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의 가사들이 간직한 심리학적 의미를 찾아갑니다. 감정을 공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까지 생각하는 '공감'을 통해 음악을 보다 풍요롭게 느껴보세요. - 기자말

마치 상담실에서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했다. 지난 10년간 상담자로 일하면서 모호하고, 답답하고, 무기력한 우울의 악순환에 빠져 있는 내담자들을 만날 때마다 상담자인 나 역시 축 처지는 감정을 함께 느껴왔다.

박원의 신곡 '나(작사 박원, 작곡 박원)'는 그런 느낌의 곡이었다. 놀라운 건 결코 편하지 않은 이 노래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음원 사이트의 댓글 창에는 '가사가 내 이야기 같았다' '자기혐오를 멈추기 위해 오늘도 이 노래를 듣는다'는 반응이 많다.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우울이라는 감정을 경험한다는 이야기다. '마음의 감기'라고 불릴 만큼 흔하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우울. 박원이 노래하는 우울한 마음을 들여다본다.

우울을 가져오는 생각들

우울증의 인지치료를 창시한 아론 벡은 우울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우울을 유발하는 것은 상황이나 사건 자체가 아니라 이를 해석하는 사람들의 사고에 있음을 밝혀 낸 그는 우울한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의 사고방식을 갖는다고 했다.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 사고', '세상과 일에 관한 부정적 사고', '미래에 대한 부정적 사고'다.

박원은 이 세 가지 부정적 사고를 모두 노래 전반에 담아내고 있다. '두렵고 강하고 절실했던 나의 다짐들이 아직까지 내 남은 삶에 큰 도움이'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할 수 없는 기준도 없는 게'는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세상 자체에 대한 회의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그렇게 나는 내일도 변하지 않겠지. 몇 번을 깨져도 같겠지'는 미래에도 나의 삶이 좋아질 수 없다는 미래에 대한 부정적 사고를 보여준다. 또한, '내가 이해가 안 돼' '내가 용서가 안 돼'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 사고를 분명히 담고 있다. 이 세 가지 사고는 명확하게 분리되기 보다는 서로 얽혀서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도대체 왜 이토록 지독한 우울에 빠져든 걸까? 벡에 따르면 우울한 감정을 유발하는 것은 개인의 '생각'이지만, 그런 생각을 유발하는 배경 역시 존재한다. 박원을 우울하게 만든 구체적인 상황은 노래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두렵고 강하고 절실했던 다짐들',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할 수도 없는 기준도 없는 게'라는 소절로 미루어 보아, 간절히 바라던 목표를 성취해내지 못했거나, 바라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해 크게 낙담했을 가능성이 크다.

내가 만든 서러운 하루
 
 '나'가 수록되어 있는 박원의 앨범 'r'의 표지

'나'가 수록되어 있는 박원의 앨범 'r'의 표지 ⓒ 로엔엔터테인먼트

  
그렇다면 원하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우울해질까. 물론 아니다. 실패를 경험하거나 자기 자신에게 실망했을 때 대부분 아쉽고 속상한 감정을 느끼지만, 금세 훌훌 털어 내고 새롭게 도전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왜 이토록 우울해지는 걸까.

이는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 먼저 노래에서 박원은 어떤 실패나 잘못된 일의 원인을 자기 자신의 전반적인 특성에 기인한다. '내가 기대가 안 돼', '내가 이해가 안 돼'라며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심리적 위안으로 삼는 일조차 자신을 비난하는 근거로 삼는다. '네가 겪은 불행은 사실 큰 위로가 됐고 나보다 슬픈 사람만 찾아내며 용기를 내'는 것은 보편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다. 실패와 상처를 경험한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경험한 사람들을 통해 공감 받고 용기를 얻는다. 그런데 박원은 이런 자연스런 심리적 현상에 대해서도 '남의 하루를 막 깎아내며 날 커보이게 해' 라며 스스로를 비난한다.

이처럼 노래 속 박원은 자신이 간직해온 다짐들을 실현하지 못한 것을 스스로가 못났기 때문이라 여기며, 상처를 위로받는 방식마저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때문에 우울의 늪으로 더 빠져들기만 한다. 중요한 건 이런 생각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라는 점이다. 다행스럽게도 박원은 이 점은 잘 알고 있다. '오늘도 나는 나에게 많은 핑계를 해댔고 스스로 만든 서러운 하루에 갇혀서'라고 노래하는 걸 보니 말이다.

정말로 그러기를 원하는가

자신, 세상과 일, 미래에 대한 부정적 사고로 무장한 우울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이 세 가지 사고를 뒷받침할 부정적인 근거에만 주목한다. '나 뭐 잠깐은 변할 수 있겠지. 결국엔 다시 똑같겠지'라는 소절은 긍정적인 근거는 아주 잠깐 스쳐가는 것으로 무시하고, 금세 스스로를 탓하는 태도로 되돌아오는 우울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

어떻게 하면 이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을까? 먼저 스스로에게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정말 그러기를 원하는가?'라고. '그렇게 나는 내일도 변하지 않겠지. 몇 번을 깨져도 같겠지'라고 노래하는 박원은 정말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까. 스스로 질문해보면 진실을 깨닫게 된다. 진정 바라는 것은 이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변화임을, 그 변화를 누구보다 갈망하고 있음을 말이다.

후반부 박원은 '나 뭘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모르면서 또 깨닫겠지'라고 노래한다. 이는 여전히 변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고백이다. '변하지 않겠지'는 체념이라기보다는 변하는 방법을 찾지 못한 안타까운 마음의 표현인 셈이다.

진짜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면, 이제는 변화가 가능한 근거들을 찾아내야 한다. 이 변화의 근거를 찾아내는 데는 인지행동치료에서 사용하는 사고기록지가 매우 유용하다. 이 사고기록지는 전문가들이 사용하긴 하지만, 일반인들도 그 사용법을 숙지한다면 얼마든지 혼자 사용할 수 있다. <기분 다스리기> (데니스 그린버거, 크레스틴 페데스키 공저, 권정혜 역, 학지사)를 참고해보길 바란다. 하지만, 우울에 깊이 빠진 사람들은 부정적인 근거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이 기록지를 작성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땐 주변에 믿을만한 사람과 함께 하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변화를 시작하는 방법

전문적인 양식을 사용하지 않고도 스스로 변화를 시작하는 방법도 있다. 하루 중 혹은 과거에 괜찮았을 때 즉 우울하지 않고 기분이 나아졌을 때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박원이 '밤이 되면 또 난 괜찮겠지'라고 노래하듯, 아무리 우울한 사람도 24시간 우울한 상태로 보내지는 않는다. 이 '괜찮은' 순간에 어떤 기분을 느꼈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떠올리고 적어 보면 나를 괜찮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이후 의도적으로 괜찮았던 때 했던 생각들을 반복하면 점차 기분이 나아진 시간이 늘어나게 되고, 부정적 사고가 감소된다.

또한, 지금 이런 호소를 하고 있는 것이 내가 아니라 내 친구 혹은 사랑하는 이라면 어떨지 상상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의 상황과 거리를 두고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연습은 우울한 기분에 매몰된 상태에서 벗어나 상황을 보다 중립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생각이나 기분을 바꾸기 힘들다면 운동이나 산책, 영화보기 등 즐거운 활동들을 실행에 옮기면서 기분변화를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울은 감기처럼 일생 동안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매우 보편적인 심리현상이다. 하지만, 감기가 폐렴으로 악화돼 목숨을 앗아갈 수 있듯, 심각한 우울증상은 자살 등 극단적인 자기포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행히 현대의 정신의학과 심리학은 우울을 극복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개발해 냈고 대부분 효과도 좋은 편이다. 그러니 우울을 두려워하며 지레 포기하지 말았으면 한다.

무척이나 절망적이고, 변화할 수 없을 것 같다 해도 이대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변화를 위해 한 걸음 내딛을 용기가 없을 뿐이다. 일상 속에서 아주 작은 한 걸음부터 떼어보자.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머지않아 '나의 하루 내 남은 삶은 달라질 수'라며 끝을 흐린 '나'의 마지막 소절에 '있어'라고 써 넣는 자신을 만나게 되리라 믿는다.
 
박원 '나' 가사

두렵고 강하고 절실했던 나의 다짐들이
아직까지 내 남은 삶에 큰 도움이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할 수 없는 기준도 없는 게
남의 하루를 막 깎아내며 날 커 보이게 해

오늘도 나는 나에게 많은 핑계를 해댔고
스스로 만든 서러운 하루에 갇혀서

그렇게 나는 내일도 변하지 않겠지
몇 번을 깨져도 같겠지
내가 기대가 안 돼
나 뭐 잠깐은 변할 수 있겠지
결국엔 다시 똑같겠지
내가 이해가 안 돼

두렵고 강하고 알 수 없는 나의 이 다짐들이
아직까지 내 남은 삶에 큰 도움이 안 돼

네가 겪은 불행은 사실 큰 위로가 됐고
나보다 힘들고 슬픈 사람만 찾아내며 용기를 내

그렇게 나는 남들과 다르다 믿겠지
밤이 되면 또 난 괜찮겠지
내가 용서가 안 돼
나 뭘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모르면서 또 난 깨닫겠지
그래서 기대가 안 돼

왜 두렵고 강한지 이젠 알 것 같은 다짐들이
나의 하루 내 남은 삶은 달라질 수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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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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