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웃으면서 해요.'
 
춤을 배우기 시작한 이래 수업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물론 강사님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그런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하지만 사실 알고 있다. 강습 시간 내내 가장 표정이 안 좋은 수강생은 바로 나라는 걸.

사실 이건 나의 실수 탓도 크다. 구민체육센터 방송댄스 수업에서 얼마나 어려운 걸 가르치겠냐는 예상과 달리 강사님은 동작도 촘촘하고 심지어 과격하기 그지없는 아이돌 군무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뛰고(여기서 뛴다는 건 정말 무릎이 허리까지 올 정도로 날아오르는 것을 의미한다) 구르고 발이 땅에 닿을 틈이 없이 스텝을 밟다보면 어느새 정신이 멍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내가 얼굴에 드러날 정도로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은 힘이 들어서가 아니었다. 문제는 마른 이쑤시개 마냥 뻣뻣한 내 몸이 그 동작들을 제대로 따라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나는 맨 앞줄에서 능란하게 안무를 추는 수강생들을 따라가기 바빴다. 나는 수십 번을 해도 따라할 수 없는 동작을, 심지어 똑같이 해도 아무런 태가 나지 않고 밋밋한 안무를, 그들은 단지 몇 번 만에 완벽하게 소화했다. 처음에는 시샘이 나다가 나중에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울화가 터졌고(여담이지만 그 순간에 '어떻게 인간이 수학을 9점을 받을 수 있어'라고 나에게 절규했던 과거의 엄마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결국에는 '이럴 거면 피곤해 죽겠는데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격한 동작으로 혼미해진 나의 정신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여력이 없었다. 뒷사람의 등과 거울 속 자신만 바라보는 수강생들은 모르겠지만, 강사님은 당황했을 것이다. 그래서 늘 수업의 중간쯤이면 말씀하신다. 웃으면서 하자고.
 
 미미 시스터즈의 '우리 자연사 하자'

미미 시스터즈의 '우리 자연사 하자' 앨범ⓒ 미미시스터즈

  
행복하자고 시작한 일에 왜 스트레스를 받을까?

사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누가 등 떠밀어서 배우기 시작한 춤도 아니었다. 이제 와서 가수나 댄서가 되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각박한 세상살이 속에 취미나 하나 더 있었으면 했다. 거기다가 춤은 노래와 흥겨움이 함께하는 스포츠가 아닌가. 그러니까 내가 춤 수업을 듣기로 한 것은 '행복해지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강습을 받다 스트레스를 느끼고 '그냥 집에 갈까'하고 생각한다. 어쩌다 일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돌이켜보면 이는 내가 오랜 시간 지녀온 강박 때문일지도 모른다. 늘 그런 생각을 했다. 못한 일은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결과가 좋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만한 노력도 안한 주제에 일이 잘 안 풀리면 만족을 하지 못했다. 우울해하고 억울해했다. 한 때는 '어차피 망할 인생 막 살자'는 심정으로 아예 스스로를 돌보지 않기도 했다.
 
그러니까 문제는 춤이 아니라 인생이었다. 사실 춤이나 일이야 중간에 관두면 그만이다. 하지만 사는 게 그렇다면 문제는 참으로 서글퍼진다. 인생에는 정지 버튼도 재시작 버튼도 없다. 시간은 정말 야속하게 가만히 있어도 흘러가고 세상도 거기에 따라서 움직인다. 그렇다고 '종료 버튼'을 누를 엄두도 나지 않는다.

이런 딜레마를 느끼는 게 나 뿐만은 아닐 것이리라. 많은 사람들이 '이상적인 인생상'과 '현실의 삶' 사이에서 고통 받기를 반복한다. 때로는 그 간극을 못 견뎌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원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 달리다 결국 생의 경로에서 이탈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연했던 죽음은 그다지 친하지 않고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 한 대학 동기의 것이었다. 어느 날 선배가 '소식 들었어? 증권사 간 걔 있잖아, 죽었대'라며 부고를 알렸다. 무슨 사고라도 난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과로사였다. 허탈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부고를 전하며 '과로사'라는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 '일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죽었대'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과로로 누군가 사망한다는 게 황망하고 와 닿지 않는 일이었다.
   
우리, 자연사하자?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
 
이런 일이 나에게만 일어날 만큼 생소하진 않나 보다. 미미시스터즈는 10주년 기념 미니앨범 <우리, 자연사하자>를 발매하며 동명의 타이틀곡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었는데 내용이 이렇다. 그들 역시도 올해 초에 음악을 하던 30대 친구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하는 일을 겪었다고 한다. 아마 척박한 음악 환경에서 과로를 하다보니 생긴 일이었을 것이라 한다. 죄책감과 무기력감 그리고 나의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술을 마시던 미미시스터즈는 그런 다짐을 나누었다고 한다. 우린 자연사하자. 삶에 지친, 그런 와중에도 자기 자신을 끌고 나가는 이들을 위로하는 노래는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노래에 얽힌 사연과 제목을 듣고 난 후에도, 솔직히 내 머리 속에는 물음표가 가득했다. 자연사, 좋죠. 그런데 자연사를 할 때까지 이어진 제 인생이 너무 시시하면 어쩌죠? 그냥 살아남기만 한 삶이면 어쩌죠? 늙어 죽지 말고 빨리 갈 걸 그랬다고 후회하면 어쩌죠? 뭔가 더 했어야 했다고, 더 노력했어야 했다고 자책하며 삶의 마지막을 마주하면 어떡하죠? 하지만 그런 질문에 대답하듯 미미시스터즈는 이렇게 노래한다. 5분 뒤에 누굴 만날지, 5년 뒤에 뭐가 일어날지 걱정하지도 기대하지도 말라고. 그건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고. 그리고 바로 그 다음에 미미시스터즈는 이런 말을 전한다.
 
'걱정 마, 어차피 잘 안 될 거야'
 
위로가 아닌 듯 사람을 위로하는 노래
 
 미미 시스터즈의 '우리 자연사 하자'

미미 시스터즈의 '우리 자연사 하자'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미미시스터즈

 
언뜻 생각해보면 황당할 것이다. 저 말이 위로가 될까? 그런데 놀랍게도 된다. 인생의 5분 뒤에 그리고 5년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애초에 내가 알 수 없는 일이라면, 아니 '그건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기에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나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언젠가 더 열심히 해야 했다고 후회하고 자책할까봐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건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니까. 누구도 다가올 일과 발생할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리고 일이 어차피 잘 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면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잘 되면 기쁜 일이고 안 되면 그냥 원래 그렇게 될 일인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미미시스터즈는 이런 조언도 한다. 좋은 일이 생겨도 다 가졌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쁜 일이 생겼다고 마냥 이불 속에서 우울해하지 말라고. 왜? 남은 인생에서 미래에 무슨 일이 생길지 사람은 모를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다면 더 큰 무언가가 앞에 남아 있을 수도 있으니까!(물론 앞서 미미들이 한 조언처럼 잘 안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인생은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고 일단 내가 살고 볼 일이 된다. 정말로 살아남아 자연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 된다. 번아웃에 다다를 만큼 아등바등하지 않고 스스로를 갈아 넣지 않아도,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면 방구석에서라도 우리는 이미 모험을 하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그러니까 살 가치도 없는 '시시한 인생'이란 없다.
 
사실 이 노래는 미미시스터즈의 삶이 담긴 노래이기도 하다. 미미들은 12월 31일이라는 범상치 않은 날짜에 서울 변두리 막창집이라는 지극히 세속적인 공간에서 서로를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소울 메이트까지는 아니지만 '술 메이트'인 서로를 알아보고 다툼과 화해를 반복하며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똑 같은 옷을 입고 무표정으로 댄스홀에서 춤을 추던 미미들은 장기하와 얼굴들의 멤버에게 발견되어 코러스단으로 데뷔를 하게 된다.

그렇게 10년 미미시스터즈는 독립을 하고 책을 내며 때로는 화제의 중심에서 때로는 스포트라이트의 뒤편에서 살아갔다. 하지만 변치 않는 것은 그 세월 동안 미미들의 삶도 관계도 이를 둘러싼 드라마도 이어졌다는 점이다. 서울 변두리 막창집에서도 역사는 시작되고 아무리 시시해 보이는 곳에서도 소소하지만 놀라운 사건들은 발생한다. 미미시스터즈의 삶이 이를 증명한다. 그들의 노래에서 진정성이 느껴지는 이유다.
  
 혼자 먼저 가지 말고 우리 함께 자연사하자
 
'우리, 자연사하자'는 한 구석도 놓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명가사들이 이어지는 곡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중간에 삽입된 미미들의 대화였다. '국떡'을 먹고싶다는 한 미미에게 다른 미미가 '국수떡볶이?'라고 질문하자 '국물떡볶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러자 미미는 '줄임말 좀 쓰지마'라고 타박하고 다른 미미가 웃음을 터트리며 '국물떡볶이'라고 또박또박 단어를 말한다.

개인적으로 줄임말을 쓰는 것에 별다른 감정은 없다. 하지만 쫓아가기도 바쁜 인생을 사느라 '국물떡볶이'를 '국떡'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 아닌가. 모두가 앞만 보고 달리다 주변 사람을 하나둘씩 잃는 그런 인생은 살고 싶지 않다. 노래를 들으며 미미처럼 '국물떡볶이'라고 소리 내어 또박또박 말해 보았다. 이상하게 웃긴데 눈물이 났다. 세상에, 내가 저 단어를 말하며 우는 일이 생길 줄이야.
 
마지막으로 춤을 그만둘까 생각했던 시기의 에피소드를 전하고 싶다. 다음 달에는 등록을 하지 말까 생각하며 강습에 나갔던 날, 강사님은 난데없이 선미의 '사이렌'을 배워보자고 말했다. 그 춤이 어떤 춤인가. 시작부터 바닥을 기고 시종일관 온몸을 흐느적거려야 하는 그런 춤이 아닌가. 이건 얼굴에 철판을 제대로 깔 수 있는 뻔뻔한 사람에게 전적으로 유리한 안무였다. 그리고 그게 나였다.

내가 질투했던 우등생들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난감해하며 주뼛거리는 동안 나는 홀로 신이 나서 강습실의 바닥을 쓸고 다녔다. 그리고 '사이렌'을 배우는 마지막 날,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나에게 강사님은 웃으며 춤이 많이 늘었다고 격려를 전해주었다.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음이 들떴다.
 
'우리, 자연사하자'의 노랫말처럼 살다보면 생각지도 않은 가슴 뛰는 일이 꽤 많이 생긴다. 그러니 노래의 가사를 빌려 제안하고 싶다. 부디 혼자 먼저 가지 말자. 우리 함께 오래오래 남아 자연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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