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처음에는 부족하고 서툴지만 실수를 반복하면서 성장하게 마련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도 있고 그냥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 성공조차도 단 한 번의 성공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인 영화계에서 계속해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과 같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했다. 계속해서 비범한 영화들을 만들어내는 거장들의 첫 영화는 그들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을까? 그들은 과연 떡잎부터 달랐을까? - 기자 말
 
 <돌리 벨을 아시나요> 영화 포스터

<돌리 벨을 아시나요> 영화 포스터ⓒ International Home Cinema

 
에밀 쿠스트리차. 이십 여 년 전, <집시의 시간>이라는 영화를 통해 낯설기만 한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겨우 중학생이었던 나에게 그의 영화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무언가 엄청난 체험과 같은 하나의 발견이었고, 그의 존재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를 인도하는 마법사와 같았다. 입체적인 캐릭터와 유고슬라이바의 정치적 상황을 내포하는 초현실적인 이야기들은 내가 이해하기엔 어렵고 복잡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상적인 영상과 이야기의 흐름, 그리고 흥겹고 뜨거운 음악까지 영화 자체가 지니는 매력은 나의 감정을 쉴 새 없이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1981년에 첫 장편 영화를 연출한 에밀 쿠스트리차는 첫 영화부터 전 세계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내놓는 영화마다 자신이 가진 재능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세계 유수 영화제의 주요 상들을 싹쓸이 했다. 

그가 이십대 중반에 연출한 첫 영화 <돌리 벨을 아시나요>는 1960년대 사춘기 소년의 성장기를 통해 당시 유고슬라비아(지금은 해체 된)의 정치, 사회적 변화를 그리고 있는 영화로 소년의 성장통은 여느 성장기 영화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영화의 배경과 독특한 캐릭터는 이 영화를 그 어떤 영화보다도 특별하게 만든다.

어떤 특별함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International Home Cinema

 
1960년대 사라예보의 가난한 마을에서는 여가라 할 것이 달리 없는 젊은이들의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한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데 밴드를 조직해 마을 클럽을 활성화 하여 젊은이들이 그곳에서 건전하게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의 기획자는 밴드의 기타리스트 겸 보컬로 디노라는 소년을 점찍는다. 이제 수염이 거뭇거뭇 올라오기 시작한 사춘기의 그는 진중하고 재능이 많아 어디에서건 인정을 받는 한편, 불량한 무리들과도 어울리며 몰래 담배를 피우고 전과자의 부탁을 망설임 없이 들어주는 과감성을 보이기도 한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International Home Cinema

 
디노는 임대 주택에서 부모님과 형, 두 명의 동생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열성 마르크스 주의자로 2000년이 되면 전 세계가 완전한 공산주의를 이룩할 것이라 믿는 이상주의자이기도 하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면 이들 가족은 가족회의를 한다.(가족회의에서 어머니는 제외되는데, 디노 아버지가 믿는 모든 노동자, 인간은 평등하다의 개념에서 남녀평등은 포함되지 않았던 듯 하다.)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공산주의 대한 토론(토론이라기보다 예찬에 가까운)을 이어가면 셋째 아들이 회의를 기록하는데, 이 토론 장면은 하나의 꽁트처럼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어머니와 아들들의 순종적인 모습에서 아버지의 가부장적이고 강압적인 모습이 예상되지만 영화에서 보여 지는 아버지는 196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해 남녀의 문제를 배제하고 보면 굉장히 민주적인 휴머니스트의 모습에 가깝다.

특히 그가 흥분해서 맑시즘을 칭송하는 모습은 2018년의 관객이 보기에 애처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가족은 없다. 모두들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지만(최소한 그렇게 보인다.) 오히려 그런 모습에 관객들은 웃게 된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International Home Cinema

 
전 세계의 공산화를 바라는 아버지의 망상에 가까운 이상과 달리 어머니가 꾸는 꿈은 지금 살고 있는 임대 주택에서 나가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하는 것이고, 셋째아들의 바람은 돈을 모아 자전거를 사는 것이며, 디노의 꿈은 완전한 최면술에 성공하는 것이다. 어머니와 셋째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꿈을 가지고 있는 반면 디노의 꿈은 불분명하고 추상적이다. 그런 점에서 디노는 아버지를 닮았다. 

디노는 "매일 난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라고 매일 되뇐다.(프랑수와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에서 주인공 앙투안 드와넬이 거울을 보며 자신의 이름을 주문처럼 외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 장면은 영화에서 여러 번 반복된다.) 자기 암시를 통해 스스로를 통제하고 더 나아가 세상을 바꾸길 바라며 매일 최면술을 연마하지만 그의 최면술은 아직 갈 길일 멀다.

과연 디노가 꿈꾸는 세상과 그의 아버지가 꿈꾸는 세상은 이루어 질 수 있을까? 최소한 그 가능성이라도? 

전과자이자 마을의 말썽꾼인 쏘니의 부탁으로 돌리 벨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를 오두막에 숨겨주고 그녀와 시간을 보내면서 디노는 성에 눈을 뜨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처음에 심드렁했던 돌리 벨 역시 순수하고 다정한 마음의 디노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지만 이들의 행복한 시간은 너무도 짧다. 폭우가 내리던 밤, 갑자기 나타난 쏘니가 그녀를 욕보이는 동안, 디노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비를 맞으며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비가 그치고 돌리 벨은 쏘니와 함께 떠난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International Home Cinema

 
그리고 병든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한다. 그는 곧 죽을 것이지만 디노는 아픈 아버지보다 떠난 돌리 벨 때문에 더 괴로워한다. 그녀에 대한 애정과 자신의 무력함에 괴로워하던 디노는 시내 클럽에서 스트립 공연을 하는 돌리 벨을 만나러 가고 거기서 포주 노릇을 하는 쏘니와 한 판 싸움을 벌이는데 얼굴은 상처투성이가 됐지만 디노는 뿌듯하다. 결국 그에게 만족을 준 것은 최면술이 아니라 '행동'이고, 완전한 세상을 꿈꿨던 소년은 한 단계 성장 한다. 

디노는 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로 활약하고 텅텅 비었던 마을 클럽은 젊은이들로 가득 차게 된다. 아버지는 죽고 디노의 가족은 드디어 이사를 가게 된다. 허름한 임대 주택 단지에서 보이는 고층 아파트로,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새로운 시도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International Home Cinema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를 가리켜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하는데, <돌리 벨을 아시나요>에서 그러한 특징을 꼽을 수 있는 장면은 딱히 없지만 디노 가족이 고모 집에서 식사를 하는 시퀀스는(어른들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첫째와 둘째는 몸싸움을 하고 셋째는 자전거를 타는 장면과 아버지와 고모부의 이념 논쟁 장면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각자가 다른 시공간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이후 그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환상적인 '마술적 리얼리즘'의 예고를 보여준다. 

첫 영화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그는(그의 나이 겨우 스물여섯이었다.) 두 번째 영화 <아빠는 출장 중>으로 1985년 깐느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1989년 <집시의 시간>으로 깐느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다. 그가 타고난 상복이 있어서 일수도 있지만 그의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그의 화려한 수상 이력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에게 두 번째 깐느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가져다준 <언더 그라운드>가 세르비아의 인종 청소를 옹호했다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영화계 은퇴를 선언했으나 1998년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라는 또 다른 걸작과 함께 영화계에 복귀했다.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는 말로 옮기는 것이 불가능 할 정도로 초현실적인 동시에 지금의 현실을 잔인하게 반영하는, 어떻게 보면 기이하기까지 한 영화다. 또한 비슷한 범주에 놓고 비교해서 얘기할 수 있는 영화가 없을 만큼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부터 그의 작품들은 예전만큼의 작품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이름이 퇴색된 것은 아니다.. 그가 앞으로 어떤 작품들을 보여줄지 모르겠으나 그의 걸작들이 이미 존재하고 영화라는 매체가 존재하는 한 그의 이름은 계속해서 영화 팬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회자될 것이다.

추신.
8-90년대에 그가 보여준 영화 세계가 전에 본 적 없는 너무도 새로운 것이어서 최근 영화들이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한 명의 예술가로서 그는 자신의 활동영역을 다양하게 넓히고 있는 듯 하다. 특히 연기와 음악활동이 눈에 띄는데 그의 밴드 Emir Kusturica &The No Smoking Orchestra는 지난 해 9월 '울산 월드 뮤직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으며, 올해에는 10월 기준으로 38회의 투어 공연을 마쳤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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