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광주 최초의 노동야학인 '들불야학'에서 활동하던 노동운동가 박기순이 사망했다. 그리고 2년 뒤인 1980년, 그녀와 함께 활동했으며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도 계엄군에 의해 전남도청에서 생을 거두고 만다. 생전에 두 사람의 사이가 각별했던 것일까. 사람들은 후에 묘역에서나마 그들의 결혼식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민중음악 창작 활동 30주년 기념 앨범 <사색 30>을 발표한 민중음악가 박종화. 광주 금남로에 있는 옛 전남도청 2층에 있는 <임을 위한 행진곡> 펼침막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민중음악 창작 활동 30주년 기념 앨범 <사색 30>을 발표한 민중음악가 박종화. 광주 금남로에 있는 옛 전남도청 2층에 있는 <임을 위한 행진곡> 펼침막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이주빈

 당시 이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던 소설가 황석영과 광주에서 활동하던 노래패의 단원들은 박기순과 윤상원을 위로하기 위한 노래극 <넋풀이-빛의 결혼식>을 만들게 된다. 이 노래극의 마지막에 합창곡이 등장하는데 극의 제작에 함께했던 김종률이 작곡했으며 가사는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 -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의 일부를 차용해 붙여졌다. 그 합창곡의 제목은 우리에게는 5.18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민중가요로 친숙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내게 그런 노래였다. 찬란했지만 그만큼 장렬했던 운동의 상징이자 그 곁에 머물렀던 운동가들의 안타까운 삶을 담은 노래. '그런 노래였다'라고 말한 것은 이제 내게 '임을 위한 행진곡'은 또 다른 기억과 함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기억이 긍정적인 것이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기이한 쪽에 가깝다.
 
매일 오후 5시 18분이 되면 전라남도청 구 본관 앞 시계탑에서는 어김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온다. 이는 제 1회 광주퀴어문화축제가 열렸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 나는 축제 반대 세력과 우리를 분리하기 위해 경찰이 쳐놓은 펜스를 등지고 앉아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사람들이 반주에 맞추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지나가던 시민들인가 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그 노래를 부른 것이 혐오 집단 쪽 사람들이이었다는 것이다. 당혹스러움과 씁쓸함이 교차했다.
 
 21일 광주시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광주퀴어문화축제가 열려 참가자들이 주변 도심을 행진하자 이를 막으려는 단체와 경찰 간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21일 광주시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광주퀴어문화축제가 열려 참가자들이 주변 도심을 행진하자 이를 막으려는 단체와 경찰 간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씁쓸한 기억과 함께 남게 된 '임을 위한 행진곡'
 
돌이켜 보면 아주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지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광주 시민들에게 각별한 노래라고 한다. 그리고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고 혐오를 표출하는 사람들 중에 광주 시민이 없었을 리도 없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광주와 5.18 민주화 운동의 이름으로 축제를 금지하라고 주장하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5·18 구속부상자회 비상대책위'는 성명서를 통해 '신성한 5·18 민주광장에서 '퀴어 행사'가 웬 말이냐'고 주장하며 광주퀴어문화축제를 '도를 넘어선 패륜적 행사'라고 지칭했다고 한다. 이들은 그렇게 요구했다. 꼭 하고 싶다면 실내에서 해라, 5.18 민주광장에서는 허락할 수 없다. 도대체 성적소수자의 존재를 어떻게 보기에 우리의 축제가 광장의 명예와 의의를 더럽힌다고 생각한 것일까. 왜 안에서 숨은 채로 해야지 밖으로 드러나선 안 된다고 여긴 것일까. 암담한 기분이 들 따름이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혐오 집단은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을 5.18 민주광장에서만 몰아내고자 한 것도 아니었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우리를 향해 '광주 것들이 아니면 집으로 가라'라고 외쳤다. 하지만 '내 집이 여기인데 어디를 가'라는 참가자들의 답변처럼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던 광장에는 분명 '광주 시민'도 있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혐오 집단 중 한 사람은 축제 현장을 지키는 경찰을 붙들고 '광주 시민들을 보호해주세요', '광주 시민들은 폭력을 쓰지 않습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렇다면 경찰이 보호하는 축제의 참가자들은 '광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일까? 그러니까 이들이 외친 구호에 따르면 광주에는 성적소수자와 그들의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셈이 된다. 그 사람들이 등장하여 행사를 여는 것 자체가 폭력적인 일이 된다. 이 같은 주장은 혐오의 오래된 속성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카롤린 엠케는 자신의 책 <혐오사회>에서 혐오는 공동체가 동질성‧본연성‧순수성을 가지길 바라는 욕망을 기저에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회를 신체로 은유하는 언어적 이미지는 공동체가 하나의 몸처럼 확정되고 완결된 것이며 경계를 설정하는 피부로 둘러싸여 있다는 상상을 하도록 만든다. 이때 이질적인 존재, 낯선 타인은 신체에 침투하여 질병을 유발하는 병균처럼 여겨진다. 아마 이성애 중심주의와 성별이분법에 갇힌 혐오 집단에겐 성적소수자들이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서 광주에 아무리 많은 성소수자들이 살아도 혐오 집단들은 그들을 끝까지 외부인 취급한다.
 
'퀴어축제 반대한다' 21일 광주시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광주퀴어문화축제가 열려 참가자들이 주변 도심을 행진하자 반대단체가 항의하고 있다.

▲ '퀴어축제 반대한다'21일 광주시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광주퀴어문화축제가 열려 참가자들이 주변 도심을 행진하자 반대단체가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5.18의 광주가 지향했던 가치는 혐오가 아니다
 
그런데 혐오 집단의 주장처럼 광주에서 성소수자들이 몽땅 사라지고 퀴어문화축제가 열리지 않으면 공동체는 '순수성'을 가질 수 있을까? 그래서 5.18 민주광장은 명예로운 공간으로 남을 수 있을까? 이 질문과 함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임을 위한 행진곡'의 첫 구절이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물론 이 노래의 주인공이라 할 박기순과 윤상원의 운명이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그들의 이름과 사랑은 명예로운 역사로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격동하는 투쟁 속의 개인이 그런 미래를 알리는 만무하다. 이들은 '아무 것도 남기지 않겠다'는 태도로 사회적 정의를 위해 투신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러했기에 박기순과 윤상원의 사랑과 명예와 이름은 공동체의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이는 현재에도 마찬가지다. 1980년 5월의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였음은 아마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광주를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만들었는지를 망각하고 온몸을 던져 그 가치를 실현하기를 멈춘다면 그 도시에 남는 것은 오직 불명예와 치욕뿐일 것이다.
 
그러나 광주퀴어문화축제를 방해했던 혐오 집단은 광주를 그런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신군부의 독재에 맞서 일어났음을 생각해보라. 독재가 무엇인가? 하나의 조직이나 개인이 오직 자신의 의지대로만 국가와 사회를 움직이고자 하는 행위가 아닌가. 민주주의의 부재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독선적인 체제는 결과적으로 사회에 다양성이 깃드는 것을 막는다. 전두환이 자행했던 각종 사상 탄압과 검열을 생각해보라. 이는 사람들이 독재자가 허용하는 천편일률적인 문화 속에서 그러한 인간으로 살아가야함을 의미한다. 존재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소수자들을 공동체에서 몰아내고자 하며 사회를 동질적인 인간으로만 채운 채 그것이 '깨끗한 상태'라고 여기는 것은 독재자의 욕망에 더 가깝다. 그것은 반(反)민주주의적인 것이며 5.18의 광주가 지닌 정신과 반대되는 것이다.
 
온전한 삶이 가능한 공동체를 꿈꾸며
 
마지막으로 부연하고 싶은 것은, 아무리 혐오 집단이 이 사회를 자신들이 규정하는 '정상적인 존재'로만 채우려고 해도 이는 사실 불가능한 욕망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아무리 우리를 무시하고 없는 사람처럼 취급해도 성소수자인 나를 비롯하여 다양한 소수자들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퀴어문화축제에 매번 등장하는 구호처럼 우리는 사회의 어디에나 있고 그렇기에 혐오하는 사람이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주변에 소수자 한 사람 두지 않은 채 살아가기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즉 그들이 이야기 하는 '오염',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과 다른 이와의 뒤섞임이란 공동체 생활을 하는 인간이라면 맞이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운명이다. 여러 사회적 동물들 중 하나인 인간이 사는 생의 전제인 셈이다. 그러한 현실을 피할 진공의 공간이라고는 오직 죽어서 들어갈 관 말고는 없다고 생각한다.
 
혐오는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삶을 충만하게 살지 못하도록 만든다. 혐오하는 사람은 주어진 그대로의 삶을 살지 않기에 제대로 살 수가 없고, 혐오받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기에 역시나 살 수가 없다. 혐오와 이로 인한 배제와 차별은 사회 전체를 병들고 죽어가게 만든다. 이런 공동체에서 어떤 이의 삶이 행복할 수 있겠는가. 이는 분명 진전이 아닌 퇴보다. 다시 한 번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를 인용하고자 한다. 이 노래의 클라이맥스는 다음과 같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나는 삶이 아닌 것에 정박되고 싶지 않다. 혐오를 뒤로한 채 멸시와 배제가 사라진 세상을 향해 앞서서 나가는 사람을 쫓고 싶다. 그렇게 탈출해 산 자로 계속 남고 싶다. 구석에 숨기를 강요받는 삶, 삶이라 부를 수 없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축제가 끝나고 광주에서 서울로 돌아온 새벽, 집으로 가는 택시에 앉아 나는 날선 혐오의 말을 뱉어내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존재하는 그대로 살고 싶다. 존재하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고 사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 그 충만한 풍경을 인정하고 축복하는 사람들과 살고 싶다. 살고 싶다. 나는 살고 싶다.
 
나는 언젠가 소수자인 우리도, 우리를 반대했던 그들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 바람이 너무 큰 꿈은 아니기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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