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으로 인생이 바뀐 배우들이 있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든 배우들의 결정적 영화를 살펴보면서 작품과 배우의 궁합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 기자 말
 
 <헝거> 영화 포스터

<헝거> 영화 포스터ⓒ 오드

  
스티브 맥퀸의 데뷔작이자 마이클 파스밴더의 첫 주연작 <헝거>는 쓰라린 상처에 계속해서 소금물을 끼얹고 그 상처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하는 영화다. 대사, 카메라의 움직임, 캐릭터를 극도로 절제하고 감상적인 요소를 배제하였음에도 이 영화가 가지는 강렬함은 가히 폭발적이다. 

96분의 러닝타임 동안 영화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괴로워서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순간이 여러 번 있었지만, 화면에서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내 가슴은 고통으로 떨리고 깊게 패인 미간의 주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오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1981년, 메이즈 교도소에 수감된 IRA 단원들은 ▲정치범으로서 죄수복을 입지 않을 권리 ▲노역에 동원되지 않을 권리 ▲교육적 오락적 목적을 위해 다른 죄수들과 자유롭게 교류할 권리 ▲주 1회 면회·편지·소포의 권리 ▲시위 과정에서 상실된 감형의 완전한 복구를 요구하지만 영국 정부는 이들의 정치범 지위를 박탈하고 협상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이에 항의하여 수감자들은 샤워를 거부하는 시위를 벌이고 이 시위는 4년이 넘게 지속된다. 수감자들의 리더 바비 샌즈(마이클 파스벤더)는 샤워거부 시위가 아무런 성과를 낳지 못하자 단식에 들어가고 단식 66일 만에 세상을 떠난다. 영화는 이야기의 모든 군더더기를 제외하고 감옥 안에서의 투쟁 과정에 집중하며 이를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영화가 시작되고 한참이 지나도록 대사 한 마디 들을 수 없고, 영화의 처음, 상황설명을 위한 자막 몇 줄 외에는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한 설명적인 요소를 극단적으로 최소화하면서도 감독이 선택한 이미지의 연속은 놀랍도록 효과적이고 강렬하다.

스티브 맥퀸 감독이 영화감독이기 전에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비주얼 아티스트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연출은 이 영화가 그의 첫 장편작품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과감하고, 그의 연출과 조화를 이루는 마이클 파스벤더와 다른 출연 배우들의 헌신적인 연기 또한 놀랍다. 

철저하게 관찰자 위치에 서 있는 카메라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오드

 
수감자들과 교도관(때때로 수감자들을 찾는 가족들을 제외하고는)으로 나뉘는 감옥의 두 세계는 공존하지만 결코 섞일 수 없는, 섞였을 때는 단지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화학반응을 일으켜 폭발하고 마는 극단을 달린다. 카메라는 이 두 세계 사이에서 그 어디에도 무게 중심을 두지 않고 이들의 행위에 그 어떤 가치 판단도 내리지 않으며 관찰자의 위치에서 감옥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인내심 있게 비춘다.

한 교도관이 출근 준비를 하는 특별할 것 없는 장면들의 연속인 첫 번째 시퀀스부터 영화는 묘한 긴장감을 자아내는데, 평범한 중산층 남자의 일상을 보여 줄 뿐, 거기에 감정을 대입할 만한 요소들은 없다. 경직된 그의 표정, 상처투성이 손(폭력이 일상임을 보여주고 있는)을 세면대 물에 담그며 통증을 푸는, 마치 하나의 의식과 같은 행위의 반복과 눈 내리는 교도소 뒷마당에서 땀에 젖은 셔츠 한 장 입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그가 물리적 폭력의 가해자인 동시에 큰 범위 안에서는 그 또한 피해자라는 것을 다른 에피소드 없이도 전달해주며 영화에 긴장감을 더한다.   

영화는 화상을 입을 만큼 뜨거운 동시에 모든 것을 얼려버릴 만큼 차갑다. 깔끔하고 세련된 영상 속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타오르는 분노와 의지다.  

앞에서 얘기한 샤워거부 시위는 단지 씻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사복이 아니면 옷을 입지 않겠다하여 추운 겨울에도 맨몸에 모포만 두르고 있고, 감방 벽을 자신의 오물로 칠갑을 하며, 밤이 되면 받아두었던 소변을 문 밖으로 흘려 내보내는,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올라오는 극단적인 시위 방법이다.

자르지 않은 머리와 수염의 길이를 통해 수감된 기간을 알 수 있는 이들은 똥칠을 한 벽에 둘러싸인,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방 안에서 잠을 자면서도 바깥세상과 소통하고 자신들의 뜻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세상은 이들의 목소리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삶의 방식 그 자체에 대해 영화가 던지는 질문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오드

 
영화 중간 중간 삽입된 대처 수상의 육성, IRA를 테러 단체로 규정하고 이들의 폭력은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으며 영국 정부는 절대 이들과 협상하는 일이 없을 거라는 그녀의 목소리가 수감자들이 싸우고 있는 감옥 밖 대상의 입장을 대변하고, 그것이 영국과 IRA의 대립에 대해 관객이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전부다.

영화는 영국과 아일랜드의 기나긴 역사와 드라마를 모두 배제하고 오직 감옥 안에서의 투쟁에만 집중한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신념을 위해,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위해 목숨을 거는 남자의 투쟁을 통해 삶의 방식 그 자체에 대해 <헝거>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단식을 결심하고 바비는 도니미크 신부(리암 커닝햄)를 만난다. 대사가 거의 없던 영화에 24분 동안 쉬지 않고 대화가 오고가는데, 24분의 긴 대화 중 17분을 롱 샷의 롱 테이크로 찍었고,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관객에게 던지고 싶었던 질문들이 이들 대화 속에 모두 들어있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특별하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사람에 따라 그들이 가지는 질문과 대답이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장면이다. 

단식을 시작한 바비의 몸의 변화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오드

 
이제 영화는 다시 대사를 지우고 단식을 시작한 바비의 몸의 변화를 기록한다. 몸이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이 고요한 시위가 얼마나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것인지 우리는 목격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약해진다. 피부는 벗겨지고 제대로 서 있을 힘도 없다. 눈앞이 침침해지고,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울리는 소리를 제대로 알아 들을 수 없으며 나중에는 몸을 덮는 이불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그의 정치적 소신에 동의하든 반대하든 그가 단식으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옥중 출마하여 하원의원에 당선이 되는 역사를 만들었으나, 스물일곱의 바비 샌즈는 단식 66일 만에 세상을 떠난다. 

스타성과 연기력 마음껏 보여준 마이클 파스벤더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오드

 
바비 샌즈 역을 맡은 마이클 파스벤더의 연기는 흠 잡을 데 없이 훌륭하다. 그는 힘을 뺄 때와 힘을 주어야 할 때를 정확하게 알고 딱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를 표출함으로써 관객들을 몰입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체중감량은 물론이고 몸이 변해가는 과정에 따라 바뀌는 표정과 움직임의 표현은 정말 놀라울 정도다. <헝거>에서 자신이 가진 역량을 100% 보여준 그는 이 영화 이후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리들리 스콧, 쿠엔틴 타란티노등 거장들의 영화와 <엑스맨>과 같은 블록버스터에 번갈아 출연하며 자신이 가진 스타성과 연기력을 마음껏 보여주었다. 

마이클 파스벤더는 2001년 tv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로 데뷔했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처음 기억하게 된 것은 2009년 <피쉬 탱크>를 보고 나서다. 극의 긴장과 갈등이 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것을 보고, 그의 이름을 기억하며 더 많은 영화에서 그를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이후 쏟아지는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내심 뿌듯했다. 

그는 이제 작품의 신뢰도를 높이는 배우가 되었고 그가 출연한 영화를 꽤 많이 보았지만 그럼에도 2008년 <헝거>는 내게 새로운 발견과도 작품이다. 스티브 맥퀸과 마이클 파스벤더는 2011년 <셰임>과 2013년 <노예 12년>에서도 함께하며 감독으로서, 배우로서 승승장구 하고 있다. 이들이 앞으로 또 어떤 영화를 함께 하게 될지 모르지만 그들이 무슨 작품을 하건 그들 최고의 영화는 <헝거>가 아닐까, 성급한 예측을 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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