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자신의 생명이나 신체, 재산, 명예 따위에 침해 또는 위협을 받은 사람.

사전적 의미가 무색하게, 최근 우리 사회에선 피해자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종종 나온다. 누군가는 오랫 동안 피해를 주장한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피해자가 피해자 같지 않다는 이유로, 인터넷 상에 악플을 남긴다. 전문가들은 이런 누리꾼들의 행동이나 행태를 분석해 발표하지만, 그것을 본다고 한들 그들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최근 몇 년 사이 관객들을 찾은 영화 중에도 이런 소재를 활용한 것들이 있다. 
 
 영화 <한공주> 스틸컷

영화 <한공주> 스틸컷 ⓒ 무비꼴라쥬



2014년, 한국 영화계는 한 편의 영화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다. <한공주>는 도망다녀야 하는 피해자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담아냈다. 또래 남학생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한 공주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친구들은 음악에 재능이 있는 공주가 재능을 숨기며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걸 안타까워하고 꿈을 이뤄주고 싶은 마음에 유튜브에 노래 영상을 올린다.
 
하지만 가해자는 숨지 않았다. 가해자의 부모들은 학교로 찾아오고 자기 자식의 앞길을 막지 말라며 공주에게 합의를 강요한다. 이 영화는 과거 실제로 발생했던 사건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어, 영화 개봉 후 당시 실제 가해자들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빗발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끝난 사건을 되돌릴 순 없었다. 피해 학생들은 가해자가 활개를 치는 사이 마치 죄인처럼 숨어 지내야 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컷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 (주)리틀빅픽처스


 
<아이 캔 스피크>는 참으로 오랜 시간 숨어 살아야 했던 위안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옥분은 위안부 피해자이지만 가족에 의해 이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고 숨어 지낸다. 국제 재판에 위안부 관련 진술을 하기로 한 친구 정심이 쓰러지면서 옥분은 본인이 대신 그 자리에 서기로 한다. 그녀는 위안부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고 그 사실을 숨기려 했으나 정심을 비롯한 상처 받은 여성들을 위해 진술을 결심한다.
 
옥분을 숨게 만든 존재는 가족과 정부라 할 수 있다. 옥분의 어머니는 그에게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숨기라 강요했고 미국으로 간 동생은 누나를 부끄럽게 여긴다. 작품에서 옥분이 민원을 넣는 이유는 일제 강점기와 연관되어 있다. 정부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면 국민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나라에서 봉급을 받는 공무원들은 국가 소속이다. 작품 속 공무원들은 민원을 귀찮게 생각하며 그 어느 것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옥분을 기분 나쁜 존재로 여긴다.
 
하지만 영화는 일제강점기 때 나라를 빼앗긴 비극 역시 무능한 행정에서 비롯되었음을 폭 넓게 이야기한다. 여기에 사람들의 시선 역시 옥분이 숨어야 했던 이유이다. 위안부에 대한 급격한 인식 변화는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루어졌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스틸컷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스틸컷 ⓒ OAL(올)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힐 수 없는 아버지를 다룬 이야기가 <또 하나의 약속>이다. 아버지 상구는 딸 윤미가 국내 대기업 산하의 공장에 취직한 사실에 좋아하지만 윤미는 채 2년도 되지 않아 큰 병을 입고 집으로 돌아와 죽게 된다. 당시 직업성 암, 백혈병과의 연관관계에 대한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의 IBM에도 직업성 암,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들이 있었고 당시 IBM은 노동자 수백 명에게 개인적으로 합의서를 써주고 보상했다. 다만, 합의 내용을 비밀에 부쳐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산재법이 갖춰진 나라가 많지 않았기에 법원을 통해 직업병이 인정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런 현실에서 대기업에 의한 죽음이라는 진실을 밝히려는 아버지의 외침은 조직적인 여론몰이에 의해 점점 무너져 간다. 이웃마저 '돈 때문에 딸을 팔아서 시위 한다'는 여론에 동조, 부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6년간의 기나긴 법정 다툼 사건이었던 삼성 반도체 공장 백혈병 사건은 대기업 위주의 성장이 가져온 우리 사회의 약점을 보여준다.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는 공로와 사회적인 부정부패를 따로 생각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언론은 앞장서서 대기업의 편을 든다. 대기업의 횡포 속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은 믿었던 주변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에 힘을 잃어버린다. 여론은 그들을 대기업에게서 돈을 뜯어내려는 사기꾼으로 몰고 조직적인 여론 형성 앞에 개인은 힘을 잃어버린다. 1인 시위를 벌이던 상구는 버스로 만든 벽에 갇혀 아무도 자신을 바라볼 수 없게 되자 울음을 터뜨린다.
 
주상욱, 양동근 주연의 <응징자>에는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과거 집단 괴롭힘을 당했던 준석(주상욱)은 기업 면접 자리. 면접관들은 학창시절 생활기록부 문제를 들먹인다. 학창시절 왕따를 당했다는 그의 말에 '사회성이 부족하구만'이라는 답과 함께 불합격을 통보한다. "고통을 당한 건 저인데 왜 제가 피해를 봐야 되죠?"라는 그의 말에는 이성과 합리를 이유로 피해자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의 가혹한 시선이 담겨 있다.
 
사회의 구조는 가해자의 폭력 앞에서 피해자를 보호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법은 강자의 폭력 앞에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한공주>는 사회에 방치된 수많은 공주들을 위한 영화다. 이 공주는 옥분이 될 수 있고, 상구와 딸 윤미가 될 수 있으며 준석이 될 수 있다. 가해자를 향한 철퇴도 중요하지만 피해자를 향한 연민과 온정이 변화를 위한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루나글로벌스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한공주 또하나의약속 아이캔스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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