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풀잎들> 포스터

영화 <풀잎들> 포스터ⓒ (주) 영화제작전원사 , 콘텐츠판다 , 무브먼

 
풀잎은 풀에 난 잎이다. 연한 가지에 달린 탓에 미세한 변화에도 흔들린다. 풀도 하찮건대 거기에 딸린 풀잎이야 말할 나위 없다. 영화 <풀잎들>을 보는 중에 시 <풀>이 떠오른다. 오래전에 시인 김수영은 풀잎들을 도매금으로 품은 풀의 물상을 주시한다. 그리하니 풀은 민중을 닮은 민초(民草)다. 가꾸지 않아도 절로 나서 자라는 질긴 생명력이 그렇고, 바람보다 먼저 눕고 먼저 일어나는 능동성이 그렇다. 물론 그 포괄적 이미지는 낱낱의 정황과 거리 멀다.
 
반면 홍상수 감독은 풀잎들을 응시한다. <풀잎들>은 고만고만한 희로애락에 낚인 보통 사람들의 대화를 조명한다. 풀잎에 보통 사람을 대입한 거다. 태반이 연극배우든가 작가 부류인 캐릭터들의 대화 장면을 줌 인과 패닝으로 부각시킨다. 외따로 앉아 캐릭터들의 수작을 귀동냥해 쓴 아름(김민희 분)의 관찰일기가 내레이션으로 소개된다. 관찰 대상을 달리하며 사랑과 죽음, 그리고 관계에 대한 사유를 이어가는 옴니버스(omnibus) 형식이다. '인생은 한 편의 연극'이라는 견해가 묻어온다.

<풀잎들> 공간 설정이 의미하는 것 
 
풀잎들 홍상수 감독의 신작 <풀잎들>이 10월 2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 풀잎들홍상수 감독의 신작 <풀잎들>이 10월 2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주)영화제작전원사, (주)콘텐츠판다


<풀잎들>에는 다섯 짝패가 등장한다. 그들에게 사랑은 삶을 잇게 하는 윤활유거나 징검다리여서 늘 아쉽고 중요하다. 하지만 고의나 인위가 먹히는 선택사항이다. 그러니만큼 앙금이 생겨 찢어지려는 관계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아름이 사랑을 명분 삼는 상대에게 "사랑은 개뿔" 외치는 이유다.

그에 비해 죽음은 불시에 들이닥치는 불청객이지만 좋든 싫든 새로운 관계를 움트게 한다. <풀잎들>에는 자살만 여럿 등장한다. 동네 골목 안 카페와 음식점을 오가는 <풀잎들>의 공간 설정은 그러한 부대낌들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다반사임을 짚게 한다.
 
아름의 첫 번째 관찰일기 대상은 미나(공민정 분)와 배우 홍수(안재홍 분)다. 친구의 죽음에 치여 가책하며 악다구니하다 서로 사랑을 고백한다. 두 번째는 자살에 실패한 중견 연극배우 창수(기주봉 분)와 오랜만에 만난 후배 성화(서영화 분)다. 성화는 남는 방에 살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창수를 내치고도 염려한다. 세 번째는 연극배우 경수(정진영 분)와 작가 지영(김새벽 분)이다. 지영은 과거의 한때처럼 합숙하며 글쓰기를 함께하자는 경수의 제안을 거절한다. 이후 아름은 카페에서 음식점으로 동선을 바꾼다.
 
아름은 친동생 진호(신석호 분)와 그의 연인 연주(안선영 분)와 함께 밥을 먹은 후 맹공하듯 까칠한 질문들을 던진다. 감정이 조율된 내레이션 대신 아름의 육성이 생짜로 터진다. "결혼하려면 서로 잘 알아야지. 잘 모르면서 결혼하는 건 무책임한 거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엉망으로 사니. 사랑은 개뿔." 그 냉소를 복창하듯 다른 방 대화가 들린다. 순영(이유영 분)은 연인이었던 교수의 투신자살을 자꾸 들먹이며 애석해하는 재명(김명수 분)이 부담스럽다. 너나없이 자기중심적이다.
 
히스테릭한 김민희의 음색... 영락없는 내공의 산물
 
풀잎들 홍상수 감독의 신작 <풀잎들>이 10월 2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 풀잎들홍상수 감독의 신작 <풀잎들>이 10월 2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주)영화제작전원사, (주)콘텐츠판다


이쯤에서 아름을 연기하는 김민희의 카리스마가 제대로 드러난다. 앞서 걷는 동생 진호를 외쳐 부르는 장면에서다. 두꺼운 얼음이 깨지듯 공기를 가르는 히스테릭한 음색은 영락없는 내공의 산물이다. 전후사정이 어떻든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가 호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생 진호의 평가처럼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든, 또는 경수의 인상비평처럼 "비범해 보이는" 아름은 성질내고도 골목 안 카페로 다시 들어선다.
 
미나와 홍수가 화해하고 떠난 카페에서 나머지 인물들은 술판을 벌인다. 계단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며 자신을 추스르고 들어선 지영처럼 다들 시시포스적 삶을 감내하듯 어색해진 관계를 의식하면서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지 않는다. 형식적이나마 서로를 배려하는 말투를 유지하며 어떻게든 관계를 보전하려 애쓴다. 그 소소한 내밀함을 읽게 하는 연출에서 따뜻함이 묻어난다. 겉돌던 아름이 그들과 합석하는 결말은 그래서 희망적이다. 시 <풀>이 뭉뚱그린 질긴 생명력과 능동성을 디테일하게 변주한 셈이다. 삶을 향한 거대담론과 미시담론의 맥락이 다르지 않다.
 
<풀잎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카페 안 녹색잎들을 클로즈업한다. 카페 공간에 왁자하던 등장인물들은 사라졌지만 풀잎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한 편의 연극에 불과한 인생들이 풀잎들마냥 부단히 나고 지고 할 것임을 암시하는 셈이다. 새삼 '왜 사느냐?'는 우문 대신 '그냥 산다'는 현답을 챙기자 맘먹는다. 뭐든 겪어내겠다는 자유의지를 내야 "사랑은 개뿔"이라고 외칠 수도 있는 것이다. 내 의식의 흐름을 66분 간 농밀하게 이끌어준 <풀잎들>이 기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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