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인간을 성장시킨다. 한 때는 저 말이 그렇게 싫었다. 내가 청소년이던 시절 그 말을 입에 달고다니는 어른들은 새벽부터 새벽까지 학교와 학원을 쫓아다니는 지옥의 스케줄로 나를 밀어넣었기 때문이다. 그리고선 죄책감과 두려움에 거기서 빠져나오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아니 고난은 나를 찾아오는 것이지 사서 사람을 괴롭히는 건 고문이 아닌가? 아무리 좋은 말도 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 들여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 나는 그렇게도 회의했던 '고난은 인간을 성장시킨다'는 말을 조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내가 10대이던 시절 데뷔한 동년배 가수들의 행보를 보고 난 이후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성 가수'들.
 
 아이유 '좋은날' 무대사진

아이유 '좋은날' 무대사진 ⓒ MBC

 
가령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아이유는 '나는요 오빠가 좋은 걸'을 외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솔직히 그 당시 아이유에 대한 나의 감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아이유는 예쁘고 귀여웠으며 내가 다니던 학교의 남자 아이들은 그런 그녀에게 열광했다. 셋 다 모두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노래까지 잘 부르니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 마치 공부도 잘하고 인간 관계도 좋고 학교 생활도 잘하는 같은 반의 모범생을 보는 기분이랄까. 어린 나는 시기심에 불탔다. 아이유가 3단 고음을 끝도 없이 올릴 때면 나의 질투심도 함께 폭발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고 못된 생각이긴 한데, 나는 진심으로 아이유가 망하기를 바랬다. TV에 아이유가 나올 때면 '세상에 너만 잘났지?'라고 생각하며 채널을 돌려버렸다.

'스물셋'을 통해 발견한 아이유의 성장
 
 아이유 앨범 '스물셋' 앨범 커버

아이유 앨범 '스물셋' 앨범 커버 ⓒ 아이유(iu)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물론 나의 악랄한 소망(?)과 달리 아이유는 굴곡은 겪었을지언정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이후로도 가수이자 배우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왔으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장했다. 그것도 매우 빨리.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아이유가 몇 년 전 발표한 노래 <스물셋>을 들으면서였다. 노래의 이야기가 꼭 나의 것 같았다. 말하자면 나는 서른에 들어서야 만난 생각과 감정을 아이유는 이미 스물 세 살 전에 지나온 것이다. 물론 인생에 정해진 단계란 없으며 삶은 뒤늦은 성장을 거듭하는 난장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칠년의 세월은 격차가 너무 크지 않은가. 하지만 아이유가 엄혹하기 그지 없는 연예계에서 갖은 풍파에 부딪히며 버텨온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고난은 인간을 성장시킨다. 아이유의 성숙함은 정당한 보상이다. 요즘의 나는 그녀를 보면 한 때는 미워했지만 더 멋있어져서 금의환양한 동창을 보는 느낌이다. 반가움과 미안함이 교차함과 동시에 잘 살아줘서 고맙다. 진짜로 망했다면 나는 평생을 죄책감 속에 살았을텐데. 

아무튼 삼십대의 나는 요즘 '미운 일곱살'이라는 말에 신나게 돌을 던지며 '인간이란 도대체 몇 살까지 미운 존재로 남는가'를 생각 중이다. 평온한 일상에서야 교양과 성숙함을 갖춘 어른처럼 굴지만 사는 게 조금만 각박해지고 사람들과 갈등이 생기면 그야말로 열심히 밑바닥을 드러내기 바빠진다. 가끔 지난 시간 적은 글을 읽으며, 내가 그 속에서 인생의 답을 찾은양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면 시간을 거슬러 뛰어가 멱살을 잡고 싶다. '바보야 너 그거 못지켜!'라고 말하며. 하지만 그 말이 진심이 아니었던 것은 아닌데, 그렇게 살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그런데 때로는 세웠던 원칙들을 못 지키는 나를 보면 화가 난다. 그리고선 무엇이 진짜인가 질문한다. 나는 어른이 되었을까 아직은 아닐까? 사실은 어리광을 부리지 않는 게 아니라 단지 눈치가 보여서 못 하는 것 뿐일까? 하루가 다르게 180도 뒤집어지길 반복하니 나도 나를 모르겠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니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삼십대가 되면 그 정도는 알줄 알았는데!

가짜가 없다면 진짜도 없다
 
 아이유 뮤직비디오 '스물셋'

아이유 뮤직비디오 '스물셋' ⓒ 로엔

 
노래 '스물셋' 속의 아이유도 그런 미로를 헤메인다. 아니 길을 잃고 방황한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 것 같다. 애초에 아이유는 굳이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헤멘다'는 말은 출구를 찾으려는 사람에게 써야 맞을 텐데 아이유는 결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노래 속에서 아이유는 '아가씨 태가 나는 한 떨기 스물셋'이라는 말에는 '다 큰척 해도 적당히 믿어줘 '(어른이 되기에는) 아직 한참 먼 얄미운 스물셋'이라는 이야기에는 '덜 자란척 대충 속아줘요'라고 답한다. 마치 그 중에 진짜는 없다는 듯이.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나는 궁금했다. 불안하지 않은 걸까. 그 무엇도 진짜 자신이 아니라면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을텐데. 

그리고 이 질문에 답을 하듯 노래의 클라이막스에 이런 가사가 등장한다.

'사실은 나도 몰라 애초에 나는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거든.' 
 
 아이유 뮤직비디오 '스물셋'

아이유 뮤직비디오 '스물셋' ⓒ 로엔

 
자신이 아무리 시시각각 상반된 모습을 보여도 그래서 그런 자신이 쓴 글들이 때로는 표리부동해 보일지라도 아이유는 그렇게 말한다. 거짓말을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그 무엇도 가짜가 아니라고. 이렇게 되면 '진정한 자신' 따위를 찾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진짜는 가짜가 있을 때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유가 '그 무엇도 진짜 내가 아니다'라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이는 맞는 말이다. 내가 어른처럼 살 때도 그것에 실패할 때도, 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릴 때도 거꾸로 의연하게 행동할 때도 그 중에 가짜는 없었다. 그건 모두다 나였다. 그리고 삶면서 지키고자한 원칙을 버겁게 느끼는 게 그것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글로 남긴 통찰도 스스로 얻은 고유한 진실이었다. 가짜는 없다. 그런데 나는 왜 불안해했을까. 집요하게 무엇이 가짜인지 추궁하고 진짜를 알고 싶어했을까.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나는 질문을 시작했구나. 내가 누구인지.

질문 받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지혜

결국은 그런 차이다. 나는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으레 성장하리라 생각하며 게으르게 살았다. 미성숙하게 살아도 나이만 먹으면 그저 온전히 성숙하기만 한 사람으로 변화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로 남아선 안 되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그렇다고 완벽하게 어른이 되지는 못한 것 같으니 두려움에 빠졌다. 그래서 계속 질문했다.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나는 성공했냐고 실패했냐고. 다른 사람들은 착실히 성장의 과정을 밟아나가는 동안 스스로가 누구인지도 모른채로 뒤쳐질까 무서워서 계속 스스로를 채근했다.

반면 아이유는 외부로부터 질문을 마주했다. 지나치게 빠르게 그리고 너무 많이. 지난 시간 사람들은 아이유가 아주 사소한 스캔들에만 휘말려도 혹은 연애를 시작해도 질문했다. '너는 '좋은 날'을 부르던 청순한 소녀가 맞아? 이제는 아닌 거야? 아니면 애초에 아닌데 그런 척 했던 거야?'라고. 사람들은(특히 남자들은) 아이유가 기대했던 자신의 이미지와 다르게 행동하면 그 기대가 애초에 충족은 가능한지는 묻지 않은 채 실망부터 했다. 그리고 터무니 없는 비호감 이미지를 씌우기도 했다. 그 시간을 거쳐서 나온 곡이 '스물셋'이였다. 또 다시 살짝 올라오던 질투심을 접는다. 아이유는 그 나이에 노래에 담긴 깨달음을 얻을만 했다. 이건 공평한 결과다. 
 
 아이유 뮤직비디오 '스물셋'

아이유 뮤직비디오 '스물셋' ⓒ 로엔

 
노래에서처럼 사람들은 아이유에게 줄곧 질문을 던져왔다. 너는 여우인 척하는 곰이냐고 아니면 곰인 척하는 여우냐고. 어느 쪽이라고 답해도 거짓말쟁이임은 피할 수 없다. 그저 전자는 되바라진 것으로 후자는 교활한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결국 답하는 사람만 나쁜 사람이 되는 위험한 질문이다. 그래서일까 '스물셋'에서 아이유는 지금이 좋다고 했다가 사실은 때려치우고 싶다고 말하고, 사랑이 하고 싶다 하더니 돈이나 많이 벌고 싶다고 말한다. 영원히 아이로 남고 싶다고 했다 아니 사실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도 하고, 죽은 듯이 살고 싶다고 했다가도 솔직히 다 뒤집어버리고 싶다고 이야기 한다. 그렇게 아이유는 상반된 욕망과 생각을 그저 바구니를 뒤집듯 우르르 풀어놓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한다.

'맞혀봐, 어느 쪽이게.'
 
 아이유 뮤직비디오 '스물셋'

아이유 뮤직비디오 '스물셋' ⓒ 로엔

 
그러니까 아이유는 질문에 갇히는 대신 질문하는 사람들을 미로에 가둔다. 오히려 공을 반대 쪽으로 넘겨버린다. 이것이 자신을 향한 무수한 물음표 사이에서 아이유가 찾아낸 지혜일까? 그리고선 아이유는 명랑하게 '사실은 나도 몰라'라고 노래한다. 그래도 괜찮은 것처럼. 그게 당연한 것처럼. 왜냐면 애초에 잘못된 질문의 답은 모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니까. 그래도 괜찮은 것이니까. 그렇게 시간을 건너 '너는 도대체 누구냐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자학하는 나에게 아이유의 노래는 다가왔다.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고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너는 애초에 찾을 수 없는 것을 찾고 있다고 말하며. 못 찾아도 괜찮은 것을 찾고있다고 말하며. 스스로 짊어진 그 공을 나도 언젠가는 내려놓을 수 있을까. 어쨌든 아이유가 먼저 걸어간 발걸음을 따라 나도 미로를 벗어나고자 한다. 여전히 나는 스스로가 미덥지 않지만 그래도 조금은 덜 미워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유 스물셋 성장 CHAT-SHIRE 이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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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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