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은 촛불혁명에 의해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집권 2년차다.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달았던, 불안하기 그지없던 한반도 정세는 올해 들어 말 그대로 극적인 전환을 맞이했다. 판문점에서 평양으로 이어진 남북정상의 연쇄회동은 전쟁위협을 종식시키고 평화체제를 가능케 하리라는 강한 기대를 우리 민족에게 품게 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한국영화평론가협회(이하 '영평')가 선정한 '2018 한국영화 11선'(동점을 받은 작품이 있어 '10선'에서 '11선'으로 늘어났다)에는 우연찮게도 혹은 불가피하게도 남북관계를 직접적인 소재로 삼은 작품 두 편(<공작>과 <강철비>)이 포함됐다. 이 두 편을 비롯해 <1987> <허스토리> <안시성>까지 크게 보아 우리 역사를 소재로 삼은 작품 다섯 편을 영평 평론가들은 '2018 한국영화 11'에 포진케 했다.

'영평 11선'에 따르면 한반도 역사의 분수령이라 할 올해에 한국 대표 영화 또한 역사에 주목한 셈이다. 그 '역사'는 촛불혁명 이후에 주목된 역사이기에 <국제시장> 등에서 드러난 역사와는 판이하게 달랐음은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가장 핵심적인 '달라짐'은 역사를 보는 관점이겠다.

<1987>이 1987년 민주화 운동 30주년을 기념해 만든 작품이라면 <안시성>은 우리 고대사의 웅혼한 한 장면인 안시성 전투를 다룬 사극이다. 두 작품 모두 대작으로 제작됐지만 현대사와 고대사라는 시대 차이 외에도 영화적으로 적잖은 차이를 노정했다.

<허스토리> 또한 현대사의 상흔을 추적한 역사물로 위안부 문제를 소재로 한 기존 영화와 차별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았다. 남북문제를 소재로 한 <공작>과 <강철비>는 남북문제에 대해 전혀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의도가 개입했든 하지 않았듯 대체로 현재의 남북해빙 분위기와 조응한다.

'역사' 외에도 영평의 '2018 한국영화 11선'에서 목격되는 키워드는 '여성', '청춘', '가족'이다. '여성'이란 키워드로 묶을 수 있는 영화는 <리틀 포레스트> <허스토리> <소공녀> <미쓰백>이다. 또한 <리틀 포레스트> <소공녀> <미쓰백> <버닝>은 '청춘', <리틀 포레스트> <살아남은 아이> <미쓰백>은 '가족'이란 키워드에 각각 포괄될 수 있다.

'여성'과 '청춘'이란 키워드는 현재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핵심 키워드다. 영화들이 키워드와 관련된 사회현상을 직접적으로 모사하지는 않았지만 크게 보아 분명한 경향성을 가진다는 사실은 유추된다. '2018 한국영화 11선'에서 드러난 키워드 '가족'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따뜻함'을 앞세운 전통적인 가족이 아니라 다소 독특한 방식으로 가족의 의미를 천착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고대 역사와 '북한 1호'
 
 영화 <강철비>에서 두 '철우'가 한편이 되어가는 곳이 국숫집입니다

영화 <강철비> 스틸컷ⓒ NEW


<강철비>(감독 양우석)는 '북한 1호'가 불가피한 사정으로 남한에 내려오게 되면서 남과 북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 영화적 상상력만으로는 남북이 대치한 현실을 뛰어넘어 모종의 영화적 성취에 도달한다. <강철비>에서 두 명의 철우가 등장해 현실과 이상의 결합을 통해 남북한의 화해와 협력이라는 소망을 담아냈다.

웹툰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양우석 감독은 자신의 웹툰 <스틸레인>을 근간으로 해 영화 <강철비>를 연출했다. 그러다 보니 복잡한 현실을 은폐하며 환상충족적인 통속의 서사로 흘렀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반면 흥미로운 설정을 통해 흡인력 강한 스토리라인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평도 존재한다. 어느 쪽에 더 가까운 영화였는지는 결국 관객의 취향일 수밖에 없다. 실제 상황을 방불케 하는 폭격, 강도 높은 액션, 박진감 넘치는 자동차 추격 장면 등에서 첩보액션영화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영화 <안시성> 스틸 컷

영화 <안시성> 스틸 컷ⓒ (주)NEW


<안시성>(감독 김광식)은 진중함과 무게감보다는 역동성과 활력에 초점을 맞춘 모던한 느낌의 사극, 추석에 개봉한 한국영화 중 가장 규모가 큰 사극 액션 블록버스터로 알려졌다. <내 깡패같은 애인>(2010), <찌라시: 위험한 소문>(2014)을 연출한 김광식 감독의 첫 액션 블록버스터다. 제작비 220억 원.

한국 사극영화에서 많이 다뤄지지 않은 고구려가 무대. 전체 러닝타임의 절반 이상을 전투 장면에 할애했다. 트렌디하고 활력 넘치는 젊은 사극이란 콘셉트 아래 사극 액션을 현대적으로 영상처리했다.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에 많이 쓰이는 장비인 로봇암, 스포츠 중계에 많이 쓰이는 스카이워커 등의 최첨단 장비를 활용했고, 충차(성벽을 들이받는 데 사용하던 수레)와 운제(성벽을 타기 위한 사다리), 공성탑과 투석기 등 다양한 공성 무기를 등장시켜 극중에 볼거리가 많다. 고구려 시대 전장을 휘어잡은 장군들이 실제로 30~40대임을 반영해 양만춘 역을 조인성이 맡는 등 20~30대 젊은 배우들이 주요 배역을 소화했다.

역사성과 상업성

<1987>(감독 장준환)은 2017년 12월 27일 개봉돼 2018년 벽두를 장식했다. 2017년이 1987년 민주화운동 30주년이 되는 해이기에 영화 개봉이 그해의 말미에 살짝 걸리도록 했다. 상업영화이지만 역사적 사건의 30주년에 개봉일자를 맞췄다는 점에서 역사성을 함께 지닌다.

영화에서 상업성과 역사성의 동행 자체는 큰 얘깃거리가 아니다. 상업성이 역사성을 훼손하거나, 역사성이 상업성을 제약할 가능성이 상존하지만 감독이 균형감각 혹은 선호를 통해 적정한 또는 감내할 만한 포트폴리오를 찾아낸다면 대체로 용인된다.

<1987>은 관객의 상당수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당대의 역사를 영화화했기에 극영화이면서 동시에 다큐멘터리에 근접한 성격을 띤다. 사실(史實)적 장치는 영화 전편에 걸쳐 곳곳에서 확인된다. 현존한 이한열에 비해 영화 <1987>의 이한열이 조금 더 잘 생기고 더 세련된 느낌이며 어쩔 수 없이 더 나이가 들어 보이긴 하지만, 극중에서 강동원은 이한열이 1987년 6월 9일 최루탄에 맞았을 때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자세로 쓰러진다.

영화에 등장하는 이한열(강동원 분)과 연희의 풋풋한 사랑은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사실보다는 픽션에 가깝다. 실제로 이한열에게 그런 연애사가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있을 법한 이야기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서 영화 속에 배치하는가는 감독의 권한이자 역량이다. 때로 픽션이 더 현실적이며 현실은 비현실적이 될 때가 많다. 그렇다면 탁월한 감독은 비현실적인 현실보다 현실적인 픽션을 택할 수 있다.
 
 영화 < 1987 > 관련 사진.

영화 < 1987 > 관련 사진.ⓒ CJ엔터테인먼트

 
현실 역사에서 '1987'을 요약하면 박종철로 시작해 이한열로 끝난다. 현실에서 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그렇다. 두 인물의 긴밀한 역사적 관련은 우연에 불과하고 사실은 역사성에 기댄 필연성의 설정이다. 아마도 박종철과 이한열은 실제로 서로 모르는 사이였을 것이며, 이러한 역사성의 종합에 의거하지 않는 한 두 사건은 역사에서 별개의 사건이었을 것이다.

영화 <1987>에서, 박종철이 숨진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은 연희를 통해 이한열로 연결된다. 누군가는 이러한 연결이 작의적이라며 불편해 할 수 있지만, 영화 <1987>이 극영화라고 한다면 그러한 작의는 감독이 결행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속한다고 보인다. 모든 관객이 날것의 역사를 메마른 상태로 스크린에서 보기를 원했다고 가정할 이유는 없다.

86세대와 '1987'을 경험하지 못한 관객들을 울린 이 영화는 영화 자체로는 큰 흠결 없이 상당한 완성도를 구현했지만 동시에 근본적이고 영화 외적인 불편함을 노정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촛불혁명의 승리에 들떠있던 시점에 제작된 영화라서 그랬는지, 영웅 서사와 거대 담론 속으로 영화가 매몰됐다는 느낌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다.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복잡한 역사적 현실을 이분법으로 환원함에 따라 역설적으로 역사성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영화가 '1987'의 성취에만 경도돼 1987년 이후 '1987 체제'가 산출한 사회불평등과 양극화, 다수 국민의 삶의 질의 상대적 하락 등 거대한 좌절을 외면하고 말았다. 한 마디로 그날이 오지 않았지만, 그날의 도래를 선언하고 영화는 끝났다.
 
 영화 <공작>의 한 장면.

영화 <공작>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공작>(감독 윤종빈)은 과거 선거 때마다 등장해 집권당의 선거에 유리하게 작용한 한 북풍의 실체를 관객이 수긍할 수 있을 정도의 논리로 그려냈다는 데 의의를 가진다. 누구나 심증을 갖고 있었지만 확인하지 못한, 술자리에서 빈번하게 등장한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잘 풀어냈다. 특히 흑금성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만나는 장면이 재미있게 그려졌다.

남한 스파이 흑금성과 북한 대외경제위 리명운 처장 사이에서 벌어진 공격과 방어가 영화를 끌어가는 중심축이다. 신뢰와 의심이 교차하는 가운데 우정을 쌓아간 두 사람은 자기 진영 사람들보다 서로를 더 존중하는 '이적' 행위에까지 도달한다. 이러한 전도를 통해서 남북의 거리는 줄어들고, 남남갈등은 더 첨예해진다. 진짜 적이 누구인지 혼동되면서 냉전 이데올로기 또한 설 자리를 잃는다.

현란한 액션, 숨 가쁜 추격전, 첨단 장비, 화려한 신무기의 향연 등을 앞세운 전통적 첩보 영화의 문법에서 벗어난 영화다. 그럼에도 스타일리시하고 긴장감 넘치는 첩보영화라는 평을 받았다.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만들어진 한국형 첩보영화인 <공작>에서는 말이 총보다 더 강력하게 타격을 가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도 관객을 소구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남북한 정치 시스템의 문제점이 잘 드러나는데, 제작진과 관객이 사는 남한의 문제점이 더 두드러지게 표현된다. 아마도 북한 체제에 대한 남한 제작진의 이해가 부족해서이겠지만, 절대 부패 수준을 논외로 하면 정치 시스템을 작동케 하는 거짓과 위선의 정도는 남한이 더 높다고 볼 수도 있기에 이러한 표현이 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본질적으로 남한 관객을 겨냥한 남한 영화이지 않은가. 정체성이 흔들리는 인물의 심리를 과감한 클로즈업을 통해 포착한 점을 눈여겨 볼만하다.

여성의 현실과 역사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메가박스 플러스엠


<리틀 포레스트>(감독 임순례)는 일본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극화한 작품이다. 자급자족하는 농촌 생활 속에서 살아가는 모녀 이야기를 다룬다. 계절과 자연을 닮은 요리들은 인스턴트로 점철된 현대인의 식단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인간관계를 이어가는 매개체로 음식을 활용했다.

소외된 인물을 향하거나(<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 비판의 날을 세우던(<제보자> 등) 임순례 감독의 시선이 <리틀 포레스트>에 이르러 여유롭고 유연해졌다는 평을 받았다. 이 영화는 일본 원작보다 친구들과 갈등과 소통을 좀 더 자세하게 보여주면서 시험, 연애, 취업으로 지쳐가는 젊은이의 고민을 담아낸다.

영화는 사람 그 자체에 주목한다. 확고부동한 휴머니즘은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유효할 것이다. 전형적이지 않게 모성을 그렸다. 2편으로 나눠진 원작과 달리 사계절을 모두 한꺼번에 담아내어 시간의 흐름이 분명해지고, 속도감이 생겼다. 아름다운 공간에서 관계·마음이 편안하게 그려진다. 영상이 좋다는 평을 많이 받았다.
 
 영화 <허스토리> 스틸컷

영화 <허스토리> 스틸컷ⓒ (주)NEW 배급


<허스토리>(감독 민규동)는 위안부 문제를 다뤘다. 고통을 상업화하고 포르노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하고 호평을 받았다. 자극적인 과거 재현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확실히 기존 위안부 소재 영화들과 다른 각도를 취했다. 즉 고통의 재현보다는 현재를 조명해, 너무 많이 소비된 게 아니라 제대로 이야기된 적이 없는 사건을 제대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묻어둘 게 아니라 우리에겐 여전히 제대로 된 이야기가 필요하다. 비극을 전시하는 대신 그것을 딛고 일어서 비극 너머를 향하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이라는 시간, 23번의 재판, 10명의 원고, 13명의 변호인. 관부 재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재판 사상 처음으로 보상 판결을 받아냈다는 점에서 당시 일본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민규동 감독은 데뷔작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부터 <내 아내의 모든 것>(2012)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여성의 이야기를 다뤘다. 민 감독은 "남성들의 사관인 히스토리(history)가 아니라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써내려간 역사 이야기 '허스토리(herstory)'를 통해, 집단의 고통으로 환원될 수 없는 개별 여성들의 생생한 아픔을 다루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 <소공녀> 한 장면

영화 <소공녀>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소공녀>(감독 전고운)는 비싼 등록금을 대느라 삶이 망가지거나 열정을 잃고 현실에 안주한 우리 시대 청춘의 서글픈 삶을 그렸다. 그렇지만 유머를 잃지 않고 따듯한 시선을 유지하려고 한 애씀이 전편에서 느껴진다.

분명한 가치관으로 무장한 자발적 홈리스 젊은이의 직업은 가사도우미.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한 모금의 담배를 즐기기 위해 집을 포기한, 말하자면 이른 바 n포세대의 일원이다. '소확행(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 등 2030 세대의 가치관을 영화 속에서 참신하고 신선한 소재로 녹여냈다.

힘든 현실을 무겁지 않게 그려낸 독립영화다. 참신하고 신선한 소재, 청춘의 공감을 살 수 있는 스토리,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내세우며 한국 독립영화계에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소리를 듣는 목하 한창 성장 중인 제작사 광화문시네마의 4번 타자다.
 
영화 <미쓰백> 스틸컷 영화 <미쓰백> 스틸컷

영화 <미쓰백> 스틸컷ⓒ 리틀빅픽쳐스


<미쓰백>(감독 이지원)에는 성폭행을 방어하다가 전과자가 된 여성과 부모로부터 육체적 아동학대를 당하는 아이가 나온다. 아동학대 실제 사건을 소재로 만든 영화다. 폭력의 경험을 안고 살아가는 여자가 자신을 닮은 소녀를 만나 폭력의 세계로부터 구원하는 이야기로, 여성 감독이 여성 캐릭터 중심으로 만든 영화다.

무책임한 부모와 폭력의 세계를 경험한 다른 나이의 두 여성이 서로를 지키고자 결심하며 결합한다.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들춰내는데, 가족의 해체와 새 가족의 모색이라고 할 만하다.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낸, 최대한 밀착한 클로즈업 촬영이 특징적이다. 힘들고 어두운 과거를 그려내는 전반부에서는 어두운 조명과 인물에 밀착한 구도를 보여주고 험난한 싸움을 이겨내는 후반부에서는 인물과 거리를 둔 구도로 촬영했다. 메이크업과 의상, 음악, 악기 등에서도 캐릭터의 감정과 스토리의 흐름을 담아내기 위해 섬세하게 신경 썼다.
 
 <버닝> 스틸 컷.

<버닝> 스틸 컷.ⓒ CGV아트하우스


<버닝>(감독 이창동)은 청춘영화이자 성장영화다. 우리 시대의 상처와 위로를 담았다. 젊은 세대의 자화상, 그들의 분노와 열망을 각기 다른 내면을 가진 세 명의 인물을 통해 그렸다. 아프리카 여행을 떠나는 해미가 소꿉친구 종수에게 자신의 고양이를 부탁하고, 여행을 다녀 온 후 벤이라는 정체불명의 남자를 종수에게 소개한다.

느릿느릿 부유하고 미묘하게 상충하는 관계 속에서 비밀이 드러난다. 안정적이고 힘 있는 연기가 섬세한 촬영과 생동감 넘치는 카메라 워킹과 결합돼 볼만한 화면을 만들어낸다. 감성이 지성과 혼융된 감상이 필요한 영화다.

<살아남은 아이>는 신동석 감독의 첫 장편영화. 아이를 잃은 부모와 그 아이의 죽음에 연루된 소년의 이야기다. 기현과 한가족처럼 지내며 상실감을 극복하는 부부를 중심으로 전반부가 전개된다면 후반부는 아들 은찬의 죽음을 둘러싼 균열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아들의 죽음이란 사건이 마음의 한가운데 자리한 만큼 감정의 기복이 크고 반전이 거듭되는 스토리라인이 될 수밖에 없지만 잘 정돈하며 끌어간 연출력이 돋보였다는 평. 화면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동시에 보아야 한다. 삶의 고통을, 살아남은 세 사람이 어떻게 이겨내고 용서하게 되는지를 보여주었다.

<암수살인>(감독 김태균)은 '2018 한국영화 11선'을 관통하는 키워드에는 비켜서 있는 영화로 범죄 스릴러물이다. 또한 종래와는 다른 접근법을 취했다는 측면에서 관객들에게 익숙한 기존 범죄 스릴러물과도 비켜서있다. 두 번 비켜선 이 작품은 범인을 밝혀놓은 상태에서 영화를 시작한다. 육탄전과 총격 장면이 없는 근래 보기 드문 성실하고 독특한 형사영화라는 평을 받았다. 자신의 범죄를 '셀프' 제보하겠다는 전화를 받고 수사에 돌입해 미궁을 풀어가는 이야기다. 범죄 수사 장르의 일반적인 패턴에서 명백히 벗어나 있지만 약간만 집중하면 새로운 차원의 재미와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안치용 기자는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CSR연구소 소장이자 영화평론가입니다.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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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평론하고, 래디컬 정치를 사유한다. 활자에도 익숙해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쓴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청소년/대학생들과 자주 접촉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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