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완벽한 타인> 메인포스터 영화 <완벽한 타인> 메인포스터

▲ 영화 <완벽한 타인> 메인포스터 영화 <완벽한 타인> 메인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 <완벽한 타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00.

오랜만의 커플 모임에서 한 사람이 게임을 제안한다. 바로 각자의 휴대전화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통화 내용부터 문자와 이메일까지 모두 공유하자고 한 것. 흔쾌히 게임을 시작하게 된 이들의 비밀이 휴대전화를 통해 들통나면서 처음 게임을 제안했던 목적과는 전혀 다른, 상상치 못한 결말로 흘러가게 된다.

'나의 휴대전화 속 내용들이 다른 사람에게 공개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라는 대담하고도 발칙한 상상에 기반한 작품. 영화 <완벽한 타인>은 완벽해 보이는 커플 모임에서 한정된 시간 동안 휴대전화로 오는 전화, 문자, 카톡을 강제로 공개해야 하는 게임 때문에 벌어지는 예측불허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영화다.

01.

지난 작품인 <역린> 이후 감독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다모 폐인'을 양산한 드라마 <다모>(2003)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이재규 감독은 <패션 70s>(2005), <베토벤 바이러스>(2008) 등을 연달아 흥행시키며 안방 드라마의 흥행 수표로 자리잡았다.

이후 2014년, 돌연 스크린으로 넘어와 연출한 <역린>은 생각만큼 큰 인상을 주지 못했다. 가까스로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체면치레는 했지만, 감독 특유의 매끄러운 스토리텔링을 완성시키는 데 실패하고 만 것이다. 마치 20부작으로 진행되는 드라마의 호흡과 2시간 전후로 맺음을 끝내야 하는 영화의 호흡을 고려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다소 지루한 감도 있었다.

이번 작품 <완벽한 타인>에서 놀라운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스타일은 물론 형식과 호흡, 극의 방향성과 흐름 등 거의 모든 지점에서 극적인 변화를 보인다. 문제에 다가가는 방식은 가볍게 가져가면서도 핵심에 이르러서는 냉철하게 돌변하는 식이다. 이런 모습이 작품 전체적인 분위기와 완벽한 조화를 보이며 완급의 쾌감을 느끼게 한다. 분명히 지난 작품 <역린>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영화 <완벽한 타인> 스틸컷

▲ 영화 <완벽한 타인> 스틸컷 영화 <완벽한 타인>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02.

<완벽한 타인>은 파올로 제노베제 감독의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스>(2016)에 기반한 작품이다. 원작의 구조는 해치지 않으면서 국내 정서에 맞게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

다만 원작 <퍼펙트 스트레인저스>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남성 인물들이라면, 이 작품 <완벽한 타인>은 부부와 연인이라는 구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남성과 여성의 균형을 맞춰낸다. 시나리오를 집필한 배세영 작가가 <씨네21>과 인터뷰한 바에 따르면, 작품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번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한다. 표현을 바꾸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각종 상황들이 주는 매력이 그만큼 다양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03.

물론 시나리오를 완벽에 가깝게 연출해 내는 것은 감독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재규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 <완벽한 타인>의 시나리오와 연출 상의 여닫음이 완벽에 가깝다는 사실은 첫 번째보다 2회차 이상 관람 시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후반부에서 드러나는 인물의 관계는 이미 영화의 시작과 함께 표현되고 있고, 사물의 위치와 역할이 그것이 활용되기 훨씬 이전의 시점부터 부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부터 말이다.

물론 첫 번째 관람에서부터 뛰어난 육감으로 '게스 히팅(Guess Hitting, 예상 타격)'을 할 수 있는 관객도 있겠지만, 두 번째 관람에서의 그것은 더 이상 추측의 범위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 모두가 알 수 있을 정도의 확신이다.

문제의 발생 시점, 방식 또한 철저하게 조직화되어 있다. 그 어느 문제도 동시에 터지거나 유사한 카테고리를 건드리지 않으며 지속적인 신선함을 자극시킬 수 있도록 구성된다. 또한, 시각적으로 획득한 관계의 문제가 그 문제 바깥에 놓여있는 또 다른 문제(열등감)를 촉발하는 트리거로 작용하도록 하여 마치 폭죽이 터지듯 관객들에게 조금도 틈을 내어주지 않도록 만든다. 가령, 태수(유해진 분)의 거짓말에서 준모(이서진 분)가 갖고 있던 학벌에 대한 열등감이 터지는 식이거나, 예진(김지수 분)의 강연에 초대받지 못한 수현(염정아 분)의 열등감이 분출되는 식이다.
 
 영화 <완벽한 타인> 스틸컷

▲ 영화 <완벽한 타인> 스틸컷 영화 <완벽한 타인>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04.

적절한 시기에 터뜨리기 위해 최대한 웅크릴 줄도 안다. 수현이라는 인물을 터뜨리는 방식만 봐도 그렇다. 그녀를 통해 피동적이고 수동적이기만 한 여성을 이 작품에서 그려내는 이유는 과거의 다른 작품들 속에서 그려졌던 의미와는 조금도 동일하지 않다. 후반부에 그 울분을 토해내기 위해 응축하고 또 응축하며 기다리려는 것뿐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수현의 극적 변화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민수(김민교 목소리 분)의 문자를 받은 태수의 과장된 해명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모든 사실이 밝혀진 뒤 태수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2시간 동안 게이가 되어봤는데 못해 먹겠더라.' 그야말로 묵직한 한방이다. 감독은 적절한 시기에 무게를 가장 강하게 실을 수 있는 타이밍이 올 때까지 숨죽이고 기다린다. 때문에, 한창 웃고 있다가도 '번뜩' 하고 정신을 차리게 된다.

05.

이 작품을 관람하는 동안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호흡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거나 자신도 모르게 몰입하는 경험을 했다면 이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문제의 제기와 환기의 교차 때문이다.

석호(조진웅 분)와 예진이 서로에 대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태수의 '10시 메시지' 사건과 예진과 수현 사이의 오해를 지나,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예진과 딸 소영(지우 분)의 갈등은 실버타운 사건과 연우(조정석 목소리 분)의 문자 사건을 지나 석호와 소영의 통화 장면을 통해 해소된다.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4~5회의 반복적 구조와 그 구조의 단조로움을 보완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관객들을 잠시도 놓아주지 않는다.

06.

이 작은 공간 안에서 무심결에 시작한 게임 하나로 인해 참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말았다. 대화 도중 개인적 트라우마가 기폭제가 되어 터지기도 하고, 자신과는 무관하게 상대의 기대로 인해 쌓여진 무엇에 무너져 버리기도 한다. 아닌 척하고 있지만 상대의 약점을 쥐고 흔드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전혀 상관도 없는 타인의 문제 사이에 끼어 곤란해지기도 한다. 영화는 이처럼 관계와 삶의 모호한 지점들에 위치한 감정들을 모두 날카롭게 찌르며 드러낸다. 겉으로는 완벽하게 보이는 것 같지만, 조금만 들춰내도 새카만 물이 쏟아져 내리는 군상이 이 작품 속에 있다.

소재의 선택뿐만이 아니라 그 속성과 속성을 활용할 이들의 설정까지도 하나의 그림으로 영화 안에 완벽히 잘 짜여 있다. 덕분에 거의 완벽에 가까운 호흡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에 한해서 이제까지 개봉한, 앞으로 개봉할 국내영화를 모두 통틀어 가장 높은 곳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을 정도로.
영화 무비 완벽한타인 이재규 유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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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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