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선녀전>의 선녀, 선옥남(고두심 분).

<계룡선녀전>의 선녀, 선옥남(고두심 분).ⓒ tvN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에서, 선녀는 그리 어럽지 않게 날개옷을 회수한다. 자녀가 여럿 생기자, 나무꾼은 설마 하고 날개옷을 내준다.
 
5일 밤 첫 방송 된 tvN 드라마 <계룡선녀전>에서는 선녀가 좀 고약한 상황에 직면한다. 이 드라마 속의 나무꾼은 날개옷을 돌려주지 않은 상태로 실종되고 말았다. 그래서 선녀 선옥남(고두심·문채원 분)이 자녀를 양육하면서 699년째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기다릴 때 기다리더라도, 인간의 모습을 갖게 된 이상 먹고 살아갈 방편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계룡산에서 선녀다방이라는 고전적 간판을 내걸고 장사를 했다. 조선시대에는 선녀주막을 열었는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시대에는 선녀다방을 운영했다.
 
그러면서 선옥남은 이따금 원래 모습으로 변신하곤 한다. 지상에 처음 하강했을 때의 선녀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 모습은 배우 문채원이 연기한다. 세월의 흔적을 반영하는 선녀의 모습은 배우 고두심이 연기한다. .
 
선옥남은 다방도 운영하고 변신도 하면서, 북두성군에게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남편이 환생해서 돌아오게 해달라고 애타게 기도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남편이 아니라 날개옷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으로 추정되는 젊은 남자를 우연히 만났다. 계룡산을 방문한 대학교수 정이현(윤현민 분)이 그 주인공이다.
 
정이현이 커피 마시러 왔다가 화장실에 들어간 뒤, 밖으로 우렁찬 '물 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듣고 선옥남은 남편일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들뜨게 됐다. 그 옛날 매일 같이 듣던 그 '물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인지 여부를 확인하고자 대학 구내 커피점으로 활동 공간을 옮기게 됐다. 제1회 방송 스토리는 여기까지 전개됐다.
 
사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에는 우리 시대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나무꾼이 결혼을 이뤄내는 과정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불편을 끼칠 수 있다. 옛날 한국 여성들도 그런 느낌을 가졌을 수 있다. 역사를 기록하는 주체가 남성 사관(士官)이라, 그런 불쾌감이 기록 상으로 반영되지 않았을 뿐이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어차피 역사적 사실이 아니므로, 우리 시대의 정서와 윤리관에 맞게 앞으로 변용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배우 문채원이 연기하는 선옥남의 또 다른 모습.

배우 문채원이 연기하는 선옥남의 또 다른 모습.ⓒ tvN

  
그런데 우리는 선녀와 나무꾼으로 알고 있지만, 이야기의 원형은 그렇지 않다. 이 이야기 자체도 한국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전신재 한림대 교수의 논문 '나무꾼과 선녀의 변이 양상'은 "'나무꾼과 선녀'는 한국의 전역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설화다. 이것은 또한 전 세계적으로 전승되고 있는 백조소녀(Swan Maiden)와 같은 계열의 설화"라고 한 뒤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백조소녀 설화 중에서 가장 원초적인 유형은 몽골의 백조소녀 설화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1999년 <강원문화연구> 제18집)고 말한다.
 
지금의 몽골공화국 바로 위쪽인 바이칼 호수 주변에서 생성된 백조소녀 설화가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의 원형이라고 논문은 말한다. 이 논문뿐 아니라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다.
 
<계룡선녀전>의 선옥남은 699년째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699년 전이면 1309년이다. 1309년 이전에 나무꾼과 결혼한 선옥남이 1309년에 남편의 실종을 겪었다는 것이다. 이 시기는 고려가 몽골제국의 간섭을 받을 때였다. 작가의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1300년대 초반을 스토리의 출발점으로 잡은 것은 이 설화가 몽골에서 기원했다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몽골의 백조소녀 이야기는 바이칼 호수 주변에 살았던 보리야드 종족한테서 생성됐다. 보리야드족은 천신을 숭배하며 백조를 숭상하는 종족이었다. 여성 사제가 한 달에 1회씩 마유(말젖)와 차와 담배를 제물로 천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게 이 종족의 관습이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백조소녀 설화의 배경은 거대한 호수 주변이다. 한국 설화에서 산과 계곡이 등장하는 것과 비교된다. 두 지역의 자연환경에 따라 스토리 배경이 달라진 것이다.
 
백조소녀 이야기는, 사냥꾼이 바이칼 호수 주변으로 사냥을 갔다가 물 위로 하강하는 백조 세 마리를 발견하고 뒤따라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국 설화에서 나무꾼이 산속 계곡으로 접근하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몽골 이야기에서 사냥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이 지역의 주요 산업 중 하나인 수렵·채집 경제를 반영하는 것이다. 한편, 한국 설화에서 나무꾼이 등장하는 데는 사정이 있다. 옛날 한국인들이 산에서 나무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임업이 옛날 한국의 주요 산업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무꾼을 등장시킨 것은, 스토리 배경이 산과 계곡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산과 계곡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에 농부나 어부를 등장시키기보다는 나무꾼을 등장시키는 게 좀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계룡선녀전>.

<계룡선녀전>.ⓒ tvN

 
 
몽골 이야기에서는, 백조를 따라가던 사냥꾼의 눈 앞에 갑자기 소녀들이 출현했다. 소녀들이 헤엄을 치는 장면이 나타났던 것이다. 백조들이 호수에 하강해 인간으로 둔갑한 뒤 수영을 즐겼던 것이다.
 
수영하는 동안, 백조 소녀들은 자기 깃을 호숫가에 놓아뒀다. 사냥꾼이 그중 하나를 몰래 감추는 바람에, 백조 소녀 하나는 백조로 변하지 못하게 됐다. 그는 그대로 인간의 모습을 유지한 채 사냥꾼과 결혼해 자녀 여섯을 낳았다.
 
원래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백조 소녀를 옛날 한국인들이 선녀로 바꾼 것 역시 한국적 상황을 반영한다. 선녀나 신선이 친숙했던 옛날 한국인들의 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단군왕검이 신선이 됐다는 <삼국유사>나 <단군고기古記> 등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설화에서는 선녀가 승천할 때 자녀들을 데리고 간다. 지역마다 이야기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그렇다. 하지만, 몽골 이야기 속의 백조소녀는 모성애가 약했던 모양이다. 여섯 자녀를 버려두고 홀로 승천해버린다. 남편이 술김에 백조 깃을 내어주자 얼른 받아들고 올라간 것이다.
 
눈 앞에서 갑자기 어머니가 수직상승하자, 일하던 중이었던 딸 하나가 검정이 묻은 손으로 어머니의 발목을 잡았다고 한다. 하지만 놓쳐버렸다. 백조 다리가 검은 이유를 보리야드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설명했던 것이다.
 
하늘로 떠날 때 백조가 자녀들에게 한 말이 있다. 매월 초하루마다 마유·차·담배를 자기한테 바쳐달라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토대로, 보리야드 종족의 여섯 지파(여섯 자녀)는 여성 사제의 주관 하에 매월 1차례씩 마유·차·담배를 제물로 여성 천신(그 백조소녀)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결국 이 설화는 보리야드족의 기원을 설명하는 신화다. 이 신화는 보리야드족이 천신의 후손임을, 즉 그들의 혈통이 신성한 것임을 강조한다. 또한 우리는 이 신화를 통하여 신화가 제의(祭儀)의 구술적 상관물(oral correlative)임도 확인할 수 있다. 보리야드족이 섬기는 신은 여신이고 사제권이 여성에게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 전신재 논문.
 
이처럼 백조소녀 이야기는, 보리야드족이 천신에게 올리는 제의의 기원과 형식을 구술 형식으로 해설하는 일종의 신화였다. 자기네 종족이 왜 여성 천신을 숭배하게 됐는지, 백조는 왜 귀하게 여기게 됐는지, 제사 때마다 왜 마유·차·담배를 바치게 됐는지 등을 알려주고자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 이야기가 한민족한테 들어오면서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로 각색됐던 것이다.
 
선녀와 나무꾼 류의 이야기는 시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형되기 마련이다. <계룡선녀전>은 우리 시대의 감각과 상상력에 맞게, 나무꾼이 실종되는 바람에 선녀가 나무꾼을 애타게 기다린다든가, 선녀가 바리스타가 돼서 커피 전문점을 운영한다든가 하는 쪽으로 스토리를 변형시키고 있다. 이 드라마의 스토리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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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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