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시선-다시 일할 수 있을까요?

다큐 시선-다시 일할 수 있을까요? ⓒ ebs

 
경단녀, 이건 또 무슨 신종 여성 비하적 용어인가 싶다. 아니다. '된장녀'같은 어감의 경단녀는 '경력 단절 여성'의 줄임말이다. 하지만 이 '경단녀'들이 사회에서 받는 대접은 어쩌면 '된장녀'보다도 못하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건 기본이다. 직장 내 눈총도, 아이들도, 집안 일도 혼자 '버텨내야'하는 게 힘들어 눈물을 흘리다가도, 결국 그 눈물 쓱쓱 닦고 다시 삶의 전쟁터로 나서야 하는 여성들. 지난 11일 방송된 <다큐시선> '다시 일할 수 있을까요?'는 그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경력 단절 여성'의 숫자는 181만 명을 넘어셨다. 그 중 30대가 92만 8천 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력 단절 여성이라는 말에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다큐에 따르면 나이와 경력을 묻지 않고 50명을 뽑겠다고 밝힌 한 공기업에는 590명이 지원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이른바 경력 단절 여성이었다고 한다. 이 엄청난 경쟁률은 그만큼 경력 단절 여성의 재취업이 쉽지 않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큐에 따르면, 직업을 찾아나선 경력 단절 여성 중 46%만이 취업에 성공한다고 한다.

재취업을 위한 조건 
 
 <다큐 시선> '다시 일할 수 있을까요?'

<다큐 시선> '다시 일할 수 있을까요?' ⓒ EBS

 
마흔 아홉 주수연씨는 취업 상담도 해주고 구직도 지원해주는 직업 상담사가 되고 싶어 1년간 공부해 지난 5월 자격증을 땄다. 시청 콜센터에서 7년간 일했고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2년간 경력이 단절되었다. 좀 더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어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따는 등 노력했지만, 직장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지금까지 20군데에 지원했지만 아직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직접 발로 뛴다. 소규모 업체들이 입주해 있는 건물, 일자리 정보, 채용 의뢰를 '스펙'으로 얻기 위해 '가가호호' 방문하는 '알바'까지 하는 등 '직업 상담사'로의 먼 여정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단절된 경력을 이어가기 위해 '전문적인 자격증'에 도전하는 여성들이 많다. 주수연씨가 선택한 '직업 상담사'나 요즘 뜨는 '코딩 지도사'등이 최근 여성들이 찾는 새로운 전문직이다.

서른 여덟 살의 김미란씨는 최근 코딩을 배우는 중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인 그녀는 국내외에서 프로그래머로 활약했고 학교에서 강의도 했다. 하지만 9년간 경력이 단절됐고, 그 후엔 다시 경력을 살리기 쉽지 않았다

직장은 그녀에게 무능력이란 '트라우마'를 안겼다. 지각, 조퇴, 잔업 불가는 기혼 여성들에게 따라붙는 이름표같은 것이었다. 아이 컨트롤도 못하는, 조직에 피해를 주는 사람이란 낙인이 찍힌 채 위축되었던 기억만 남았다. 그녀는 말한다. 여자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결국 자신과 비슷한 상황과 문제에 봉착할 것이라는 걸 미리 알았다면, 과거 자신이 갔던 그 대학, 그 과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녀 주변엔 '소싯적에 한가락 했던' 엄마들이 많다. 하지만, 그녀들이 20대 때 경주했던 그 노력과 노력의 결과물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도 받지 못하고, 재활용도 안 된다고 그녀는 단언한다. 그래서 그녀도 '가정'을 가진 사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코딩'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여성들의 '경력 단절'로 인한 손실은 195조 원에 달한다. 그 중 임금 손실이 184억 원으로 94.3%에 달한다. 이전의 경력을 다시 되살리지 못한 여성들의 상당수가 '사회 서비스 업종'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직업의 특징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는 있지만, 임금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직업들은 불안정성을 띠고 있으며 지속적이기가 쉽지 않다. 

23년 경력이 단절된 정인화씨는 매일 오전 6시면 출근한다. 그녀가 하는 일은 노인 요양원의 청소업무. 취미가 회화이고, 사회 봉사도 했고, 강의도 했었지만, 막상 남들 다 따놓은 요양 보호사나, 사회 복지사 자격증 하나 없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청소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무기 계약직이 되어 64세 정년도 보장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일이 밑바닥이지 사람도 밑바닥이 아니라'는 말을 되새김 할 정도로, 취업 과정에서 그녀가 겪은 좌절감은 컸다. 결국 다수의 여성들은 정인화씨와 같은 서러움을 겪지 않기 위해 각종 자격증 시험으로 몰려든다. 

아이 약봉투 챙겨들고 출근길 나서는 김우희씨
 
 다큐 시선-다시 일할 수 있을까요?

다큐 시선-다시 일할 수 있을까요? ⓒ ebs

  
한쪽에는 육아 때문에 다른 이들보다 2~3시간 덜 일한다는 이유로 박봉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있다. 김우희씨는 아픈 작은 아이를 위한 갖가지 약봉투를 챙기고 오늘도 출근 길에 나선다. 그녀는 10년간 학원 강사로 일했는데, 매일 오후 10시에 끝나는 일을 하면서는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 없었다.

6년간 두 아이를 낳고 돌보던 그녀가 다시 취업을 한 곳은 인터넷 기반의 회사였다. 10시 출근 7시 퇴근을 하는 곳이지만, 아이의 어린이집 끝나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그녀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출근을 하고, 조금 일찍 퇴근한다. 12시간 교대를 하는 남편은 집안 일을 도와줄 수 없는 형편이라 이른바 '독박 육아' 중이다. 그래서 160만원의 박봉이라도 지금의 직장이 감지덕지다. 

그녀가 제일 힘든 건, 그런 자신의 처지를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아이들을 위해 맛있는 저녁 식사를 차려주고 싶지만 현실은 친정 엄마표 밑반찬으로 한끼를 때우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회사에 죄송해하며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그래도 "너 잘 하고 있다"는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다며 주르륵 눈물을 흘린다.  

3자녀를 둔 미영씨도 그리 다른 처지가 아니다. 2년간의 경력 단절을 극복하고 '웹 디자이너'가 된 그녀는 오전 10시부터 4시 30분까지 일하고, 한 달에 겨우 130만 원 남짓을 받는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족하단다. 일부 회사들은 '아이' 그리고 '시간'이라는 그녀들의 약점을 파고들어 낮은 임금, 열악한 처우를 감수하게 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일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각 지자체마다 출산지원금을 주고 정부는 아동수당을 주는 등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02년에서 2016년까지 40만 명이던 출생아 수가, 2017년에는 35만 명, 올해는 32만 명이 될 것이라 예측된다. 젊은이 중에 결혼과 출산에 대해 회의적이지 않은 이들이 드물다. 

전문가는 말한다. 여성이 아이를 낳고 기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보장된 육아 휴직과 공보육이라고 말이다. 정규직이나 안정적 일자리에만 국한된, 그조차도 일부 직업군들만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육아휴직 무용지물에 가깝다.

상대적으로 육아 휴직 제도가 잘 보장되는 여성 군인들의 출산율은 우리나라 평균 출산율보다 약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출산율만 높을 뿐, 보육 시설이 부족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나은 조건이라는 여군이 이런 상황이니 대다수 여성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있을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아이를 낳으면 얼마를 주겠다'는 어설픈 정책이 아니라 여성들이 아이를 낳은 뒤에도 일을 할 수 있는 확실한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갈아넣으며 아이를 키우고 경력을 살리지 못해 안타까워 하는 여성들이 존재하는 한 출산율을 결코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다큐 시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