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단골집을 잃어본 적이 있는가. 어느 날, 즐겨 찾던 작은 카페, 혹은 식당이 있던 자리에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이 들어선 걸 목격한 경험은 나만의 것이 아닐 테다. 신사동 가로수길의 10여 년 전 풍경을 떠올려보자. 개성 있는 찻집과 밥집, 예술가의 화랑과 공방 등이 한자리에 모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그곳은 어느새 세계적인 브랜드 밀집 지역으로 변했다. 실제로 2007년에는 30개에 불과했던 가로수길 내 프랜차이즈 매장이 2014년에 이르러 225개로 증가했다고 한다. 가로수길 이전에는 대학로와 신촌이 그랬고, 그전에는 명동이 같은 일을 겪었다.

이처럼 거대 자본에 의해 기존의 거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한다. 비교적 지대(地代)가 저렴하고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려 해당 지역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면, 부동산 가격 등 주거비용이 덩달아 올라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주민들이 떠나는 것이다. 소규모 상인, 예술가들이 주로 있던 구역에 새로움에 민감한 관광객이 대거 유입되며 상업 단지로 뒤바뀐 경우부터 지역의 재개발, 재건축까지 그 형태는 다양하다. 2010년 홍대 앞 칼국숫집 '두리반', 2016년 용산구 한남동에 있던 문화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의 분쟁 등은 음악 팬들이 기억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사례다.
 
 '바다비, 잠시만 안녕' 공연 모습

'바다비, 잠시만 안녕' 공연 모습ⓒ '살롱 바다비' 페이스북

 
'씨클라우드', '살롱 바다비', '롸일락', '디디다', '프리버드', '클럽 타'... 최근 몇 년간 문을 닫거나 위치를 옮긴 홍대 인근 라이브 공연장 목록이다. 모두 짧게는 몇 년, 길게는 20년 이상 자리를 지켜왔지만, 권리금과 임대료 상승을 버티지 못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홍대에 언더그라운드 신을 형성하며 '홍대 앞 문화'를 구축했던 이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이 거리의 색깔도 자연히 옅어졌다. 델리 스파이스, 자우림, 국카스텐, 10cm, 장재인 등 홍대를 거쳐 간 수많은 밴드와 가수의 고향은 그렇게 사라졌다. 이 지역의 부흥과 쇠퇴를 모두 지켜본 밴드 크라잉넛은 2016년에 발표한 노래 '롸일락'에서 이렇게 한탄하기도 했다.
"쿵쾅쿵쾅 매일매일 
 부서지는 건물 
 희뿌연 먼지 속에 
 그대 모습 보이지가 않아 
 사라져 가네 
 롸일락 꽃향기만 남아있는데 
 난 어디로 가는가 
 꽃은 지고 빌딩 숲만 쌓여가는데 
 난 어디로 가는가"

- '롸일락', 크라잉넛(2016)

이것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산업화, 도시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재개발의 등쌀에 밀려 삶의 터전을 빼앗겼다. 작가 조세희는 1978년에 펴낸 장편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이러한 비극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바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상계동의 판자촌, 달동네 주민들이 정부 주도의 강제철거로 시련을 겪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1988) 역시 같은 맥락의 작품이다. 음악가 또한 이들의 아픔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거침없이 거론하고 비판하며 당대 기득권 세력의 눈엣가시로 꼽혔던 포크 거장 정태춘은 <아, 대한민국...>(1990) 앨범에 실린 '떠나는 자들의 서울'에서 이렇게 일갈했다.
 
"저들을 버리는 독점의 도시
울부짖는 이들을 내리치는
 저 몽둥이들의 민주주의
 절뚝거리며 떠나는구나
 아 여기 누구의 도시인가
 동포 형제 울며 쓰러지는 땅
 분노와 경멸로 부릅뜨는 우리들의 땅"

- '떠나는 자들의 서울', 정태춘(1990)
 
 <테이크아웃드로잉 컴필레이션>(좌), <젠트리피케이션>(우)

<테이크아웃드로잉 컴필레이션>(좌), <젠트리피케이션>(우)ⓒ 자립음악생산조합

 
매서운 말로 잔혹한 현실을 그린 정태춘으로부터 26년 후, 잊을 수 없는 두 장의 앨범이 나왔다. <테이크아웃드로잉 컴필레이션>(2016)과 <젠트리피케이션>(2016)이다. 한남동에 위치한 문화 공간이자 카페였던 '테이크아웃드로잉'이 강제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키라라, 김오키, 이권형 등의 음악가들이 모여 <테이크아웃드로잉 컴필레이션>을 제작했다. 이들은 대부분 테이크아웃드로잉 매장에서 현장음을 그대로 담아내며 녹음을 진행했고, 각자의 색깔과 음악적 성향을 충분히 살려 지지의 소리를 냈다. 그 결과 같은 목적 아래 가사가 없는 연주곡부터 잔잔한 어쿠스틱, 변칙적 매력의 재즈, 섬세한 일렉트로닉까지 다양한 곡이 모인 풍요로운 음반이 나왔다.

제목이 곧 주제인 앨범 <젠트리피케이션>은 좀 더 여러 현장의 이야기를 담았다. 종로구 무악동 일대의 옥바라지 골목과 마포구 아현동의 포차촌, 서촌의 '통영생선구이'와 '뽀빠이화원', '수원 지동 29길' 등 노래의 모티브가 된 장소는 주변의 곳곳이다. 파다파, 황푸하, 김해원 등의 뮤지션들은 이웃들이 직면했던 혹독한 상황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록했다. 반드시 정태춘의 노랫말처럼 강한 화법을 구사하는 것이 아닌, 고유의 톤과 언어를 동원해 우리 사회의 참상을 알렸다. "우리는 오늘도 조용히 지고 있다, 우리는 오늘도 버티며 지고 있다"고 서글피 말한 황푸하('우리는 오늘도')가 있는가 하면, "꽃피는 날에 다시 만나요, 해뜨는 날에 다시 만나요, 난 괜찮아요"라며 담담하게 작별을 고하는 파다파('꽃피는 날')가 있는 식이다.
 
"바다 한가운데 
 나의 집이 떠내려가네
 내 전부를 그렇게 잃었어
 내 전부를 그렇게 잃었어"

- '불 길', 김해원(2016)

젠트리피케이션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서촌의 '궁중족발', 한 패션 대기업의 백화점 매장 강제 퇴거 등 불과 몇 달 사이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 해도 여러 건이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지만, 비슷한 사태를 완전히 막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어쩌면 이와 같은 비극은 어디선가 또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고통을 겪는 이가 있다면 이들을 위해 노래하는 음악인도 계속 나올 것이란 점이다. 당장 11월 3일 토요일에는 망원동에 위치한 공연장 '벨로주'에서 곽푸른하늘, 황푸하 등이 모여 <궁중족발 연대음악회>를 연다. 이웃에게 어려움이 있는 한, 연대의 노래는 끝나지 않는다.
      
수요음감회
 
 무지개클럽 <수요음감회>

무지개클럽 <수요음감회>ⓒ 도봉문화재단

 

▶︎ 행사명 : 무지개클럽 <수요음감회>
▶︎ 주최 : 도봉문화재단
▶︎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모집 대상 : 음악과 이야기를 좋아하는 누구나
▶︎ 행사 진행 : 정민재(웹진 이즘 필자, 대중음악 평론가)
▶︎ 행사 장소 : 무중력지대 도봉
▶︎ 행사 일시 : 10월 17일(수) 19:00 ~ 20:30
▶︎ 행사 주제 : 젠트리피케이션 : <나를 내몰지마오>
▶︎ 행사 문의 : 도봉문화재단 기획홍보팀 lgy@dbfac.or.kr, 02-908-2900
▶︎ 행사 접수 : https://goo.gl/forms/2tEEPIKgr57R04ae2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정민재 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minjaeju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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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웹진 이즘(IZM ) 필자 | http://brunch.co.kr/@minjaejung | 음악 듣고 글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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