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뮤지컬 등의 공연을 '재관람'하는 건 참 매력적인 일이다. 처음 볼 때 모르고 지나쳤던 새로운 장면들이 보이기도 하고 작품의 분위기에 더 빠져들기도 한다. 재관람의 매력에 빠져 적게는 두세 번, 많게는 스무 번, 또는 그 이상까지 같은 공연을 반복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연극 뮤지컬 팬들은 이러한 공연 재관람 형태를 '회전'이라고 부른다.

마치 좋아하는 노래에 빠져 같은 곡을 하루 종일 반복해 듣거나 좋아하는 영화를 계속 돌려보는 일과 비슷한 맥락이다. 나도 같은 공연을 여러 번 보는 걸 좋아한다. 가장 최근에 소소하게 회전을 돌았던 작품은 9번까지 봤다. 그런데 최근 막을 내린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처음 본 뒤 막이 내릴 때까지 재관람을 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4일 간의 영원한 사랑
 
 프란체스카(차지연)와 로버트(박은태)가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인하고 있다.

프란체스카(차지연)와 로버트(박은태)가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인하고 있다.ⓒ 쇼노트

 
"기나긴 시간을 건너 너와 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노래 '단 한 번의 순간'에 나오는 가사처럼 주인공 프란체스카와 로버트는 힘들고 지쳤던 긴 시간을 지나 만났다. 이탈리아가 고향인 프란체스카의 젊은 시절 꿈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약혼자까지 잃고 삭막한 나날을 보내다 우연히 만난 미군 남편을 따라 도망치듯 미국 아이오와로 왔다. 그 곳은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이후 프란체스카는 옥수수 농사도 짓고 아이도 낳고 그렇게 두 아이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수십 년을 살아 왔다. 비록 부엌 서랍에 넣어둔 스케치북을 가끔씩 꺼내보며 과거의 꿈들을 그리워 하지만.
 
로버트는 세계 각지를 떠돌아다니는 내셔널 지오그래피의 사진작가다. 마치 이방인처럼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카메라 뒤에서 진짜 세상을 바라만 본다.
 
작품은 두 사람의 사랑을 강렬하면서도 서서히 물들어 가는 모습으로 그려냈다. 이는 첫 만남에서부터 드러난다. 로즈먼 다리의 사진을 찍으려던 로버트는 길을 잃고 우연히 프란체스카를 만나 길을 물어본다. 남편과 아이들이 여행을 떠나 마침 여유가 있었던 프란체스카는 로즈먼 다리까지 직접 길을 알려주게 된다.
 
프란체스카가 거부할 수 없었던 로버트
 
두 사람은 공감대가 많았다. 프란체스카가 그리워하는 고향 이탈리아를 로버트가 직전에 다녀오기도 했고 좋아하는 저녁 식사, 커피도 같았다. 특히나 로버트는 참 세심하고 생각이 깊은 남자였다. 프란체스카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마냥 "요즘 세상은 여자들이 살기 힘드니까요" "제 사진 속 여성들은 누군가의 아내, 엄마였어요"라는 말을 했다. 아마 이 때부터였던 것 같다. 로버트를 향한 프란체스카의 마음이 더 커지기 시작한 게. 로버트 덕분에 서랍 속에 넣어뒀던 꿈을 다시 꺼내고 싶어졌고 그의 친절함에 깊이 감동 받았다. 프란체스카는 로버트를 절대 거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를 울린 로버트의 사랑 '매일 내 사랑을 느꼈기를'

서로를 만나기 위해 살아온 것처럼 운명적인 만남을 한 두 사람이었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단 4일이었다. 로버트는 성숙한 사랑을 했다. 사랑하는 프란체스카의 모든 걸 보듬어주고 안아줬다. 그녀가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에 이별이 다가왔을 때는 그녀를 떠밀어주듯이 보내기까지 했다. 후회 없이 사랑하고 보내주고, 또 평생을 그리워하며 추억하는 로버트가 안쓰러우면서도 아름다웠다.
 
"모든 것이 무너져도 절대 바뀌지 않는 영원히 남을 단 하나의 진실 나의 심장 나의 숨결 모두 멈춘다해도 변할 수 없는 건 그대 내게 남은 건 내게 남은 건 변하지 않는 그대"

할아버지가 된 로버트가 프란체스카를 추억하면서 부르는 노래 '내게 남은 건'이 작품의 전부라고 말하고 싶다.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보면서 펑펑 울었다. 이별을 맞이한 뒤에도 그녀의 사진을 꺼내보고 보내지도 못하는 편지를 쓰는 로버트를 보자 내가 다 서러웠다. 혹시나 그녀가 자신을 필요로 할까봐 매일 기다리고 사랑한 모든 순간들을 소중히 여긴다. 로버트는 프란체스카를 사랑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닐까.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대극장 뮤지컬이지만 감정선을 섬세하게 잘 끌고 간다. 보통 대극장 뮤지컬에는 많은 인물들과 화려한 무대, 안무 등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오로지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의 감정에만 집중했다. 첫 만남부터 헤어짐까지 서로에게 물들어 가는 과정을 잔잔하면서도 강렬하게 담아냈다. 저녁식사 메뉴를 정하는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서로에게 빠지고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쌓아갔다.

저녁 만드는 일을 돕겠다고 나선 로버트는 앞마당 텃밭에서 펜넬을 가져오면서 "이건 꼭 넣어야 맛있다"고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 놀란 프란체스카는 이내 좋아하며 맛있는 야채 수프를 만들어 그를 대접했다. 그런데 극 후반부 집으로 돌아온 프란체스카의 남편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수프가 들어있는 냄비를 열고 "나 펜넬 싫어하는 거 알잖아"라며 "여기에 고기 넣고 다시 끓이면 되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의 감정들이 돋보이도록 작품 곳곳에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재관람하지 않으려 했지만
 
 로즈먼 다리에서 로버트가 프란체스카에게 꽃을 선물하고 있다.

로즈먼 다리에서 로버트가 프란체스카에게 꽃을 선물하고 있다.ⓒ 쇼노트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참 당황스러운 작품이었다. 보는 동안 펑펑 울었던 것도 모자라 다음날 집에서 프레스콜 영상을 보다가 또 울었고 노래를 들으면서 또 울었다. 작품의 여운이 이렇게까지 오래 간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가슴이 답답하면서도 따뜻한 이상한 경험이었다. 사실 이 이유 때문에 재관람 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나는 보통 신나거나 밝은 공연들을 여러 번 보는 편이다. 감동적이거나 공연을 보는 동안 울었던 작품은 처음 느꼈던 감동이 혹여나 줄어들까봐 잘 본 작품 일수록 재관람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런데 공연을 본 지 두 달이 넘어가도 계속 먹먹하게 떠오르는 프란체스카와 로버트 때문에 결국 재관람을 했다. 혹시나 그 때의 느낌이 아니더라도 한 번 더 두 사람을 보는 걸로 만족하고 오자는 다짐을 하며 극장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런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처음 봤을 때 보다 더 울고 나왔다. 이들의 결말을 알기에 모든 장면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꽃물처럼 물들었듯이 나도 이들의 이야기에 같이 물들어 같이 웃고 같이 울었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결핍을 채워주는 모습을 보자 마음속으로 프란체스카와 로버트가 하나 되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했다.
 
내게 남은 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내게 남기고 간 것들은 단순히 '인생 뮤지컬'이라는 단어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서로의 아픔을 들어주고 안아주던 두 사람을 보면서 사소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다. 로버트를 보면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걸 걸고 직진하는 용기와 상대를 떠나보내면서까지 아껴주는 배려를 느꼈다.
 
이제는 작품의 노래 한 소절만 떠올려도 두 사람의 사랑이 떠올라 울컥할 지경이다. 큰 무대를 채우던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의 목소리, 숨소리, 눈빛, 눈물들을 평생 잊지 못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