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샘 스미스의 첫 내한 공연이 열렸다.

10월 9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샘 스미스의 첫 내한 공연이 열렸다. ⓒ 현대카드


샘 스미스가 첫 앨범 < In The Lonely Hour >을 발표했을 때, 언론들은 그에게 '남자 아델'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 별명은 오래가지 않았다. 샘 스미스는 아델과는 또 다른 영역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월세를 고민하던 런던 아르바이트생은 2014년의 주인공이 되었고, 그래미 어워즈의 주인공이 되었다.
 
나 역시 샘 스미스에 대한 추억이 있다. 군 복무를 하는 동안 샘 스미스의 앨범을 즐겨 들었다. 시디(CD)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더 없이 큰 위로였다. 그는 훌륭한 보컬인 동시에, 진솔한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데뷔 앨범을 두고 '나의 일기장'이라고 말했던 샘 스미스. 전 세계의 팬들이 그에게 매료된 것은, 기술과 진정성의 승리다.

한 명의 목소리가 빚어낼 수 있는 것
 
지난 10월 9일, 샘 스미스가 <현대카드 슈퍼 콘서트 23>를 통해 첫 한국 공연을 펼쳤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팝스타답게, 공연이 열리는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는 2만 명의 관객이 가득히 모였다. 전 좌석이 매진된 것이다. 오후 7시를 조금 넘긴 시간, 샘 스미스가 'One Last Song'을 부르며 무대 위로 오르자 거대한 환호성이 고척돔을 가득 채웠다. 첫 곡을 마친 그는 갑자기 무반주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2만 명의 관객들이 일제히 한 노래를 따라 불렀다.
 
You say I'm crazy Cause you don't think I know what you've done
(당신은 내가 미쳤다고 말해요 당신이 무엇을 했는지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겠죠)
 
But when you call me baby I know I'm not the only one
(하지만 당신이 나를 그대라고 불러도, 내가 유일한 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 'I'm Not The Only One' 중

 
 샘 스미스의 첫 내한 공연

샘 스미스의 첫 내한 공연 ⓒ 현대카드

  
사려 깊은 팬 서비스였다. 'I'm Not The Only One'이 우리나라에서 유독 큰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감각을 발휘한 것이다. 이번 공연의 무대는 돌출형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는 무대의 특성을 십분 살려 팬들과 최대한 많은 교감을 하고자 했다. 공연 내내 환한 미소를 짓고, 인사를 반복했다. '함께 부르자'며 자연스럽게 떼창을 유도하기도 했다. 그는 팬들이 팝스타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물론 호응도 뜨거웠다. 샘 스미스에게 유명세를 안겨 준 'Latch'가 울려 퍼지자, 팬들의 휴대폰 불빛이 공연장을 환하게 밝혔다.

화려한 무대 장치는 필요하지 않았다. 목소리만으로 충분했다. 샘 스미스는 노래의 정서를 매우 선명하게 표현했다. 묵직한 중저음은 물론 날카로운 팔세토의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선보이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Lay Me Down'의 애절함은 관객들의 눈물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Writing's On The Wall'과 'Pray'에는 장엄함마저 존재했다.

무거운 분위기의 선곡이 큰 부분을 차지했지만, 샘 스미스는 신나는 음악을 잊지 않았다. 'Omen'과 'Restart', 빠른 기타 연주 위주로 편곡된 'Money On My Mind' 등은 앉아 있던 관객들을 일으켜 세웠다. 노래를 듣고 흥이 나 춤을 추는 것은 관객들 뿐만이 아니었다. 샘 스미스 역시 'Restart'를 부르면서 경쾌하게 춤을 췄다. 맛집 여행 못지 않게 이번 공연이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사랑은 사랑일 뿐이다

 
 샘 스미스의 첫 내한 공연

샘 스미스의 첫 내한 공연 ⓒ 현대카드

  
이번 공연에서는 샘 스미스가 'HIM'을 부르던 장면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2집에 실린 'HIM'은 커밍아웃을 소재로 한 곡으로서, 샘 스미스가 성 소수자로서 겪은 고뇌를 고스란히 담았다. 이 곡에 등장하는 대화 상대는 그의 아버지일 수도 있고, 신일 수도 있다. 아픔을 다룬 노래이지만, 노래를 부르는 샘 스미스의 표정에서 보이는 것은 아픔보다 결연함에 가까웠다. 

"나는 그를 사랑해요"('I love him)이라는 가사와 함께 곡이 마무리되자, 성소수자(LGBTQ)를 상징하는 무지개빛의 레이저가 공연장을 아름답게 비췄다. 이것은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세상의 모든 소수자들을 향해 위로와 연대를 외치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나는 '사랑은 사랑일 뿐이다'라고 말하기 위해서 이 노래를 썼어요. 나는 내가 게이 남성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 샘 스미스
 
'Too Good At Goodbyes'에 이어 준비된 앙코르 곡들이 이어졌다. 샘 스미스는 여성 싱어와의 멋진 조화를 연출한 'Palace', 대표곡 'Stay With Me', 'Pray'를 포함하여 총 스물한 곡을 불렀다. 그는 '이른 시일 내에 서울로 돌아오겠다'는 인사와 함께 무대를 떠났다.

한편 이 공연을 찾은 관객 김형후씨는 "좋은 노래들이 이어져서 좋았지만, 음향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라고 옥에 티를 지적하기도 했다. 샘 스미스의 노래를 받쳐주는 밴드 사운드가 온전히 구현되지 못 했다는 것이다.

음향 문제는 고척돔이 문을 연 이후 줄곧 지적된 바 있다. 물론 샘 스미스는 이번 공연의 음향을 세심하게 조율했고 투어 스태프와 국내 공연팀 역시 추가적인 음향 장치를 설치하는 등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척돔의 한계라고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공연 인프라의 부재가 근본적인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관객들이 만족에 찬 얼굴로 공연장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샘 스미스의 힘이다. 그의 목소리가 이 공연의 모든 것이었다. 샘 스미스는 공연을 시작하면서 "내 노래 중에는 우울한 노래들이 많다. 하지만 오늘은 이 공연이 여러분에게 기쁨을 선사할 수 있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그의 바람대로였다. '노래가 주는 행복'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가을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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