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을 보는 소녀 서윤(허율 분).

유령을 보는 소녀 서윤(허율 분). ⓒ OCN

  
OCN 드라마 <손 the guest>에는 등장인물들이 유령을 목격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소녀 서윤(허율 분)은 아빠 차에만 타면 20대 여성이 눈에 들어온다. 낯선 여성이 피 흘리며 도로변에서 아빠 차를 쳐다보는 장면이다. 아빠가 몰래 만나는 여성의 환영이 서윤의 눈에 나타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소녀가 본 것은, 아빠 차에 치여 뺑소니 피해자가 된 여성의 유령이다.
 
지방유지 출신의 국회의원 박홍주(김혜은 분)한테도 유령이 보인다. 이 드라마에서 최고의 악령으로 설정된 박일도 귀신이 머리를 풀어헤친 섬뜩한 모습으로 한밤중에 공중에서 나타나자, 박홍주는 앞으로도 자기를 잘 도와달라는 부탁의 말을 던진다. 유권자나 후원자를 대하듯이 유령을 대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에게 기도하듯이 박홍주는 박일도 귀신한테 기원을 보낸다. 
 
 유령을 보는 국회의원 박홍주(김혜은 분).

유령을 보는 국회의원 박홍주(김혜은 분). ⓒ OCN

  
유령에 관한 증언은 서양에서도 당연히 많이 나왔다. 성경 누가복음 8장에도 적혀 있듯이, 예수도 사람의 몸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퇴마 의식을 거행했다. 8장에는 예수가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 땅에서 귀신 들린 사람을 보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는 장면이 나온다.
 
성경 안에 이런 기록이 많기 때문에, 기독교 성직자들이 퇴마사를 겸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17세기 프랑스에서는 쉬렝(Jean-Joseph Surin, 1600~1665년)이란 신부가 마귀 들린 수녀들을 구하는 퇴마사로 명성을 날렸다. 사회적 권위를 갖춘 신부들이 악령을 쫓는 의식을 거행하니, 유령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악령을 쫓는 신부들은 <손 the guest>에도 여럿 등장한다. 일례로, 세례명이 마테오인 최윤(김재욱 분)은 형을 이어 퇴마사를 하는 신부다. 그의 형은 박일도를 쫓다가 박일도의 하급 영(靈)한테 빙의된 상태에서 숨을 거뒀다. 그것이 한이 돼서인지 최윤은 퇴마사 활동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이 드라마에는 이렇게 퇴마를 담당하는 신부가 박수무당의 조력을 받아 악령을 물리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유령은 일반인들한테도 목격됐다. 남북국시대·고려시대나 조선 전기에 해당하는 중세시대 유럽에서는 그런 목격담을 근거로 유령 그림이 제작되는 일이 많았다. 심령 그림이라 불리는 이런 그림은 19세기에 심령사진이 유행하기 전에는 유령에 관한 서양인들의 의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 심령 그림의 유형에 관해 주형일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의 논문 '심령사진: 과학의 눈으로 본 혼령'은 그런 그림의 첫째 유형이 살아 있는 사람의 형태라고 소개한 뒤 둘째·셋째·넷째 유형에 관해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논문 제목은 심령사진에 관한 것이지만, 심령 그림에 관한 내용도 이 논문에 나온다.
 
"둘째, 속이 비치는 장막 같은 것으로 싸인 형태가 있다. 이때 유령은 사람의 몸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지만, 몸을 감싼 것이 일상적인 의복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과 쉽게 구분된다. 셋째, 죽은 시체의 형태다. 이 경우, 유령은 어느 정도 부패가 진행된 시체의 형태를 하고 나타난다.
 
넷째, 동물의 형태다. 유령은 새·말·개·뱀 등과 같은 동물적 형상을 띨 수 있다. 다섯째, 물건의 형태다. 건초더미·가시나무·모닥불 같은 형태가 대표적이다."

-영남대 인문과학연구소가 2014년에 펴낸 <인문연구> 제72호에 수록.
 
그림은 사람이 그리는 것이므로, 그림 내용이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옛날 사람들도 당연히 감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녀나 신부처럼 사회적 권위를 가진 사람의 증언을 토대로 제작된 그림이라는 단서가 붙게 되면, 오늘날의 사진처럼 그런 그림에도 객관적 신뢰성이 부여될 수 있었을 것이다.
 
중세 서양에서 그런 그림들이 많이 나왔다는 것은, 그 시대 사람들의 대다수가 유령의 존재를 믿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유령의 존재 유무가 확증되지 않았기에, 유령을 봤다는 주장이 결정적 반박을 받지 않고 계속 확산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유령 그림들이 유포된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가톨릭 신부의 퇴마의식을 묘사한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년)의 그림.

가톨릭 신부의 퇴마의식을 묘사한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년)의 그림.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유령에 관한 목격담은 당연히 옛날 한국에도 있었다. 그런 목격담 중 하나가 광해군의 최측근이자 대학자였던 어우당 유몽인(1559~1623년)의 <어우야담>에도 수록돼 있다. 이 책에 실린 목격담 중 하나는 전라도 관찰사 고형산(1453~1528년)의 보좌관이 여자 유령 때문에 고생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조선 중종 때 이야기로 추정된다.
 
김씨 성을 가진 그 보좌관은 도사(都事)라는 종5품 관직을 갖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무렵, 그가 동헌에 앉아 쉬고 있을 때였다. 낯선 여성이 신발을 끌며 그 앞을 지나갔다. 한 번에 시선을 끌어당길 만한 외모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호기심이 생긴 김 도사. 도사(道士)가 아니라 도사(都事)다. 김 도사는 "자네 누구인가?"하며 말을 걸었다. 여성은 "전주교방 기생입니다"라고 답했다. 도사가 "전주교방에서 자네 같은 관기는 못 봤는데"라며 쓸데없이 대화를 이어가자, 여성은 "새로 온 기생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런 식의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에 두 사람은 다정해졌다. 그날부터 두 사람은 밤을 함께 보내는 사이가 됐다. 얼마 뒤부터 도사는 점점 말라갔고, 결국 자리에 눕고 말았다.
 
부하 직원이 자리에 눕자, 관찰사 고형산은 무당들을 불러 굿을 해줬다. 김 도사가 자기 옆에 있다고 말한 관기를, 관찰사는 유령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띄지 않는 관기가 김 도사의 눈에는 보인다고 하니, 굿을 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우야담

어우야담 ⓒ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한바탕 굿을 벌인 뒤 고형산은 도사 옆에 관기가 있는지 확인했다. 잠시 자리를 비웠다는 말을 들은 고형산은 한밤중에 도사를 말에 태워 다음날 정오경 한양 집에 도착하도록 해주었다. 한양까지 연결되는 각 역(station)에 미리 연락을 띄워, 최상급 말을 즉각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해둔 덕분이었다. 고형산의 지시에 따라, 도사가 자기 방에 들어간 뒤 집안 곳곳에 붉은 부적이 붙여졌다.
 
그렇게 해서 한양 집에서 요양을 취하던 도사는 이틀 뒤 지붕에서 들려오는 통곡을 들었다. 통곡과 함께 다음과 같은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낭군께서 저한테 이렇게 박정하게 대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리 저한테 싫증이 나셨더라도 어찌 이렇게 무정하실 수 있습니까? 붉은 옷 입은 군졸들이 문을 막으니 제가 어찌하겠습니까?"
 
붉은 부적의 효험이 있었는지, 얼마 뒤부터 유령이 도사 곁을 떠났다고 한다. 도사가 건강을 회복한 모양이다. 그의 경험담이 세상에 널리 퍼져 <어우야담>에까지 소개됐던 것이다. 그때부터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기에, 당대의 저명한 학자인 유몽인이 자기 책에 담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몽인을 비롯한 선비들이 유령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였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 시대 사람들 못지않게 그들도 현실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가급적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사고하려 했다.
 
하지만 있다고 하기도 애매하고 없다고 하기도 애매한 데다가, 유령을 봤다는 주장들이 계속해서 나오므로, 그런 세상 분위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차원에서 자기 책에 수록했다고 볼 수 있다. 유령을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없다는 증거도 확실치 않으니 유보적 관점에서 일단 기록했을 수 있다.
 
만약 유령에 관한 증언들이 실제 사실이고 유령이 진짜로 있다면, 이 우주 안에서 유령이 하나의 '실체'가 되어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우주의 구성원리에 관한 과학적 탐구가 앞으로 어느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유령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런 날이 오기까지는, 대다수 사람들이 부정하거나 침묵하는 속에서 유령에 관한 증언들이 계속 제기되는 지금의 양상이 그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손 THE GUEST 유령 퇴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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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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