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 <최고의 이혼>

KBS 드라마 <최고의 이혼>ⓒ KBS

 
KBS 2TV <최고의 이혼>이 막을 내렸다. 마지막 장면에 카메라가 멈춘 뒤, 마음에 충만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제야 깨달았다. 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적 과정이 얼마나 아름다운 성장과 치유의 여정이었는지를 말이다.

이 드라마의 휘루(배두나)와 석무(차태현), 유영(이엘)과 장현(손석구)은 한 마디로 위기의 커플이었다. 그런데 서로 거리를 두고 관계를 성찰하면서 각자 자신의 상처를 만나고, 회복하며, 서로를 용서해간다. 동시에 네 인물들은 자신들의 여정을 통해 삶에서,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드라마 속 네 명의 주인공이 일궈낸 심리적 성장의 여정을 통해 이 드라마의 메시지를 짚어본다.
 
 KBS 드라마 <최고의 이혼>

KBS 드라마 <최고의 이혼>ⓒ KBS

 
휘루(배두나) : 의존에서 독립으로

드라마 초반 휘루는 자유로우면서도 공허해보였다. 석무의 잔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유지하는 모습이 무척 당차보이면서도 어딘지 수동적이고 외로워보였다. 1회 석무가 이혼을 먼저 선언했을 때에도 휘루는 "이혼하기 싫다"고 자신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 이혼 서류에 계속 틀린 글자를 만들어 내는 식으로 수동적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수동적으로 보이는, 묘한 성격의 휘루에게 석무와의 숨 막히면서도 무미건조한 관계는 아마도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을 불러왔을 것이다. 이에 휘루는 2회 큰 용기를 내어 석무에게 이혼서류를 건네며 "시원하다"고 말한다.

홀로 되어 본격적으로 동화를 쓰기 시작하면서 휘루는 자기 자신의 상처를 직면한다. 마침내 동화책이 완성되어 난생 처음으로 꿈을 이루게 된 휘루는 25회 편집장에게 "꿈은 이뤄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며 "응원단장이 꼭 하고 싶어서 딱 한 번 하고 싶은 걸 지원했는데 0표를 받았다. 그게 상처였나 보다"고 토로한다. 동시에 깨닫는다. 자신이 자존감이 낮은 상태로 석무와 결혼을 했기 때문에 석무에게 의존한 채로, 자신의 욕구를 알아서 채워주기를 바라왔었음을 말이다. 자기 자신도 인정해주지 못하고 표현하지도 않은 욕구를 타인이 알아주기만을 바라는 마음. 이는 나 자신에게는 물론 관계에서도 건강하지 않은 태도다.

이를 깨달은 휘루는 집을 나와 출판사와 옥탑방에서 생활하면서 의존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동화작가로서 꿈을 이루고 자신감을 얻게 된 휘루는 독립된 생활을 하면서 문득문득 석무를 그리워하긴 하지만, 스스로에게 만족하게 된다. 스스로 자신의 욕구를 채워가는 드라마 중반 이 후 휘루의 눈빛은 더 이상 공허해보이지 않았다. 31회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 결혼을 해서도 잘 사는 것 같아요"라는 휘루의 대사는 관계에 있어서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휘루의 말처럼 보다 독립적인 한 사람으로 살면서 휘루는 석무와 결혼했을 때보다 더 진실한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게 됐다.
 
 KBS 드라마 <최고의 이혼>

KBS 드라마 <최고의 이혼>ⓒ KBS

 
석무(차태현) : 내 안에서 빠져나와 타인에게 향하기

휘루가 타인이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길 바라는 타입이었다면, 석무는 반대로 자신 안에 갇힌 채, 타인을 바라보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드라마 초반 석무는 자신의 방식과는 다른 휘루에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고, 대화할 땐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 훈계를 한다. 일상의 스트레스와 걱정거리도 식물을 키우고, 동물동영상을 보거나 혼잣말을 하며 해결한다. 이처럼 타인과의 정서적으로 교류하지 못하는 석무와 자신의 마음을 타인이 알아주길 바라는 휘루의 조합은 꽤나 어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석무는 휘루와 이혼을 한 후 다른 가족들에게 이혼을 알리는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석무는 강압적인 아버지에게 맞추어 살면서, 스스로 원하는 것을 알아채고 표현하는 것을 습득하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어린 시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면 늘 윽박질렀던 아버지와 살면서 석무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내면 깊숙이 감정과 욕구들을 숨기게 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내면을 표현한다는 것은 비난받는 일이었기에 깊은 감정을 내보여야 하는 사랑이라는 관계가 석무에게는 위험하게 느껴졌을 수밖에 없다.
 
결국 석무는 17회 이혼을 알리러 가족들을 찾아가 아버지에게 "결혼하기 싫었어요. 결혼하고 관계를 방치하면서 가깝다는 핑계로 더 멀어지면서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내가 본 게 그거 뿐이었으니까"라고 항변한다. 이 장면은 석무가 자신의 과거를 이해하고,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음을 상징한다 할 수 있다. 이 후 석무는 유영과 장현, 회사 후배의 관계 개선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기도 하며 자신 안에 숨겨두었던 관계욕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동시에 회사생활을 중단하고 대학시절 꿈이었던 작곡가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한다. 31회 석무는 "나는 사랑하면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았는데. 그렇게 나한테 자신이 없으니까 사랑하는 게 힘들었을 거야. 나를 사랑해야 남의 사랑도 받을 수 있는 건데"라고 말한다. 자신의 꿈을 가꾸고 스스로를 사랑하면서 타인에게도 좀 더 마음을 열게 되었다는 선언이다. 드라마 말미 휘루처럼 아무렇게나 책을 꽂아 놓고, 베란다의 화분들을 처분한 석무의 모습은 이제 보다 관대하게 자신과 타인을 대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KBS 드라마 <최고의 이혼>

KBS 드라마 <최고의 이혼>ⓒ KBS

 
유영(이엘) : 나 자신과 화해하기

유영은 어린 시절 자신이 무척이나 좋아했던 아버지를 싫어하게 만든 어머니에 대한 증오로 자기 자신까지 포기했던 인물이었다. 유영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가 아버지의 외도를 목격한다. 아버지를 무척 따랐던 어린 유영에게 아버지를 미워하는 일은 엄청난 죄책감을 유발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어린 유영은 아버지 대신 이를 알게 한 어머니를 미워하기로 결심한다. 어린 유영이 선택한 어머니에 대한 분노는 성인이 된 후 어머니와 비슷한 처지에 처한 자신에 대한 분노로 바뀐다. 유영은 장현의 외도를 알면서도 장현을 미워하기 보다는 어머니와 같은 분노를 느끼는 자신을 미워한다. 이는 어린 시절 아버지 대신 어머니를 미워하기로 한 것과 같은 맥락인 셈이다.

하지만, 16회 거제도에서 방문한 동생은 "인정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잖아. 니가 엄마 닮은 거. 피가 어디 가냐"며 유영에게 뼈아픈 직면을 하게 한다. 억눌러왔던 분노를 마주한 유영은 이제 자신의 분노를 인정하기로 한다. 그리고 장현에게 강하게 분노를 표현하며 자신의 마음을 인정해주는 길을 택한다. 이런 가운데 아기를 갖게 된 유영은 어머니와 화해하기로 결심한다. 30회 유영과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유영이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이렇게 다짐한다. "내 모습 그대로 나를 인정하면서 살아 가려구. 그래야 또 마주할 수 있겠지. 당신도 더 잘 보구(31회)" 아마도 이런 다짐이 있었기에 유영은 장현을 다시 받아들일 용기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KBS 드라마 <최고의 이혼>

KBS 드라마 <최고의 이혼>ⓒ KBS

 
장현(손석구) : 사랑의 두려움 극복하기

장현은 시청자들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저렇게 태평하고 당당하게 외도를 할 수 있는지 납득할 수 있는 시청자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현은 어린 시절 사랑하는 대상에게 거부 받는 경험이 얼마나 한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단 둘이 외국에서 살았던 장현은 어머니가 늘 힘들어하는 모습만 보고 자란다. 장현은 어머니를 사랑해 웃게 하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항상 불행해했고 그럴 때마다 장현은 "나 때문에 어머니가 불행하다"며 스스로의 존재를 혐오했을 것이다. 게다가 어느 날 어머니는 어린 장현을 두고 자살한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은 겪은 장현은 '나때문에 어머니가 자살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떠나간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불행히도 장현의 이런 사고는 고등학교 때 다시 한 번 재현된다. 자신이 무척이나 좋아했던 세진이 자신을 버린 것이다. 결국 장현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떠난다'는 신념을 더 굳건히 하게 된다.

때문에 장현에게 유영과의 깊은 관계는 스스로 말하듯 "무서운" 것이었다. 자신이 유영을 사랑하면, 유영이 떠날까봐 늘 무서웠던 장현은 다른 여자들과의 '영혼 없는 관계'로 두려움을 달래려 한다.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관계에서는 상처받을 일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영의 분노와 단호한 거절은 이런 장현이 내면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준다. 장현은 유영이 분노를 표현한 16회 이 후 스스로를 깊이 성찰하며 자신이 했던 행위가 유영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주었는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다시는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유영에게 진심을 보여주려 애쓴다.

이처럼 <최고의 이혼>의 네 인물들은 커플 사이에서 위기를 경험하면서 관계에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신의 내면과 마주 할 수 있었고, 자신의 상처를 받아들이고, 상처를 주었던 대상과 화해하며 스스로를 성장시켰다. 휘루는 보다 독립적인 사람이 되었고 석무는 타인에게 마음을 내어주기 시작했으며, 유영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장현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의 원인을 알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은 상처도 성장의 방향도 서로 달랐지만, 한가지 공통된 비결을 보여줬다. 바로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휘루도, 석무도, 유영도, 장현도 자신의 상처를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내가 가치 있는 사람임을 스스로 인정해주었을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가치 있는 존재임을 느끼지 못했을 때 두 커플 모두 위기를 맞았지만, 조금 거리를 두고 서로의 가치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관계는 다시 회복됐다.

어쩌면,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니었나 싶다. 한 개인과 관계의 성장에 있어서 필요한 단 한 가지. 그것은 '서로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 즉,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만한 존재임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덧붙여 너무나 친밀해 '공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상대방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가 꼭 필요하다고. 
 
드라마 <최고의 이혼> 명대사
"우리가 남이지. 모두가 다 남이지. 남이 만나서 친구도 되고 부부도 되고 가족도 되지만, 모양만 다른 거지 결국 다 남인거지. 남이랑 가족이 된다는 건 바닥을 닦는 거랑 비슷하더라. 그 집을 석무 결혼하면 주려고 매일 매일 닦았어. 닦을 때마다 매일매일 안 보이는 흠들이 보이는 거야. 지우고, 덮고, 닦고, 오래 걸리고 힘들고 지루하지. 게다가 해봐야 티도 안나. 그런데 또 안하면 확 티가 나고. 낯선 사람이랑 가족이 된다는 게 그런 건가 싶더라고" (9회, 석무의 할머니 미숙)

"알고 있어. 나도 알아. 사방이 깜깜하거든. 이것도 보기 싫고 저것도 보기 싫고 그렇게 구석을 찾아가다보니까 어느새 깜깜하더라고. 이제 출구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출구를 찾아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서있는 곳이 방인지 벼랑 끝인지도 모르겠어. 그래 어쩌면, 당신이 꺼내주길 바랐는지도 몰라. 그치만, 남에게 그런 걸 바라서는 안 되는 거니까. 그러다 결국 내가 갇힌 곳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거니까. 내가 나가야 되잖아. 내가 나갈 수 있을 때까지 아무도 끌어 들여서는 안 되는 거니까." (13회, 석무)

"억지로 맞춰주면 안 돼. 그러면 죽어 갈꺼야. 내가 당신이 좋아했던 점들이 점점 사라져갈 테니까." (16회, 휘루)

"너무 가까우면 형체가 잘 안보여요"(21회, 휘루의 동화책 편집장)

"결혼하면 서로를 자기 꺼 라고 생각하잖아. 좋게 말하면 나와 한 몸이다 이렇게. 그래서 마음대로 하려고 하고. 그런데 자기 자신을 그렇게 대하나? 마음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22회, 휘루)

"다른 사람이 뭐 잘못하면 우리는 위로를 하잖아요. '괜찮아, 다 잘될꺼야' 그런데 가족이 뭘 잘못하면 화부터 내잖아.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또 다른 사람이 잘되면 축하해 하는데 가끔 영혼이 없기도 하고, 배가 살짝 아픈 거 같기도 하고. 가족이 뭐가 잘되면 신기하게 진짜로 100프로잖아요." (26회, 휘루)

"어쩌면 예전 같으면 덥석 물었을 수도 있죠. 혼자고 힘들고 무서우니까 아무나 붙잡고 헛다리 짚었을지도 모르고. 그런데 이제 아니에요." (26회, 휘루, 고백하는 편집장에게)

"혼자사는 사람도 있고, 각자 자기 방식이 있는 거죠. 검은 머리 파뿌리 안 되도 되고요. 저도 오래전에 이혼을 했지만 혼자가 아닙니다. 또 다른 가족, 친구가 생겼으니까요. 모든 관계는 생기고 흩어지고 또 만들어지고 부서지고 그러는 겁니다. 잡을 수 있는 건 자기 마음 뿐이죠. 그러니까 그냥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한 번 보세요. 지금 그 눈빛으로 그렇게 살면 됩니다." (32회, 미숙, 유영-장현의 결혼식 주례사 중에서)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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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자로 세상을 관찰하며 살다, 지금은 사람의 마음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체가 존중받는 세상을 꿈꾸며, '생명감수성'과 '마음의 성장'을 일상과 문화콘텐츠를 통해 공유하고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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