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0년대~2000년대 이후 오랜만에 조규찬은 KBS 해피FM < 매일 그대와 조규찬 입니다 >를 통해 라디오 DJ로 돌아왔다

지난 1990년대~2000년대 이후 오랜만에 조규찬은 KBS 해피FM < 매일 그대와 조규찬 입니다 >를 통해 라디오 DJ로 돌아왔다 ⓒ KBS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곤 하지만 어쿠스틱 기반의 음악을 추구하는 신예 싱어송라이터들에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여전히 선망의 무대다. 유희열(토이), 고찬용(낯선사람들), 정지찬(자화상, 원모어찬스), 이한철(불독맨션), 스윗소로우, 박원, 방시혁(작곡가, 방탄소년단 제작자) 등 쟁쟁한 음악인들을 배출한 이 대회가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데엔 1989년 열린 1회 대회 금상 수상자 조규찬의 존재감이 컸다. (기자 주: 당시엔 대상 없이 금상이 최고상이었다)

당시 수상곡 '무지개'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의 방향성을 마련해준, 나름 큰 의미를 지닌 곡이 되었다. 이후 1990년 박선주의 데뷔곡 '소중한 너' 작곡 및 듀엣 참여, 3인조 그룹 새바람이 오는 그늘(1991년), 그리고 1993년 다소 늦은 솔로 1집 음반 등을 거치면서 '조규찬'이라는 이름 석 자는 보컬 화성을 중요시하는 후배 음악인 및 대중들에게 또렷히 각인되었다. 특히 박진영의 대표곡 '그녀는 예뻤다'(1997년)는 곡 전체를 지배하다시피 하는 조규찬의 현란한 코러스에 힘입어 지금도 보컬 녹음의 교과서 같은 명연으로 언급되고 있다.

2010년 정규 9집 이후 몇몇 드라마 삽입곡 녹음, <나는 가수다> <듀엣가요제> 등 음악 예능 프로그램 출연 정도를 제외하면 지난 8년간 본인 명의의 작품 활동이 없었던 탓에, 그의 음악을 좋아했던 이들에겐 아쉬움이 컸다. 그러던 지난 7월, 소리소문없이 공개한 디지털 싱글 '비 온 날'을 시작으로 조규찬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7월부터 매달 신곡 발표...정규 10집을 위한 첫 발걸음
 
 지난 7월부터 조규찬은 매월 한 곡씩 신작을 발표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표된 총 4장의 디지털 싱글 음반 표지)

지난 7월부터 조규찬은 매월 한 곡씩 신작을 발표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표된 총 4장의 디지털 싱글 음반 표지) ⓒ 지니뮤직

 
<월간 윤종신>마냥, 매달 한 곡씩, 현재까지 총 4곡을 소개했지만 그는 거창하게 시리즈의 제목을 붙이진 않았다. 소속사 없이 혼자의 힘만으로 제작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이렇다 할 홍보도 뒤따르진 않았다. 덕분에 조규찬의 새 노래가 나온지 모르는 올드팬들도 제법 많지만, 이 작품들은 여전히 한 귀로 흘려듣기엔 만만찮은 내공을 담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은 안 해도 돼 /  하고 싫은 일은 안 해도 돼 / 귀찮으면 한 번쯤은 휴대폰 꺼도 상관없어"

지난 8일 공개된 '안 해도 돼'는 그가 가장 잘하는 장르 중 하나인 팝 발라드의 정석을 보여준다. 비록 20대 시절의 날카롭고 예리하던 소리는 아니지만 힘 빼고 편안하게 처리한 보컬과 여러 차례 오버 더빙으로 녹음한 특유의 코러스는 여전히 조규찬답다. 인생의 여유마저 느껴지는 가사는 이제 50을 바라보는 그의 나이만큼 깊은 내공을 더해준다.

"까짓것 자전거에 올라타 / 엔니오 모리꼬네 로맨틱 오케스트라 / 이어폰 안에 흐르면 풍경이 영화에요"

9월 발표한 '자전거 산책'은 비틀스, 길버트 오 설리반 같은 1960~1970년대 복고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의 화법 (현악기의 적극적 활용 + 리드 보컬리스트 제프 린 혼자만의 오버 더빙 코러스)을 빌어 낭만과 추억이 깃든 그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준다.  '안 해도 돼'와 마찬가지로 어쿠스틱 기타를 제외한 모든 악기 및 프로그래밍을 조규찬 혼자 맡아 처리했지만 마치 여러 명의 관현악 연주자가 참여한 것처럼 풍성함을 담는 등 '가내수공업'스럽지 않은 고급스런 사운드 연출에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Deja Vu' 공식 뮤직비디오]
 

"Déjà vu irresistible / déjà vu irresistible / Déjà vu irresistible scene"

우리말 가사 전혀 없이 영어 및 불어로만 녹음한 'Deja Vu'(8월 공개)는 지금까지 발표한 조규찬의 신작 싱글 중 가장 독특한 소리를 뿜어낸다.  일체의 악기 없이 오로지 조규찬 본인의 목소리로만 녹음한 아카펠라 곡이기 때문이다.  드럼, 베이스 등의 역할도 오직 그의 입이 대신할 따름이다. 게다가 우리가 흔히 알던 기존 아카펠라 음악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각종 이펙터효과를 입힌 음성 변조 및 전자음에 가까운 만큼의 재가공이 이뤄졌다.

"톡톡 까만 우산 위에 / 로맨틱 흑백영화처럼 / 휘파람 불며 거닐까 / 불쑥 친구를 찾을까 / 행복이 뭐 별거 있겠어"

지난 7월 가장 먼저 소개된 조규찬의 신곡 '비 온 날'은 고풍스런 스탠다드 재즈의 화법으로 평범한 인생 속 행복을 이야기 한다. 마치 어깨에 크게 힘주지 않고 자유자재로 공을 던지는 투수처럼 편안한 감성으로 곡을 이끌어 건다. 마치 작은 재즈 클럽에서 라이브 녹음이 이뤄진 것처럼 소박한 느낌으로 이뤄진 믹싱 등 후반부 작업도 제법 인상적이다.

지난 30년간 보여준 다채로운 소리 실험  
 
 지난 수년간 조규찬은 < 나는 가수다 >, < 듀엣가요제 > 등 음악 경연 예능에서만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난 수년간 조규찬은 < 나는 가수다 >, < 듀엣가요제 > 등 음악 경연 예능에서만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MBC

 
포크록 혹은 세련된 팝 음악으로 출발했던 1990년대 초반을 거쳐 "한국형 R&B"의 진수를 보여준 1990년대 중반 이후의 눈부신 활약, 그리고 다시 기타 위주의 팝 록을 들려주던 2000년대 등 조규찬은 지난 시간 동안 한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다양한 소리를 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989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입상 이래 조규찬이 활동을 이어온지도 올해로 벌써 30년째가 되었다. 비록 신곡 발표는 더딘 편이었지만 박재정, 장재인, 규현(슈퍼주니어) 등 후배들의 음반 작업에 작사/작곡/보컬 디렉팅 등 다양한 형태로 참여하는 등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결코 휴식이 없었다.

최근엔  KBS 2라디오 <매일 그대와 조규찬 입니다>를 통해 오랜만에 라디오 DJ로도 복귀하면서 그간의 활동 공백에 대한 아쉬움도 조금씩 채워나가고 있다.

이제 겨우 4곡만 세상에 소개되었지만, 정규 10집에 대한 제법 큰 기대를 걸어도 좋을 만큼 새 노래들은 조규찬의 음악 실험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는 좋은 결과물 들이다.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 마냥 그의 새 노래가 반가움을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케이팝쪼개듣기 조규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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