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사는 젠첸(장동윤 분)은 가족을 버린 어머니(이나영 분)를 죽기 전에 다시 만나고 싶다는 아버지(오광록 분)의 부탁을 받는다. 병든 아버지를 위해 한국에 온 젠첸은 사진에서 보던 어머니를 만나지만, 술집을 운영하며 건달처럼 보이는 남자와 사는 모습에 크게 실망한다. 화가 치민 젠첸은 어머니에게 욕설을 내뱉고 같이 사는 남자를 때리고 만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중국으로 돌아오던 젠첸은 어머니가 선물 속에 몰래 넣어두었던 일기장을 발견한다. 그 속엔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에 대해 상세히 적혀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오랫동안 감춰두었던 비밀을 알게 된 젠첸은 큰 충격에 빠진다.

어쩌면 <마담B>에서 시작한 <뷰티풀 데이즈>

영화 <뷰티풀 데이즈>는 아픈 과거를 숨긴 채 한국에서 살아가는 어머니와 14년 만에 그녀를 찾아 중국에서 온 아들 젠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흥미로운 건 극 중 어머니가 탈북 여성이란 설정이다. 탈북 여성이 중국에서 살림을 꾸렸다가 한국으로 건너와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다는 전개는 자칫 탈북민의 고통을 무시하고 비극을 자극적으로 소비시킨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나 비판적인 시선은 오해에 불과하다.
 
<뷰티풀 데이즈> 영화의 한 장면

▲ <뷰티풀 데이즈>영화의 한 장면ⓒ 페퍼민트앤컴퍼니,멘타로직

  
연출을 맡은 윤재호 감독은 분단 문제와 경계의 삶에 줄곧 관심을 기울여왔다. 부산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미술, 사진, 영화를 공부한 그는 2010년 연출한 단편 다큐 <약속>을 시작으로 <북한인들을 찾아서>(2012)<마담 B>(2016)<히치하이커>(2016)까지 분단의 현실을 다큐멘터리로 담아왔다. 그의 행보에 칸국제영화제는 일찌감치 초청의 형태로 주목을 표시했다.

윤재호 감독이 분단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는 파리의 민박집에서 일하는 한 조선족 아주머니가 9년간 보지 못한 아들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그린 <약속>을 만들면서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고 한다.

"<약속>을 찍으면서 조선족의 뿌리가 궁금해져 역사를 공부했다. 분단 이전의 역사 그리고 분단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조사하면서 궁금한 게 많이 생겼다." (씨네21 인터뷰)
 
<뷰티풀 데이즈> 영화의 한 장면

▲ <뷰티풀 데이즈>영화의 한 장면ⓒ 페퍼민트앤컴퍼니,멘타로직

  
<뷰티풀 데이즈>는 탈북 여성 마담 B에 관한 다큐멘터리 <마담 B>를 극영화로 바꾼 인상이 짙다. <마담 B>엔 한쪽 부모가 없거나 가난한 중국인 집, 또는 몸이 아프거나 정신병에 시달리는 중국 남자에게 탈북 여성이 팔려간다고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마담 B도 팔려갔던 북한 여성이다. 북한에서 가정을 이뤘던 마담 B는 중국으로 온 뒤에 중국 남성과 새로이 가족을 꾸렸다가 후엔 한국으로 먼저 간 아이들을 따라간다.

마담 B의 굴곡진 삶은 <뷰티풀 데이즈>의 어머니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윤재호 감독은 마담 B 같은 실제 인물들, 바꾸어 말하면 분단 그리고 경계선에 서있는 사람들을 통해 정체성의 혼란과 가족의 의미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14년 전 가족을 버리고 도망간 엄마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중국인 대학생 젠첸이 아픈 과거를 가슴 깊은 곳에 담아둔 엄마와의 재회를 통해 겪게 되는 정체성 혼란과 그녀의 일기장으로 밝혀지는 숨겨진 비밀을 통해 분단사회가 낳을 수밖에 없는 정체성 혼란을 겪는 가족을 표현하고 싶었다."

새로운 탈북민 영화의 탄생
 
<뷰티풀 데이즈> 영화의 한 장면

▲ <뷰티풀 데이즈>영화의 한 장면ⓒ 페퍼민트앤컴퍼니,멘타로직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던 <뷰티풀 데이즈>는 젠첸이 엄마가 쓴 일기장을 읽으면서부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조로 바뀐다. 전개 방식이 변화하며 흐릿해던 여성의 운명은 북한을 탈출하고, 중국인에게 팔려가고, 범죄 조직에 착취당하고, 어쩔 수 없이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새로운 가족을 구성한 여정으로 선명해진다.

관객은 아들의 시각을 뒤따르며 젠첸, 또는 어머니가 느끼는 그리움, 절망, 안타까움, 사랑, 꿈 등 복합적인 감정을 관찰하게 된다.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에 사용되는 슬로우 화면은 복잡함을 한층 더한다.

여성, 가족, 분단 등 다양한 소재가 교차하는 <뷰티풀 데이즈>엔 몇 가지 선택이 돋보인다. 하나는 젠첸을 제외한 인물들에게 이름을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등장인물들은 어머니, 아버지, 엄마의 새 남자, 황 사장으로 처리된다.

이런 설정에 대해 윤재호 감독은 "탈북자들이 가명을 쓰거나 개명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부연한다. 이름을 붙이지 않은 건 모호한 정체성인 셈이다. 인물에게 붙여진 대명사나 익명성은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인물이란 사실도 된다.
 
<뷰티풀 데이즈> 영화의 한 장면

▲ <뷰티풀 데이즈>영화의 한 장면ⓒ 페퍼민트앤컴퍼니,멘타로직

  
어머니에게 조명, 옷 등을 사용하여 붉은 색감을 강조한 점도 눈에 띈다. 빨강은 '혈연'의 의미가 된다. 극 중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의 '피'이기도 하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어머니의 삶의 뜨거운 '의지'이자 그녀가 바라보는 내일이란 뜻을 지닌 '태양'으로 읽을 수 있다.

영화엔 비슷한 상황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곤 한다. 그중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건 식사 장면이다. 젠첸과 어머니의 식사 장면은 과거 중국에서 온가족이 모여서 밥을 먹는 장면과 맞닿는다. 누군가의 부재는 떠남도 되고 죽음일 때도 있다. 윤재호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의 관객과의 대화에서 식사 장면을 "가족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뷰티풀 데이즈>은 새롭게 맺어진 가족이 식사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들에게 '뷰티풀 데이즈(아름다운 날들)'은 올까? 영화는 그럴 것이란 희망 어린 시각으로 가족을 바라본다. 그렇게 기존의 탈북자를 소재로 삼은 영화와는 다른, 새로운 결을 지닌 탈북민 소재의 영화가 태어났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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