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곤조곤'은 책과 영화, 드라마와 노래 속 인상적인 한 마디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무심코 스치는 구절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이야기로 풀거나, 그 말이 전하는 통찰과 질문들을 짚으려 합니다.[편집자말]
 이랑 2집 <신의 놀이> 앨범 재킷 이미지.

이랑 2집 <신의 놀이> 앨범 재킷 이미지.ⓒ 포크라노스

 
나는 10대 시절에는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 내 삶을 제대로 통제하는 자율적인 어른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30대에 접어든 지금 알게 된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가령 나는 감정을 절제하는데 매우 자주 애를 먹는다. 사람들이 내 얼굴만 보고도 기분을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스스로가 너무 싫어서 오랜 시간 자괴감에 빠져 있었는데 최근에는 생각이 달라졌다.

'나는 지금부터 행복하겠다', '이제 슬퍼해야지'라고 생각하며 행복하거나 슬퍼지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만한 사건이 있어야 우리는 그것들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감정은 애초에 의지의 문제도 아니거니와 우리의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었던 셈이다. 나는 이제 감정적인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그게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쩌다보니 잘못 산 물건을 보며 '어쩌겠어 그냥 써야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여러 가지 감정들 중에서 다른 무엇보다 나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화'와 '분노'다. 어떤 일에 화를 내고 분노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상대적으로 까다롭기 때문이다(물론 이는 타당하다, 너무 쉽게 화를 내는 사람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겠는가). 가령 사소한 일에도 행복해하면 그 사람은 낙천적인 인간이 된다. 슬픔의 경우에는 평가가 다소 엇갈리기는 하지만 느끼는 사람이 주변인들을 괴롭게만 만들지 않는다면 여리고 섬세한 성격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분노는 다르다.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일에 화를 내면 우리는 옹졸한 인간이 된다. 때로는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분노하는 사람은 시험에 든다

하지만 언제 화를 내도 좋을지에 대한 매뉴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분노는 그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도록 만든다(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가장 피해야 할 인간 유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알고 보니 대통령이 아예 나라를 팔아먹고 다녔다거나 혹은 선출되지도 않은 권력에 휘둘리고 있었다는 뉴스를 본다면 화가 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그래서 그 분노는 '공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꼭 그런 일 앞에서만 분노를 경험하지는 않는다. 일상의 순간순간 보다 개인적인 관계들 속에서 소소한지 아닌지 모를 애매한 일로도 우리는 화가 치밀어 오름을 느낀다. 때로는 정말 자잘한 갈등이 겹치고 겹쳐 폭발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이 경우는 화를 촉발시킨 사건만 보면 정말 사소해 보이기 그지없는 경우가 많다('왜 물을 마시고 다시 냉장고에 넣어두지 않았냐'는 이유로 온 집안이 떠나가라 싸움을 벌인 사람을 나만 본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때에 우리는(혹은 적어도 나는) 시험에 든다.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난무한다. '세상에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부터 '이 정도는 그냥 참고 넘어갈 수도 있는거 아닌가?'까지. 그러나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이 번잡함 속에서 변하지 않는 점이 있다.

첫째, 그 감정이 온당한가 여부와 상관없이 나는 이미 화가 나있다. 둘째, 이 지난한 내적 갈등은 매우 길고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이 감정에 오래 붙들려 있다 보면 결국 우리는 지쳐 쓰러지게 된다. 스스로가 한심하고 옹졸하게 여겨진다. 그런 인간이 괜찮은 존재일 리 없다. 한심하고 옹졸한 나는 추하다. 그래서 화가 날 때 거울을 보면 슬프다. 그런데 슬퍼도 계속 화가 난다.

슬프게 화가 난 이유
 
 이랑 2집 <신의 놀이> 앨범 이미지.

이랑 2집 <신의 놀이> 앨범 이미지.ⓒ 포크라노스

 
이랑의 두 번째 앨범 <신의 놀이>에는 '슬프게 화가 난다'라는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이 노래와 관련하여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있는데, 나는 처음에 '화가 난다'의 '화'가 분노의 감정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슬프게 화를 낸다는 건 어떤 걸까?'를 오랫동안 생각했다. 후에 나는 앨범과 결합하여 출간된 이랑의 책을 읽었는데 알고보니 이 노래의 제목은 화가 이두원의 개인전 '슬프게 화가 난다'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리고 가사를 다시 읽어보니 '슬프게 그림 그리는 화가 저기 날아가네'라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니 '슬프게 화가 난다'는 '화'라는 감정을 느낀다는 뜻도 있지만 예술가인 '화가'가 날아오른다는 중의적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수십 번을 반복해서 노래를 들었는데도 몰랐다. 다시 부끄러워졌다. 나는 참 마음에 '화'가 많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아무튼 이 노래는 가수 이랑의 개인적인 경험에 바탕하여 쓰여졌다. 책에 따르면 그녀가 화가 이두원의 집에 처음 놀러갔을 때, 가구라고는 책상과 거울만 있었고 방은 무척 어둡고 작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방 안에서 그녀의 친구 이두원은 매일 수십 장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색깔이 알록달록하고 나무와 꽃, 동물들이 많이 출연하는 작품들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랑은 이렇게 노래한다.

"어두운 방안에 있어도 나는 꽃이랑 나무 생각만 났어."
"어두운 방안에 있어서 나는 꽃이랑 나무 그림만 그렸어."


그런데 왜 슬프게 화가 날까?

나를 위로해준 이랑의 노래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고독하구나. 이 노래의 화가는 어두운 방안에 '있어도' 꽃과 나무 생각을 하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어두운 방안에 '있어서' 그걸 그림으로만 그릴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구나. 어두운 방에는 꽃과 나무가 없구나. 그래서 화는 나면서 동시에 자기의 처지가 슬픈거구나. 사실 화를 내는 것도 비슷하게 때로는 고독한 일이다.

나는 정당성이 의심스러운 분노에 잠기면, 그리고 이로 인해 질문을 반복하고 내적인 갈등에 빠지면 사람들을 만나지도 심지어 전화도 받지도 않았다. 나도 추하게 여기는 내 모습을 들킬까 무서워서. 평온하고 괜찮고 심지어 행복할지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더욱 비루해질까봐. 나는 두 손을 모아 가슴에 얹고 침대에 정자세로 누운채 눈에는 눈물을 그렁그렁 달아놓고 홀로 화를 냈다. 그러면 외로워서 사람 생각이 더 났다. 하지만 어둔 방을 벗어날 용기가 없었다. 슬프게 계속 화가 났다.

언젠가 침대에 누워 또 울면서 화를 내고 있을 때, 나는 이 노래를 떠올렸다. 부정적인 생각이 무럭무럭 뻗어나가 '나도 싫고, 내 인생도 싫고, 다 싫어'라는 생각을 하던 와중이었다. 주섬주섬 휴대폰과 이어폰을 챙겨 '슬프게 화가 난다'를 듣고 또 들었다. 중천에 떠있던 해가 지고 가로등에 불이 밝혀지는 시간까지. 바로 옆에 똑같이 슬프게 화를 내는 사람이 함께 누워 있으니 외롭지가 않았다. 외롭지가 않으니까 억울함이 덜했고 조금씩 슬픔이 사라졌다.

그리고 슬픔을 동력삼아 더욱 커지던 화도 점차 잠잠해졌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이 노래를 가장 곁에 둔다. 나는 문학의 경계를 엄격히 지정하는건 별 의미가 없고 노래 가사 역시도 좋은 문학 작품에 당연히 속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잠시 이 전제를 어기고 이야기하자면, 나는 이랑이 좋은 가수이자 동시에 훌륭한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슬프게 화가 난다'는 이런 그녀의 탁월한 재능이 빛을 발한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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