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스페셜 > '인생 단어를 찾아서'

< SBS 스페셜 > '인생 단어를 찾아서'ⓒ SBS

 
< SBS 스페셜 >은 지난 1월 4명의 청년을 방에 가뒀다. 이른바 '고독' 연습. 공부와 취업, 취직에 내몰린 청년들, 거기에 일상을 사로잡은 SNS로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청춘들이 강제된 '고독' 속에서 3박4일을 보내면서 자신을 돌아보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앞서 다큐를 통해 젊은이들의 '자기 성찰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 SBS 스페셜 >이 이번에는 두 젊은이를 '산사'로 유폐했다. 다름 아닌 '인생 단어'를 찾기 위해서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 폴 부르제, 프랑스 작가 

서강대 기계 공학과 이준우씨, 경희대 역사학과 유현기씨는 대학 생활을 마무리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을 준비를 하고 있는 청년들이다. 두 사람은 각자 나름대로 진로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우선 이준우씨는 마술사다. 한강 고수부지에 나가 그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마술 버스킹'을 하는 한편 각종 생일 잔치나 파티에서 활약 중이다. 이씨는 등학교 시절부터 마술에 매료됐지만, 졸업을 앞둔 지금은 자신의 전공인 기계 공학과 마술 사이에서 고뇌한다. 마술을 좋아하지만 그걸로 먹고살기엔 미흡하고, 공학도로 취업을 하자니 어쩐지 삶이 무미건조할 듯하고... 그런 그가 '인생 단어'를 매개로 산사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 SBS 스페셜 > '인생 단어를 찾아서'

< SBS 스페셜 > '인생 단어를 찾아서'ⓒ SBS

  
"실패를 한번도 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실패에서 일어날 수 있는 '긍정'적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꿈은 직업보다 윗단계이다. 나에겐 '요리사', '마술사', '디자이너' 등 여전히 이루고 싶은 꿈이 남아있다." - 데니스 홍, 기계공학 박사 

그런가 하면 유현기씨는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같은 작가를 꿈꾼다. 한참 <해리 포터>가 인기를 끌 무렵 탄 지하철에서 그곳 승객들 대다수가 <해리 포터>를 읽고 있는 모습에서 '글'의 위력을 느낀 이래, 자신의 길을 '글쓰기'로 정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비싼 술'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아니 비싼 술을 사먹을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누리고 싶은 마음과 '글쟁이'의 현실 사이에서 그는 갈등하는 중이다. 

이렇게 두 젊은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현실'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고 있다. 유현기씨 친구들은 말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덕업일치'를 꿈꾸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걸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끼는 중이란다. 그런 딜레마에 휩싸인 청춘들이 고독한 산사에서 자신의 인생 단어 찾기에 나섰다.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노력은 큰 짐이다. 하지만 그 짐을 기꺼이, 흔쾌히 지고 나며 성취감과 행복이 따른다." - 이승엽, 국민타자 
  
 < SBS 스페셜 > '인생 단어를 찾아서'

< SBS 스페셜 > '인생 단어를 찾아서'ⓒ SBS

  
인생 단어를 통해 길어올린 나

산사의 방, 두 청춘에게 주어진 건 이른바 '인생 사전'이라 꾸며진 국어사전 한 권 뿐이다. 산사의 일정 외에 하루 종일 할 일이라고는 혼자 사전을 뒤적이며 그 속에서 건져올린 단어를 '화두'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다큐 제작진은 청춘을 인도할 인생 단어를 찾기에 앞서, 우선 그들이 지나온 날들을 규정할 수 있는 인생 단어를 찾게 한다. 두 청년은 지나온 인생의 단어를 찾으며 뜻밖에도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 시대 젊은이들이 그러하듯 '공부하고, 또 대학에 와서도 공부하고, 취업 준비하느라 생각하는 것, 더구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익숙치 않다 못해 낯설다'는 준우씨가 선택한 자신이 지나온 날을 규정하는 단어는 '관심'이었다.

"내 인생의 단어는 '탐구'이다. 2006년 사고가 나기 전 나는 자연 과학자로 바다를 탐구해왔다. 이제 장애인이 된 나는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탐구한다." - 이상묵, 서울대 해양과학과 교수 

"고등학교 시절 관심받고 싶어 일부러 질문하기도 했었다"고 자신을 돌아보는 준우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마술 역시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스스로 진단한다. '관심'으로부터 시작한 단어는 '인정', '칭찬', '관계, '자존감', '타인'으로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렇듯 처음 '단어'로 시작된 이준우란 존재가 길어진다. 

그렇게 '관계'에 천착한 준우씨와 달리, 현기씨가 길어올린 '과거'의 단어는 '외동'이다. 외동으로 자라 '관계' 맺기가 서툴렀던 그는 왕따가 된 적이 있다. '외돌다', '외딸다' 등 '외'로 시작하던 단어의 세계를 헤매던 그가 찾아낸 '지나온 시간의 단어'는 '부빙'. 물 위에 떠다니는 얼음 조각을 이르는 이 말로 자신을 정의한 현기씨는 얼음이 떠다니며 깎아지듯, 자신도 살아오면서 깎였고 고유의 장점이 녹아내리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믿고 싶지 않다. 스스로 알아내고 싶다." - 칼 세이건, 천문학자 
  
 < SBS 스페셜 > '인생 단어를 찾아서'

< SBS 스페셜 > '인생 단어를 찾아서'ⓒ SBS

  
인생의 나침반, 인생 단어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는 것과 달리, 마치 무에서 유를 만들듯 앞으로의 삶을 이끌 '나침반' 같은 단어를 찾는 건 쉽지 않다. 이에 두 청춘이 머무는 월정사의 도연 스님은 '인생 단어'라는 거창한 명제에 가로막힌 두 젊은이들에게 기본 전제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왜 당신의 인생 단어를 찾아야 하는가'부터 생각해보라는 것. 

도연 스님에게도 물리학도로 카이스트에 입학 후 1년 만에 도반의 생활에 든 경험이 있던 바, 그의 인생 단어는 '자유'였다. 그가 말한 자유는 스스로 자신이 찾아낸 이유라는 뜻의 자유이다. 남들은 왜 전도유망한 물리학도를 내팽개치고 도반의 길에 올랐는가 지금도 의아해 한다. 하지만 그는 "해야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들 사이에서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낸 자유의 길이었다"며 두 젊은이에게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보라 충고한다. 

그러자 현기씨가 떠올린 건 학교 선배 진남현씨. 전남에서 농사를 짓는 서른 살 진남현씨는 남들처럼 출퇴근을 하며 살아갈 생각이 없었다. 다만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며 굶어 죽지 않을 방법을 모색하다 '농사'를 찾았다. 그리고 그 농터에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상영하는 '너멍굴 영화제'를 2회째 개최했다. 진남현씨가 말한 행복은 '포기'의 과정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덜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 과정 말이다. 

준우씨, 현기씨와 함께는 아니지만 인생 단어 찾기에 나선 또 한 명의 젊은이 안은섭씨는 친구들의 인생 단어 수집으로부터 그 여정을 시작했다. 서울대에 입학했다는 성취감도 잠시, 한 학기만에 그를 엄습한 건 공허감과 허탈감이었다. IMF로 어려워졌던 집안 형편, CEO가 되고 싶어 선택했던 경영학과, 하지만 자신이 되고 싶었던 건지, 돼야 했던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과연 내 꿈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그 역시 인생 단어를 통해 자신을 찾아간다.

"결정의 기준은 나, 인생은 나를 믿고 가는 것이다." - 이현세, 만화가 
 
 < SBS 스페셜 > '인생 단어를 찾아서'

< SBS 스페셜 > '인생 단어를 찾아서'ⓒ SBS

  
현실도, 꿈도 부등켜 안고 

세 명의 젊은이는 결국 각자 자신의 인생 단어를 찾는데 성공한다. 제일 먼저 결정한 건 현기씨이다. 비싼 술도 좋지만, 생각해 보니 '무위도식'을 바라진 않았다. 고달파도 자신의 글로 먹고 사는 삶의 보람을 그렸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단어는 '꺼리낌없이 주장되고 발휘된다'는 '창달'이다.

마술과 공학도의 길에서 헤매던 준우씨가 선택한 단어는 뜻밖에도 '책임'과, '중도'이다. 되돌아보니 자신이 소소하게 책임을 다하는 삶을 중요하게 여겼더라는 준우씨. 왜 그런 자신을 몰랐을까 신기하더던 준우씨는 그 '책임'을 다하는 삶을 위해 마술과 공학도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시도를 해보겠다며 산사를 떠난다. 은섭씨 역시 '공감각'이란 단어를 통해 자신이 하고픈 '디자인'과 현재 자신이 공부하는 '경영'의 '조화'를 찾는다. 

가장 피상적인 '단어'를 통해 접근해 들어간 젊은이들의 인생 나침반 찾기. 자신의 과거로 부터 길어올린 단어를 통해, 뜻밖에도 처음과는 다른 자신을 '직시'해가는 과정이 의미있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세상을 살아갈 '나침반'을 찾아가는 여정은 어렵지만 '꿈'도, '현실'도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 이 시대 청춘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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