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인기가 연일 하늘을 찌른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 승리, 그리고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열풍을 등에 업고 벤투호가 출항했다. 이후 벤투호는 코스타리카, 칠레, 우루과이, 그리고 파나마까지 9월과 10월에 걸쳐 국내에서 열린 A매치 4경기 전석 매진을 이뤄냈다.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또 다른 국가대표팀이 있다. 지난 2015년 대한민국에게 12년 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과 사상 첫 16강 진출을 안겼고, 죽음의 평양 원정과 아시안컵을 통해 2회 연속 월드컵 본선 티켓을 가져온 이들. 많은 관심과 응원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똑같이 머나먼 타지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뛰며 3회 연속 아시안게임 동메달을 가져온 이들. 바로 2019 프랑스 여자 월드컵을 앞둔 대한민국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이다.

'슈퍼소닉' 전가을은 오랜 시간 여자축구를 지켜온 산 증인이다. 조소현, 심서연, 권하늘 등과 함께 '한국 여자축구의 첫 황금세대'로 불리는 1988년생 세대의 일원으로 활약했고, 12년 동안 태극마크를 달고 활약하며 세 차례의 아시안게임 동메달, 2015 캐나다 여자 월드컵 16강 등의 굵직한 업적을 쌓았다. 2009년 출범한 WK리그의 개국공신이자 미국 여자축구프로리그와 호주 리그를 경험한 최초의 선수, WK리그 개인통산 150경기 출전 등 개인 커리어도 흠잡을 데 없다.

국내 복귀한 전가을 "더 늦기 전에 한국 팬들에게 내 모습 보이려고"
 
 인터뷰에 응한 전가을

인터뷰에 응한 전가을 ⓒ 청춘스포츠

  
카페에서 만난 전가을은 '경기 후 인터뷰는 몰라도 개인 인터뷰는 오랜만'이라며 쑥쓰러워했다. 아시안게임에 다녀온 뒤 처음으로 하는 인터뷰라는 말도 덧붙였다.

아시안게임은 막을 내렸지만 전가을은 쉬지 않고 달려왔다. WK리그 일정을 빠짐없이 소화했고, 인터뷰 당일 저녁에도 파주 NFC에서 FIFA U-17 여자 월드컵 출전을 앞둔 17세 이하 여자축구대표팀 후배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이 예정되어 있었다. 숨가쁜 일정에 피곤할 법도 했지만, 전가을은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 일단 만나게 되어 반갑고 영광이다. 아시안게임 이후 어떻게 지냈나.
"아시안게임 내내 날씨도 덥고, 일정도 빡빡하고, 음식과 숙소도 불편했다. 여자축구 경기는 자카르타가 아니라 팔렘방에서 열렸는데, 선수촌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서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그냥 선수촌 안에서만 지냈다. 대회 끝나고 귀국했더니 한국은 여전히 더운 데다 WK리그 경기도 매주 소화해야 했다. 그냥 '힘들었다'는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웃음)."

- 화천KSPO에서 보내는 첫 시즌이 거의 마무리됐다. 스스로 이번 시즌을 돌아본다면?
"아쉬운 시즌이다. 수원이나 구미를 한 번씩만 잡았더라면 우리도 플레이오프 경쟁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부족했기 때문에 이렇게 승점 차가 났다고 생각한다. 개인기록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았다. 어제 동료들이 말해줘서 알았는데 이번 시즌 9골 10도움이더라. 선수생활 하면서 가장 좋은 기록이다. 리그 최종전만 남겨두고 있는데, 최종전에서는 10-10을 위해 골 욕심을 조금 내볼까 한다.
 
이러나 저러나 결국 이번 시즌은 '아쉽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것 같다.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부상자들도 나오면서 우리가 준비한 것들을 온전히 다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화천KSPO는 내년이 많이 기대되는 팀이다. 나 역시도 개인적으로 큰 기대를 걸고 있다."

- 지난 시즌 화천이 보여줬던 돌풍에 비해서는 다소 잠잠한 시즌이었다. 
"내가 동계훈련이 다 끝나고 팀에 합류하는 바람에 동료들과 맞춰 볼 시간이 없었다. 후반기에 들어오면서 호흡도 잘 맞고 경기력도 올라왔다. 전반기에 좀 더 잘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상으로 이번 시즌 함께하지 못했던 (강)유미도 내년에 돌아오니까 큰 힘이 되리라 믿는다."

- 동계훈련 하니까 나오는 말인데, 사실 멜버른과의 계약이 끝난 뒤 국내복귀를 선언했을 때 많이 놀랐다. 당연히 미국 무대에 재도전하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고 특정 팀까지 구체적으로 거론되던 상황이었다.
"호주 시즌이 끝난 뒤 멜버른 감독님께서 미국행을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내가 거절했다. 물론 여자축구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다시 한 번 미국 무대에 도전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내가 앞으로 선수생활을 할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가 팬들과 지인들, 동료들,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내 모습을 다시금 증명하고 싶었다.
 
2016년 부상으로 미국에서 돌아온 뒤 그 시즌을 다 날렸고 2017년에도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내게는 그게 마음 한 켠에 계속 응어리로 남아 있었다. 그때의 모습이 팬들이 기억하는 내 마지막 모습으로 남는 것이 싫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굳힌 이유다.
 
한국행을 결심하자 당연히 주변에서는 다들 나를 말렸다. 아직 충분히 해외무대에서 도전할 수 있는데 왜 벌써 돌아가냐고 하더라. 그럼 그동안 내 몸은 뭐 멀쩡하겠나(웃음). 나는 언제나 최고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다. 여기서 더 나이가 들고 점점 기량이 떨어지는 시점에 한국으로 돌아가서 예전만 못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그렇게 밀려나서 은퇴하고 싶지는 않다. 조금이라도 젊을 때 팬들에게 더 좋은 경기력, 더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 멜버른 이적 당시 이미 한국행을 결심하고 있었나?
"거기까지 내다보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그냥 호주에서 러브콜이 왔고 이것 또한 좋은 기회니까 일단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호주 시즌이 끝나갈 무렵 나도 미국과 한국 가운데 선택해야 할 시점이 됐고, 앞에서 말한 이유로 한국을 선택했다."

"소속팀 화천KSPO에 보답하려는 마음이 끊임없이 나를 달리게 한다"
 
 전가을은 낯선 팀 화천KSPO에서 국내복귀 첫 시즌을 보냈다

전가을은 낯선 팀 화천KSPO에서 국내복귀 첫 시즌을 보냈다 ⓒ 전가을

  
- 국내 복귀 행선지가 친정팀 수원이나 인천이 아닌 화천이라는 점도 의외였다. 화천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한국행을 결심했을 때부터 팀은 상관이 없었다. 그냥 한국에서 뛴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했다. 그런데 앞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내가 호주 시즌이 종료된 뒤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동계 훈련을 못했다. 그 시점이면 팀들은 이미 선수 등록을 마치고 다가올 시즌에 대한 구상을 다 끝낸 시기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내가 뚝 떨어진 것이다. 감독님들은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구단 입장에서는 이미 선수단 T/O는 다 찼지, 1년치 예산은 다 짜놨지, 나나 팀이나 모두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때 화천KSPO가 손을 내밀었다. 마침 외국인 선수 세 자리 가운데 한 자리가 비어 있었는데 그 자리에 나를 받아준 것이다. 그래서 사실 내가 화천의 세 번째 외국인 선수인 셈이다. (화천KSPO는 이번 시즌 글라우시아와 치아키 두 명의 외국인 선수만 보유하고 있다-기자 주)"

-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미국에서 돌아온 후, 2017시즌 주전 경쟁에 어려움을 겪었다. 몸상태를 끌어올리기가 어렵지는 않았나. 그리고 현재 컨디션은 어느 정도인지.
"많이 힘들었다. 힘들었는데, 돌이켜보면 또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빨리 몸을 끌어올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멜버른에 가서는 이적 후 적응 문제로 결장한 첫 경기를 빼면 전부 다 출전했다. 멜버른에서 경기를 많이 뛰면서 경기 감각이나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다.
 
올해는 급하게 한국으로 복귀해서 시즌을 소화하느라 내 컨디션이 어땠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뛰었다."

- 당장 출전시간이 작년과 비교해 두 배로 늘었다.
"정말인가(웃음). 내가 우리 팀에서 출전시간 1위라는 말은 들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 직관 가서 봤을 때 90분이 다 된 시점에도 끊임없이 상대를 압박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전가을' 하면 떠오르는 테크니션 혹은 프리킥 스페셜리스트 등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여서 새롭기도 했다. 
"나도 매년 달라지는 것 같다. 팀이 바뀌고 감독님이 바뀌면서 내게 요구하는 것들도 달라지고, 또 그에 맞춰서 선수가 플레이스타일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는 많은 후배들이 지켜보고 있고, 나를 보러 경기장을 찾아준 팬들, 나를 위해 쉽지 않은 선택을 한 화천KSPO에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이 끊임없이 나를 달리게 하는 것 같다."

- 2009년에 데뷔해 어느덧 10년차, WK리그 개인통산 150경기를 뛰었다. 데뷔 초의 자신과 현재를 비교하면 어떤 점이 달라졌다고 느끼나.
"사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러나 그동안의 경험이 축구선수 전가을, 사람 전가을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힘든 시간들도 많았지만, 결국은 나를 채워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내게 꼭 필요했던 것 같다.
 
어릴 때는 축구선수 전가을을 채우고 싶은 욕심이 컸다면 지금은 사람 전가을을 채우고 싶은 욕심이 더 크다. 이런 욕심들이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를 팀을 위해, 팬들을 위해,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뛰게 만드는 것 같다.
 
굳이 달라진 점을 꼽자면 어릴 때는 기복이 심했는데 현재는 기복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 감독 입장에서도 기복이 없는 선수가 더 신뢰할 수 있고 좋지 않은가."

- 은퇴 후의 계획이 궁금하다.
"일단 지도자를 할 생각은 없다. 대신 행정가쪽으로 진출하고 싶다. 나를 비롯한 88년생 또래들이 선수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선배들의 조언을 들을 기회가 많이 부족했다. 우리는 언제나 개척자의 입장이었다. 후배들에게 나의 경험을 더 얘기해주고 싶다. 오늘도 저녁에 파주 NFC에서 후배들에게 특강이 예정되어 있다. 물론 현장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뒤에서 후배 선수들을 지원하는 일도 중요하고, 한 선수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전가을이 돌아본 월드컵과 아시안 게임

- 이제 국가대표 얘기를 해보자. 현재까지 A매치 96경기 38골을 기록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와 득점이 있다면 하나씩 꼽아달라. 그리고 내년 센추리 클럽 가입이 유력한데, 이에 대한 소감은?
"골은 아마 다들 아실 거다. 2015 동아시안컵 일본전에서 넣은 후반 추가시간 프리킥 골. 그건 다시 차라고 해도 못 찬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경기는 2015 FIFA 여자 월드컵 조별예선 코스타리카전(2-2 무). 내가 골을 넣기도 했고, 우리나라가 여자 월드컵 본선에서 사상 첫 승점을 따낸 경기이기도 하다."
 
 2015 캐나다 여자 월드컵 코스타리카전에서 골을 넣고 환호하는 전가을

2015 캐나다 여자 월드컵 코스타리카전에서 골을 넣고 환호하는 전가을 ⓒ 대한축구협회

  
- 월드컵을 뛴 느낌은 어땠나.
"사실 그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내가 정말 엄청난 곳에 다녀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2003년 이후 12년만에 진출한 월드컵 본선이었고, 또 그 무대에서 선택을 받은 것으로도 모자라 골까지 넣었다. 하나하나가 내 인생에 다시 올까 싶을 정도로 대단하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센추리 클럽에 대해서는)지금까지 출전한 96경기보다 앞으로 남은 4경기가 더 힘들고 더 무겁게 느껴진다. 사실 4경기를 뛸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그 시점에 내가 감독님의 구상에 없을 수도 있고 내 경기력이 기대 이하여서 감독님의 선택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당연히 100경기를 채운다면 좋다. 내게도 큰 명예니까. 하지만 남은 4경기에 집착하고 싶지는 않다. 이제는 욕심부릴 나이도 지났고, 무엇보다 '어떻게' 뛰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실력이 안되는데 '기록 챙겨주기'식으로 떠밀려 출전하는 것은 나도 원하지 않고 또 그런 일이 벌어져서도 안된다. 그럴 바에는 96경기에서 끝내는 게 낫지. 이렇게 생각하니 앞서 센추리 클럽을 달성한 (권)하늘이나 (김)정미 언니, (조)소현이, (지)소연이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 가장 최근 국제대회가 아시안게임이었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특히 아쉬움이 클 것 같은데.
"아시안게임은 아쉽다는 선수들이 많은데, 나는 사실 아쉽다기보다는 속상했다. 현실적으로는 마지막 아시안게임이었고, 대진운이나 멤버 등 여러가지를 따져봤을 때 이번이 금메달을 따기 가장 좋은 기회였다.
 
 현실적으로 마지막이었던 만큼 전가을에게는 아시안게임이 더욱 절실했다

현실적으로 마지막이었던 만큼 전가을에게는 아시안게임이 더욱 절실했다 ⓒ 대한축구협회

  
(일본과의 준결승에 대해서는) 경기 내용은 이겼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일본은 자신들의 색깔이 명확했고, 그것을 앞세워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일본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내게는 '벽'을 실감한 대회였다. '많이 따라잡았다', '다음에는 이길 수 있다'와 같은 희망고문이 아니라, 이런 모습이라면 한국 여자축구는 앞으로도 계속 일본에게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듣기에 마음 아픈 이야기다. 
"이제는 냉정해져야 한다. 동메달만 세 번째다. 시상식 때 메달을 쳐다보기도 싫더라. 어린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랬다. 금메달을 딴 일본과 은메달을 딴 중국의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국가 차원에서의 지원, 거기에서 나오는 그들의 저력을 지켜보면서 우리의 현실에 실망했다. 내가 태극마크를 달고 뛴 12년 동안 달라진 게 없다."

"지금 한국 여자축구의 위치가 어디인지 냉철하게 판단하고 돌아봐야"

- 여자축구 선진국들을 바라보며 흔히들 저변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미국과 호주 리그를 최초로 경험한 입장에서 그곳의 저변은 어땠나.
"일단 관중 수부터 어마어마하다. 호주에서 뛸 때는 홈 관중이 2천 명 정도였는데, 미국은 진짜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웨스턴 뉴욕 플래시 시절 올랜도 프라이드와 경기가 있던 날 알렉스 모건 보려고 3만 명이 들어가는 스타디움이 꽉 들어찼다.
 
 멜버른 빅토리 시절 전가을

멜버른 빅토리 시절 전가을 ⓒ 전가을

  
그리고 모든 구단이 남자팀과 마찬가지로 산하 8세, 12세, 15세 등의 유스팀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경기 다음날이면 1군 선수들이 유스 선수들을 대상으로 일일 축구교실 같은 프로그램을 연다.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지도자를 미리 체험할 수 있고, 어린 선수들은 1군에서 뛰는 언니들을 보며 꿈을 키운다. 또한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한 선수들에게는 나중에 지도자 자격증을 딸 때 일종의 베네핏이 주어진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은퇴 이후까지 선순환이 이뤄지도록 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다. 당장 딸이 축구선수 하고 싶다고 하면 허락하겠나? 미국은 그런 고민이 없다. 미래가 있으니까.
 
축구를 즐기는 여성들도 정말 많다. 미국은 아예 대학교마다 여자축구부가 존재한다. 거기서 잘하는 친구들은 선수가 되고,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취미로 즐기는 거다. 체육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미국과 호주는 여학생들도 축구는 기본으로 다 한다. 종목을 병행하는 경우도 많아서, 멜버른에서 함께 뛴 동료 중 하나는 대학교 때 크리켓 선수였다고 하더라.

가장 부러웠던 점은 이 친구들에게 주어지는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시야도 넓어지고 사고도 트인다. 어느 하나에 얽매이지 않게 되고 멘탈 형성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축구하는 사람은 축구만 하고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만 하는 구조다. 하기 싫어도 이거 아니면 할 게 없다."

- 내년에 2019 프랑스 여자 월드컵이 열린다. 어떻게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우리 모두가 정말 냉정해져야 한다. 지금은 특히 더 냉정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 황금세대라고는 하지만 사실 성장하고 있는 후배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당장 88년생 선수들이 나이가 많이 들었고 지금 대표팀 주축을 맡고 있는 지소연, 이민아 세대도 퇴장하면 그때부터는 정말 어떻게 할 것인지를 머리 싸매고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 버텨온 선수들에게는 고맙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죽을 둥 살 둥 노력해서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 온 이들이다. 앞으로 뛸 날이 그리 많이 남지는 않았지만 마지막까지 책임감을 갖고 임해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안 하면 누가 하나. 이번 아시안게임을 경험하면서 선수들 스스로도 반성을 많이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우물 안에서만 놀지 않을 테니까. 세계를 상대로 경쟁하려면 각자가 더 노력하고 더 발전해야 한다. 선수들은 기량을 갈고 닦아야 하고, 감독님·코치님들도 더 연구하셔야 하고, 협회도 유소년 양성과 저변 확대를 위해 고민해야 한다.
 
이런 부분들이 다 맞아떨어져야 아시안컵, 아시안게임을 넘어 월드컵과 같은 큰 무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이제는 '소속팀에서 잘해서 대표팀 뽑혀서 월드컵에서 골 넣고 싶다'와 같은 식상한 대답에서 탈피해야 한다. 어떻게 임할 것인지, 지금 우리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냉철하게 판단하고 돌아봤으면 좋겠다."

- 마지막으로 팬들, 그리고 여자축구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팬들에게는 고맙다. 솔직히 남자축구가 더 재밌고 좋을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우리 경기를 봐주는 것이 너무 고맙다. 미안한 점은 남자축구에 비해 유니폼이나 이런 것들을 쉽게 구매할 수 없다는 것? 그런 것들이 미안하다. 또한 나를 비롯해 다른 선수들을 좋아하는 팬들도 많은데 그 팬들은 얼마나 선수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고 싸인도 받고 싶겠나.
 
팬 사인회와 같은 작은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것들은 선수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자신을 만나러 온 팬들을 보며 동기부여도 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갖게 된다. 직관하러 온 팬들을 위해 경기장에서 유니폼을 판매하는 등의 이벤트를 진행해도 좋을 것 같은데, 이런 팬들을 위한 부분들이 조금 성의가 부족하지 않나 생각한다.
 
 전가을은 팬들에게는 고마움을, 팬들을 위한 이벤트가 부족한 현실에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전가을은 팬들에게는 고마움을, 팬들을 위한 이벤트가 부족한 현실에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 청춘스포츠

  
결국은 WK리그가 있어야 대표팀이 있다. 앞으로 WK리그가 더 발전하고 알려지고 팬들에게도 가까이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여자축구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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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인터뷰 일시 : 2018년 10월 10일 오전 11시
장소 : 백석역 인근 카페
진행 : 청춘스포츠 6기 윤지영, 8기 김소영
여자축구 국가대표팀 전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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