감독의 <아름다운 생존>에 등장하는 여성 감독 중에서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영화감독으로 활동한 이는 임순례 감독뿐이다. 1994년 데뷔 이래 24년 동안 감독으로서 커리어를 잃지 않았던 임순례 감독이야말로 한국 여성 감독 역사를 다시 쓴 입지전적인 인물이 아닐까 싶다. 임순례 감독의 뒤를 이어 <화차>의 변영주, <질투는 나의 힘> 박찬옥, <미쓰 홍당무><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들이 주목받긴 했지만, 여성 극영화 감독으로서 임순례 감독이 가지는 상징성은 절대적이다.
 

ⓒ 한국영상자료원

  
다시 한 번 '아름다운 생존'이라는 제목에 질문을 던지자면, 임순례 감독의 <아름다운 생존>에 등장한 내용처럼 한국 여성 영화인들에게 영화 작업은 일종의 금지된 욕망이었다. 여성과 여성 영화인들에 대한 각종 편견, 차별 속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행위였다. 박남옥 감독은 남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촬영장에 나서야 했으며,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스태프들이 먹을 밥까지 손수 지었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그녀의 첫 번째 영화이자 마지막 영화인 <미망인>이다. 여성이 감독이 된다는 것조차 엄두도 못 내던 시절, 남성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진 영화판에 영화인으로서 인상적인 발자취를 남긴 여성 영화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제작하고 김일란 감독이 연출한 6인의 한국 여성 감독에 관한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생존>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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