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포스터
ⓒ 우란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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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희곡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원작으로 한다. 1936년 창작된 이 희곡은 수십 년이 지난 2006년, 일본 영화 <라쇼몽>과 관련된 뮤지컬 <씨 왓 아이 워너 씨>의 작곡가 마이클 존 라키우사의 손을 거쳐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1930년대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농가를 배경으로 검은색 천 안에 붉은색 안감을 댄 옷을 입고 있는 여자들, 여성 가장 '베르나르다 알바'와 그의 다섯 딸들이 가지는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이 작품은 여러 측면(사실은 모든 측면)에서 호평받을 요소를 담고 있다.
 
베르나르다 알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가 10월 24일 개막해 11월 12일까지 성수동 우란문화재단 신사옥에서 공연된다. 배우 정영주, 황석정, 이영미, 정인지, 김국희, 오소연, 백은혜, 전성민, 김히어라, 김환희 등이 출연한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한 장면. ⓒ 우란문화재단


우선 첫 번째는 극 외적인 요소다. '여성 배우가 주인공이면 표를 팔지 못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공연계에서 남성 배우가 1명도 없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으레 이렇게 여주인공이 등장하고, 중심 서사를 담당하는 작품이어도 '비주얼 담당'을 맡는 남자 배우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베르나르다 알바>는 온전히 여성 배우 10명만 등장한다. 

게다가 라이브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작품의 티켓 값이 정가 5만 원에 불과하다. 꼭 출연료가 전부는 아니지만, 최근 2~3인극에서도 더 비싼 티켓 가격을 제시하던 공연계의 관행을 뒤집어놓았다. 

물론 이는 <베르나르다 알바>가 우란문화재단의 개관축제 프로그램이기에 상업적인 계산에서 약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작품을 순수하게 이정도 티켓 가격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 프로듀서는 천재가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수많은 재치있고 창의적인 '여자가 주인공인' 이야기들이 본공연까지 이어지지 않았던 것을 고려한다면 <베르나르다 알바>는 특별한 성취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존재했던 여성 인물의 비중이 '디벨롭' 돼 축소되거나, 사라지는 작품도 있었다. 그 가운데 등장한 <베르나르다 알바>에 대해 관객들 역시 전회 전석 매진으로 열렬히 화답하고 있다. 만일 티켓 값이 지금보다 더 비쌌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베르나르다 알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가 10월 24일 개막해 11월 12일까지 성수동 우란문화재단 신사옥에서 공연된다. 배우 정영주, 황석정, 이영미, 정인지, 김국희, 오소연, 백은혜, 전성민, 김히어라, 김환희 등이 출연한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한 장면. ⓒ 우란문화재단

 
다음으로는 고정된 여성 인물의 성격에 대한 전형성을 전복시킨 것이다. 기자 역시 고백하건데, 최근 들어 '젠더 프리'의 개념에서 작품을 바라보며 공연계의 성평등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여성 <헤드윅>이나 여성 <지킬 앤 하이드> 같은 것들 말이다. 실제로 <트레이스 유>에 여배우 안유진이 출연하는 것을 보며 환호했고,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들에서 능동적인 여성 인물을 묘사하는 것을 응원했다. 하지만, 이는 출발점을 잘못 찾은 게 아니었을까. <베르나르다 알바>는 지극히 보수적인 이야기다. 1930년대 남자랑 여자랑 이야기만 해도 '창녀' 딱지가 붙을 수 있을만큼 보수적인 시골 농가. 특별한 매력을 지닌 어떤 남성과 그를 둘러싼 자매들의 질투담. 사랑에 눈이 먼 인물들.

그렇지만 이 작품 속의 인물들은 하나 같이 '진짜' 사람같이 행동한다. 단순히 하나의 상황에 대해 다층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해서 인물이 풍부해지고 입체감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극 속에서 모든 것을 가진, 전지전능한 '신'에 가까운 '베르나르다 알바'만을 봐도 그렇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딸의 죽음 앞에서도 냉혹하다. 이는 그가 '남자다운' 캐릭터여서가 아니라, 그냥 그런 인간이기 때문이다. 많아야 두세 명이 전부인 여성 배역들 사이에서라면 '베르나르다 알바'는 좀 더 복잡하거나 고뇌와 번민에 사로잡혔을 수도 있지만, 10명의 여성 중 그는 그냥 그로서 존재한다.

구구절절한 사연 없이(물론 인물들의 백 스토리는 존재하겠지만) 그냥 나쁘거나, 그냥 어떻거나, 어떤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행위 없이 무작정 어떤 면을 드러내도 괜찮은 여성 인물이라니. (이렇게 생각하면 <베르나르다 알바>는 사실 초현실적이기도 하다) 최근 페미니즘과 관련돼 '코르셋'과 '탈 코르셋', '탈 코르셋을 강요하는 코르셋'이 언급되고 있지만, 이 극에서는 그런 논의가 무의미해진다. 그저 개성적인 인물들만이 남는다.

그리고 이는 역설적으로 완전한 남성 인물의 배제에 의해 가능해졌다고 생각한다. 만일 단 한 명이라도 실존하는 남성이 무대 위에서 자리했다면 이로 인해 아무런 편견 없이 개별적인 인간 열 명이 존재하는 <베르나르다 알바>의 세계를 붕괴시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베르나르다 알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가 10월 24일 개막해 11월 12일까지 성수동 우란문화재단 신사옥에서 공연된다. 배우 정영주, 황석정, 이영미, 정인지, 김국희, 오소연, 백은혜, 전성민, 김히어라, 김환희 등이 출연한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한 장면. ⓒ 우란문화재단

 
마지막으로는 극 자체가 가지는 특별한 아름다움이다. 오프브로드웨이 작품답게 뮤지컬의 전형성을 전혀 가지지 않은 이 작품은 '플라멩코'를 극의 전면에 내세우거나(이 와중에 다들 춤도 잘 춘다. 한국에서 여성 배우는 뭐든지 잘해낸다), 일반적으로는 극과 분리돼서 관객들에게 노래를 들려주기 위한 송 모멘트를 무시하거나 하며 극 외적인 요소를 떠나 극 자체만으로도 재미를 주는 요소를 더했다. 여기에 악기가 아니라 배우들의 손끝과 발끝에서 만들어지는 소리들은 아주 격렬하기도 하고 가냘프기도 하다. '베르나르다 알바'가 입에 담는 '창녀'라는 단어에 담긴 음색은 무척이나 복잡하게 들린다.

저음과 고음, 강함과 약함, 모든 것을 여성들이 직접 해낸다. 그동안 알고 지내던 배우들의 새로운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꼭 노래만이 아니다. '베르나르다 알바'와 '폰시아'가 칼날을 숨긴 채 대화를 나누는 상황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그야말로 벅차오르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해왔던, 내가 보고 싶던 이야기가 바로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르나르다 알바>는 어서 평범해져야 한다. 이런 작품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창녀와 성녀의 이분법, 그것을 조금 넘어서면 '엄마'거나, '남자다운' 캐릭터들이 캐스팅 보드의 끝자락에서 예쁘게 단장하고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인간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나면 남성들 속에서 외로이 연기하는 여성들도 더이상 '홍일점'이 아니게 되지 않을까.

끝으로 사실은 이 리뷰가 이 작품을 표현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점을 알리며 오는 12일에 마무리되는 <베르나르다 알바>의 빠른 재공연을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정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twoasone/)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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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문화, 연극/뮤지컬 전문 기자. 취재/사진/영상 전 부문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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