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선녀전>

<계룡선녀전> ⓒ tvN

  
tvN 월화 드라마 <계룡선녀전>의 원작인 '선녀와 나무꾼'은 역사적 사실과 무관한 설화다. 몽골공화국 북쪽 바이칼호수 주변에서 보리야드 종족의 신화로 등장한 뒤, 한민족에 유입돼서 설화로 전이된 이야기다.
 
역사적 사실도 구전이나 문학작품을 거치면 어느 정도 변형될 수 있다. 하지만, 사료(역사학 자료)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그 변형에 제약이 따르기 마련이다. 사료가 남아 있는 한, 대중은 구전이나 문학작품보다는 사료 속의 팩트를 더 신뢰하게 된다.
 
하지만 신화나 설화는 그런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 문학작품의 창작자이든 구전의 전달자이든, 누구나 다 이야기를 마음대로 비틀 수 있다. 몽골에서는 '백조소녀와 사냥꾼' 이야기였던 것이 한국에 와서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로 변형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선녀나 신선의 존재에 친숙하고 호수보다 산지가 훨씬 많은 한민족 상황에 맞게 스토리가 바뀌었던 것은, 어차피 이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변형이 최근 70년 동안에도 크게 일어났다. 1945년 한반도 분단의 결과로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에 중대 변화가 발생했던 것이다.
 
한국전쟁 중인 1952년 런던에서 발행돼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한국 설화집이 있다. 한국 문화를 영어로 소개하는 데 주력한 영문학자 정인섭(1905~1983년)의 <한국의 설화>(Folk Tales from Korea)다.
 
정인섭은 분단 이전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또 자료를 수집하고 번역하는 데 상당 기간이 소요됐을 것이므로, 1952년 서적에 수록된 설화는 그가 분단 전에 들었거나 공부했던 내용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설화>에서는, 선녀가 날개옷을 입고 아이들과 함께 승천한 뒤, 나무꾼도 사슴의 'A/S'를 받아 승천에 성공한다. 사슴이 알려준 두 번째 '팁'을 듣고 하늘로 올라간 나무꾼은 한동안 행복하게 살다가, 어머니가 너무 그리운 나머지 '잠깐 뵙고 와야지' 하고 내려왔다가 다시 못 올라간다. 이 이야기는 선녀와 자녀들만 하늘에 머물게 되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분단 이전에 존재했던 각종 버전들을 분석한 전신재 한림대 교수의 논문 '나무꾼과 선녀의 변이 양상'에 따르면, 해방 이전에는 나무꾼 역시 하늘에 남게 된다는 쪽으로 결말을 맺는 버전이 많았다.
 
"금강산의 '나무꾼과 선녀'는 선녀의 승천 혹은 나무꾼의 승천으로 끝나는데, 나무꾼의 승천으로 끝나는 경우가 우세하다."
- 강원대학교 강원문화연구소가 1999년 발행한 <강원문화연구> 제18집.
 
쉼표 뒷부분의 '나무꾼의 승천'은 나무꾼'만'의 승천을 말하는 게 아니라, 선녀 및 자녀들에 뒤이은 나무꾼의 승천을 지칭한다. 일가족 전원의 승천을 가리키는 것이다.
 
위 논문에 설명된 것처럼, 1924년에 나온 친일파 이광수의 <금강산유기>나 1928년에 나온 친일파 최남선의 <금강예찬>에서는 나무꾼이 선녀를 뒤따라 신선세계로 승천한다는 결말을 소개했다. 1927년에 나온 친일파 역사학자 이능화의 <조선여속고>에서는 나무꾼이 승천을 하지 않지만, 이는 예외에 불과하다. 나무꾼의 최종적 승천으로 결말을 맺는 버전이 많았던 것은, 신선세계에서의 장생불사를 꿈꿔온 한국인들의 의식이 이런 결론을 유도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나무꾼만 가족과 떨어져 지상에서 살게 된다는 결말을 담은 이야기에서도, 나무꾼이 동경하는 곳은 하늘이었다. 나무꾼은 하늘로 간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워한다. 해방 이전의 버전들에서는, 어떤 경우든 하늘이 동경 대상이었다.
 
12일 월요일까지 3회분이 방영된 <계룡선녀전>도 그 버전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드라마 속의 선녀 선옥남(고두심·문채원 분)은 나무꾼 남편이 실종된 뒤로 699년째 지상에 살고 있지만, 그의 의식은 기본적으로 하늘을 향해 있다. 남편이 돌아오면 날개옷을 되찾아 하늘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이 그를 지배하고 있다.
 
  선녀 선옥남(문채원 분).

선녀 선옥남(문채원 분). ⓒ tvN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해방 이후 북한에서는 스토리가 크게 달라졌다. 위의 전신재 논문에 따르면, 북에서 발행된 <금강산의 력사와 문화>, <재미나는 옛이야기>, <조선민화집> 등에서는 선녀와 나무꾼의 의식이 기본적으로 지상을 향해 맞춰져 있다. 두 사람 다 지상의 삶을 동경하는 것이다.
 
스토리의 결말도, 하늘로 올라간 선녀와 나무꾼이 도로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시 내려온 선녀가 더는 하늘을 그리워하지 않으며 지상 생활에 행복감을 느낀다는 게 북한 버전들의 공통점이다. 일례로, <금강산의 력사와 문화>에 실린 최종 결말은 이렇다. 하늘에 있던 일가족이 땅으로 다시 내려오는 대목이다.
 
"그(나무꾼)는 자기 살던 고향인 금강산이 한없이 그리웠다. 그의 처 역시 몇 해 동안 즐겁게 살던 금강산을 못내 그리워하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하늘세계 사람들이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고 아들딸을 데리고 다시 금강산으로 내려왔다. 그 후 그들은 금강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마음껏 바라보면서 날마다 부지런히 일하여 제 손으로 가꾼 곡식을 먹고 제 손으로 짠 천으로 옷을 해입고 제 손으로 지은 집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제 손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자주경제'가 특히 강조됐다. 자주경제 속에 행복한 지상 생활을 영위했다는 게 이야기의 결말이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재임 1945~1953년)에서부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이어지고 있는 미국의 경제봉쇄 속에서 대외무역보다는 내수시장 확충에 주력해온 북한 자립경제의 사정을 반영하는 대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설화라기보다는 창작 소설에 가까운 송봉렬의 <금강산 팔선녀>에서는 지상 생활의 중요성이 한층 더 강조됐다. 1984년에 출판된 이 소설에서는, 아내와 아이들을 찾아 하늘로 올라가려는 나무꾼을 어머니가 격려해주는 대목이 나온다. 전신재 논문에 따르면,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렇게 격려했다.
 
"장하다, 내 아들아, 네가 마음먹은 대로 하거라. 하늘에 올라가서 금강산 사람의 정이 얼마나 큰 것인지 보여주어라."
 
그렇게 해서 하늘로 침투한 나무꾼이 하늘 병사들에게 체포됐다가 극적으로 살아나 선녀와 아이들을 구출해 금강산으로 내려온다는 게 <금강산 팔선녀>의 결론이다.
 
"나무꾼과 선녀가 천상세계에서 지상세계로 동반 하강하는 모티브는 남한의 전승에서도 드물게 발견되는 것이다. 그러나 남한의 전승에서 그 동반 하강은 천상적인 존재들의 시기와 질투 등으로 나타나는 시련을 극복해내지 못한 소극성의 결과임에 반해서, 북한의 전승에서 그 동반 하강은 그들의 적극적인 의지의 결과다. 역시, 전자는 천상세계 중심이고, 후자는 지상세계 중심이다."
 
"이처럼 북한의 금강산 '나무꾼과 선녀'는 천상세계를 부정하고 국토에 대한 애착을 강하게 나타내며, 계교를 부릴 줄 모르는 인간의 순박성과 인간 사이의 살뜰한 정과 부지런한 노동과 지상천국의 건설을 강조한다." 

- 전신재 논문
 
 배우 윤현민이 연기하는 나무꾼.

배우 윤현민이 연기하는 나무꾼. ⓒ tvN

  
유교가 들어오고 불교가 들어온 뒤에도, 한국 민간에는 선녀나 신선의 삶을 추구하는 신선교 사상이 존재했다. 유교 경전을 배운 선비들도 신선세계에 대한 동경을 시로 남기는 경우가 많았다. 중등교육기관인 향교에서 일하는 선비가 신선술에 심취되는 경우도 있었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는 향교 선비였던 곽치허가 나이 80이 넘어서도 신선술을 연마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불교 사찰에도 신선신앙의 흔적이 남아 있다. 신선교의 일부인 산신 신앙을 반영하는 산신각 건물이 지금도 여전히 불교 사찰 한쪽에 남아 있다. 선녀나 신선처럼 사는 것에 대한 한국 민중의 염원이 강렬했음을 보여주는 징표들이다.
 
그런 문화적 바탕이 있었기에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오래도록 생명력을 유지했다고 볼 수 있다. 분단 이전 버전들에서, 선녀와 나무꾼이 한결 같이 하늘 세계를 동경한 것은 그런 문화적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분단 이후 북한에서는 선녀와 나무꾼이 지상세계를 동경하고 지상세계에 정착하는 쪽으로 스토리가 변형됐다. 수천 년간 이어져온 신선 신앙을 의식 저변에서부터 압도하는 새로운 정치체제가 세워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자연환경과 문화환경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설화의 속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계룡선녀전 선녀와나무꾼 문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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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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