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폴리스> 영화 포스터

▲ <페르세폴리스> 영화 포스터 ⓒ 영화사 진진


1978년 이란의 테헤란에 사는 마르잔(키아라 마스트로얀니 목소리)은 호기심 많은 9살 소녀다. 이란 혁명이 일어나면서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자 그녀의 가족은 자유로운 세상이 될 거리는 희망으로 부푼다. 그러나 새로이 수립한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반대파를 제거하고 국민을 탄압하며 다시금 어둠이 드리운다. 곧이어 이란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다.

마르잔의 안전을 걱정한 아버지(시몬 압카리언 목소리)와 어머니(까뜨린느 드뇌브 목소리)는 딸을 오스트리아 빈으로 보낸다. 낯선 타국에 홀로 간 마르잔은 공부엔 관심조차 두질 않고 친구도 사귀질 못한다. 혼란스러운 사춘기를 통과한 마르잔은 가족을 그리워하다가 결국 이란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격동의 이란 현대사에 투사된 차도르 소녀의 성장기를 그린 영화 <페르세폴리스>는 작가 마르잔 사트라피의 동명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프랑스에서 일러스트레이터 겸 동화작가로 활동하던 그녀는 이란을 이슬람 근본주의자나 테러리스트로 동일시하는 서구의 편견을 겪었다.

친구의 추천으로 유대인 학살을 다룬 아트 슈피겔만의 그래픽 노블 <쥐>를 접한 마르잔 사트라피는 자신의 경험담을 담은 그래픽 노블 <페르세폴리스>를 작업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4년간 총 4권으로 발간한 <페르세폴리스>는 <쥐><팔레스타인>과 함께 세계 3대 르포 만화로 꼽힐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9세 소녀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이란인의 정체성 근원을 짚다
 
<페르세폴리스> 영화의 한 장면

▲ <페르세폴리스> 영화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그래픽 노블 <페르세폴리스>를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옮기는 작업은 뱅상 파로노드 감독과 마르잔 사트라피가 함께 했다. 영화는 1994년 파리 오를리 공항에 도착한 마르잔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이후 곧바로 시계추는 1978년으로 향한다. 그리고 혁명을 목격한 주인공의 유년기, 차별과 편견에 부딪힌 청소년기, 여성으로서 고민에 빠지는 성년기를 시간 순서대로 펼쳐간다.

<페르세폴리스>는 1970~1990년대 이란과 이란을 바라보는 서구 사회를 마르잔의 시각으로 관찰한 기록이다. 마르잔은 노동자 계급의 가정에서 태어나 반항적이고 적극적인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녀의 행동들은 격동하는 이란 사회의 벽에 부딪힌다. 마르잔은 자유를 위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지만, 그곳엔 더 높고 견고한 벽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페르세폴리스>는 국민, 여성, 인간으로서 마르잔이 자아를 확립해가는 과정을 담았다. 제목 <페르세폴리스>는 이란의 고대 왕조인 아케메네스의 수도 '페르세폴리스'를 뜻한다. 이런 제목을 붙인 건 이란과 이란인의 정체성 근원을 이야기하면서 다민족을 포용했던 페르시아의 정책까지 염두에 두었다고 읽을 수 있다.
 
<페르세폴리스> 영화의 한 장면

▲ <페르세폴리스> 영화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페르세폴리스>엔 권력의 부당한 억압을 받는 국민 마르잔, 성별로 차별하는 이란 사회 속 여성 마르잔, 이란인을 편견 어린 시각으로 대하는 서구인을 경험하는 이민자 마르잔이 나온다. 영화는 그녀가 느끼는 희망과 절망, 사랑과 외로움, 방황과 극복 등 다양한 감정과 생각, 벌어지는 상황을 희극과 비극을 적절히 섞어 묘사한다. <록키 3>의 삽입곡으로 유명한 '아이 오브 더 타이거(Eye of the Tiger)'를 마르잔이 부르는 장면은 영화의 가장 재미있는 순간으로 꼽을 만하다.

<페르세폴리스>는 정치, 여성, 이민 등의 소재를 애니메이션에 담아낸다. 디즈니의 왕자와 공주, 꿈의 나라와는 거리가 멀다. 영화의 인물과 이야기는 애니메이션판 '네오리얼리즘(있는 그대로 현실을 포착한 이탈리아 영화의 경향)'에 가깝다. 과거에도 지금도 이란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리고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비추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이란 장르는 현실적인 풍경에 상상력을 자연스럽게 덧댈 수 있도록 해준다. 마르잔 사트라피는 보도자료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이유를 "실사로 제작했다면 일반인들이 공감할 수 없는 먼 나라 이야기였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란 출신 배우들이 연기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모두의 드라마가 아니라, 제3세계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흑백 처리, 초현실 화법으로 표현된 애니메이션... 그 이유는
 
<페르세폴리스> 영화의 한 장면

▲ <페르세폴리스> 영화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페르세폴리스>는 흑백으로 제작되었다. 감독 마르잔 사트라피는 "흑백은 배경이 추상적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며 "낯선 이국의 색채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처럼 공감할 수 있길 바란다"라고 의도를 전한다. 흑백은 미학적인 결정이고 인물과 서사에 보편성을 더한 선택인 것이다. 또한 흑백이 차별과 억압이란 은유를 내포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흑백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노스페라투>로 대표되는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왜곡'과 '과장'이 물씬 배어있다. 인형극으로 상황을 보여주는 방식이 그렇다. 극 중 고문이나 살육 장면도 초현실적인 화법이 아니었다면 지켜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마르잔이 유년에서 청소년으로 성장하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페르세폴리스> 영화의 한 장면

▲ <페르세폴리스> 영화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페르세폴리스>는 이란의 현대사를 보여주는 영화다. 억압에 맞선 국민, 성차별을 극복하는 여성, 자유를 성취하는 인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과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를 수렴하여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길을 제시한 작품이란 의미도 갖는다.

<페르세폴리스>는 지난 2007년 국내 개봉한 지 10여 년이 흘러 어느덧 지난 15일 재개봉해 관객과 다시 만난다. 세월은 지났어도 <페르세폴리스>의 서사의 강렬함과 표현의 독창성은 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가 파르잔의 할머니(다니엘 다리유 목소리)를 통해 전한 메시지는 여전히 가슴에 와 닿는다.

"살다 보면 별일을 다 겪게 된단다. 항상 의연하고 정직하게 살아라. 두고 봐, 다 잘 될 거야. 울지 말고 네 미래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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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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