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산이(San E)가 지난 10일 새 디지털 싱글 < #mentalhealth&socialissues >을 발매했다. 앨범 설명에서 그는 무언가로부터 영감을 얻어 오마주(hommage)했다고 말한다. 그 오마주의 대상이 누군지 살펴보기 위해서는 수록곡 'Wannabe Rapper'의 뮤직비디오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광활한 주차장을 배경으로 트랩 비트를 활용해 춤을 추는 산이. 그 뒤로 사람들이 떼거지로 몰려 들어 같이 춤을 추거나 어디론가 달려든다.

어디서 많이 본 설정이다. 지난 5월 발매된 차일디쉬 감비노(Childish Gambino)의 싱글 'This is America'와 비슷하다. 실제로 뮤비 끝에는 'This is America'에서 영감을 받았음(inspired by 'This is America')'이라고 적어뒀다. 산이는 SNS를 통해서도 차일디쉬 감비노의 곡을 오마주했음을 밝혀두었다.

소수자가 차별받는 사회의 민낯 지적한 감비노, 반면 산이는...
 
 싱글 <#mentalhealth&socialissues> 커버 사진.

싱글 <#mentalhealth&socialissues> 커버 사진. ⓒ 로앤엔터테인먼트

  
wannabe rapper
돈도 X나 벌고
여자 X나 많고
재밌어 보이지 (재밌어 보이지)

(중략) 아주 불편해
아우 불공평해
(다) 부모 탓 환경 탓 대통령 탓 사회 비판해
난 깨어있지 난 자유시민
내 말은 진리 난 잘못 없지 난 깨끗해 bitch


산이는 이 곡에서 힙합씬과 현대사회를 모두 비판하고자 한 모양이다. 돈과 여자 자랑에 빠져있는 래퍼들을 비판한 부분에서는 일견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데 2년여 전으로 돌아가보자. 국정농단 사건이 터져서 온 사회가 시끄러울 즈음 산이는 디지털 싱글 <나쁜 X(Bad Year)>를 발표한 바 있다. 헤어진 여성을 '나쁜 년'으로 표현하는 이 곡은 영어 부제를 'Bad Year'로 지어 여기서 저격하고자 하는 여성이 실은 실제로 연애관계를 끝낸 상대방이 아니라 2016년의 박근혜 대통령이었음을 드러냈다. 박근혜를 비판하는 것까진 좋았는데, 여성비하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관련기사 : 산이의 '나쁜X'이 시국비판? 저렴하고 불쾌하다 http://omn.kr/loqo). 

생각해보면 자신이 얼마나 여자가 많은지 자랑하는 것과 '나쁜 년'이라면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여성이라면 얼마든지 비하해도 된다는 태도 모두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고 있지 않다는 점은 똑같지 않은가. 하지만 당시 산이는 해당 비판에 대해 따로 어떤 공식 입장을 내보인 적이 없다.

사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본인들이 깨어 있는 사람들인 줄 안다'고 말하는 것 역시 갸우뚱해지는 부분이다.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사회적 구조를 지적하는 사람들을 두고 '남 탓'한다, 고 하는 것은 문제제기를 차단하는 전형적인 수사법이다.

그냥 hate all 남북 편 갈러
한남 김치 좌익 우익 (fight) 싸움 구경 (yap yap)
우린 달라 우린 틀려
모 아님 도 흑 아님 백

 
 산이 싱글 'Wannabe Rapper' 뮤비 중 일부.

산이 싱글 'Wannabe Rapper' 뮤비 중 일부. ⓒ 로앤엔터테인먼트

  
특히 이 부분에서 산이의 현실인식이 잘 드러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인 갈등과 성별에 의한 갈등이 그냥 '모두를 혐오한다'(hate all)고만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과연 사람들은 싸우지 않아도 되는데 싸움에 안달이 나서 편을 가르고 서로를 헐뜯는 것일까. 왜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지, 왜 편이 갈라져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쏙 빠져있는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산이가 지난해 1월에 낸 EP앨범 < Season of Suffering (고난의 시기) >의 타이틀곡 'I Am Me'에서도 비슷한 가사가 나온다. "여혐 남혐 일베 메갈 여당 야당 / 너 나 / 오 제발 please 모두 시끄러." 노래 속에서 산이는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구조적인 갈등을 모두 이분법적이고 소모적인 말싸움으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여혐이나 남혐이나 같고, 일베나 메갈이나 다 같으며 여당이나 야당이나 다 똑같은 정치세력이라는 인식은 갈등을 분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만다. 여성차별이 있다는 주장을 조금만 과격하게 해도 '남혐'이라고 하는 지금 한국사회를 보라. 

반면에 산이가 오마주했다는 차일디쉬 감비노의 'This is America'는 여전히 흑인 등의 소수자 집단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여전히 자행되고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은 현대사회를 지적하고자 했다. 해당 곡의 뮤비를 보면 초반의 춤과 파티를 이야기하는 부드러운 합창이 끝나고 나면 감비노가 기타리스트를 총으로 쏴 죽인 뒤 전체적인 분위기가 바뀐다. 

흑인 계층이 미국이라는 국가에서 어떻게 차별받고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뮤비 곳곳에 흑인을 대상으로 한 차별적 의식과 증오범죄를 패러디해 놓았다. 흑인 성가대를 총살한 사건이라거나, 흑인 청년의 핸드폰을 총기로 오인하여 사살한 일 등. 우스꽝스러운 포즈와 표정은 과거 백인이 흑인을 코미디에서 희화화하기 위해 '짐 크로우(Jim Crow)'라는 캐릭터를 사용했던 것을 패러디한 것이다.

그런데 산이는 이 곡을 오마주하면서 감비노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구조적인 맥락을 모두 삭제해 버렸다. 'Wannabe Rapper'는 '남녀 갈등'과 '좌우 갈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지금 여기'의 문제들을 단순화시킨다. 그러니까 산이의 방식으로 감비노가 뮤비를 기획했다면 '흑인우월주의자들 때문에 쓸데없는 갈등이 증폭된다', '도널드 트럼프를 비판하면 뭔가 있어 보이지?'라는 메시지를 넣어두지 않았을까. 

사실상 'All Lives Matter'에 불과한 산이의 오마주
 
 산이 싱글 'Wannabe Rapper' 뮤직비디오 중 일부.

산이 싱글 'Wannabe Rapper' 뮤직비디오 중 일부. ⓒ 로엔앤터테인먼트

  
세계적인 뮤지션이 된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가 2015년 발매한 앨범 < To Pimp a Butterfly > 수록곡인 'Alright'는 사회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우리는 차별받고 상처받아왔지만 함께 연대한다면 이겨낼 수 있을 거야'라는 내용을 담은 이 곡은 인종차별이 여전한 미국 사회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흑인인권운동의 일종인 'Black lives matter' 시위 때 참가자들이 이 노래의 후렴구를 따라 부르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켄드릭 라마와 감비노의 음악이 'Black live matter' 운동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남겼지만, 어디서나 '역차별' 운운하는 이들은 존재한다. 인종차별을 지적했더니 '흑인의 삶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모든 삶은 중요하다' (All lives matter)고 외치는 격이다. 실제 존재하는 불평등의 문제를 지우는 언어다. 산이가 이번에 내놓은 곡은 이런 장면을 상기하게 만든다.

과연 박근혜 탄핵 정국 당시의 여혐 논란에서부터 드러난 산이의 비뚤어진 현실 인식이 'All lives matter'와 얼만큼 다른 걸까? '모두가 편을 가르고 싸우고 있으니 너나 쟤나 다 거기서 거기야'라며, '메갈'이나 '일베'나, '한남'이나 '김치'나, '좌익'이나 '우익'이나 다 문제라고 말하는 그의 언어는 결국 왜 갈등이 일어나는지는 관심 없으니까 그만 좀 싸워라, 라는 메시지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우리 사회 갈등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많이 아쉬울 뿐이다.
#산이 #오마주 #힙합 #차일디쉬감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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