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1991, 봄> 포스터

다큐멘터리 영화 <1991, 봄> 포스터ⓒ ㈜해밀픽쳐스

  
화창했던 1991년 봄. 나는 5월 광주에 있었다. 명지대 강경대 학생이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으면서 촉발된 공안정국에 대한 항거가 잇따른 분신으로 이어지던 때였다. 5.18 11주기를 맞아 광주로 들어선 날도 분신 후 치료를 받던 학생의 사망 소식이 또 다시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5월의 긴장감은 광주라는 도시를 더 팽팽하게 조였다.
 
그날 서울에서 장례식을 치른 강경대 열사는 광주로 내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5.18을 맞은 광주에서는 매해 그렇듯 당연히 거대한 시위가 벌어졌다. 경찰이 대학생을 죽인 어수선한 정국으로 인해 평화집회를 보장한다는 말이 돌았지만 그저 말뿐이었다. 최루탄과 일명 지랄탄을 앞세운 전투경찰의 진압 작전은 언제나 똑같았다. 어스름이 내린 저녁시간부터 금남로와 충장로 등 중심가 곳곳에서 격렬한 충돌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광주에 다다른 강경대 열사 운구차. 도청 앞에서 노제를 진행하려 했으나 운암동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막혔다. 경찰은 망월동 묘지로 바로 갈 것을 요구했고 장례위원회와 광주의 시민학생들은 이를 거부했다. 밤을 새워가며 40시간 가까운 충돌이 계속됐다. 돌과 화염병 최루탄 공방이 이어진 끝에 운구차는 광주 시내로 들어올 수 있었다. 이대로 강경대를 그냥 보낼 수 없다는 시민학생들의 승리였다. 금남로에서 노제를 지낸 뒤에야 강경대는 밤 늦게 망월동에 묻힐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또 다른 학생의 희생 소식이 들려왔다. 충무로에서 경찰의 토끼몰이 진압에 대학생 김귀정씨가 압사했다는 소식이었다. 강경대 열사 이후 한 달 사이 11명의 희생자가 나오는 순간이었다. 1991년 봄날은 서럽도록 잔인했다. 푸르른 날씨만 아름다웠을 뿐 비통과 슬픔이 온몸을 휘감은 채 처연함이 가득했던 그 계절을 잊을 수가 없다.
 
1991년의 시간을 되살려 내다 
 
 영화 <1991, 봄> 한 장면

영화 <1991, 봄> 한 장면ⓒ ㈜해밀픽쳐스

 
그리고 27년이 흘러 다시 그날의 기억을 마주하게 됐다 권경원 감독의 < 1991, 봄 > 때문이다. 어쩌면 기억하기 싫었던 그해 봄을 < 1991, 봄 >은 얄미울 만큼 되살려내고 있었다. 1991년의 기억이 다가온 순간 몸서리쳐지던 그 해의 기억이 다가왔다는 것에 움찔해야 했다. 당시 느꼈던 울분과 좌절, 힘겨운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거리를 뛰어다녔던 기억들이 꿈틀거리며 되살아났다.
 
시간이 약이 돼서인지 응시하기 어려울 것 같았던 그날의 기억은 막상 영화가 시작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담담해졌다. 그 시대 거리의 한복판에 섰던 이들에게는 쉽게 눈을 떼지 못하게 할 만큼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되짚어 냈다. 추억을 회상하듯 1991년의 모습이 영화를 통해 구체화 됐다. 익숙한 시공간을 통해 당시의 느낌을 최대한 가까이 끌어 오는 탓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아련한 기억이 떠오르면서 간간이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1991년은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를 살려내지 못한 결과가 만들어낸 후폭풍이었다. 6월 항쟁의 승리가 미완으로 끝나면서 군사독재의 연장으로 이어졌고 수많은 사람들을 좌절로 몰아넣었다.
 
결국 1987년 승리의 빛이 바래지면서 군사독재세력의 공안통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경찰이 쇠파이프로 강경대를 죽인 후 이에 분노한 분신과 공권력의 살해가 한 달 동안 세상을 덮었고, 그렇게 1991년 봄은 우리 사회의 잿빛 자화상이 됐다.
 
 영화 <1991, 봄>의 한 장면.

영화 <1991, 봄>의 한 장면.ⓒ ㈜해밀픽쳐스

 
그 중심에서 괴로움을 당했던 강기훈이란 이름은 양심적 민주세력의 가슴을 메어지게 했던 1991년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아무런 잘못도 없던 이에게 공안 당국은 유서를 대필하고 죽음을 사주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죄를 뒤집어씌웠다. 당시 분신 항거에 나서 유명을 달리한 김기설 전민련 사회부장의 배후인물로 만들기 위해 공안당국이 집요하게 조작해낸 결과물이었다.
 
그는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의 주인공이 됐다. 공안세력과 보수언론은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앞세워 칼춤을 췄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김기춘이었다. 공정해야 할 재판도 진실의 편이 되지는 못했다. 목격자도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판사들은 유죄를 선고하고 정의를 외면했다. 그렇게 어이없게 그는 무고한 세월을 감옥서 보내야 했다. 그리고 병을 얻었고, 영화에서는 기타를 친다. 자기 마음의 분노를 기타를 통해 다스리려는 모습일 게다. 다행히 24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당한 고통이 사라지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 1991, 봄 >은 강기훈뿐만 아니라 그해 자신의 몸을 불살라 세상에 항거한 사람들도 하나둘 조명한다. 강경대를 시작으로 박승희, 김영균, 천세용, 박창수, 김기설, 윤용하, 이정순, 김철수, 정상순, 김귀정 등 11명의 사람들은 1991년 부채감을 안겨준 이름들이었고, 이제는 기억의 아련한 저편에 있던 이름들이었다. < 1991, 봄 >이 고마운 것은 잊히고 있는 이름들을 다시 일깨워준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오기까지 수많은 희생이 있어 왔다. 1991년 봄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폭압적 통치에 맞섰던 분들의 항거가 한겨울 촛불을 들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거리로 나섰던 그 정신의 밑거름이 됐다. < 1991, 봄 >에는 그런 현대사가 스며있다
 
없는 죄를 만들고 인정했던 부구욱과 곽상도
 
이와 반대로 진실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뜻에 맞춰 사실을 곡해했던 사람들 역시 똑똑히 기억하도록 만든다. 영화에 나오는 부구욱과 곽상도 등이 그렇다. 한 사람은 죄 없는 강기훈에게 죄가 있다고 판결한 판사 중 한 명이고, 또 한 사람은 없는 죄를 만들어 덮어씌운 당시 검사 중 한 사람이었다.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이 났음에도 그들은 자신의 죄과를 반성하지 않고 사회의 지도층으로 남아 있다. 대학 총장을 하고 있는 부구욱과 박근혜 정권 청와대 민정수석을 거쳐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곽상도의 모습은 잘못된 과거가 청산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단면이기도 하다.
 
영화 앞부분에 등장하는, 1991년 김귀정 열사가 있던 장소에서 비슷한 상황이 될 뻔했던 채수진 프로듀서는 이들과 대비되는 인물이다. 당시 거리시위에서 그 역시 압사당할 위기에 놓였다가 동기들의 도움으로 큰 화를 면했다. 채수진 프로듀서는 몇해 전까지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필름마켓 전문위원으로 활약했는데, 부구욱 총장은 지금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를 맡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 1991, 봄 >이 한국영화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 1991, 봄 >은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이었다.
 
 영화 <1991, 봄> 한 장면

영화 <1991, 봄> 한 장면ⓒ ㈜해밀픽쳐스

 
역사적 사실을 재조명하지만 < 1991, 봄 >은 잘 만든 음악영화이기도 하다. 강기훈의 기타 선율은 잔잔하게 심금을 울리며 1991년의 애절함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강기훈의 기타는 당시 상황에 대한 슬픔과 부채감에 깊은 위로로 다가온다.
 
< 1991, 봄 >은 제작비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도움을 준 사람이 최근 <신과 함께>를 연이어 성공시킨 천만 제작자 리얼라이즈픽쳐스 원동연 대표였다. 제작비가 궁했던 권경원 감독은 원 대표를 찾아가 강기훈의 연주 장면을 보여주며 음악영화라고 소개했다. 원동연 대표는 "내가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는 영화냐?"고 묻고는 다음날 그의 통장에 돈을 보내왔다고 한다. 박근혜 정권 치하에서 유서 대필 조작에 관련 있는 김기춘이 비서실장으로 있는 서슬이 퍼럴 때였다.
 
< 1991, 봄 >에는 강기훈을 지키지 못했던 시대적인 미안함이, 그리고 잘못된 세상에 대해 온 몸으로 부딪힌 11명 열사에 대한 부채감이 자리하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하는 데도 잊히고 있는 지난 역사에 대한 재조명은 지금 우리가 살고 시대를 비추게 한다. 그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과 그 시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감흥의 깊이가 다르겠지만, 당시의 상황을 다시 목도해야 하는 것은 영화가 남겨주는 과제이자 의무일 것이다.
 
 <1991,봄>의 한 장면. 1991년의 희생자들

<1991,봄>의 한 장면. 1991년의 희생자들ⓒ ㈜해밀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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