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나-비> 포스터.

영화 <하나-비> 포스터. ⓒ 우일영상

 
일본이 낳은 전천후 예능인 기타노 다케시, 그는 1970년대 초 코미디언으로 연예계에 진출해 그야말로 평정하다시피 하고는 돌연 영화계로 진출한다. 그 전에도 간간이 영화에 얼굴을 비췄지만, 이번에는 감독과 주연을 맡은 것이다. 물론 처음엔 반응이 별로였지만, 계속해서 감독과 주연을 맡은 좋은 작품들을 내놓았다. 

그는 1990년대에만 7개의 작품을 내놓는다. 직접 감독과 주연을 맡은 작품들 말이다. 주연만 맡은 작품은 물론 더 있다.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기타노 다케시의 작품들은 2000년대 이후일 것이다. 주연을 맡은 <배틀로얄>이라던지, 여지없이 감독과 주연을 맡은 <자토이치>라던지. 아마도 일본 영화가 1998년 말에야 비로소 우리나라에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전의 대다수 작품들은 2000년대에야 들어왔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인으로서의 전성기는 1990년대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그의 영화적 특징이 모두, 그리고 조화롭게 섞여 들어가 있는 영화는 <하나-비>가 아닐까. 상이 작품을 선별하는 전부는 아니겠지만 최소한 괜찮은 기준을 세워줄 수 있는 바, 이 작품은 자그마치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여담으로,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들어온 최초의 일본영화이기도 하다. 

기타노 다케시 그 자체
 
 영화 <하나-비>의 한 장면.

영화 <하나-비>의 한 장면. ⓒ 우일영상

 
야쿠자를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형사 콤비 니시(기타노 다케시 분)와 호리베(오스기 렌 분). 딸을 잃고 아내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니시. 호리베와 동료 형사들은 그런 니시에게 아내 병문안을 가게 하고 대신 잠복근무를 선다. 하지만 그 사이 호리베는 야쿠자에게 당해 하반신 불구가 되고 아내와 딸에게서 버림 받는다.

니시는 호리베뿐만 아니라 후배 형사도 잃고 마는데 그의 눈앞에서 호리베를 그렇게 만든 야쿠자의 총에 죽고 만다. 그는 야쿠자를 죽이고 형사를 그만둔다. 호리베에겐 그림 도구를 선물하고 죽은 후배 형사의 아내에겐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정작 자신은 아내 치료비를 마련하려 고리대금업자에게 빌린 돈 때문에 괴롭다. 

의사는 '아내가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며 "대화도 많이 하고 여행이라도 다녀오는 게 어떠냐"고 충고한다. 이에 니시는 경찰복을 입고 경찰차를 타고 은행을 턴다. 돈을 갚고 후배 형사의 아내와 호리베에게 돈으로 추정되는 소포를 보낸다. 그리고는 아내와 단둘이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그에게 야쿠자와 후배 경찰이 차례로 찾아온다.

영화 <하나-비>는 영화인 기타노 다케시 그 자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그를 영화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이 영화 하나만 봐도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코미디적 재능을 살린 괜찮은 영화도 몇 편 있지만 말이다. 영화는 영화 내적인 요소들의 집합체로서, 영화 외적인 즉 사회적 요소와의 해석 가능성으로서 관람할 수 있다. 

암담한 시공간의 삶의 죽음
 
 영화 <하나-비>의 한 장면.

영화 <하나-비>의 한 장면. ⓒ 우일영상

 
<하나-비>는 야쿠자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답게 폭력 성향이 짙다. 주요 인물들이 다치고, 불구가 되고, 죽는다. 하지만 그 폭력을 리얼하게 그리지 않고, 미학이라 부를 만한 장면도 없다. 생략 후 결과만을 간략히 보여주는 미장센의 개념이라고 할까. 폭력은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라고,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폭력이 수단이 되어 영화가 보여주고 싶은 건 삶과 죽음이다. 제목 '하나비'는 우리나라 말로 '꽃불' 즉 불꽃을 뜻하는데, 가운데 하이픈(-)이 들어가 있어 하나(꽃)와 비(불)로 나뉜다. 꽃은, 극중 호리베가 죽다 살아나 그림을 그릴 때 주로 사용하는 포인트다. 이는 삶을 뜻하는 게 아닐까. 불은 극중에서 많은 이들을 아프게 하고 죽게 하는 총과 같다. 이는 죽음을 뜻하지 않나 싶다. 

비-불-총-죽음은 니시의 죽음과도 같은 침묵과 맞닿아 있다. 시종일관 혼자 있든 누구와 함께 있든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는 니시를 롱테이크로 비출 때면 묘한 긴장감이 든다. 언제 다시 침묵을 깨는 폭력이 찾아와 죽음으로 인도하게 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생각하면 할수록 슬프다. 영화에서 삶과 죽음을 동질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이 특히 그렇다. 주인공은 모든 걸 잃고 죽고자 했지만 살아서 삶을 보았고, 서서히 모든 걸 잃으며 어쩔 수 없이 죽음의 길을 간다. 영화에서 삶이나 죽음이나 도무지 '괜찮은' 인생의 자장 안에 있는 것 같지가 않다.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진 암담한 정서가 영화 전체에 깔려 있다.

위기의 일본과 일본 남자
 
 영화 <하나-비>의 한 장면.

영화 <하나-비>의 한 장면. ⓒ 우일영상

 
영화가 1998년에 국내 개봉한 일본 영화라는 점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즉, 일본의 1990년대 말이다. 세계 경제사에서도 유명한 일본의 버블경제, 그 한가운데다. 1980년대 유례없는 호황을 맞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세계를 호령한 일본, 1990년대 초 한순간에 무너져 이후 장기불황에 빠진다. 이 영화가 나온 시기는 그야말로 암흑기로 불리는 때였다.

죽음과 다름 없는 삶을 사는 니시, 살아 있지만 죽음을 경험한 호리베. 이들을 둘러싼 암담한 시공간까지 1990년대 일본 그 자체 또는 당대 일본의 남자들을 닮았다. 개인은커녕 사회의 힘으로도 돌이킬 수 없게 된 암담한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시기에 IMF 구제금융 사태를 맞았다. 당시 가족의 생계를 짊어졌던 많은 가장들이 목숨을 끊었다. 죽음의 행렬은 사회적 흐름을 형성한다. 그곳에서는 피어나는 꽃도 슬프다. 한편, 그때 회사에서 나와 아예 다른 길을 찾은 사람들도 많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지만, 와중에도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들이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 많은 '대가'들이 그렇게 탄생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옛것을 찾는 건 인간의 전형적인 심리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 온고지신 등의 말이 있지 않은가. <하나-비>는 위기의 시대, 전통적인 일본 남자가 행하는 침묵-폭력-죽음의 발악 또는 순응의 이야기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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