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관객들로 가득찬 극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커뮤니티 비프 '비프랑 키즈랑'

어린이 관객들로 가득찬 극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커뮤니티 비프 '비프랑 키즈랑' ⓒ 부산국제영화제

  
정상화 원년을 선언한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초기의 추억이 가득한 남포동으로 상징되는 원도심이 부활했다. 초기 영화제 당시 남포동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관객들은 옛 기억을 되살렸고, 영화제에서 멀어졌던 거리에는 다시 관객들이 발걸음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올해 처음 시도된 부산영화제 행사인 '커뮤니티 BIFF'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10일 마무리됐다. 마지막 날인 10일 오전에도 '비프랑 키즈랑'이 열린 부산영화체험박물관 영상홀에서는 어린이 관객들이 자리를 가득 채운 가운데 신나는 댄스와 영화상영이 이어졌다.
 
관객이 직접 만들고 참여하는 행사로 기획된 커뮤니티 BIFF는 방치되다시피 한 부산영화제의 고향에 대한 고민을 일거에 해소했고, 부산영화제의 공간을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남포동으로 상징되는 구도심의 저력을 확인시켜 준 시간이기도 했다.
 
 가을밤의 낭만을 즐긴 심야상영 '취생몽사'

가을밤의 낭만을 즐긴 심야상영 '취생몽사' ⓒ 부산국제영화제

 
부산영화제 개막 다음날인 5일부터 시작된 '커뮤니티 BIFF'는 사실 준비 기간이 짧아 널리 알려지지지 않았다. 그런 탓에 관객들이 호응할지도 미지수였다. 그러나 뚜껑을 여는 순간 그런 우려가 기우에 불과했다는 점이 확인됐다. 태풍이 지나쳤던 초반을 제외하면, 시간이 갈수록 관객들의 관심은 커져갔다. 새로운 도전에 서광이 비친 것이다.
 
이는 관객이 편하게 즐기고 만든다는 프로그램이 적중한 결과였다. 6번의 행사 중 3번이 매진되며 가장 많은 인기를 끈 '비키랑 키드랑'은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이곳에선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BIKY) 추천작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영화제를 즐길 수 있는 폭을 성인들에서 어린이들까지 넓혔다는 데 의의가 크다.

밤새 술 마시며 영화를 보는 '취생몽사'나 <맘마미아2> 상영 때 관객들이 노래를 부르며 영화를 봤던 '쇼타임' 등도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주춤거리던 관객들도 고등학생 관객들이 분위기를 주도하자 함께 노래를 따라하는 등 흥미진진한 프로그램으로 부상했다. 술과 수다와 영화가 곁들여진 상영은 가을 저녁의 낭만을 선사했다.
 
처음 시도된 '마스터톡'은 관객과의 대화를 넘어 상영 내내 감독의 해설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입심 좋은 감독과 이를 기대했던 관객들에게는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다양한 동아리들이 영화제를 매개로 자체 행사를 가진 것도 만족감이 높았다. 7일 강헌 음악평론가가 참여했던 한 커뮤니티의 행사에는 영화 러닝타임보다 더 긴 시간 동안 대화가 오갈 정도도 분위기가 뜨거웠다.
 
초기 영화제 성공시킨 남포동의 힘
 
원도심의 지역적 환경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좋은 작용을 했다. 남포동으로 상징되는 주변은 한때 부산 최대 번화가로 불리던 전통적인 도심으로 개발의 중심에서 벗어난 지역이다. 상영관과 상업시설이 몰려 있는 구조로 인해 부산영화제 시작과 동시에 열기가 폭발할 정도로 지형적인 힘이 크다.

부산역이 가까이에 있는데다 항일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백산 안희제 선생의 백산기념관을 비롯해 용두산 공원, 자갈치 시장, 국제시장 등이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부산 중앙동 40계단 진행된 '시네객잔' 거리포차 파티

부산 중앙동 40계단 진행된 '시네객잔' 거리포차 파티 ⓒ 부산국제영화제

 
<낮은 목소리2> 마스터톡에 참여한 변영주 감독이나 커뮤니티 비프 런칭 행사에 참석한 안성기 배우 등은 옛 남포동에서 시작된 부산영화제의 기억을 되살렸다. 남포동은 무대인사와 상영이 동시에 진행되며 감독과 배우, 관객이 어깨를 부딪치며 걷던 곳이었다.
 
포차파티인 '시네객잔'에 참여한 <다방의 푸른 꿈> 김대현 감독은 "남포동 40계단 앞에서 정말 멋진 행사가 펼쳐졌는데 이게 계기가 되서 부산영화제의 첫 시작 지점이 조금씩 생각났다"며 "개인적으로는 첨단 해운대에서 오랜 정취가 남은 40계단 앞으로 술자리를 옮기니 훨씬 술맛이 좋았다"고 말했다.

차려 놓은 영화 성찬을 즐기는 해운대와 다르게 소소하지만, 직접 메뉴를 정하고 고르는 남포동의 '커뮤니티 비프'는 영화제의 폭도 넓혔다. 부산영화제를 출발시키고 성장시켰던 고향을 방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가졌던 부담도 해소시켰다.
 
예전에는 영화 프로그램 일부를 남포동에서 상영하기도 했으나 찾는 관객들이 많지 않은데다 영화제 공간을 분산시키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런 고민을 '커뮤니티 비프'가 덜게 해준 셈이다. 남포동으로 상징되는 원도심 자체가 영화제 발전을 놓고 고민하던 부산영화제 측에 새로운 공간을 열어준 것이다. 
 
 지난 3일 남포동에서 열린 부산영화제 전야제에 참석한 조원희 감독(가운데). '커뮤니티 BIFF' 책임을 맡았다.

지난 3일 남포동에서 열린 부산영화제 전야제에 참석한 조원희 감독(가운데). '커뮤니티 BIFF' 책임을 맡았다. ⓒ 성하훈

 
커뮤니티 비프를 준비한 담당 스태프들이 지난 1회 부산영화제 때부터 영화제에 참여한 전력이 있는 것도 짧은 시간 의미있는 성과를 낸 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행사를 총괄한 조원희 감독은 1996년 당시 학교 교수였던 고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자원봉사 요청을 뿌리치고 20편의 영화를 보러 다닌 부산 출신 시네키드다. 영화제 직전 신작인 <원더풀 고스트>가 개봉했으나 영화에 홍보에 나서지 못하고 '커뮤니티 비프'에 집중했다.

영화선정을 맡은 정미 프로그래머는 역시 부산 출신으로 1회 때 월드시네마 코디네이터로 참여한 인연이 있다. 이후 충무로에서 프로듀서로 활동했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사무국장을 역임한 영화인이다. 남포동의 옛 분위기를 잘 아는 역량있는 스태프들이 그 추억을 되살려 행사를 만들어냈다는 점이 공감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마중물 역할 성공
 
 커뮤니티 시네마 행사 중 '초록영화제와 다큐, 싶다'의 토크

커뮤니티 시네마 행사 중 '초록영화제와 다큐, 싶다'의 토크 ⓒ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관객들의 참여를 더 끌어내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것은 앞으로의 숙제이기도 하다. 올해의 성과는 첫 행사라는 부담감을 덜어내고 성장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것 정도다. 적은 예산과 두 달 정도의 촉박한 기간 속에서도 목적했던 행사의 의미가 잘 전달되고 관객에게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후 발걸음이 더 중요해 보인다.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획들이 이어지고 있어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부산영화제에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로 예전 영화들을 상영했으나, 해운대에서 상영하는 작품 일부를 남포동에서 상영해도 좋은 것 같다는 제안이 나온다. 조원희 감독은 "아직 공개하기 어렵지만 생각하고 있는 기획안들이 있다"며 "내년에 일찍 준비가 들어가면 더 나은 행사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했다.
 
1회 부산영화제는 지금의 모습과 비교하면 아주 열악한 수준의 동네 영화제에 불과했다. 영화제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를 살려낸 것은 젊은 관객과 남포동 극장가였다. '커뮤니티 비프'가 이 길을 걸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23회 청년으로 성장해 해운대에서 터를 잡은 부산영화제를 향해, 출생지 남포동이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모습이다. 정상화 원년에 영화제 원년을 시작했던 고향과 같은 곳이 살아나게 됐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 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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