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네사람들>에서 지성 역을 맡은 배우 이상엽

영화 <동네사람들>에서 지성 역을 맡은 배우 이상엽 ⓒ 씨앤코이앤에스


TV 브라운관에서 종횡무진 했지만 상대적으로 극장가에선 다소 뜸했다. 배우 이상엽에게 그래서 영화 <동네 사람들>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한적한 시골 마을 한 학교의 미술 교사 지성으로 분한 그는 극에서 긴장감을 주는 강력한 캐릭터를 맡았다. 

연쇄납치사건과 관련된 인물로 굳이 비교하자면 그가 출연했던 드라마 <시그널> 속 김진우가 떠오른다.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 역시 그 지점을 알고 있었다. "처음엔 <시그널>과 비슷하게 보일 수 있을 거 같아 고사했지만 감독님의 함께 만들어가자는 말씀이 너무 좋았다"면서 그가 운을 뗐다.

입체감을 위한 노력들

같은 소속사였던 마동석,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고르게 활약하며 필모를 쌓고 있는 김새론 등의 출연도 이상엽에겐 긍정적 요소였다. "영화를 감독의 예술이라고들 하시지만 좋은 배우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경험을 했다"며 그는 "며칠이라도 작품에 대한 얘기를 현장에서 나누면서 작업해보고 싶었다"고 그간의 갈증을 드러냈다.  

물론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액션 스릴러 장르를 표방한 만큼 그가 맡은 미술 교사 지성은 이야기에서 제한적으로 드러난다. 물론 어릴 때 가정에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했다는 사연이 나오긴 하지만, 친구의 실종 사건을 추적하는 유진(김새론)이나 그를 돕는 기철(마동석)에 비해 지성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차근차근 감정을 쌓다가 폭발시켜야 했다.

"<시그널> 때도 고민했던 건데 이번엔 또 다른 결이었다. 학대는 학대를 낳는구나. 사회적 문제들이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생각했다. 지성 역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라 아이들을 괴롭힌다고 해석했다. 지성이 좋은 부모를 만났다면, 과연 나쁜 짓을 했을까? 좋은 어른을 만나지 못했기에 나쁜 어른이 됐다고 생각한다. 가해자지만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한 것 같다. 개인적으론 관객 분들이 지성을 측은하게 봐줬으면 좋겠다는 걸 목표로 연기했다. 약간 성장이 멈춰있는 어른이거든.

저 역시 좋은 어른이 되려고 노력은 하지만 쉽진 않더라. 100세 시대라 아직 좋은 어른인지는 더 지나봐야 판단 받을 수 있겠지. 다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촬영 현장에서든 일상에서든 말이다. 작년 SBS 연기대상 때 수상소감으로 그런 말을 했다. 지금까지 좋은 사람이 되려고만 했는데 좋은 아들, 좋은 친구가 되려는 노력은 안 했던 것 같다고. 하나씩 지켜나가야지(웃음)."
   
 
 영화 <동네사람들> 스틸컷

영화 <동네사람들> 스틸컷 ⓒ (주)리틀빅픽처스

  이번 작품이나 드라마에서도 그렇고 최근 이상엽은 반듯하고 훤칠한 캐릭터보단 뭔가 의뭉스럽거나 속에 맺힌 게 많은 악역을 소화해 왔다. 지난 언론 시사회에서 그는 "뭔가 우울하고 악한 역을 할 때 영향을 받는 편이라 힘든 게 있다"고 고백한 바 있음에도 이런 역할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원래 반대에 끌린다고들 하잖나. 저란 사람이 천재거나 뭔가에 푹 빠져 괴팍해지는 사람이 아니라서 연기로라도 그런 걸 해보고 싶었다. 과거에 절 두고 실장님 이미지가 강하다는 평이 있었는데 그게 제겐 스트레스였고, 한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반대의 것을 하고 싶었는데 마침 <시그널> 같은 작품이 들어왔다.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악역을 잘 해내면 희열 같은 게 느껴진다. 

물론 인간 이상엽으로선 힘들다. 다운되기도 하고, 공허감이 들기도 한다. 1년 전 바로 이 장소에서 인터뷰했던 적이 있는데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 우울한 감정을 못 벗어났던 것 같다. 그래서 거기서 빠져나갈 수 있는 저만의 방법을 만들었다. 여행을 간다든가, 제 옛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저 데뷔 때 선배들, 연기 선생님들을 만나면 힐링 되는 게 있더라. <동네 사람들>을 하고 나서는 <런닝맨>으로 치유받았다(웃음)."


특출난 예능감

말이 나왔으니 예능 이야기를 피해갈 수 없다. 내면적으로 이상엽은 "스스로를 힘들 게 괴롭히는 편"이었다. 하지만 <런닝맨> 등 TV 예능 프로에선 그 누구보다 밝고 튀는 에너지를 풍기며 대중과 만났다. 

"부모님이 굉장히 무뚝뚝하시다. 경상도 분들이라. 그러다 보니 아들인 제가 분위기 띄우곤 했다. 몸에 이게 배어있는 것 같다(웃음). 뭔가 다운된 분위기를 제가 못 견뎌 하기도 한다. 불편하기 싫어서 나서는 편이다. < 1박2일 >이나 <무한도전> <런닝맨> 등은 사람들의 진짜 표정이 나오잖나. 그걸 보면서 연기 공부도 했다. 또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법도 배웠다. 개인적으론 예능 출연에 거부감은 없다. <런닝맨>도 타이밍이 좋았지. 이 예능 이후 드라마 등을 했으면 배우로서 이미지가 웃긴 캐릭터처럼 보였을 것 같은데 <동네 사람들>이 개봉하면서 나름 반전되는 느낌을 주게 됐다."

알려진 대로 그는 대학생 시절 경영학을 전공하다 우연히 엔터테인먼트 회사 오디션에 지원하면서 연기자의 길로 빠졌다. 이 때문에 연기에 대한 생각 역시 뒤늦게 다져졌다고 생각하기 쉽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연기는 되게 하고 싶었다"며 그가 데뷔 무렵의 이야기를 전했다.

"하고는 싶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 그러다 대학생 때 오디션에 지원해봤는데 계속 통과하게 되더라. 그렇게 한 소속사 연습생이 됐는데 그때 모든 게 다 깨졌다. 보이는 것과 다르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구나 생각했다. 그때 연기를 배우면서 사회와 조직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 선배, 후배들과 치열하게 생활했거든. 분기마다 절반씩 떨어뜨리는 '빡센' 시스템이었다(웃음). 100명이라면 분기마다 반씩 떨어뜨려서 50명, 25명 이렇게 가는 식었다. 

제 인생에서 많이 힘들었던 때였다. 그래도 제가 살던 광명시에선 꽤 인기 많던 사람이었는데 여기에 오니 아무것도 아닌 존재고. 이곳 사람들의 용어도 잘 못 알아먹고. 정말 많이 혼나면서 연기했다. 그러다 우연히 운 좋게 데뷔작에 출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힘들 때마다 그때 알던 사람들을 만나면 힐링이 된다(웃음). 힘들었지만 연기를 포기할 생각은 안 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연습생 생활을 끝낸 이후에도 많이 혼났다. 시트콤을 찍고, 사극을 했었는데 그때 절 많이 혼낸 분이 바로 지금 <시그널>의 김원석 감독님이다. 제겐 은인이지." 


꿈에 대한 집념   
 
 영화 <동네사람들>에서 지성 역을 맡은 배우 이상엽

영화 <동네사람들>에서 지성 역을 맡은 배우 이상엽 ⓒ 씨앤코이앤에스

  흔히 자신의 길에서 자존감이 낮아지거나 장애물을 만나면 두 선택을 하게 된다. 승부욕을 발동해 더 끈질기게 파고들거나 아님 다른 길을 택하거나. 이상엽은 전자였다. 이 말에 그는 "사실 되게 긍정적이고 안 좋은 기억은 잘 까먹는 편이라 그렇다"며 웃어 보였다. 

"제가 연기를 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많이 상상해봤다. 부모님과도 얘기한 적 있는데 제가 어떤 회사에 취직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연기는 하고 있었을 것 같다. 퇴근 후 극단 생활을 하든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든 연기를 떠나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제가 연기를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도 반대하셨지.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저희 또래까지만 해도 연기자는 배고픈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었지 않나. 부모님은 제가 평범하게 살길 원하셨다. 지금은 지지해주신다. 어렸을 때 교회에서 성극을 했었는데 그때 객석에서 엄마의 웃는 모습을 봤다. 마치 핀조명이 떨어지듯 눈에 들어오더라. 이번 <동네 사람들> 시사에서도 엄마의 웃는 모습이 보였다. 제가 지금까지 연기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저 미소를 보고 싶어서 연기를 하고 있구나 싶다."


내년에도 이상엽은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배우는 결국 작업을 해야 힘도 얻고 시너지도 생기는 것 같다"며 그는 "지난해 약 1년간 작품을 쉬었던 때가 있는데 현장이 참 그리웠다. <동네 사람들>도 제겐 의미가 깊은 작품이라 잘 됐으면 좋겠다"고 속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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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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