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의 1977년작 'Radio Ga Ga' 뮤직비디오

퀸의 1977년작 'Radio Ga Ga' 뮤직비디오 ⓒ 유니버설 뮤직

 
"홀로 앉아 라디오의 불빛을 바라본다.
10대 시절, 유일했던 밤 친구여.
난 라디오에서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걸 배웠지."


영국 출신의 4인조 록그룹 퀸이 1984년 발표한 곡 'Radio Ga Ga' 노랫말의 첫 소절이다. 이 곡은 프레디 머큐리의 일대기를 그린 화제작 <보헤미안 랩소디> 중 퀸의 '라이브 에이드' 공연 장면에도 나오는데, 이 노래를 듣고는 나도 모르게 저절로 따라 불렀다. 그리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퀸의 대표작은 누가 뭐래도 'Bohemian Rhapsody'다. 그밖에도 'Love of my life', 'We will rock you', 'You're my best Friend' 등 그야말로 주옥같은 곡들을 남겼다. 그런데 난 퀸의 명곡 가운데도 이 곡 'Radio Ga Ga'를 즐겨 들었고, 무척 좋아했다. 아마 나의 성장기가 라디오와 얽혀 있어서 그런가 보다.

10대 시절 유일했던 친구, 라디오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난 라디오를 끼고 살다시피 했다. 특히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을 즐겨 들었는데 MBC FM 김기덕 DJ가 진행하던 <두 시의 데이트>(두데), 그리고 AM이었다가 표준 FM으로 대역이 바뀐 <별이 빛나는 밤에>(DJ 이문세)는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들었다.

애청 프로그램 가운데 '두데'는 방송 시간 상 방학 시절에만 들을 수밖엔 없었는데, 당시 DJ 김기덕은 겨울과 여름 방학 시즌이면 특집으로 애청자가 뽑은 팝송 100곡을 선정해 방송했었다. 이맘때면 난 빠지지 않고 엽서에 좋아하는 곡 다섯 곡을 적어 보냈다.

'두데'에서는 청취자 서비스로 엽서를 보낸 청취자 모두에게 <팝 PM 2 >라는 소책자를 보내줬었다. 멋모르던 10대 시절의 난 방송국 소책자 기다리는 재미로 하루를 보냈다.

참, 고 정은임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영화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하고서는 KBS 2FM <영화 음악실>을 즐겨 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청취자 층이 얇아 엽서를 보내면 어김없이 신청곡과 사연이 방송을 탔었다. 요즘 말로 당첨 확률 100%였던 셈이다. 그러다 한 번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감상문을 프린터로 출력해 보냈는데, 담당PD가 이걸 눈여겨봤던지 내게 연락을 해왔다. 그때 담당PD가 KBS 부사장을 지냈던 이형모 라디오국 차장이었다. 난 이후 이분과 자주 뵐 수 있었고, 인간적 면모에 감화를 받았다.

아무튼, 몇 달 지나지 않아 내 목소리는 공영방송 라디오의 전파를 탔다. 지금은 누구나 1인 미디어가 가능한 시절이어서 방송 출연이 그닥 대단한 일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당시, 그러니까 1992년과 1993년 즈음만 해도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다.

이런 기억 때문인지 "난 라디오에서 내가 알아야 할 전부를 배웠지"라는 'Radio Ga Ga'의 노랫말이 귀에 확 꽂힐 수밖에 없었다.

시대변화에도 여전히 사랑 받는 '라디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중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Radio Ga Ga'를 부르는 장면. 이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쏟았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중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Radio Ga Ga'를 부르는 장면. 이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쏟았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이 곡은 또 시대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퀸은 1970년대 초반에서 1980년대까지 전성기를 보냈다. 그러다 1980년대에 접어 들면서 퀸은 프레디 머큐리와 다른 멤버들 사이의 불화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영화에서도 이 장면이 나온다)

퀸이 하향세로 접어든 시기는 역으로 보이 조지를 앞세운 컬처클럽이나 두란두란, 왬 등 '비주얼'로 무장한 후배 밴드들이 치고 올라오던 시점이기도 했다. 이에 아래 인용할 노랫말에선 퀸 멤버들의 시대변화에 대한 인식마저 엿보인다.

"우리는 몇 시간씩 비디오를 통해 쇼를 보고, 스타를 봐.
음악 듣는데 귀를 사용하지 않아.
그리고 수년 동안 음악은 변화를 거듭했지."


이 같은 시대적 변화에도 퀸은 라디오를 향해 무한한 애정을 드러낸다. 프레디 머큐리는 특유의 깨끗한 음색으로 이렇게 노래한다.

"라디오여, 뭐가 새롭지?
누군가는 여전히 너를 사랑하고 있을 거야."


이들의 문제의식은 그 시절에도 옳았고 지금도 옳다. 아무리 비주얼과 칼군무가 대세이고, 또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시대를 맞아 디지털 음원이 대세로 떠올랐지만 라디오는 그 어떤 시대변화를 이기는 마력을 지녔다. 그리고 프레디 머큐리의 찬사처럼 누군가는 라디오를 사랑할 것이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영화에서 이 곡을 보고 들으면서 너무 감격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따라 불렀고, 주위 관객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영화를 보면서 이토록 감격스러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10월 31일 국내 개봉한 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개봉 10일 만에 누적관객 100만 명을 넘겼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퀸의 명곡도 새롭게 재조명 받고 있다. 그런데 관심이 온통 '보헤미안 랩소디'에 쏠려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이 곡이 퀸이 남긴 불후의 명곡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퀸은 시기별로 의미 있는 곡들을 다수 남겼다. 'Radio Ga Ga'도 그 중 하나다.

영화가 끝났음에도 프레디 머큐리가 이 곡을 부르는 장면은 잊혀지지 않는다. 당분간 매일 매일 이 곡을 들으려 한다. 지난 날 라디오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라디오, 누군가는 여전히 너를 사랑하고 있을 거야."
프레디 머큐리 보헤미안 랩소디 RADIO GA GA 두란두란 보이 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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