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영 사장 시절 KBS 사측이 'KBS판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기자 인사를 별도로 관리했을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뒤늦게 나왔다.
 
 지난 16일 열린 KBS 진실과미래위원회 조사 결과 1차 설명회에서 정필모 KBS 부사장이자 진실과미래위원회 위원장.

지난 16일 열린 KBS 진실과미래위원회 조사 결과 1차 설명회에서 정필모 KBS 부사장이자 진실과미래위원회 위원장. ⓒ KBS

 
방송 공정성과 독립성 침해 사례를 조사해 진상을 규명하고자 지난 6월 5일 만들어진 KBS 진실과미래위원회는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4개월 동안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상화 모임' 사실상 '화이트리스트'로서 역할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서는 박근혜 정부 시절 KBS 보도에 비판적인 KBS 기자협회를 두고 "기자협회가 정상화돼야 한다"면서 결성한 'KBS 기자협회의 정상화를 촉구하는 모임'(아래 '정상화 모임')이 사실상 화이트리스트로서 역할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2016년 3월 정상화 모임에 이름을 올린 111명의 KBS 구성원은 KBS 사내에 성명서를 냈다. 이 성명서에서 정상화 모임은 "KBS 기자협회는 언론자유에 유독 관심이 많다. 하지만, 방법도 레토릭도 과격하고 정치적이고 편향적이다. 민주노총 산하 특정노조의 2중대라는 비판을 곱씹어봐야 한다"라며 KBS 기자협회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KBS 진실과미래위원회는 이 정상화 모임의 참여 여부가 "일종의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 진실과미래위원회는 △ 모임 결성 이후 선발된 신규 기자 앵커 전원이 모임 가입자 가운데 선발됐으며 △ 취재 기자 특파원 12명 중 10명이 모임 참여자였다는 점 △한 앵커의 경우 정상화 모임에 참여를 거절하자 뚜렷한 이유 없이 앵커 자리에서 내려왔다는 점 등을 들었다.

또 진실과미래위원회는 조사 과정에서 정상화 모임 결성 이후 KBS 본사 기자 563명을 부서별로 나열한 뒤 '정상화 모임' 가입 여부를 구분해서 표시해둔 엑셀 파일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KBS 진실과미래위원회 "문서는 엑셀 파일로 당시 KBS 본사 기자 563명을 부서별로 나열한 뒤 비고란에 정상화 모임 가입 여부를 구분해 표시해 전체 가입자/비가입자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작성돼있다. 인사권한을 가진 보도본부장의 지시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KBS 진실과미래위원회 "문서는 엑셀 파일로 당시 KBS 본사 기자 563명을 부서별로 나열한 뒤 비고란에 정상화 모임 가입 여부를 구분해 표시해 전체 가입자/비가입자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작성돼있다. 인사권한을 가진 보도본부장의 지시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 KBS진실과미래위원회

 
이 엑셀 파일을 두고 진실과미래위원회는 "기자 인사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발견된 파일로 인사 권한을 가진 보도본부장의 지시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인사부에서 사용하는 기본 파일을 이용해 인사 자료로 활용 가능한 수준으로 중간 가공된 자료라는 측면에서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로 악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진실과미래위원회는 지난 7월 KBS 본사 기자 56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응답률 52.7%)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84%가 정상화 모임 참여 여부에 따라 인사상 이익 또는 불이익이 발생했을 것이라 답했다고 밝혔다.

"KBS 팔아 이름값 올렸으면" 운운

진실과미래위원회는 '정상화 모임' 결성 이후 "KBS 내부에서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어려워지며 수많은 방송 공정성 훼손과 부당 인사 사례가 발생했다"고 언급했다.

지난 2016년 7월 13일 KBS 보도국 A 기자는 한국기자협회보에 '정상화 모임' 비판 글을 기고했다가 이틀만인 15일 제주총국으로 강제 전보됐다. 인사로 인해 비판을 받자 보도본부 국·부장단은 3일 뒤인 18일 성명서에서 "KBS인으로서 KBS를 팔아 이름값을 올렸으면 당당하게 뒷감당도 하는 게 당연한 자세가 아닌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진실과미래위원회는 "'정상화 모임' 등장 이후 조성된 억압적 분위기와 공정성·자율성 침해는 보도 경쟁력 저하로 이어졌다"면서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과도한 홍보성 기사 지시, 성주 군민 사드 배치 반발 보도 관련 강압적 취재 지시 등을 들었다.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필모 KBS 진실과미래위원회 위원장은 "정상화 모임에 가입해 혜택을 본 입장에서는 화이트리스트,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블랙리스트다. 기자를 이렇게 관리했다는 것은 공조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진실과미래위원회 블랙리스트 정상화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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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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