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방탄소년단 성장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번 더 스테이지: 더 무비'(BURN THE STAGE: THE MOVIE)의 한 장면.

그룹 방탄소년단 성장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번 더 스테이지: 더 무비'(BURN THE STAGE: THE MOVIE)의 한 장면. ⓒ 연합뉴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의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멤버인 지민이 1년여 전 입고 나온 티셔츠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티셔츠에는 '애국심', '우리 역사', '해방', '한국'이라는 영어문구와 함께 광복에 만세를 하는 모습(하단)과 일본에 원폭을 투하할 당시의 사진(상단)이 담겨있다. 이번 논란은 일본 우익들이 최근 이 티셔츠를 문제 삼고, 이로 인해 몇몇 일본 방송국들이 예정돼 있던 방탄소년단의 프로그램 출연을 취소하면서 일파만파 커졌다.
 
지민의 티셔츠는 지난해 촬영된 다큐멘터리 <번 더 스테이지(Burn the Stage)>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해당 티셔츠를 입은 지민의 모습은 단 2초 정도 카메라에 잡힌다. 이 논란에 대해 지민 본인은 추가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나 여론의 흐름은 실망스러웠다. 논란 초기 대다수 국내 언론들은 '일본 우익들이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이 1년 전 입은 티셔츠를 문제 삼고 있다', '일본 방송국이 해당 티셔츠 등을 문제 삼으며 예정돼 있던 방송 출연을 취소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후 외신들이 이에 주목하자, 일부 매체들은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영향력을 보여준 사례'라고 쓰기도 했다. 또 적지 않은 누리꾼들은 방송 출연 취소를 결정한 일본 방송사를 비판하며 '해당 티셔츠는 광복절을 기념한 것일 뿐'이란 반응을 보였다.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역사적 비극
 
 일본 <도쿄스포츠>는 지난 26일 '방탄소년단의 비상식적인 원폭 티셔츠, 리더의 일본 비난 트윗'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일본 <도쿄스포츠>는 지난 26일 '방탄소년단의 비상식적인 원폭 티셔츠, 리더의 일본 비난 트윗'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 도쿄스포츠 누리집 갈무리


틀린 말은 아니다. 아마도 해당 티셔츠를 제작한 사람도, 그 티셔츠를 입은 지민도 "광복절을 기념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일본의 일부 매체에서 지민의 '광복절 티셔츠'와 과거 RM의 "역사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SNS 글을 문제삼으며 "반일 활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티셔츠 위쪽에 그려진 원폭 투하 장면은 또 다른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일부에선 해당 티셔츠는 '광복절'을 기념하는 것일 뿐 원폭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의견을 내기도 하지만, 원폭으로 수많은 민간인 피해자들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일본은 전범국이니까 원폭을 당해도 싸다느니 하는 의견까지 나온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때문인지 며칠 전부터 SNS상에선 일본 방송사들이 방탄소년단의 출연을 취소한 것과는 별개로 원자폭탄 투하 장면이 이렇게 사용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원폭 투하는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고 조선이 해방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역사적 비극이다. 1945년 8월 6일과 9일 각각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69만여 명이 피폭되었고, 그 중 23만여 명이 사망했다. 당연히 조선인들의 피해 또한 막심할 수밖에 없었는데, 군수도시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강제동원 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의 추산에 따르면 조선인은 히로시마에서 5만 명, 나가사키에서 2만 명이 피폭되었고 그 중 4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생존자 3만 명 중 2만 3천여 명이 귀국했다. 조선인의 피해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무고한 일본 민간인 또한 희생되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한국으로 돌아온 원폭피해자들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원폭피해에 대한 보상이 언급되지 않았고, 그래서 법적으로 일본정부에 피해보상을 요구할 여지가 없다는 한국정부 측의 무력한 답변만을 받았다. 피해자들은 한일 양 정부의 소극적인 대처에 또 지난한 투쟁을 해야 했다.
 
이런 역사적, 정치적 맥락 아래서 원폭피해자들은 살아왔다. 과연 원폭 투하가 아무 문제가 아니라거나, 당할 만했으니까 당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원폭투하를 놓고 우리에게 피해를 주었던 일본의 전쟁범죄만을 콕 집어서, 구분해서 적용할 수 있을까? 이번 논란은 어쩌면 국내에 현재까지 살아있는 원폭피해자들과 2, 3세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물론 조선인 원폭 피해자와 일본 민간인 원폭 피해자를 엄연히 구분지어서 이야기해서도 안 된다).
 
민간인 보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원폭 투하 후 일본 히로시마(왼쪽)와 나가사키(오른쪽) 상공에 피어오른 버섯구름

원폭 투하 후 일본 히로시마(왼쪽)와 나가사키(오른쪽) 상공에 피어오른 버섯구름 ⓒ NARA / 눈빛출판사


미국의 원폭투하는 일본을 상대로 한 것이고, 일본군 위안부는 조선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것이니까 다른 문제인 걸까? 그렇지 않다. 현대전은 군인과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제1차 세계대전에 비해 민간인 피해자의 숫자 및 비율이 대폭 증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9년에는 민간인의 보호에 관한 내용을 규정하기 위해 제네바협약을 포함한 많은 국제인도법이 채택되기도 했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민간인의 보호는 아무리 강조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는 국제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었던 것이다.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현대전의 특성에 따라 민간인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국제인도법을 보완시키려고 하는 중이다.
 
지난 2016년 5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했다. 표면적으로는 원폭투하로 인해 희생된 시민들을 추도하고 전쟁의 비참함을 호소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오바마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전쟁의 와중에 지도자는 여러 가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피해자들에게 사죄할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일본이 전쟁범죄를 일으켰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미국의 원폭투하가 수많은 희생자, 특히 전쟁과 무관한 민간인의 희생을 낳았다는 것 역시 역사적 사실이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 때 저질렀던 범죄 사실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민간인 피해가 막대했던 원폭투하를 비판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원폭 장면의 무비판적 사용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한동안 이런 시각에 찬성하는 목소리와 반대하는 목소리가 부딪힐 테지만, 결국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라는 긍정적인 결말을 바라본다.
#전쟁범죄 #방탄소년단 #원폭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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