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야구대표팀 감독 사임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야구위원회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국가대표팀 감독직에서 자진사퇴 한다고 밝히고 있다.

▲ 선동열, 야구대표팀 감독 사임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야구위원회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국가대표팀 감독직에서 자진사퇴 한다고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야구 대표팀 최초의 전임감독이었던 선동열 감독이 대표팀 감독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지난해 7월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 대표팀을 이끄는 조건으로 역대 최초 전임감독으로 부임했던 선동열 감독은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표팀 감독에서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표팀 감독이 된 지 1년 4개월 만의 일이다.

사실 선동열 감독의 사임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선동열 감독은 지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팀 선발과정에서의 논란과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대표팀의 경기력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그리고 이에 따른 후폭풍으로 지난 10월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출석하는 등 야구인으로서 언제나 최고의 자리에 있던 선동열 감독에게는 견디기 힘든 시간들이 이어졌다.

결국 도쿄 올림픽까지 최소 3년 동안 대표팀을 이끌 예정이었던 선동열 감독은 계획된 시간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대표팀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제 한국야구위원회는 선동열 감독에 뒤를 이어 '독이 든 성배'를 들 새 전임감독을 구하거나 큰 대회가 있을 때마다 감독을 선임하던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한국야구의 소중한 자산이었던 선동열 감독이 명예롭지 못하게 대표팀을 떠나게 됐다는 점이다.

'역대급' 선수생활과 화려했던 지도자 생활
 
야구대표팀 감독 사퇴하는 선동열 감독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야구위원회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국가대표팀 감독직 자진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 야구대표팀 감독 사퇴하는 선동열 감독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야구위원회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국가대표팀 감독직 자진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6개의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와 3번의 정규 시즌 MVP, 8번의 평균자책점 타이틀 등 KBO리그에서 선동열 감독이 세운 업적은 '국보'라는 말 외에는 딱히 어울리는 표현을 찾기 힘들다. 1996년 일본 진출 후에도 4년 동안 98개의 세이브를 기록하며 정상급 마무리 투수로 군림했다. 1999 시즌이 끝난 후 은퇴를 선언했을 때 한신 타이거즈의 노무라 카츠야 감독은 "여전히 시속 150km를 쉽게 던지는 투수가 왜 벌써 은퇴를 하나"라고 한탄했을 정도.

'역대급' 선수생활에 다소 가려 있긴 하지만 지도자로서도 선동열 감독의 업적은 대단히 화려했다. 2005년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으로 부임해 6년 동안 우승 2회와 준우승 1회를 달성했고 무엇보다 권오준, 권혁, 정현욱, 안지만, 오승환으로 이어지는 막강 필승조를 구축했다. 투수 전문가로 알려져 있지만 최형우(KIA타이거즈), 박석민(NC다이노스), 채태인(롯데 자이언츠) 등 젊은 타자들을 중용해 팀의 중심으로 만든 것도 선동열 감독이다.

하지만 고향팀 KIA로 자리를 옮긴 2012년부터 2014년까지의 3년은 '감독 선동열'의 흑역사였다.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다시 중·하위권팀으로 추락한 팀을 살려야 한다는 사명으로 KIA의 감독에 부임한 선동열 감독은 임기 중 5위, 8위, 8위에 머물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14 시즌이 끝난 후에도 '재계약 후 사임'이라는 홍역을 치르며 지역 팬들의 민심을 잃었다.

KIA에서 실망스러운 3년을 보냈음에도 여전히 선동열 감독에 대한 야구계의 기대는 매우 높았다. 선동열 감독은 '퍼펙트 4강'을 달성한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과 숙적 일본을 물리치고 초대 우승국이 된 2015년 프리미어12에서 투수코치로 활약하며 대표팀 마운드를 이끌었다. 당시 대표팀을 이끌었던 김인식 감독은 '투수 전문가' 선동열 코치에게 마운드 운용의 전권을 맡길 정도로 높은 신뢰를 보냈다.

2015년 프리미어12 우승 이후부터 조금씩 진행되던 야구 대표팀의 전임감독에 대한 논의는 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조별리그 탈락 이후 본격화됐다. 당시 선동열 감독을 비롯해 류중일(LG 트윈스), 조범현 감독 등이 물망에 올랐지만 한국야구위원회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선택은 화려한 선수 및 지도자 경력에 대표팀 코치 경험까지 두루 겸비한 선동열 감독이었다. 그렇게 선동열 감독은 한국야구 최초의 대표팀 전임 감독이 됐다.

아시안게임 이후 '공공의 적'... 스스로 물러난 선 감독
 
질의하는 손혜원 의원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체육산업개발, 태권도진흥재단, 대한장애인체육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증인에게 질의하고 있다.

▲ 질의하는 손혜원 의원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체육산업개발, 태권도진흥재단, 대한장애인체육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증인에게 질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회 규모가 크지 않았던 작년 아시아 프로야구챔피언십 대회에서 준우승을 할 때만 해도 선동열 감독에 대한 비판은 크지 않았다. 한국야구의 중요한 대회는 올해 열린 아시안게임과 2020년 도쿄 올림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야구가 목표로 했던 아시안게임 3연속 금메달을 달성했음에도 선동열 감독은 대표팀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오지환(LG), 박해민(삼성) 등 병역 면제를 위해 군 미필 선수들을 선발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물론 선발과정에서 다소 논란이 있더라도 감독이 그 선수를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좋은 성과를 낸다면 팬들의 분노는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선발 당시 '인맥 논란'이 있었던 축구의 황의조(감바 오사카)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오지환과 박해민은 대주자, 대수비로 활용되는 데 그쳤다. 결국 선동열 감독은 많은 비판을 받은 끝에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했다.

선동열 감독이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지난 10월 10일 더불어민주당의 손혜원 의원은 "국가대표 감독의 연봉 2억 원은 너무 많은 게 아니냐", "금메달이 그렇게 어려운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선동열 감독에게 날을 세웠다. 3연속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위한 선동열 감독의 노력마저도 폄하해 버린 발언이었다. 14일 선동열 감독의 사퇴 입장문에서도 손 의원의 발언은 그대로 인용되며 사퇴를 결정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정운찬  정운찬 한국야구위원회 총재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정운찬 정운찬 한국야구위원회 총재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10월 23일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정운찬 KBO총재의 발언도 선동열 감독에게 비수를 꽂았다. 정운찬 총재는 이 자리에서 "국제대회가 잦지 않거나 대표 상비군 제도가 없다면 전임감독 제도는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몇 명은 아마추어 선수를 뽑았으면 좋았을 것이다"라는 발언을 했다. 물론 지난 아시안게임까지는 아마추어 선수를 한 명씩 선발하는 관행이 있었지만 선수 선발은 감독 고유의 권한이다. 아마추어 선수 포함 여부는 예비엔트리 제출 전에 미리 논의했어야 할 문제였다.

결국 선동열 감독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도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고 대표팀 자리에서 물러났다. 물론 특정 선수의 병역 혜택을 위해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숙원'일 수 있는 국가대표 선발권이 남용되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야구팬들과 국회의원, 그리고 직접 감독으로 선임한 한국야구위원회가 '한통속'으로 선동열 감독을 쫓아낸 듯한 그림이 연출된 현실은 매우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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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선동열감독 국가대표전임감독 손혜원의원 정운찬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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