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영국의 전설적인 록그룹 퀸(Queen)을 알게 된 건 순전히 에이즈(AIDS) 때문이었다. 군 입대를 앞둔 대학 시절 어느 날, 퀸의 리더였던 프레디 머큐리가 '몹쓸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의 부음 기사에는 에이즈라는 병명이 프레디 머큐리라는 이름보다 더 크게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이야 에이즈에 대한 편견이 거의 사라졌지만, 그때만 해도 불치병이자 '죽어 마땅한 병'처럼 사람들에게 회자됐다. 흑인과 동성애자에게 내리는 천형(天刑)으로 여겨졌고, 심지어는 에이즈가 수간(獸姦)의 결과라는 황당한 이야기까지 떠돌곤 했다. 곧이곧대로 믿을 순 없었지만, 아무튼 에이즈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프레디 머큐리의 죽음이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면, 에이즈는 프레디 머큐리라는 이름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셈이다. 그가 왜 죽었는지를 알게 된 이상,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불꽃 같은 그의 삶을 더듬어간다는 건, 곧 퀸의 음악 세계에 빠져든다는 걸 의미했다.

군사정권 말기였던 당시 대학 교정은 알록달록 단풍조차 을씨년스러울 만큼 온통 잿빛이었다. 과방이든 동아리방이든 귀에 들리는 건 비장하고 엄숙한 투쟁가 일색으로, 음악마저 흑백 톤이었다. 몇 해 뒤 혜성처럼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조차 음악계의 '반란'으로 치부했던 때였으니, 요즘 아이돌 그룹의 노래나 이디엠(EDM) 같은 음악을 듣는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물 건너 온' 퀸의 음악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니아층이 적지 않았을 테지만, 대학 교정에서 만나기는 힘들었다. 뉴스를 들었던 그 날, 곧장 음반가게에 달려가 퀸의 명곡들을 그러모은 카세트테이프를 구입했다. 그때 내겐 '워크맨(Walkman)'이 있었다. 지금이야 구하기 힘든 물건이 됐지만, 그즈음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인 '워크맨'은 청춘의 필수품이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퀸과 프레디 머큐리를 몰랐을 뿐, 그들의 노래는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TV 드라마나 광고를 통해 익히 들어온 것들이라 저절로 흥얼거려졌다. 창피한 고백이지만, 그들 중에는 그때까지 엘비스 프레슬리와 마이클 잭슨의 노래로 잘못 알고 있었던 곡도 있었다. 너무 많이 들어 테이프가 늘어난 나머지 같은 걸 다시 산 경우는 퀸이 처음이었다.

이후 퀸과 관련된 것은 죄다 나의 '버킷리스트'가 됐다. 흥겨운 기타 리듬으로 시작되는 '크레이지 리틀 싱 콜드 러브(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를 들은 뒤 당장 기타를 구입했다. 끝내 포기하고 말았지만, 프레디 머큐리가 손을 엇갈리며 치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의 전주에 반해 피아노 학원 앞을 서성이기도 했다. 같은 남자지만, 지금도 피아노 치는 남자가 가장 멋있어 보인다.

손때 묻은 워크맨을 처분하고 CD 플레이어를 새로 장만한 것도 퀸 덕분이다. 물론, 태어나 처음으로 구입한 CD가 퀸의 앨범이었음은 물론이다. 얼마 전 이사를 하면서 잃어버렸는데, 다시 인터넷을 통해 정품 CD를 새로 샀다. 누구는 값싼 MP3 파일을 두고 굳이 비싼 CD를 고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나무라지만, 그때마다 '전설에 대한 예의'라며 눙치곤 한다.

한편, 프레디 머큐리가 태어난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섬, 잔지바르는 가장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됐다. 또, 그들의 대표곡인 '보헤미안 랩소디'를 듣고는 지금의 체코 땅인 보헤미아와, 곡을 녹음한 곳으로 알려진 웨일즈의 농촌 지역도 꼭 한 번 여행하고 싶다. 어디에 묻혔는지 알 수 없다는 프레디 머큐리의 무덤에 꽃 한 송이 바치고 싶은 바람도 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그렇듯 퀸과 함께 대학을 보냈지만, 졸업 후 오랫동안 퀸을 잊고 지냈다. 이따금 라디오를 통해 목소리를 들었을 뿐, 정작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퀸의 앨범은 책상 서랍 속에 방치했다. 어쩌면 프레디 머큐리의 죽음 이후의 퀸은 진정한 퀸이 아니라는 편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퀸을 다시 만난 건 프레디 머큐리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도 더 지난 뒤였다. 초임 교사 시절 학교의 축제 무대에 올라 록밴드 동아리 아이들과 함께 공연할 기회가 있었다. 퀸의 명곡 '위 아 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s)'을 연주했는데,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도 누가 불렀는지는 몰라도 노래만큼은 익숙했던 거다.

공연이 끝난 뒤 동아리 아이들과 함께한 뒤풀이 자리에서 단연 화제는 퀸이었다. 퀸의 실질적인 리더가 프레디 머큐리가 아니라 기타리스트인 브라이언 메이라는 이야기, 대표곡인 '보헤미안 랩소디'보다 출세작인 '킬러 퀸(Killer Queen)'이 더 명곡이라는 등의 치기 어린 논쟁을 벌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퀸 덕에 아이들과 더 가까워졌음은 물론이다.

그때 퀸의 광팬을 자처한 한 아이가 갑자기 노트북을 열더니 친구들 앞에서 오래된 흑백 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수십억 명이 시청했다는 그 유명한 영상,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퀸의 20여 분짜리 '라이브 에이드(Live Aid)' 공연 실황이었다. 솔직히 그 영상을 본 건 나 역시 그때가 처음이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영상을 처음 본 아이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이 엄청나다며 놀라워한 건, 퀸의 음악이 아니라, 공연을 보기 위해 웸블리 스타디움에 모인 관객의 숫자였다. 객석은 물론, 운동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열광적인 모습이 섬뜩했다고 말했다. 더욱이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훨씬 전인 1985년에 벌어진 일이라는 걸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투였다.

그 시절에도 컴퓨터 그래픽(CG) 기술이 있었느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퀸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무대 위 프레디 머큐리의 동작 하나하나에 호응하는 수십 만 관객들의 일사불란한 모습이 흡사 사이비 종교집단의 행사처럼 느껴졌다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에겐 축구의 성지로만 알려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인산인해의 공연이 펼쳐졌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이라는 반응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10년 가까이 지난 올해, 마치 묻어둔 타임 캡슐 함께 열어보자고 약속이나 한 듯이 퀸을 만났다. 이번엔 공연과 영상이 아닌 영화를 통해서다. 지난달 말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아이들과 함께 관람했다. 며칠 전 가족과 함께 본 뒤 두 번째다. 좋은 영화는 몇 번을 봐도 물리지 않는 법이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대학 시절 뒷조사하듯 공부해 알고 있던 퀸과 프레디 머큐리의 일대기와는 사뭇 달랐지만, 조금도 흠결이 될 순 없었다. 가상의 인물이 거의 등장하지 않아, 영화적 상상력이 발휘된 장면조차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내용 전개가 자연스러웠다. 퀸의 팬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약혼녀 메리와의 관계와 에이즈 발병과 판정 시기 등이 영화에선 사실과 다르게 그려졌다.

프레디 머큐리의 가족이 중간중간 등장하는 등 신파적인 요소가 흐름을 방해하지만, 다음에 이어질 장면의 예고편이어서 그다지 거슬리진 않는다. 실상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의 노래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공연되었는가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를 본 관람객들이 공연장에서 두 시간짜리 콘서트를 본 것 같다고 이구동성 평하는 이유다.

극 영화적 요소가 강해선지 몰입도 또한 높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스크린 속 배우들의 지휘에 따라 관객들이 따라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들이 던지는 단순한 유머에도 웃음으로 화답하고, 음악이 나올 땐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이들도 있다. 그저 장면이 바뀌었을 뿐인데, 공연장인 양 박수를 보내는 '눈치 없는' 관객도 있었다.

그 중에도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가 연주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영화 속 브라이언 메이가 시키는 대로 관객들이 동시에 발을 굴렀다. 나도 모르게 발과 손이 따라 움직였는데, 화들짝 놀라 좌우를 힐끗 살펴보니 다들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푹신한 양탄자 바닥이었기에 망정이지 딱딱한 마룻바닥이었으면 요란할 뻔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영화관을 나오며 아이들에게 영화 속 '옥에 티'를 일일이 들려주었다. 부러 퀸과 프레디 머큐리에 대해 어쭙잖게 아는 지식을 동원해 사실과 다른 내용을 설명한 것이다. 아이들 앞에서 퀸의 골수팬임을 증명하려던 것이었을 뿐인데, 그들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는 듯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한 아이는 되레 이렇게 동문서답하며 관람 소감을 대신했다.

"선생님, 프레디 머큐리의 음악을 향한 열정이 느껴지지 않나요? 듣기 좋은 음악은 귀를 행복하게 할 뿐이지만, 열정이 느껴지는 음악은 가슴을 뜨겁게 해요. 프레디 머큐리는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에다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열정이 남달라 오래 기억되는 것 같아요."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영화 속 엔딩 곡은 '더 쇼 머스트 고 온(The Show Must Go On)'이었다. 프레디 머큐리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독한 보드카를 들이킨 뒤 절규하듯 불렀다는 곡이다. 아이들은 엔딩 곡이 울려퍼지는 내내 관객들이 울컥해 한 이유를 그제야 알겠다면서, 퀸과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거듭 이렇게 매조지었다.

"그들은 음악을 통해 열정이 없는 삶은 죄라고 외치는 것 같았어요. '스타가 아닌, 전설이 되겠다'는 프레디 머큐리의 열정적인 삶에 경의를 표하게 되는 감동적인 작품입니다."
보헤미안 랩소디 프레디 머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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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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