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여 간 직간접적으로 '남배우A(조덕제) 사건'에 대응해 온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가 6일 오전 서울 홍대입구 모처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2년여 간 직간접적으로 '남배우A(조덕제) 사건'에 대응해 온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가 6일 오전 서울 홍대입구 모처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정교진

지난 9월 13일 대법원 판결로 영화계 최초로 촬영 중 성폭력 사건 유죄 사례가 된 '남배우A(조덕제) 사건'. 그 의미가 크지만 지난 2년여 간 직간접적으로 이 사건에 대응해 온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는 6일 오전 서울 홍대입구 모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남은 과제를 지적했다. 

전국영화산업노조, 찍는페미,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여성민우회 등이 참석한 이 날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은 공통으로 조씨의 2차 가해 행위, 그리고 이를 검증하지 않고 꾸준히 기사화하고 있는 일부 언론의 보도 태도를 비판했다. 
       
제도적 근거 마련 시급해

"유죄가 확정됐음에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계속되고 있다"고 운을 뗀 안지희 변호사는 "피해자가 신분 등을 처음에 밝히지 않았음에도 보도되는 과정에서 특히 <디스패치> 등이 메이킹 필름을 공개하면서 해당 배우를 누구나 유추할 수 있게 했다"며 "가해자가 지인들과 만든 카페를 통해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위 역시 그대로 언론에 보도됐다"고 지적했다.

안 변호사는 "연기 중 강제추행에 대해 (판결의) 디딤돌로 삼을 수 있는 사례가 됐지만 아쉬운 부분 역시 있다"며 "상해 부분이 인정되지 않았고, (성폭행이 아닌 일반적인 강제추행에서도) 피해자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을 인정받아야 함에도 (그 부분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안 변호사는 현행법상 (언론 보도 등에서) 피해자를 특정하게 하는 정보를 주는 것이나 누리꾼들이 (사실 입증이 안된 정보를 퍼나르는 등의) 댓글을 처벌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음을 언급하며, "혐오 감정에서 비롯된 그릇된 행동을 적절히 규제하는 법이 논의 중인데, 여기에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것도 포함해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라 말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남순아 감독은 "독립영화, 상업영화, 장편과 단편 구분 없이 감독과 제작자들은 진정성을 담보로 배우에게 사전에 협의하지 않은 상황을 겪게 하고 있다"며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묵인했기에 발생한 일들이다. 예술이나 진정성이라는 변명으로 폭력이 허용되지 않아야 하며 영화계 전체가 책임감을 느껴야 할 일"이라 목소리를 높였다. 남 감독은 이어 "공대위의 공식 활동은 오늘 기자회견을 끝으로 마무리되지만, 한독협은 인권 소수자나 영화계 성폭력 사건에 피해자 곁에서 계속 목소리를 낼 것"이라 덧붙였다.

한국여성민우회 윤정주 소장은 "공대위 활동을 하면서 막상 가장 대응하기 힘들었던 건 가해자가 아닌 언론이었다"며 "D매체를 중심으로 가해자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몇몇 매체는 이미 형이 확정된 남배우A의 말을 지속적으로 실어주어 논란을 만들어 내고 있다. 피해자는 가해자와 언론 등과 이중 삼중으로 싸워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윤 소장은 "그간 언론은 피해자에게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묻고, 진실을 검증하려 했는데 이젠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가해하지 않은 걸 입증하도록 해야 한다"며 "가해자의 말을 검증하고, 성추문이 아니라 범죄행위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달라"고 호소했다.
 
 지난 2년여 간 직간접적으로 '남배우A(조덕제) 사건'에 대응해 온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가 6일 오전 서울 홍대입구 모처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기자회견에 참석한 배우 이재용의 모습.

지난 2년여 간 직간접적으로 '남배우A(조덕제) 사건'에 대응해 온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가 6일 오전 서울 홍대입구 모처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기자회견에 참석한 배우 이재용의 모습. ⓒ 정교진

   
배우 이재용 "엄청난 공분 느껴"

특히 이날 기자회견엔 참석자로 공지되지 않았던 배우 이재용이 직접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피해자와 같은 업계에 있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사건이 전개되는 상황이 지나치게 비정상적이라 이 자리에 나오게 됐다"며 그는 "우리 업계에도 상식과 룰이 있다. 액션신이나 베드신에서는 절대적으로 배우 보호가 1순위"라고 운을 뗐다.
 

"제가 36년째 연기하는데 이런 식으로 여배우를 다루는 현장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해당 영화를 시사회 때 직접 봤다. 그 장면이 영화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였는지 아직도 의문이 남는다. 사건 이후 양측 입장을 봤는데 배우의 과도한 몰입이었다고 치더라도 (진정한) 사과로 마무리 할 수 있는 게 법정으로 번졌다. 한쪽(조덕제)에선 언론을 이용해 다른 쪽을 극심하게 몰아갔다. 언론 또한 진실보다는 논란을 재생산하더라.

또 여기에 사이비 언론, 제가 아는 지인이자 선배(반민정 관련 가짜뉴스를 생산한 개그맨 출신 이재포를 지칭)가 개입돼 있다. 여론전을 벌인 것이다. 심지어 공판 이후에 이번 이야기를 영화 소재로 만들자면서 촬영까지 했다는 소릴 듣고 엄청난 공분을 느꼈다. (중략) 영화가 예술이라는 점에서 창작의 자유가 어디까지 확장될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인권과 존엄은 지켜지는 상황에서 자유가 거론되는 게 맞다고 본다." (이재용)

 
 지난 2년여 간 직간접적으로 '남배우A(조덕제) 사건'에 대응해 온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가 6일 오전 서울 홍대입구 모처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기자회견에 참석한 반민정씨의 모습.

지난 2년여 간 직간접적으로 '남배우A(조덕제) 사건'에 대응해 온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가 6일 오전 서울 홍대입구 모처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기자회견에 참석한 반민정씨의 모습. ⓒ 정교진

   
마지막 발언자로 사건 피해자인 반민정씨가 나섰다. 반씨는 약 15분간 준비한 낭독문을 읽으며 심경을 토로했다. "피해자이기보단 영화계의 일원으로 발언하고자 한다. 개인으로 영화계 변화를 요구하는 마지막 자리가 될 것 같다"며 반씨는 "전 배우다. 그런데 이 말도 과거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사법시스템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결과를 이끌어 냈음에도 자리에서 밀려나고 있다"라며 말을 이었다. 
 

▲ '남배우A 성폭력사건' 기자간담회 중 배우 반민정 발언문 전체보기 이 영상은 '남배우A 성폭력사건' 기자간담회 중 배우 반민정 발언문 전체보기를 담고 있다. (취재 : 이선필 / 영상 : 정교진) ⓒ 정교진

 
"재판 중에는 성폭력과 직접 관련되는 내용 말고는 언급하지 않으려 했지만 지속적으로 그들은 사실을 은폐, 왜곡했고, 절 압박했다. 재판 진행 중에도 놀라운 사실 알게 됐다. 절 섭외한 총괄 PD에게 노출 장면이 없음을 확인받았고, 계약 후 노출 장면이 없다는 문자까지 받기도 했다. 그런데 법정에 제출된 영화제작사 대표 녹취록엔 '현장에서 벗기면 된다'는 식의 대화가 오갔다는 내용이 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심지어 그 자리엔 제 예전 소속사 대표도 있었다고 한다. 

누구는 왜 감독을 고소 안 하냐고 하는데. 저 같은 피해를 (직접) 당했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당한 폭력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 심지어 영화계에서도 그런 말이 나온다. 감독 책임 운운하며 가해자를 옹호하기 전에 영화계 내부에서 반성하고 변해야 한다. 제가 무명 배우지만 그래도 한 영화의 주연을 맡았고, 소속사까지 있었는데도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저와 비슷한) 여러 사례들을 접하게 됐다. 여전히 피해자들은 자신을 드러내길 두려워한다.  

전 일말의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젊은 영화인들이 연대했고, 노력해주셨다. 그만큼 더 많은 권력을 가진 분들이 침묵하거나 방관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신체 노출, 폭력 등 민감한 장면이 있는 경우엔 사전에 배우에게 자세히 설명한 후 계약서에 반영해야 한다. 실질적인 힘을 가지고 책임질 위치에 있는 분들이 알아주시길 바란다. 전 많이 지쳤고 버겁다." (반민정씨)

 

현장에선 사건의 피해자임에도 사실상 작품활동을 못하며 현장에서 밀려나는 현실을 짚는 질문 등이 나왔다. 배우 이재용은 "엔터 산업은 인적 자원이 심하게 작용한다. 제작자나 감독 등은 자신의 권력을 넘어서려는 움직임에 보이지 않게 힘을 작용시킨다. 다분히 감정적 요소가 담겨 있다"며 "정부에서 배우에게 실업 수당을 주는 것도 아닌 만큼 관계 부처 혹은 공청회 등을 통해 피해자 보호 장치를 공론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같은 질문에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안병호 위원장은 "최근까지 영화계 미투 운동으로 일부 영화는 재촬영 하기도 했는데 (담당 제작자나 감독은)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기보다는 자신의 영화가 피해입는 것을 더 걱정하지 사태 재발 방지에 대한 게 아니었다"며 "노조에선 그간 노동자로서 근로 시간 문제를 꾸준히 제기했는데 배우가 어떤 부분을 연기할 것인지에 대해선 간과한 게 사실이다. 그 부분은 사전에 계약서에 분명히 드러나고 정비돼야 할 사안"이라 말했다. 

한편 현장에서 한 방송사 PD는 "공대위 개입으로 법원 판결이 뒤집혔다고 가해자가 주장했는데 공대위는 어떤 단체인가"라고 묻기도 했다. 이에 안지희 변호사는 "엔터 업계에서 그간 무수한 성폭력 사안이 있었다. 최근 큰 사건에 연루된 한 기획사 대표는 무죄를 선고받았고, 여러 사건은 기소조차 되지도 않았다"며 "가해자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 일축했다. 윤정주 소장 역시 "(질문자처럼) 여러 언론이 가해자의 발언을 계속 그렇게 받아쓰고만 있는데 가해자 말처럼 공대위가 큰 권력이 있다면 이런 기자회견을 왜 열겠나. 그냥 (자료를) 뿌리고 말지"라고 반문했다.
조덕제 남배우A 성폭력 영화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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