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일 방송된 < PD수첩 > '화살머리고지전투' 편의 한 장면

11월 20일 방송된 < PD수첩 > '화살머리고지전투' 편의 한 장면 ⓒ MBC


'화살머리고지, 그곳엔 사람이 있었다.'

20일 오후 방송된 MBC 시사 고발 프로그램 < PD수첩 - 화살머리고지 전투> 편을 보고 든 느낌의 한 줄 요약이다. 

이날 < PD수첩 > 제작진은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화살머리고지를 시청자들에게 알렸다. 화살머리고지, 그리고 동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백마고지는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휴전 직전인 1953년, 우리 쪽에서는 국군과 프랑스군이, 반대 쪽에서는 북한군과 중공군이 화살머리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투입됐다. 

고지에서 발견된 유품, 그리고 참전용사들의 증언은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말없이 증언한다. 특히 30발 이상 총탄 자국이 난, 주인 잃은 수통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미처 쏘지 못한 M1 소총 실탄과 중공군 탄창도 당시 전투 상황을 짐작하게 해준다. 

참전용사들은 당시 상황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이들의 육성 증언을 들어보자.

"밤새도록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전투를 치르고 나면 사망하는 동료들이 있었습니다. 매복을 하고 다시 시신을 수습하러 가서 사망한 동료들의 시신을 보면 정말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 프랑스군 참전 용사 쟈크 그리즐레씨

"뒤에 골짜기가 있는데 시체를 갖다가 쫙 눕혀놨어 이렇게 내가 올라갈 때 150구, 전부 다 갖다 놓고 인식표를 달아 놓고 표시해놨는데 말이야. 머리 없는 놈, 다리 없는 거 배터진 거 온전한 시체가 없어요. 피가 흘러서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는데 올라갈 때부터 피비린내가 확 나더라고." - 상감령·저격능선 전투 참전 용사 백낙수씨 


왜 이 고지가 중요했을까? 우선 1951년 미국은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휴전 협상에 들어갔다. 이 와중에 남북 양측은 조금이라도 더 영역을 확보하고자 했다. 전쟁 전 남북을 두 동강 냈던 경계선이 직선이었다가 휴전 협정 후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바뀐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백마고지와 화살머리 고지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나종남 교수는 두 고지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백마고지는 다른 지역에 비해서 남쪽으로도 평야가 펼쳐져 있고 동쪽으로는 굉장히 넓은 철원평야가 있다. 가장 첨단에 있는 곳이다. 중서부에서는 가장 중요한 전략적인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화살머리고지와 백마고지는 누가 이 지역을 장악하느냐에 따라서 차후 정세가 결정되는 그런 지리적 여건을 가지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이 전투를 이해해야 된다고 생각된다."

'잊혀진' 용사들
   
 11월 20일 방송된 < PD수첩 > '화살머리고지전투' 편의 한 장면

11월 20일 방송된 < PD수첩 > '화살머리고지전투' 편의 한 장면 ⓒ MBC


이제까지 화살머리고지에서 총 아홉 구의 유해가 발견됐다. 이들은 사실상 잊힌 존재였다. 휴전협정, 뒤이은 남북의 첨예한 대치 와중에 돌아오지 못하고 잊힌 것이다. 이들의 존재는 지난 9.19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 내 전방 감시초소(GP) 및 지뢰제거 작업을 진행하던 중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병사들이 사용했던 수통, 허리띠도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실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리게 하는 장면들이다. 

'PD수첩'은 이제까지 아파트값 담합, 명성교회 비자금 의혹, 숙명여고 내신비리, 한유총 비리 등 우리 사회에 내재한 병폐들에 과감하게 메스를 들이댔다. 그런데 이번 '화살머리고지 전투' 편은 살짝 결이 달라 보인다. 이전까지의 예리함보다 인간미와 온기가 엿보였다. 

화살머리고지 전투 참전용사들, 그리고 이 전투에서 희생 당한 이들을 대하는 시선에서는 연민마저 묻어난다. 이런 연민어린 시선은 제2연평해전에 참전했던 권기형씨, 그리고 이 해전에서 희생당한 고 박동혁 병장의 아버지 박남준씨를 인터뷰 하는 대목에서 정점에 이른다. 

권기형씨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남준씨의 심경은 더욱 복잡하다. 박씨는 제작진에게 "김정일이를 그냥 송곳으로 찔러 죽여버리고 싶은데"라며 격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 지점에서 문득 의문이 든다. 이 두 사람의 입장이 지금 진행 중인 남북화해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권씨는 연평해전으로 인해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박씨 역시 아들을 잃은 아픔을 여전히 잊지 못하는 모습이다. "김정일을 송곳으로 찌르고 싶다"는 박씨의 말은 내 마음마저 찌르는 것 같다. 그럼에도 박씨는 현재 정부의 대북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남북화해는 '상한 마음 보듬기'  
 
 11월 20일 방송된 < PD수첩 > '화살머리고지전투' 편의 한 장면

11월 20일 방송된 < PD수첩 > '화살머리고지전투' 편의 한 장면 ⓒ MBC


권씨와 박씨의 증언은 깊은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남북 정상이 만나 환하게 웃으며 평화를 약속했다고 이들의 아픔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땅엔 수많은 권씨와 또 수많은 박씨가 살아간다. 남북 화해는 거창한 대의명분이 아니다. 이렇게 분단으로 원치 않는 고통을 당한 이들의 마음을 보듬는 게 핵심이다.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진행하면서 분단으로 인해 원치 않는 고통을 당하는 이들의 마음을 보듬는 데 실패한다면, 남북 화해는 또 다시 공염불로 그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분명 분단으로 상한 마음을 이용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취하려는 정치세력이 준동할 것이 분명하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면 분단의 고통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으리라고 본다. 이 대목에서 한반도 위기상황을 그린 영화 <강철비>에서 주인공 곽철우(곽도원 분)가 한 대사가 떠오른다. 

"분단국가 국민들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자들에 의하여 더 고통받는다." 

이런 맥락에서 < PD수첩 >이 분단으로 인해 상처 받은 이들의 목소리를 시청자들에게 들려줬다는 사실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지난 9.19평양공동선언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친애하는 여러분, 우리의 앞길에는 탄탄대로만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가는 앞길에는 생각 못 했던 도전과 난관, 시련도 막아놨을 수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대로 남북 화해엔 탄탄대로만 있지 않을 것이며, 때에 따라선 역풍도 거셀 것이다. 이 역풍을 이기기 위해선 여러 대비책이 필요하다. 

그런데 무엇보다 남북 분단으로 상처 받은 이들의 마음을 보듬는데 성공한다면, 역풍쯤은 거뜬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감히 자신해 본다. 이에 남북 화해의 물밑에서 활발히 일하는 남북 정부 당국자들이 아래 인용할 진행자 한학수 PD의 클로징 멘트를 잘 새기기 바란다.

"한국전쟁 이후 크고 작은 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남북한 사이에는 원한과 증오가 쌓였습니다. 내 자식, 내 친구의 목숨을 빼앗은 적을 용서하긴 쉽지 않을 것입니다. 피해 당사자와 희생자 가족의 마음을 우리 사회가 충분히 이해하고 보듬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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