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완벽한 타인>의 포스터.

영화 <완벽한 타인>의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일단 재밌다. 게임에 노출된 일곱 민낯들이 볼 만하다. 구린 구석이 없는 얼굴이 없다. 사회적 체면이나 방어적 쿨함으로 가린 원색적 욕망들을 들킬세라 수습하는 저마다의 표정이 미세하나 생생하다. 변호사 태수(유해진 분)와 영배(윤경호 분)가 억지춘향으로 휴대폰을 바꾼 후 <완벽한 타인>은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스마트폰과 SNS가 대세인 생태계의 웃픈 풍속도다.
 
<완벽한 타인>은 러닝타임 대부분을 한 공간에서 치른다. 성형의사 석호(조진웅 분)와 정신과의사 예진(김지수 분)의 집들이에 속초 출신 40년 지기 친구들이 모여 든다. 그 자리에서 서로에 대해 알만큼 안다고 자부하던 그들은 외딴 섬이 되어 흩어진다.

그 경우들을 연출하며 이재규 감독은 삶의 3종 세트를 짚어 보인다. 공적인 삶과 개인적인 삶, 그리고 비밀의 삶이다. 핸드폰이 울릴 때마다 자지러지는 그 삶들을 호화 캐스팅의 '팀 케미스트리'가 살린다.
 
보수적 이미지를 선보인 유해진과 말 못할 비밀이 있는 윤경호의 케미가 그 중 감칠맛 난다. 미쳐 팔짝 뛰고픈 상황에서도 자기가 살자고 친구의 비밀을 까발릴 수 없어 애드리브로 대응하는 태수 역에 유해진의 코미디성 연기가 놀랍도록 제대로 먹힌다. 그런 태수에게 둘 만이 알아 듣는 간접화법을 들이대는 영배가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킨다. 다급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윤경호가 눈에 들어온다.
  
 영화 <완벽한 타인> 장면

영화 <완벽한 타인> 장면 ⓒ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사실 누구든 자기에게조차 어느 정도 타인이다. 내 기억을 내가 믿지 못할 때가 있고, 내 마음이 장차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내가 의도하지 않은 언행이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어서다. 그래도 자아정체성이 유지되는 한 나는 나다. 물론 그건 당사자의 관점이다.

반면, 그 비밀을 알고 나서 경악을 금치 못하는 불알친구들에게 영배는 완벽한 타인이다. 그건 속 좁은 성 차별 의식 때문이 아니다. 불알친구끼리 비밀은 없다는 그들의 불문율이 철저히 배반당해서다. 배반은 이질감을 높여 상대와 공유했던 정체성을 물 먹인다.
 
그러나 영배가 제공한 타자성은 '비밀의 삶' 영역에만 해당한다. <완벽한 타인>에서 3종의 삶에 걸쳐 두루 자아정체성을 위협 받는 캐릭터는 석호다. 공적인 삶에서 성공한 성형의지만 아내나 장인에게 여전히 인정받지 못한다. 예진 몰래 다니는 동선이 있고, 급하게 변호사인 태수의 도움을 청할 일이 있다. 게다가 예진은 집들이에 함께한 누군가와 바람난 상태다. 둘은 딸의 이성교제에 대한 견해도 다르다. 인정 욕구와 연계된 석호의 자존감은 온통 균열이 가 있다.
  
 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하지만 석호는 예진과 헤어질지라도 끝까지 관계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이다. 그러한 석호의 자아정체성은 어떤 경우를 당해서도 후회를 덜하기 위해 지금 여기에서 자기의 부족함을 메워가는 그 한결같음이다. 불알친구들이 알게 되면 내쏟을 놀람과 상관없이 석호는 자기동일성을 유지하고 있고, 유지할 것이다. 세속적 가치에 매몰되지 않고 겪어내려는 석호의 인간정신이 진정한 자존감으로 다가온다.
 
그러할 때 <완벽한 타인>이 말하고자 하는 '완벽한 타인'은 누구의 무엇을 위한 관점일까. 대답은 액자소설 같은 영화 문법에 있다. <완벽한 타인>은 게임이 일으키는 난타전을 보다가 동병상련에 젖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내 뒤통수를 친다. 게임은 없었다고 암시하는 결말을 통해서다.
 
 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영화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파국을 안 볼 수 있어 내심 안도하는 내게 틈새가 벌어졌던 부부관계가 봉합되는 장면들이 제공된다. 어떻게든 비밀을 유지해 안온한 일상을 확보하며 제 목소리를 따라 사는 게 지혜라고 역설하는 것 같다. 소중한 상대를 대할 때조차 가면을 쓰는 인간 정신이 완벽한 타인인 셈이다. 어찌 보면 나도 그렇다.
 
관람 후에야 <완벽한 타인>의 원작이 이탈리아 영화라는 걸 알았다. 피부에 와 닿는 참신한 발상이 반가웠기에 온전히 우리나라 영화가 아니라는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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