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기적의 신화를 일궈냈던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이 불과 8개월 만에 갈 곳 없는 신세로 전락했다. 올림픽의 영광을 이어 나가 좀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자 했던 이들이 마주한 것은 그저 냉혹한 현실뿐이었다.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은 지난 2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2018-2019 시즌 미디어데이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용 총감독을 비롯해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폐막한 후 훈련할 곳이 없어지고, 훈련비 예산마저 삭감됐다며 착잡한 현실을 얘기했다.
 
평창 이후 지원예산 70% 삭감, 훈련장도 없어져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 미디어데이 23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팀 미디어데이에서 이용 감독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 미디어데이 23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팀 미디어데이에서 이용 감독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용 대표팀 총감독은 "평창에서 이뤄낸 봅슬레이, 스켈레톤의 높은 위상이 이대로 이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올해도 금메달'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론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당초 강원도 평창에는 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2년 전인 2016년경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가 생겼다. 이 경기장이 생기기 전 썰매 대표팀은 강원도의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스타트와 주행 연습을 했고, 실전 감각을 위해 이웃나라인 일본이나 동계스포츠 강국인 캐나다 등지로 머나먼 전지훈련을 떠나야만 했다.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이들이 마음껏 훈련할 수 있는 썰매 경기장이 생기면서 그동안 비인기종목이라는 설움 속에 지원조차 넉넉하지 못했던 아픔을 털고 새롭게 날아오를 수있게 됐다. 그리고 '아이언맨' 윤성빈(24·강원도청)을 비롯해 봅슬레이 원윤종(32·강원도청) 등이 월드컵과 세계선수권 등에서 정상에 서면서 기적의 신화를 써내려 갔고, 꿈의 무대였던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윤성빈이 아시아 최초로 썰매 황제로 등극했고, 봅슬레이 4인승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환호했다.
 
그러나 불과 8개월만에 이 같은 현실은 그저 먼 과거의 일이 되고 말았다. 올림픽 이후 슬라이딩 센터의 사후 활용방안과 정부와 강원도가 분담금을 놓고 씨름을 벌이면서 이 경기장은 폐쇄됐고 선수들은 안방에 있는 트랙을 놓고도 갈 곳 없는 신세가 됐다. 게다가 평창 이후 썰매를 제작했던 현대자동차 등은 후원을 중단했고, 정부 지원금은 70%나 삭감 되는 등 '찬밥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용 감독은 "내가 선수들에게 거짓말하는 사람이 됐다. 평창 직전까지는 최고의 팀워크가 좋았는데, 지도자와 선수들 사이의 신뢰가 깨졌다"라고 말했다. 그는 "2011년부터 감독으로 하면서 평창올림픽에서 성적만 내면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넘을 수 있다고 설득했는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나만 거짓말쟁이가 됐다. 올림픽 이후 정부 지원의 70% 가까이 삭감이 됐다. 총감독으로 책임을 느껴 사퇴를 고려했다. 정부 지원뿐만 아니라 스폰 지원도 중단됐다. 썰매를 개발해주던 현대가 재계약은 없다고 통보했다. 훈련도 못하는 상황서 장비조차 교체할 수 없게 됐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얼음 가르며 출발하는 대한민국 24일 강원도 평창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올림픽 봅슬레이 남자 4인승 1차 주행에서 원윤종-서영우-김동현-전정린 조가 얼음을 가르며 질주하고 있다.

▲ 얼음 가르며 출발하는 대한민국 지난 2월 24일 강원도 평창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올림픽 봅슬레이 남자 4인승 1차 주행에서 원윤종-서영우-김동현-전정린 조가 얼음을 가르며 질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처럼 싸늘하게 식어버린 통에 평창 올림픽 이후 더욱 발전해나가며 장밋빛 미래를 그렸지만, 우스갯소리로 오히려 10년 전으로 역주행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들고 있다.
 
이용 총감독은 "지원이 줄자 한 선수가 농담처럼 10년 전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고 말한게 너무 크게 다가왔다. 좋은 장비를 살 돈을 모두가 나눠 써야하는 상황이다. 들이 평창 이후 한명, 두명 나가는 상황이 마음이 아프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어 "올림픽에 도전하던 선수들이 나가는 것 보고 마음이 아팠다. 왜 이런 상황이 됐는지 모르겠다. 이번 정권의 공약에 평창 이후 사후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정부가 체육 정책에 대해서 재고 돼야 한다. 생활 체육을 넘어 엘리트 체육에 대한 투자도 어느 정도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썰매황제' 윤성빈도 자신감을 잃었다고 토로했다. 윤성빈은 "지난 시즌 스스로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훈련 때문이었다. 훈련을 다른 선수들보다 많이 하고, 경기력을 다른 선수들보다 빨리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이 자신감이 커졌던 이유 중 하나"라며 "하지만 이번 비시즌에는 훈련 환경이 되지 않다보니 자신감이 덜하다. 아쉬울 뿐이다. 상황에 맞춰서 잘 해야할 것 같다"고 전했다.
 
선수들은 훈련 못하고 있는데... 정부-강원도 '부담금 줄다리기' 중

이렇게 선수들이 울분을 토하는 사이, 정부와 강원도 사이에서는 올림픽이 끝난 지 8개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에 대한 활용방안과 분담금을 놓고 끝 모를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강원도청 올림픽시설과 관계자는 26일 기자와 통화에서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는 내년 1월을 목표로 해서 시설 운영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시설과 일반인들이 썰매종목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 공간으로 마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절차적으로 이 시설을 위탁 관리하기 위해 조례를 개정하고자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시설에 대한 분담금은 여전히 언제 명확한 답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강원도청 측은 정부와 분담감을 놓고 계속해서 협상 중이며 KBI 용역을 의뢰하려고 하고 있다면서 말을 아꼈다.
 
이 관계자는 "올림픽 시설 유지와 관련한 타당성 용역을 의뢰할 예정이다. 그 결과를 통해 국비지원에 대한 근거나 타당성을 명확히 할 것"이라면서 "내년 5월까지 용역 기간을 잡은 상태이며, 강원도 측에서는 운영 적자분에 대한 분담금으로 국비 60%, 지자체 40%로 나눠 분담하길 희망하고 있다. 이것이 최대한으로 배려해서 책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스켈레톤 윤성빈 선수가 16일 오전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에서 3차 주행 출발을 하고 있다.

스켈레톤 윤성빈 선수가 지난 2월 16일 오전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에서 3차 주행 출발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사실 올림픽 시설 사후활용 방안과 분담금 등의 문제는 올림픽 유치하고 난 후 개막 전까지 7년여의 시간 동안 뚜렷한 대책을 미리 마련해놨어야 마땅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역시 최근 올림픽을 유치하고자 하는 국가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올림픽 시설이 사후에 '돈먹는 하마(White Elephant)'가 되는 것을 막고자 이러한 부분을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이는 평창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별다른 대책을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서, 서로 책임 넘기기만 급급했던 나머지 결국 피해는 선수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 것이 평창 이후 한국 썰매 대표팀의 현실이다.
 
평창에서 세계 썰매계의 혁명을 일으킨 후 썰매 대표팀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졌다. 이들이 평창을 넘어 2022년 베이징에서도 활약해 메달을 따주길 희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평창이 끝난 지 불과 8개월 만에 가장 기본적인 훈련장도 지원예산도 모두 없어진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4년 후 베이징 때도 올림픽 메달만을 요구하며 응원을 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평창을 계기로 제2의 윤성빈 등 새로운 유망주들을 육성하면서 저변을 넓히고자 했던 꿈도 하나씩 없어지고 있다. 이용 총감독의 말이 더욱 뼈아프게 들려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이용 감독 23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팀 미디어데이에서 이용 감독(가운데)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전정린 선수, 원윤종 선수, 이용감독, 김동현 선수, 서영우 선수.

▲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이용 감독 23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팀 미디어데이에서 이용 감독(가운데)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전정린 선수, 원윤종 선수, 이용감독, 김동현 선수, 서영우 선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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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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