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불세출의 무쇠팔' 고 최동원 투수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최동원상은 작년까지 4년 동안 3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KIA 타이거즈 양현종 2회 수상). 그 해 최고의 투수를 뽑는다는 점에서 '한국의 사이 영 상'이라 할 수 있지만 아직 그 정도의 권위가 쌓인 상황은 아니다. 최동원상이 야구팬들에게 '한국의 사이 영 상'으로 인정 받지 못한 이유는 올해까지 5년에 불과한 짧은 역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작년까지 수상자가 국내 선수로 한정됐던 점이 가장 컸다.

실제로 KBO리그는 수년 전부터 외국인 선수의 비중이 매우 커져 외국인 선수가 매 시즌 투수 부문 주요 타이틀을 독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2014년 20투수 앤디 밴 헤켄이나 2016년 정규 시즌 MVP 더스틴 니퍼트 등 누가 봐도 그 해 리그를 지배했던 최고의 투수들이 한국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최동원상 후보 명단에서 제외됐다.
 
두산 린드블럼, 외국인 선수 최초로 최동원상 수상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야구회관에서 열린 '제5회 최동원상' 수상자 발표식에서 박재호 최동원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수상자로 두산의 조쉬 린드블럼을 호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전 야구감독 김용철, 김인식. 박 이사장, 전 야구감독 박영길, 강병철.

▲ 두산 린드블럼, 외국인 선수 최초로 최동원상 수상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야구회관에서 열린 '제5회 최동원상' 수상자 발표식에서 박재호 최동원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수상자로 두산의 조쉬 린드블럼을 호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전 야구감독 김용철, 김인식. 박 이사장, 전 야구감독 박영길, 강병철. ⓒ 연합뉴스


그러던 최동원상이 올해부터는 국내선수와 외국인 선수를 모두 포함해 선정하는 것으로 변경됐고 첫 수상자로 두산 베어스의 에이스 조쉬 린드블럼이 선정됐다. 역대 첫 외국인 투수 수상이자 역대 첫 오른손 투수의 수상이다. 정규 시즌 평균자책점 1위(2.88)와 다승 공동 2위(15승)를 기록한 린드블럼은 최동원상 수상자로 손색이 없는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린드블럼이 최동원상을 수상한 이유는 단지 뛰어난 성적 때문만은 아니다.

KBO리그 입성하자마자 리그 최다이닝, '린동원'이라 불린 사나이

2011년 LA다저스에서 빅리그에 데뷔한 린드블럼은 2014년까지 4개팀을 돌아다니며 빅리그에서 5승 8패 평균자책점 3.82를 기록했다. 특히 다저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오간 2012년에는 74경기에 등판해 71이닝 동안 3승 5패 1세이브 22홀드 3.55라는 준수한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흔한 불펜투수 중 한 명이지만 KBO리그에서는 선뜻 넘보기 힘든 상당히 높은 수준의 외국인 선수 후보였던 셈이다.

린드블럼은 2014년 12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방출됐고 롯데 자이언츠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린드블럼을 총액 85만 달러에 영입했다. 롯데는 2014년 외국인 투수 크리스 옥스프링과 쉐인 유먼이 22승을 합작했지만 두 선수 모두 30대 후반을 향해가고 있었기에 빅리그 4년 경력의 젊은 투수 린드블럼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리고 롯데의 선택이 정확했음이 밝혀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린드블럼은 2015년 32경기에 등판해 210이닝을 던지며 13승 11패 3.56을 기록했다. 평균자책점 5위, 다승 공동 7위에 이닝 전체 1위를 기록하며 롯데팬들로부터 '린동원'으로 불렸다. 롯데 소속 투수가 200이닝을 넘게 던진 것은 1996년의 주형광(216.2이닝)이후 19년 만이었다. 하지만 린드블럼은 2016년 리그에서 가장 많은 28개의 홈런을 맞으며 10승13패5.28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롯데가 린드블럼과의 재계약 여부를 놓고 고민하던 2016년 겨울, 린드블럼은 스스로 롯데에서의 퇴단을 선언했다. 셋째 딸 먼로의 선천성 심장병(형성저항성 우심증후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병을 앓았던 딸 먼로의 회복 속도는 기대보다 빨랐고 마침 롯데도 외국인 투수 닉 애디튼이 부진하며 린드블럼이 필요했다. 결국 린드블럼은 작년 7월 KBO리그에 복귀해 12경기에서 5승 3패 평균자책점 3.72를 기록하며 롯데를 가을야구로 이끌었다.
 
두산 선발 린드블럼의 역투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두산 선발 린드블럼이 역투하고 있다.

▲ 두산 선발 린드블럼의 역투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두산 선발 린드블럼이 역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실 린드블럼은 시즌 중에 롯데와 계약하면서 시즌이 끝나면 보유권을 풀어줄 것을 계약서에 포함시켰다(외국인 선수가 원소속구단과의 재계약 협상이 결렬되고 구단이 보유권을 행사하면 그 선수는 5년 동안 KBO리그 타 팀 이적이 불가능하다). 린드블럼은 롯데와 결별한 후 여러 구단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았고 결국 작년 12월 니퍼트와 결별한 두산과 총액 145만 달러에 계약했다.

리그 지배한 뛰어난 실력에 꾸준한 선행으로 최동원상 수상

뛰어난 구위를 가진 린드블럼이 롯데 시절 가장 큰 약점으로 꼽히던 부분은 바로 많은 피홈런이었다. 하지만 린드블럼의 새 소속팀 두산은 KBO리그에서 가장 넓은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사용한다. 두산에서 6년 동안 94승을 올리며 두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니퍼트의 그림자를 지워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지만 린드블럼에게는 가장 큰 부담이 한 가지 줄어든 셈이다.

두산의 개막전 선발로 나선 린드블럼은 올 시즌 '잠실구장 효과'를 톡톡히 입으며 KBO리그 입성 4년 만에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올스타 브레이크와 아시안게임 브레이크 직전, 그리고 정규 시즌 1위가 확정된 후 휴식을 위해 세 차례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기도 했지만 린드블럼은 26경기에서 168.2이닝을 던지며 15승 4패 2.88을 기록했다. 타고투저가 자리 잡은 KBO리그에서 올 시즌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는 린드블럼이 유일하다.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면서 약점이었던 피홈런도 부쩍 줄었다. 2015년과 2016년 각각 28개의 홈런을 맞았던 린드블럼은 올 시즌 피홈런 16개를 기록했다. 반면에 퀄리티스타트는 리그에서 가장 많은 21개를 기록했고 시즌 기록(2.88)과 정확히 일치하는 홈과 원정경기 평균자책점은 두산의 에이스다운 꾸준함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린드블럼은 외국인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먼 한국땅에서도 꾸준히 선행을 실천하고 있다. 린드블럼은 지난 7월 막내딸 먼로와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환우와 가족, 치료사 등 30여 명을 잠실 야구장으로 초청해 자신이 직접 만든 '희망 티셔츠'를 선물했다. 국내 선수도 생각하기 힘든 일을 한국 생활 4년 차의 외국인 선수가 선뜻 선행에 앞장 선 것이다. 
 
주먹 불끈  29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과 한화의 경기. 두산 투수 린드블럼이 8회초를 무실점으로 막아낸 뒤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2018.7.29

▲ 주먹 불끈 지난 7월 29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과 한화의 경기. 두산 투수 린드블럼이 8회초를 무실점으로 막아낸 뒤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 연합뉴스


린드블럼은 빅리그 루키 시절이던 2011년 자신의 이름을 딴 '린드블럼 파운데이션'이라는 자선단체를 만들어 각종 모금 및 기부, 봉사활동을 꾸준히 펼쳐 왔다. 롯데 시절에는 삼진 1개당 43달러(린드블럼의 롯데 시절 등번호)씩 적립해 기부하기도 했다. 뛰어난 실력은 물론이고 인성까지 겸비한 이 외국인 투수가 2018년 최동원상 수상자가 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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