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쓰백> 메인포스터 영화 <미쓰백> 메인포스터

영화 <미쓰백> 포스터ⓒ 리틀빅픽쳐스

 
작품은 원작자가 집중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받아들이는 사람 나름대로 느낄 수 있지만, 원작자가 전달하려는 게 뭔지 감이 온다면, 그 부분을 주의 깊게 볼 수밖에 없다. 단순한 감상으로 충분한 것인지, 감상을 넘어 고찰해볼 만한 게 있는 것인지, 원작자의 의도를 생각하게 하는 것도 예술의 역할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사회 현상을 담아내 어두운 부분을 벌려 보는 작품들이 다수 있다. 미사여구나 미학적인 부분은 제거하고 '이 부분을 봐줬으면 좋겠어'라고 주장하는 작품들이다. 수용자 입장에서 작품을 볼 땐 두 가지 측면으로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작품 자체로써 소재를 잘 담아냈는지, 혹은 알리고 싶은 배경을 가감 없이 드러냈는지. 이지원 감독의 영화 <미쓰백>은 후자에 더 가까운 작품이다. 영화 자체로써 소재와 스토리를 잘 담아냈는지보다는, 전하고 싶은 주제의식에 더 집중한 작품으로 보인다.

그런 부분이 평론가들의 평점이 관객 평점에 비해 그리 높지 않은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작품은 반드시 미학적인 부분이 강하지 않아도 어떤 것을 알리는 역할도 분명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움직이고 도움을 주는 것에 비해 그 힘이 다소 약할 수 있지만, 어떤 현실을 '보여줌'으로써도 그 역할을 하는데 동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 <미쓰백>은 제목에서 내용을 추정할 순 없다. 영화를 봐야만 알 수 있다. 주인공 백상아(배우 한지민, 극 중 미쓰백)는 유년시절, 엄마와 단 둘이 살며 끔찍한 학대에 노출되어 자랐다. 혼자 남은 엄마가 술만 마시면 죽기 직전까지 어린 자신을 때렸고 결국엔 당신에게서 달아나라며 자신을 보육원에 버렸다. 그 후, 고3 때 뒷배경이 좋은 남자에게 성폭행 피해를 당해 그자에게 흉기로 저항하게 되지만 법은, 백상아의 손에 수갑을 채운다.

그렇게 컸다. 학대당한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세상의 온갖 위협적이고 더러운 것들이 모두 자신의 인생을 채운 것 같다. 남에게 경계 이상의 것을 하고 화장은 두껍고 진하게, 성격은 차갑게, 자신을 바꿔갔다. 애초에 자기 자신이 누군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백상아는, 세상에 저항하는 법으로 자신을 똘똘 뭉쳐 사는 법만 터득했다. 그래야, 살 수 있다. 그래야, 죽지 않을 수 있다.
 
영화 <미쓰백> 스틸컷 영화 <미쓰백> 스틸컷

ⓒ 리틀빅픽쳐스

 
그러던 백상아는 어느날 저녁, 한동네에 살던 소녀를 만난다. 아홉 살 소녀인 김지은(배우 김시아)은 깡마른 몸에 겨울이 됐는데도 얇은 원피스 하나를 입고 맨발로 슬리퍼를 신은 채 거리에 유령처럼 서 있다. 머리는 다 헝클어졌고 피부는 검은 건지 퍼런 건지 가늠할 수 없다.

백상아는 아이에게 먹을 것을 사주게 되고 아이에게 자신을 미쓰백이라 부르도록 한다. 그 후 아이의 보호자가 자신이 마사지사로 일하는 곳 고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이의 보호자라는 여자와 백상아는 일면식이 있던 사이였지만 처음엔, 그저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백상아는 세상과 단절할 수 있다면 단절한 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돌아볼 여유 따윈 없으니까.

아이의 몸에 시퍼런 멍자국이 새겨져 있고 새끼손톱은 다 빠져서 피딱지가 굳은 채 뭉툭해졌지만, 백상아는 외면한다. 하지만 돌아와 누워서 생각해보니, 자꾸만 그 아이가 눈에 밟힌다. 모르는 아이지만 분명 학대를 당하고 있는 게 확실해서 모른 척 하기 힘들다. 자신을 괴롭혔던 엄마를 떠올리니, 소녀가 걱정된다.

지은이는 스무살에 자신을 낳은 아빠와 함께 지낸다. 지은이를 낳은 엄마는 사라진지 오래다. 아빠라고 하는 사람은 알콜 중독에 집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히키코모리다. 그리고 그에겐 새로 만난 여자친구가 있는데, 지은이와 자신, 그리고 그 여자와 그 여자가 키우는 강아지와 함께 한 집에 산다.

하지만 지은이의 방은 화장실이다. 불꺼진 화장실 세면대 밑에서 몸을 한껏 웅크리면 이 집안에 정말로 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사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이 집에서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지만, 지은이는 가해질 폭행이 두려워 그곳에 조금이라도 숨으려 한다. 기분이 상하거나 감정이 뒤틀린 경우, 아빠와 그의 동거녀는 지은이를 무자비하게 폭행한다. 그 둘은 지은이가 차라리 없어졌으면 싶다. 자신들의 인생이 지은이에게 발목 잡혀 있는 듯하다. 오히려 지은이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한겨울에 물이 범벅된 몸으로 베란다에 쓰러져있는 걸 참아낸다. 아홉 살 지은이는, 그렇게 세상을 견딘다. 실수한 것도 없이 맞으며, 잘못한 것도 없이 잘못했다고 울부짖으며.
 
영화 <미쓰백> 스틸컷 영화 <미쓰백> 스틸컷

ⓒ 리틀빅픽쳐스

 
이 장면을 보는데 목구멍이 시큰할 만큼 분노가 치밀고 눈물이 났다. 이런 표현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일었다. 가장 약하고 작은 여자아이에게 지워진 멍에가 내 어깨 위에도 몇 척이나 올라간 느낌이었다. 소녀가 느낄 두려움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찝찝함이었다는 게 부끄러웠다. 하지만 더 부끄러웠던 건 내가 가진 부끄러움을 영화 속 미쓰백이 지은이를 도와주는 행동을 보며 지워가고 싶어 했다는 걸 알았을 때였다. 그것에 대한 미안함과 부끄러움, 두려움을 안고 끝까지 영화를 봤다.

영화 속에서 정말 눈물다운 눈물을 흘렸던 장면이 있다. 그렇게 약하고 작은 소녀 지은이가 오히려 미쓰백을 안아주는 장면들이었다. 미쓰백도 지은이와 마찬가지로 폭력 가정 피해자였고 이젠 성인이 됐지만 아직도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몰라 스스로를 꽁꽁 싸매며 살았다. 하지만 그런 미쓰백이 자신보다 어린 지은이에게 오히려 손잡는 법을 배우고, 함께 하는 것의 아름다움이 뭔지를 느낀다. 오히려 미쓰백과 지은이에겐, 세상의 혹독함 속에서 계속 강해져야만 하는 '자연의 논리'보단 본능적인 유전성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인간만의 유일한 '연대'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그들이 바랐던 건, 승부욕이나 분노 표출이 아니라, 그저 세상 어딘가엔 자신들을 생각해주고 응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하나, 그것이 아니었을까.

미쓰백과 지은이를 보면서 그래도, 이제부턴 그들이 조금 더 밝고 씩씩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현실은 다를지 몰라도, 영화 속에서 만큼은 두 인물이 그려 갈 앞으로를 응원하게 됐다.

영화라서, 현실이 아니라서, 결말은 희망적으로 끝이 났는지 모른다. 실제로 영화를 본 뒤 학대 가정에 노출된 아이들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영화 속에서 나온 대사중에 세상에 "쉼터 수가 노래방 수보다 적다는 게 말이 돼?" 라는 게 있다. 피해자들을 보호해주고 쉬게해 줄 쉼터 수가 전국적으로 너무 적어 많은 아이들을 다 수용할 수 없다는 걸 비꼰 대사다. 이게 현실이다. 영화는 현실을 보여준 것에서 그쳤지만, 그 이후 감정들은 영화를 본 관객들이 하나씩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았다.

숙제를 하기 싫은 사람은 하지 않아도 된다. 강제로 요구할 수는 없다. 그리고 어떤 것들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저 그런 아이들, 그런 피해자들을 보고 아파하며 울분을 토해내는 게 다일 수도 있다. 그것 또한 하나의 관심이고 손길이다. 나 또한 어떤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조금의 경제적인 후원, 국민청원에 동참하기, 실질적인 봉사 하기, 자료나 영상을 찾아보며 계속 관심을 갖기 등 현실적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조그마한 행동들을 하는 것이다. 그것들이 그들에게 전부 완벽하게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방법이 잘못됐을 수도 있고, 내 의도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가장 핵심적인 잘못을 바꿀 수 있을지 없을지도, 사실 잘 모른다.

난 범죄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연대하는 세상을 꿈꾸기도 한다. 그 두 가지가 동시에 같이 이뤄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두 가지를 한 선상에 두고 보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다른 레일에 있는 두 가지 꿈을 동시에 꾸는 것이다. 그래도, 나 한 사람이 두 가지 꿈을 같이 꾸다보면, 조금의 교차부분은 생기지 않을까. 그리고 하나 둘씩 이런 행동에 동참하다보면, 그 교차점은 더 넓어지지 않을까. 범죄의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고, 가해자 자체가 설명할 수 없는 미치광이라 원인이 없는 범죄도 있을 수 있지만 연대하지 않고, 무심한 것도 범죄를 일으킨 원인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 또한 관심 갖지 않는 것은, 피해자를 계속된 피해에 노출되게 하는 또 다른 가해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영화 <미쓰백> 스틸컷 영화 <미쓰백> 스틸컷

ⓒ 리틀빅픽쳐스

 
두 가지를 함께 꿈꾼다. 세상이 내가 사랑하는 무엇처럼 조금이라도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좋겠다. 예술을 하고 싶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으로 이런 꿈까지 꾸게 됐다. 내가 하려는 예술은, 그런 세상에서 실현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바뀌기 힘들 걸 분명 알고, 바뀌지 않을 수도 있단 생각을 하지만 단 한 사람의 피해도 줄일 수 있는 예술을 하고 싶다. 내가 하는 글쓰기가 현실적인 도움 보단 빛이 덜해도, 자그마한 움직임으로 세상을 조금 바꿔볼 수 있는 데에 일조하고 싶다.

영화가 담은 지은이와 미쓰백. 세상의 모든 지은이와 백상아가 조금이라도 덜 아파지는 순간이 오길 바란다. 행복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 범죄의 굴레를 끊을 수 있다. 그들이 그 행복을 누리도록 우린 여러 방향에서 도울 수 있다.

소재와 스토리를 잘 담아냈느냐, 혹은 주제의식을 투철하게 전하고 있느냐. 영화 <미쓰백>은 후자의 경우에 더 가깝지만, 그 매체가 영화(예술)라는 점에서 두 가지를 동시에 챙길 수 있게 된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어떤 예술도 무언가의 범주를 벗어났다해서 누구도 그 예술적 가치를 훼손 할 권리는 없다. 난 <미쓰백>을 아프고 쓸쓸한 영화지만, 용기있고 멋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말한 주제의식도 이것이지 않을까. 우리가 지구에 태어난 이유를 이렇게라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 약한 것들과 연대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먼지같은 우리가 태어난 이유를 하나씩 채워가는 것. 그런 면에서 본다면 감독은 첫 발자국을 내디딘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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