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피트> 포스터

<12피트> 포스터 ⓒ (주)라이크콘텐츠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창작하는 사람들끼리 유머로 주고받는 말 중 이런 말이 있다. '누구나 비장의 무기는 있는 법이지.' 누구나 다른 사람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소재나 이야기를 하나씩은 머리에 품고 있다. 이 무기를 밖으로 꺼내지 않는 이유는 아직 무기를 다룰 만한 '실력'이 되지 않아서다. < 12피트>의 아이디어는 '무기'라고 해도 될 만큼 독특하다. 관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베리드>나 샤크 케이지의 고장으로 식인 상어 무리에 둘러싸인 두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 47미터>와 비견될 만하다. 다만 이 비견은 소재의 아이디어에 한정된다.
 
< 12피트>의 아이디어는 기발하다. 수영장 덮개가 닫히고 그 아래에 사람이 갇히게 된다. 다만 이런 기발함을 관객들이 느끼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점에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첫 번째는 자매가 수영장에 갇히게 되는 과정이다. 첫 단추를 맬 때 구멍을 잘못 넣으면 차림새가 이상해지듯 스릴러 영화의 경우 시작에 개연성이 부족하면 집중하기 힘들어진다. 관객의 머릿속에 의문이 잔상처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영장 관리인 맥그래디(토빈 벨 분)에게 캐릭터성을 부여한다.
 
그는 수영장을 운영하는 걸 귀찮게 여기고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말대답하는 걸 싫어한다. 빨리 수영장 문을 닫고 휴가를 보내고 싶은 그는 자매의 모습이 수영장에서 보이지 않자 바로 덮개를 닫아버린다. 동생 브리(노라 제인 눈 분)는 약혼자를 위한 반지를 잃어버리는데 이 반지는 수영장 바닥에 있다. 그녀는 반지를 찾기 위해 수영장 바닥에 뛰어들고 언니 조나(알렉산드라 파크 분)는 동생을 돕고자 함께 뛰어들다 갇히게 된다.
  
 < 12피트> 스틸 컷

< 12피트> 스틸 컷 ⓒ (주)라이크콘텐츠

 
이런 도입부의 설정은 흥미로운 지점까지 관객을 이끄는 데 성공한다. 개연성이 부족해 보이긴 하지만 충분한 스릴감을 줄 수 있다는 가정 하에 넘어갈 수 있는 설정이다. 문제는 두 번째 준비인 영화를 스릴감 있게 이끌어나갈 구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 12피트>는 어떻게든 자매를 덮개 아래에 가둔 뒤 관객들이 긴장감을 느낄만한 요소들을 준비한다. 그 요소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브리가 당뇨를 앓고 있다는 점, 두 번째는 전과자인 수영장 직원 클라라(다이앤 파 분)의 존재다.
 
브리의 당뇨는 급격히 체온이 떨어지며 '그녀가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을 유발한다. 클라라는 유일하게 수영장 안에서 두 자매가 도움을 청할 수 있으며 동시에 더 빨리 고통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존재다. 문제는 이 두 가지를 영화가 전혀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클라라는 캐릭터는 긴장감을 유발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자매에게 돈을 요구해 받아내지만 액수가 적다며 꼬장을 부린다. 이 꼬장이 짜증을 유발하기 힘든 이유는 바라는 게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 12피트> 스틸 컷

< 12피트> 스틸 컷 ⓒ (주)라이크콘텐츠

 
클라라는 애매모호하다. 자본주의가 만든 괴물처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더 받아내려는 인물도 아니고 싸이코패스처럼 자신만을 위해 잔혹한 게임을 펼치는 인물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작품 내의 사건에 대해 취하는 태도가 애매하다. 돈을 뜯어내려고 했는데 액수가 생각보다 적다, 자매를 풀어주자니 자신이 신고당할 게 두렵다. 이도 저도 밀고 나가지 못하는 애매한 '악인'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고 헤맨다. 긴장감을 주어야 될 악당이 허우적거리니 영화도 허우적거린다.
 
당뇨 역시 마찬가지다. 이 소재를 유용하게 이용하려면 자매와 클라라 사이의 밀고 당기는 게임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힘들어 하는 브리의 모습만을 부각하니 그녀의 지친 얼굴처럼 관객의 피로도 역시 올라간다. 주동인물과 반동인물 사이의 밀고 당기는 맛이 부족하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브리와 조나의 과거가 얽힌 갈등은 극의 진행과 연관이 부족하다 보니 클라라가 등장하지 않는 공간을 채워주기엔 부족하다.
 
또 클라라와 갈등을 겪는 조나의 캐릭터가 클라라와 큰 차이가 없다 보니 선과 악의 갈등, 또는 악과 더 큰 악의 갈등 등 차이와 간격을 통한 갈등을 유발해내지 못한다. 조나가 가하는 반격에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점도 이에 있다. 시작부터 불량했던 두 자매의 고백은 흔히 범죄소설이 보여주는 인물의 예상치 못한 반전이나 무서운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그럴 것 같은 인물이 예상된 행동을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스릴감을 유발해낼 장치와 인물 간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합을 유도해냈다면 '수영장에 갇힌 자매'라는 설정이 큰 힘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도입부와 결말 사이를 제대로 채우지 못했고, 소재를 흥미롭게 이끌어 나가지 못한 연출력이 아쉽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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