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우리나라에는 축구 붐이 일었다. 대회 기간 중 박지성, 이영표, 안정환 등 축구 스타가 탄생했고, 선수들은 유럽을 비롯해 해외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한국 선수들이 유럽에 진출하면서 우리나라 방송도 해외 축구 생중계에 뛰어들었다. MBC SPORTS+의 전신이었던 MBC ESPN과 KBS N SPORTS, 케이블TV가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리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등 해외 프로축구 경기를 나눠 중계했다.

그러나 지금은 스포티비(SPOTV)가 독점 중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스포티비가 스페인의 최대 축구 라이벌인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가 맞붙은 '엘 클라시코'를 독점 중계했다. '엘 클라시코'는 세계에서 약 4억 명이 시청하는 빅매치다. 문제는 스포티비가 이 경기를 보는 시청자에게 '채널 가입비'에다 별도로 '개별 프로그램 시청료'를 내게 했다는 점이다. 그전까지는 무료로 즐길 수 있었던 해외 축구 중계였던 만큼 가입비와 프로그램 건당 시청료를 이중으로 내는 것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스포티비 가입비 안내 게시판.

스포티비 가입비 안내 게시판. ⓒ 스포티비 홈페이지

 
2005년 7월 11일,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계약을 맺었다. 8월 28일에는 이영표 선수가 토트넘 홋스퍼 FC로 이적했다. 한국 선수 2명이 세계 4대 리그 중 하나로 꼽히던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 프리미어리그는 세계적인 축구 선수들이 많이 뛰고 있는 리그다. 우리나라 시청자는 유명 외국 축구 스타와 어깨를 나란히 겨루는 한국 선수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두 선수가 뛰는 날이면 시청자들은 밤을 새우면서도 실시간 중계 방송을 '사수'했다. 

해외 축구 인기를 실감한 방송사들은 중계권을 획득하기 위해 서로 겨뤘다. 처음에 MBC SPORTS의 전신인 MBC ESPN이 프리미어리그와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를, KBS N SPORTS가 세리에 A(이탈리아 프로축구 1부 리그)와 리게 1(프랑스 프로축구 1부 리그)을 중계했다. 방송사들은 한국 선수가 뛰고 있는 리그를 중심으로 중계권을 획득해 많은 시청자를 모았다.

시차 때문에 해외 축구경기는 한국에서는 밤과 새벽에 주로 중계됐지만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등 한국 선수 경기가 있는 날에는 시청률이 2.5%에서 최대 7%까지 나왔다. 지난 4월 8일 K리그 '슈퍼매치' FC서울과 수원삼성블루윙즈 경기 시청률은 0.09%(TMS미디어코리아 유료가구 플랫폼 기준)에 불과했다.

중계권이 비싸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시청률과 광고 수입으로 해외 축구 중계를 포기하기는 어려웠다. 특히 2007년부터 2010년까지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중계 전성기였는데, 이는 박지성이라는 시청률 보증수표 덕분이었다. 하지만 박지성이 은퇴한 후 그의 파급력을 대체할 선수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시청자들은 '빅클럽'이라 불리는 팀들의 대결에만 관심 있을 뿐 중소 규모 클럽의 경기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2017년 SBS SPORTS가 중계한 프리미어리그 경기 평균 시청률은 0.516%로 저조했다.
 
 2017년 경기별 시청률 조사에서 프리미어리그 중계 시청률은 한국 프로야구 중계 절반 수치다.

2017년 경기별 시청률 조사에서 프리미어리그 중계 시청률은 한국 프로야구 중계 절반 수치다. ⓒ 닐슨코리아

 
이 시점에 프리미어리그 중계권을 소유하고 있던 영국 스카이스포츠와 BT 스포츠는 중계권료를 올리기 시작했다. 중계권료 협상은 3년마다 갱신된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중계권은 17억 7,300만 파운드(한화 약 2조6000억 원)였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는 51억 3,600만 파운드(약 7조5000억 원)로 9년새 3배나 올랐다.
 
한국 선수가 진출한 해외 스포츠 경기 중계가 방송사들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자리잡으면서 방송사간 중계권 확보를 위한 경쟁이 시작됐다. 방송사들은 출혈경쟁을 막기 위해 '코리아풀'을 구성했다. '코리아풀'은 KBS∙MBC∙SBS 지상파 3사로 구성한, 중계권 공동계약 협의체다. 그러나 2010년 SBS가 단독으로 2010 남아공 월드컵 중계권을 계약하면서 이 계약을 파기했다.

SBS는 월드컵을 독점 중계할 수 있었지만, 중계권료 증액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SBS는 이 일로 다른 방송사로부터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2010년 4월 8일 <미디어오늘> KBS, 코리아풀 깬 SBS에 민·형사 소송키로). 다시 SBS SPORTS는 해외 축구 중계권으로 눈을 돌렸다. 2009년부터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등을 독점 중계하기로 계약했는데 중계권료가 1400만 달러였다. 먼저 중계권을 가졌던 MBC ESPN은 재정 압박으로 계약을 포기했다.

뉴미디어가 진화하면서 방송 생태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인터넷과 통신기술 발달로 시청행태도 크게 바뀌었다. 과거에는 선수들의 경기를 지상파를 통해 무료로 시청하거나 채널 가입비만 내고 케이블TV 등을 통해 시청했다. 이제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발달로 굳이 지상파나 케이블TV를 통해 새벽에 실시간 생중계를 '사수'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조성됐다.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을 통해 경기 하이라이트 등 요약된 영상만 보는 시청자들이 점점 증가했다. 방송사로서는 시청률과 수익성 감소, 치솟는 중계권료로 수익이 줄어들다가 마침내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으로 역전됐다. SBS SPORTS는 중계권 연장계약을 고민하다 2018-2019 시즌 개막전 경기부터 중계권 독점계약를 포기했다.

지상파 방송사가 중계권을 놓고 고민하는 사이 중계권 대행 구매 회사들이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대표적인 회사가 스포티비다. 스포티비는 케이블 채널이 아닌 중계권 대행 구매 회사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가 시청률과 수익성 때문에 중계를 고민하자 자회사를 설립해 스포츠 중계 전문 채널을 만들었다. 2016년부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중계를 시작한 스포티비는 2018-2019 시즌부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스리그, UEFA 네이션스리그 등을 중계하고 있다.

그러나 스포티비 역시 시청률 추락과 수익 감소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지상파 방송사보다 적은 예산으로 지상파 방송 수준의 중계를 서비스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스포티비는 시청자에게 한 달 8천 원에서 1만2000 원의 '가입비'를 받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프로그램 건당 '시청료'도 받는 과금 체계를 도입했다. 인기가 많은 팀 경기에는 이중의 유료 과금 체계를, 상대적으로 비인기 경기에는 가입비만으로 볼 수 있게 했다. 시청자들은 "돈을 이중으로 받으면 중계라도 재미있게 하라"고 항의하기 시작했다.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오른쪽)이 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PSV 에인트호번과의 2018-2019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B조 4차전에서 슈팅을 시도하고 있다. 손흥민은 이날 선발 출전해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하고 후반 30분 교체됐다. 토트넘은 2-1로 역전승을 거뒀다.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오른쪽)이 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PSV 에인트호번과의 2018-2019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B조 4차전에서 슈팅을 시도하고 있다. 손흥민은 이날 선발 출전해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하고 후반 30분 교체됐다. 토트넘은 2-1로 역전승을 거뒀다. ⓒ AFP/연합뉴스

 
외국에서는 '페이 퍼 뷰(Pay per View)' 형식의 과금 체계가 일반화 돼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런 체계가 익숙하지 않아 시청자들의 불만이 나온 상황이다. 스포티비 지상파 방송을 통해 무료로 서비스되던 스포츠 중계를 시청자들은 이중으로 요금을 지불해야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 스포티비가 해외 축구 중계를 시작한 2016년부터 불과 1년 만에 '페이 퍼 뷰'까지 과금하게 된 만큼, 시청자들의 거부감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물론 유료서비스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유료 서비스인 만큼 질적인 향상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시청자들은 '해설진 역량 부족'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해설진은 분명 보통 축구 팬보다 전문가다. 그러나 준비하지 않고 방송에 임하는 것 같다는 게 시청자들의 평이다. 경기 도중 카메라가 특정 선수를 비출 때 보통 스포츠 중계라면, 저 선수에 대한 설명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스포티비에서는 정적이 흐르는 일이 많았다는 것. 이러한 불만에 대응해, 스포티비는 지난 13년간 프리미어리그를 중계해온 장지현 해설위원을 영입했다.

이익 창출과 보편적 시청 권리를 조화하려면 시청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하지 않을까. 스포티비는 독점 중계를 하는 만큼 타 방송사와 경쟁도 하지 않는다. 수준 높은 중계 서비스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스포티비 해외축구 중계권 프리미어리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