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 봄> 영화 포스터

▲ <1991, 봄>영화 포스터ⓒ (주)해밀픽쳐스


많은 이가 1987년을 기억한다. 하지만, 1991년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큐멘터리 영화 <1991, 봄>은 2001년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1991년 1학년>에 이어 다시금 1991년을 역사에서 끄집어낸다. 왜 1991년일까? 1991년의 의미는 무엇일까?

영화는 1991년 4월 26일 강경대 열사로 시작하여 5월 25일 김귀정 열사까지 국가 권력의 불의에 저항하다 스러진 11명의 청춘과 당시 유서대필과 자살방조라는 어처구니없는 죄명으로 처벌을 받은 강기훈 씨를 다룬다. 영화를 연출한 권경원 감독은 대학교 1학년 때 목격한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사건의 기억이 서른 살 넘어서까지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다고 한다. 어떻게든 그 기억을 남겨야겠다는 책임 의식을 느껴 <1991, 봄>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시대

<1991, 봄>은 6월 항쟁으로부터 4년이 흐른 뒤인 1991년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1987년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촉발한 6월 항쟁은 장기집권을 꾀하던 전두환 정권을 무너뜨렸다. 모두가 새로운 봄이 올 거라 희망했으나 1991년의 광장은 기대와 달랐다. 전경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대학생 강경대 군이 사망한 후로 수많은 청춘이 목숨을 잃었다. 국가의 과잉폭력진압에 저항하는 시위는 점점 커졌다. 이부영 당시 범국민 대책위 상임위원은 그 시기를 이렇게 기억한다.

"당연히 군부독재가 끝나야 하는 그런 시대였는데, 유사군사독재가 지속하면서 더 공안탄압으로 밀어붙였다"
 
<1991, 봄> 영화의 한 장면

▲ <1991, 봄>영화의 한 장면ⓒ (주)해밀픽쳐스


<1991, 봄>은 다른 다큐멘터리와 마찬가지로 뉴스 등 자료 영상, 인터뷰로 구성되었다. 일부 장면을 재연할 적엔 인형극을 썼다. '강기훈'만을 조명하는 <인간극장>도 아니다. 과거와 현재를 건드리는 사회와 시대의 이야기다. 쉬이 흥분하거나 눈물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차분한 어조로 시대의 죄책감, 역사에 대한 부채 의식, 죽은 자에 대한 애도, 산 자가 보여주는 의지 등을 하나씩 이야기한다.

권경원 감독은 처음에 유서를 강기훈 씨가 쓴 게 아니라고 말하는 수사관을 주인공으로 한, 검찰과 운동권을 모두 풍자하는 블랙코미디 형식의 극영화로 만들려고 했다.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강기훈 씨를 만나면서 진짜 강기훈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쓰는 시놉시스의 강기훈은 소심하고 음험한 인물인데, 내가 미안할 정도로 알지도 못한 채 썼구나. 그래서 접었다. 그냥 강기훈 씨라는 인물 그 자체를 주인공으로 하고 싶었다" -2016.7.24. <노컷뉴스> 인터뷰 중-
 
 
<1991, 봄> 영화의 한 장면

▲ <1991, 봄>영화의 한 장면ⓒ (주)해밀픽쳐스


세 차례에 걸친 제목 변경엔 감독의 고뇌가 묻어있다. 처음 붙인 가제는 <강기훈 말고 강기타>다. 사건이 피해자의 이름으로 기억되어선 안 된다는 마음에 붙인 제목이었다. 다음으로 지은 제목은 국가에 의해 고통을 받았던 사람들이 취하는 태도를 뜻하는 <국가에 대한 예의>다. 이것은 반어적으로 '국민에 대한 예의'도 된다.

'국민이 국가를, 국가가 국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묻는 <국가에 대한 예의>는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개봉을 즈음하여 <1991, 봄>이란 제목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1991년'이란 시대를 말하고, '지금은 과연 봄인가'를 묻는 제목이다.

많은 것을 잃은 후 밝혀진 진실

<1991, 봄>은 음악으로 각 장을 구성하는 형식을 취한다. 감독 스스로 음악 다큐멘터리라고 소개할 정도다. 강기훈 씨가 연주하는 기타 음악은 단순한 BGM이 아닌, 장이 시작할 때마다 이야기를 안내하고 마지막엔 풀어 놓은 이야기를 끌어안는 역할을 맡았다.
 
<1991, 봄> 영화의 한 장면

▲ <1991, 봄>영화의 한 장면ⓒ (주)해밀픽쳐스


처음엔 <기타를 위한 전주곡>이 들리며 1991년 당시 상황이 간략히 정리한다. 김기설이 남긴 유서를 연상케 하는 <아멜리아의 유서>가 연주되는 2장은 김기설의 죽음을 이용하려는 노태우 정권의 추악함이 드러난다. 3장 <성당>은 공권력이 조작을 통해 강기훈을 유서 대필자로 몰아가는 과정을 살펴본다. 4장 <눈물>은 살아남은 자들의 눈물을 의미한다.

5장 <망각>은 유서 대필을 조작한 당시 사건 담당 검사의 승승장구하는 현재를 보여준다. '이 노래를 하면 벌을 받는다'는 뜻을 지닌 6장 <사라방드>에선 1991년 이후 삶이 송두리째 바뀐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7장 <이별의 전주곡>은 고통스러운 과거와 마지막 작별을 하는 강기훈을 그린다. 마지막 8장 <카바티나>는 죽은 이들을 애도하고 살아남은 자들을 위로한다.

엔딩크레딧은 비틀스의 <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내 기타가 조용히 우는 동안)가 장식한다. 권경원 감독은 <1991, 봄>의 언론시사회 후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마지막 선곡에 대한 질문을 받자 "떠나실 때 관객들이 기분이 후련했으면 하는 점에서 장르 비틀기를 시도했다"고 운을 뗀 후 "가사를 보면 마치 강기훈 선배가 말하는 것 같은 가사"라고 답변했다. 그리고 "'변절했고'나 '입장을 바꿨고'라는 내용이 특히 그렇다"면서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의미도 있고 가치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1991, 봄> 영화의 한 장면

▲ <1991, 봄>영화의 한 장면ⓒ (주)해밀픽쳐스


강기훈 씨는 24년이 흐른 2015년 5월에서야 재심 상고심으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미 많은 것을 잃은 뒤에 얻은 진실이다. 영화 속 인터뷰에서 강기훈 씨는 시시한 삶을 추구한다고 고백한다.

'시시한 삶'이란 표현은 평범한 삶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일상을 지켜주는 것이 국민에 대한 국가의 예의가 아닌가. 동시에 1991년이란 마음의 짐을 안은 사람들에게 살아줘서 고맙다는 느낌을 전한다. 영화가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에게 봄 같은 따뜻한 위로를 건네듯이 말이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송소연 '진실의 힘' 상임이사의 한 마디가 잊히질 않는다. 이것은 여전히 거짓이 반복되는 오늘날을 사는 우리가 갖추어야 할 태도이자 절대로 버려선 안 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 야만의 시간은 잊지 말자. 그러나 지금 남아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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